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沐】 休息洗沐 猶休假 ▲天台空室慍禪師行業記 時金華宋公景濂方在翰林 遇休沐日 必訪師
휴목(休沐) 휴식과 세목(洗沐)이니 휴가와 같음. ▲천태공실온선사행업기. 때에 금화 송공경렴(宋公景濂)이 방금 한림에 있었는데 휴목일(休沐日)을 만나면 반드시 스님을 참방(參訪)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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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復】 (?-943) 五代僧 俗姓王 北海(今山東濰坊)人 幼出家 十九歲受具足戒 依桂琛經年不契 病中見桂琛指燈籠 乃有省悟 後住崇壽寺 江南國主創昇州(今江蘇江寧)淸涼大道場延請居之 署號悟空禪師 [傳燈錄二十四 十國春秋三十三]
휴복(休復) (?-943) 오대승. 속성은 왕(王)이며 북해(지금의 산동 유방)사람. 어릴 적에 출가했고 19세에 구족계를 받았으며 계침(桂琛)에게 의지(依止)하여 해를 지냈으나 계합(契合)치 못했는데 병중(病中)에 계침이 등롱(燈籠)을 가리킴을 보고 이에 성오(省悟)가 있었음. 후에 숭수사(崇壽寺)에 주(住)했는데 강남국주(江南國主)가 승주(昇州; 지금의 강소 강녕)에 청량대도량(淸涼大道場)을 창건하고 연청(延請)해 거주케 했으며 서호(署號; 호를 써 줌)하여 오공선사라 했음 [전등록24. 십국춘추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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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畦服】 袈裟之異名 取田畦形象製成 故名畦服 ▲宏智廣錄八 虛明道洗壯心秋 畦服蒙顱下板頭
휴복(畦服) 가사의 다른 이름. 전휴(田畦; 밭두렁. 논두렁)의 형상을 취해 제성(製成)한지라 고로 이름이 휴복임. ▲굉지광록8. 허명(虛明)한 도로 장심(壯心)을 씻는 가을에 휴복(畦服)을 머리에 덮고 판두(板頭)에서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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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庵】 元末明初臨濟宗僧可授的法號 詳見可授
휴암(休庵) 원말명초 임제종승 가수의 법호니 상세한 것은 가수(可授)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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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翁一禪】 朝鮮國僧一禪號休翁 詳見一禪
휴옹일선(休翁一禪) 조선국승 일선의 호가 휴옹이니 상세한 것은 일선(一禪)을 보라.
【休牛歸馬】 祖庭事苑二 休牛歸馬 尙書 武成曰 武王伐殷 乃偃武修文 歸馬于華山之陽 放牛于桃林之野 示天下弗服(服 使用) 說者曰 山南曰陽 桃林在華山東 皆非長養牛馬之地 欲使自生自死 示天下不復乘用也 ▲續燈錄十七惟白佛國 休牛歸馬 偃武修文
휴우귀마(休牛歸馬) 조정사원2. 휴우귀마(休牛歸馬) 상서(尙書) 무성(武成; 상서의 篇名)에 가로되 무왕(武王)이 은(殷)을 정벌해 이에 무(武)를 눕히고 문(文)을 닦아 말을 화산(華山)의 양(陽)에 돌려보내고 소를 도림(桃林)의 들에 방목해 천하에 불복(弗服; 服은 사용)을 보였다. 설자(說者)가 가로되 산남(山南)을 가로되 양(陽)이며 도림(桃林)은 화산(華山)의 동쪽에 있는데 다 우마(牛馬)를 장양(長養)할 땅이 아니니 자생자사(自生自死)케 하려 함이며 천하에 다시는 승용(乘用)이 아님을 보임이다. ▲속등록17 유백불국. 휴우귀마(休牛歸馬)하고 언무수문(偃武修文; 武를 눕히고 文을 닦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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