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역태화선학대사전 10책(ㅎ)

국역태화선학대사전(國譯泰華禪學大辭典) 10책(ㅎ) 720쪽

태화당 2020. 1. 1. 09:10

會上會座 上 表示範圍或方面 如書上 思想上 政治上 傳燈錄二十一慧球寂照 問 如何是靈山會上事 師曰 少得靈利底 聯燈會要九 仰云 如楞嚴會上 阿難贊佛云 將此深心奉塵刹 是則名爲報佛恩 豈不是報恩之事

회상(會上) 회좌(會座)니 상은 범위나 혹 방면을 표시함. 예컨대() 서상(書上)ㆍ사상상ㆍ정치상. 전등록21 혜구적조. 묻되 무엇이 이 영산회상(靈山會上)의 일입니까. 스님이 가로되 영리한 자를 얻음이 적다. 연등회요9. (; 앙산)이 이르되 예컨대() 릉엄회상(楞嚴會上)에서 아난이 찬불해 이르되 이 깊은 마음을 가져 진찰(塵刹)을 받들어야 이것을 곧 이름하여 부처의 은혜를 갚음이라고 했으니 어찌 이 보은의 일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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淮西淮右 爲一地域名稱 宋在蘇北和江淮設淮南東路和淮南西路 淮南東路又稱淮左 淮南西路稱淮右 淮右多山 淮左多水 一般指今江淮地區 [百度百科] 釋氏稽古略三 四祖道信大師尊者 姓司馬氏 世居河內 徙居蘄州廣濟縣 今淮西也

회서(淮西) 곧 회우(淮右)니 한 지역의 명칭이 됨. ()에서 소북(蘇北)과 강회(江淮)에 회남동로(淮南東路)와 회남서로(淮南西路)를 설치했는데 회남동로는 또 명칭이 회좌(淮左)며 회남서로는 명칭이 회우(淮右)니 회우엔 산이 많고 회좌엔 물이 많음. 일반으로 지금의 강회지구를 가리킴 [백도백과]. 석씨계고략3. 4조 도신대사 존자는 성이 사마씨며 세대(世代; 여러 대)로 하내(河內)에 거주했고 기주(蘄州) 광제현으로 사거(徙居)했으니 지금의 회서(淮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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晦石琦淸代臨濟宗僧超琦 字晦石 詳見超琦

회석기(晦石琦) 청대 임제종승 초기의 자가 회석이니 상세한 것은 초기(超琦)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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回石頭宋代楊岐派僧自回 世稱石頭和尙 回石頭 詳見自回

회석두(回石頭) 송대 양기파승 자회는 세칭이 석두화상ㆍ회석두니 상세한 것은 자회(自回)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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會善寺位于河南省登封縣嵩山積翠峰下 爲曹洞宗重要道場 原爲北魏孝文帝夏季的離宮 其後捐爲佛寺 隋開皇(581-600)年間 改名會善寺 唐代四方僧來此住者漸多 道安從五祖弘忍處得法後 屛居會善寺 神秀法嗣景賢于開元十一年(723) 示寂于此寺 唐初 一行禪師與元同律師 曾在該寺 設立五佛正思惟戒壇 一時嚴淨 其後衰微 大曆二年(767) 朝廷敕許于寺西建立戒壇院 每年受戒者多達數千人 趙州從諗亦受戒于此

회선사(會善寺) 하남성 등봉현 숭산 적취봉 아래 위치함. 조동종의 중요한 도량이 됨. 원래 북위 효문제의 하계의 이궁(離宮)이 되었는데 그 후 기부(寄附; )하여 불사(佛寺)로 만들었음. () 개황(581-600)년 간 회선사로 개명했음. 당대(唐代) 사방의 승려가 여기에 와서 거주하는 자가 점차 많아졌음. 도안(道安)5조 홍인의 처소로부터 득법한 후 회선사에 병거屛居; 退隱)했고 신수(神秀)의 법사 경현이 개원 11(723) 이 사원에서 시적했음. 당초(唐初) 일행선사와 원동율사가 일찍이 그 사원에서 오불정사유계단(五佛正思惟戒壇)을 설립했고 일시에 엄정(嚴淨)했음. 그 후 쇠미하다가 대력 2(767) 조정에서 칙허(敕許)하여 사원의 서쪽에 계단원(戒壇院)을 건립했고 매년 수계하는 자가 많기로는 수천 사람에 도달했음. 조주종심도 또한 여기에서 수계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