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690쪽

태화당 2020. 1. 1. 08:48

黃檗引導指唐代黃檗希運禪師引導母親之故事 黃檗出家後 其母因思念愛兒 憂傷過度而致失明 黃檗參訪百丈懷海禪師悟道後 回鄕探省母親 然其母未遇 遂追至河畔 而不愼落水滅頂 黃檗乃執火炬謂 一子出家 九族生天 若是妄語 諸佛妄語 竝將火炬投入河中 引導其母 此一故事竝未記載於禪宗之史傳典籍 僅見於日本中世紀之切紙中 [百通切紙三]

황벽인도(黃檗引導) 당대 황벽희운선사가 모친을 인도(引導)한 고사(故事)를 가리킴. 황벽이 출가한 후 그의 모친이 아들을 사념하며 사랑했기 때문에 우상(憂傷)이 과도하여 실명(失明)했음. 황벽이 백장회해선사를 참방하여 오도한 후 고향에 돌아가 모친을 탐성(探省)했는데 그러나 그의 모친이 만나지 못했고 드디어 쫓아 하반(河畔)에 이르렀다가 신중하지 못해 물에 떨어져 멸정(滅頂; 물이 머리에 까지 넘침이니 곧 빠져 죽음)했음. 황벽이 이에 횃불을 가지고 이르기를 1()가 출가하면 구족(九族)이 생천(生天)한다 했는데 만약 이것이 망어(妄語)라면 제불도 망어다. 아울러 횃불을 가지고 하중(河中)에 투입하여 그의 모친을 인도(引導)했음. 이 하나의 고사는 모두 선종의 사전(史傳)이나 전적(典籍)에 기재되지 않았고 다만 일본 중세기의 절지(切紙) 중에 보임 [백통절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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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檗掌沙彌黃檗禮佛 了慧語錄下 黃檗掌沙彌 膝下黃金貴 掌中天地寬 風雲欣際會 四海夜濤寒

황벽장사미(黃檗掌沙彌) 황벽례불을 보라. 요혜어록하. 황벽장사미(黃檗掌沙彌) 슬하에 황금이 귀하고/ 장중(掌中)의 천지가 넓다/ 풍운이 흔쾌히 제회(際會; 聚會)하고/ 사해(四海)의 야도(夜濤)가 차갑다.


黃檗全宋代黃龍派僧道全 住瑞州黃檗 詳見道全

황벽전(黃檗全) 송대 황룡파승 도전이 서주 황벽에 거주했으니 상세한 것은 도전(道全)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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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檗宗日本禪宗三派之一 明代永曆八年(1654) 黃檗山萬福禪寺之隱元隆琦(1592-1673) 應日本長崎興福寺逸然之邀請 與獨湛相偕至長崎弘揚臨濟禪 四年後 謁見德川家綱 翌年受賜山城國宇治之寺地 其後三年 於當地開黃檗山萬福禪寺 創黃檗宗 與日本臨濟宗曹洞宗 竝爲日本禪宗三派 隱元轉至江戶白金創建瑞聖寺 竝於近江正明寺等處 大弘禪風 此宗遂傳於關東 明治七年(1874) 與臨濟宗合倂 二年後 又告獨立 此宗以萬福寺爲大本山 另有五百餘寺 其宗規開示正法眼藏 實相無相之法門 此外又以敎禪一如爲其宗旨 隱元主張禪淨一致 宣揚西方阿彌陀佛淨土信仰 而異於日本其他禪宗之宗風 復認爲萬法唯心 心外無別法 己身彌陀 唯心淨土 又與一般淨土信仰不同 且以漢音諷經 [黃檗宗鑑錄 佛敎各宗綱要九]

황벽종(黃檗宗) 일본 선종 3파의 하나. 명대 영력 8(1654) 황벽산(黃檗山) 만복선사(萬福禪寺)의 은원융기(隱元隆琦; 1592-1673)가 일본 장기(長崎) 흥복사 일연의 요청(邀請)에 응해 독담(獨湛)과 서로 함께 장기에 이르러 임제선을 홍양(弘揚)했음. 4년 후 덕천가강(德川家綱)을 알현했고 다음해 산성국(山城國) 우치(宇治)의 사지(寺地)를 수사(受賜)했고 그 후 3년 만에 당지(當地)에 황벽산 만복선사를 열고 황벽종(黃檗宗)을 개창했으니 일본 임제종 조동종과 아울러 일본 선종 3파가 되었음. 은원이 전()하여 강호 백금에 이르러 서성사를 창건하고 아울러 근강 정명사 등의 곳에서 선풍을 대홍(大弘)했고 이 종()이 드디어 관동에 전해졌음. 명치 7(1874) 임제종과 합병했다가 2년 후 또 독립을 고했음. 이 종은 만복사를 대본산으로 삼고 따로 500여 사원이 있음. 그 종규(宗規)는 정법안장(正法眼藏) 실상무상(實相無相)의 법문을 개시(開示)하며 이 밖에 또 교선일여(敎禪一如)를 그 종지(宗旨)로 삼음. 은원은 선정일치(禪淨一致)를 주장했고 서방 아미타불 정토신앙을 선양하여 일본의 기타 선종의 종풍과 달랐음. 다시 인식하기를 만법이 유심이라 마음 밖에 다른 법이 없으며 기신(己身)이 미타며 유심(唯心)이 정토라 하여 일반의 정토신앙과 부동(不同)했음. 또 한음(漢音)으로 풍경(諷經)했음 [황벽종감록. 불교각종강요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