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巢】 (820-884) 祖庭事苑二 黃巢 按唐書傳(舊唐書二百黃巢傳) 巢 曹州寃何人 本以販鹽爲事 乾符(874-87 9)中 仍歲凶荒 人飢爲盜 河南尤甚 巢與弟黃揆昆仲八人 率盜數千 依里人尙讓 月餘 衆至數萬 讓乃與群盜 推巢爲王 曰衝天大將軍 仍署官屬 蕃鎭不能制 以至於竊據京師 燔掠宮廟 天子爲之奔走 國號稱齊 年稱金統 朝廷以李克用率官軍討之 中和四年(884)五月 大敗之 賊散兗鄆界 巢入泰山 官軍遣將捕之 至狼虎谷 巢將林言斬巢及二弟鄴揆等七人首幷妻子 函送徐州 ▲傳燈錄十六巖頭全豁 師問僧 什麽處來 曰 西京來 師曰 黃巢過後 還收得劍麽 曰 收得 師引頸作受刃勢 僧曰 師頭落也 師大笑
황소(黃巢) (820-884) 조정사원2. 황소(黃巢) 당서(唐書; 구당서200 黃巢傳)의 전(傳; 經書의 說明)을 안험컨대 황소는 조주(曹州) 원하(寃何) 사람이며 본래 소금 판매로 일을 삼았다. 건부(乾符; 874-879) 중 여러 해 흉황(凶荒)이라 사람들이 굶다가 도적이 되었는데 하남(河南)이 더욱 심했다. 황소가 동생 황규와 더불어 곤중(昆仲; 昆은 맏이 곤) 8인이 도적 수천을 거느리고 이인(里人) 상양(尙讓)에게 의지했는데 월여(月餘)에 무리가 수만에 이르렀으며 상양이 이에 군도(群盜)와 더불어 황소를 추대해 왕으로 삼아 가로되 충천대장군(衝天大將軍)이라 했고 인해 관속(官屬)을 두었다(署). 번진(蕃鎭)이 능히 제압치 못해 경사(京師; 師는 서울 사. 곧 서울)에 절거(竊據)하기에 이르렀으며 궁묘(宮廟)를 번략(燔掠; 燔은 사를 번. 掠은 노략질할 략)했고 천자가 분주(奔走)했다. 국호를 제(齊)라 칭하고 연호(年號)를 금통(金統)이라 칭했다. 조정에서 이극용(李克用)을 써 관군을 거느리고 그를 토벌했다. 중화 4년(884) 5월 크게 그를 패퇴시키자 도적은 연운(兗鄆)의 경계로 흩어지고 황소는 태산에 들어갔다. 관군이 장병을 보내 그를 체포하려 했고 낭호곡(狼虎谷)에 이르자 황소의 장군 임언(林言)이 황소 및 두 동생인 업(鄴), 규(揆) 등 7인의 머리와 아울러 처자를 베어 서주(徐州)에 함송(函送)했다. ▲전등록16 암두전활. 스님이 중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가로되 서경(西京)에서 옵니다. 스님이 가로되 황소(黃巢)가 지나간 후에 도리어 검을 거두었는가. 가로되 거두었습니다. 스님이 목을 늘어뜨리며 칼날을 받는 자세를 지었다. 중이 가로되 스님의 머리가 떨어졌습니다. 스님이 대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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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荒疏】 浮躁 荒唐 ▲潙山警策 言行荒疏 虗霑信施
황소(荒疏) 부조(浮躁; 들뜨고 방정맞음). 황당(荒唐). ▲위산경책. 언행이 황소(荒疏)하고 신시(信施)에 헛되이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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