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687쪽

태화당 2020. 1. 1. 08:46

黃檗山】 ①位於福建福淸縣城西十七公里處 又稱南山 以盛産黃檗(其樹皮可作藥用與染料用)而得名 唐貞元五年(789) 正幹禪師開山建寺 名般若堂 其後大闢堂宇 歷時八年 改稱建福寺 旋有希運禪師住山 黃檗之名頓顯 此寺遂成爲中國禪宗臨濟派之大道場 宋時頗爲興盛 其後 歷經興衰 明神宗曾賜以萬福禪寺之額 至崇禎十四年(1641) 隱元始重興 後隱元東渡日本 開創宇治大和山 卽取其規模 竝取名爲黃檗山萬福禪寺 [傳燈錄九 宋高僧傳二十 釋氏稽古略三 黃檗山志] 位於江西宜豐縣西五十七公里處 又稱鷲峰山 唐末 希運禪師至此開山 以其出家於福州黃檗山 故世稱此山爲黃檗山 寺名黃檗寺 又稱靈鷲寺 不久 四方學者望風雲集 往來常有千餘人 唐宣宗曾幸此山 與希運同觀瀑布 竝相對賦詩 從此黃檗宗風盛於江南 又希運之後 有法濟 志因 惟初 惟勝 道全 永泰等相繼住此 山名益著 南宋紹興九年(1139) 高宗曾賜名報恩光孝禪寺 以爲追念其父徽宗之所 至明中葉曾廢毁 然明思宗時 常愚炤通等 曾復興之 [黃檗禪師傳心法要序 隆興佛敎編年通論二十六 佛祖歷代通載二十三] 爲日本黃檗宗之大本山萬福寺之山號

황벽산(黃檗山) 복건 복청현성(福淸縣城) 서쪽 17곳에 위치함. 또 명칭이 남산(南山)이며 황벽(黃檗; 樹皮는 가히 약용과 염료용으로 씀)이 성산(盛産)하기 때문에 이름을 얻었음. 당 정원 5(789) 정간선사가 개산하고 사원을 세웠고 이름을 반야당이라 했음. 그 후에 당우(堂宇)를 크게 열어 8년을 역시(歷時)하였고 개칭하여 건복사라 했음. 이윽고() 희운선사(希運禪師)가 있어 주산(住山)했고 황벽의 이름이 돈현(頓顯)했으니 이 사원은 드디어 중국 선종 임제파의 대도량을 이루었음. 송시(宋時) 자못 흥성했고 그 후에 흥쇠를 역경(歷經)했음. () 신종이 일찍이 만복선사의 편액을 주었으며 숭정 14(1641)에 이르러 은원(隱元)이 비로소 중흥했음. 후에 은원이 일본으로 동도(東渡)하여 우치(宇治) 대화산(大和山)을 개창하고 곧 그 규모를 취했으며 아울러 이름을 취해 황벽산 만복선사(萬福禪寺)라 했음 [전등록9. 송고승전20. 석씨계고략3. 황벽산지]. 강서 의풍현 서쪽 57곳에 위치함. 또 호칭이 취봉산(鷲峰山)이니 당말(唐末) 희운선사(希運禪師)가 여기에 이르러 개산했음. 그가 복주 황벽산에서 출가했으므로 고로 이 산을 세간에서 일컫기를 황벽산이라 했음. 사명(寺名)은 황벽사며 또 명칭이 영취사였음. 오래지 않아 사방의 학자가 망풍(望風)하여 운집했고 왕래하는 이가 늘 천여 인이 있었음. 당선종(唐宣宗)이 일찍이 이 산에 거둥하여() 희운(希運)과 폭포를 함께 관람했으며 아울러 서로 부시(賦詩)로 상대했는데 이로 좇아 황벽종풍이 강남에 성했음. 또 희운의 뒤에 법제ㆍ지인ㆍ유초ㆍ유승ㆍ도전ㆍ영태 등이 있어 상계(相繼)하여 여기에 거주한지라 산명이 더욱 드러났음. 남송 소흥 9(1139) 고종이 일찍이 사명(賜名)하여 보은광효선사(報恩光孝禪寺)라 했고 그의 부친 휘종을 추념(追念)하는 장소로 삼았음. () 중엽에 이르러 일찍이 폐훼(廢毁)했으나 그러나 명 사종(思宗) 시 상우, 소통 등이 일찍이 그것을 부흥했음 [황벽선사전심법요서. 융흥불교편년통론26. 불조역대통재23]. 일본 황벽종의 대본산 만복사의 산호(山號)가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