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解釋分中 在文亦二 一者結前起後 二者正釋 正釋中有三 一者擧數總標 二者依數開章 三者依章別解
△제3 해석분(解釋分) 중에 재문(在文)이 또한 둘이니 1자는 앞을 맺고 뒤를 일으킴이며 2자는 정석(正釋)이니 정석 중에 셋이 있다. 1자는 수(數)를 들어 총표(總標)함이며 2자는 수에 의해 개장(開章)함이며 3자는 장(章)에 의해 별해(別解)함이다.
已說立義分 次說解釋分 解釋分有三種 云何爲三 一者顯示正義 二者對治邪執 三者分別發趣道相
이미 입의분을 설했으니 다음으로 해석분을 설하리라. 해석분에 3종이 있으니 무엇이 셋이 되는가, 1자는 정의(正義)를 현시(顯示)함이며 2자는 사집(邪執)을 대치(對治)함이며 3자는 도에 발취하는 상(發趣道相)을 분별하리라.
開章中 言顯示正義者 正釋立義分中所立也 對治邪執 發趣道相者 是明離邪就正門也
개장(開章) 중에 말한 정의(正義)를 현시(顯示)한다는 것은 입의분(立義分) 중에 세운 바를 정석(正釋)함이다. 사집(邪執)을 대치(對治)함과 도에 발취하는 상(發趣道相)이란 것은 이는 사집(邪執)을 여의고 정문(正門)으로 나아감을 밝힘이다.
△別解之中 卽有三章 初釋顯示正義分中 大分有二 初正釋義 後示入門 正釋之中 依上有二 初釋法章門 後釋義章門 初中亦二 一者總釋 釋上總立 二者別解 解上別立
△별해(別解)의 가운데 곧 3장(章)이 있다. 초(初) 현시정의분(顯示正義分; 正義를 顯示한 分)을 해석한 가운데 대분(大分)하면 둘이 있다. 초(初)는 뜻(義)을 정석(正釋)함이며 후(後)는 입문(入門)을 보였다. 정석(正釋)의 가운데 상(上)에 의해 둘이 있으니 초(初)는 법장문(法章門)을 해석했고 후(後)는 의장문(義章門)을 해석했다. 초중(初中)에 또한 둘이다. 1자는 총석(總釋)이니 위의 총립(總立)을 해석했고 2자는 별해(別解)니 위의 별립(別立)을 해석했다.
顯示正義者 依一心法有二種門 云何爲二 一者心眞如門 二者心生滅門 是二種門皆各總攝一切法 此義云何 以是二門不相離故
정의를 현시(顯示正義)한다는 것은 1심의 법에 의해 2종의 문이 있나니 무엇이 둘이 되는가, 1자는 심진여문(心眞如門)이며 2자는 심생멸문(心生滅門)이다. 이 2종의 문이 각기 일체법을 총섭(總攝)하나니 이 뜻이 무엇인가(云何). 이 2문(門)이 서로 여의지 않기 때문의 연고다.
初中言依一心法有二種門者 如經本言 寂滅者名爲一心 一心者名如來藏 此言心眞如門者 卽釋彼經寂滅者名爲一心也 心生滅門者 是釋經中一心者名如來藏也 所以然者 以一切法無生無滅 本來寂靜 唯是一心 如是名爲心眞如門 故言寂滅者名爲一心 又此一心體是本覺 而隨無明動作生滅 故於此門如來之性隱而不顯 名如來藏 如經言如來藏者是善不善因 能徧興造一切趣生 譬如伎兒變現諸趣 如是等義在生滅門 故言一心者名如來藏 是顯一心之生滅門 如下文言 心生滅者 依如來藏故有生滅心 乃至此識有二種義 一者覺義 二者不覺義 當知非但取生滅心爲生滅門 通取生滅自體及生滅相 皆在生滅門內義也 二門如是 何爲一心 謂染淨諸法其性無二 眞妄二門不得有異 故名爲一 此無二處 諸法中實 不同虛空 性自神解 故名爲心 然旣無有二 何得有一 一無所有 就誰曰心 如是道理 離言絶慮 不知何以目之 强號爲一心也 言是二種門皆各總攝一切法者 釋上立中是心卽攝一切世間出世間法 上直明心攝一切法 今此釋中顯其二門皆各總攝 言以是二門不相離故者 是釋二門各總攝義 欲明眞如門者染淨通相 通相之外無別染淨 故得總攝染淨諸法 生滅門者別顯染淨 染淨之法無所不該 故亦總攝一切諸法 通別雖殊 齊無所遣 故言二門不相離也 總釋義竟
초중(初中)에 말한 1심의 법에 의해 2종의 문이 있다는 것은 예컨대 경본(經本; 入楞伽經一)에 말하되 적멸이란 것은 일심이며 일심이란 것은 이름이 여래장이다(寂滅者名爲一心 一心者名如來藏). 여기에서 말한 심진여문(心眞如門)이란 것은 곧 그 경의 적멸이란 것은 이름해 일심이다를 해석했고 심생멸문(心生滅門)이란 것은 이는 경중의 일심이란 것은 이름이 여래장이다를 해석했다. 소이가 그러한 것은 일체법이 무생무멸(無生無滅)이며 본래 적정(寂靜)이며 오직 이 일심이니 이와 같음을 이름하여 심진여문이라 하는지라 고로 말하되 적멸이란 것은 이름하여 일심이라 했다. 또 이 일심의 체(體)는 이 본각(本覺)이로되 무명을 따라 동작하고 생멸하는지라 고로 이 문에선 여래지성(如來之性)이 숨어 나타나지 않나니 이름이 여래장(如來藏)이다. 예컨대(如) 경(經; 楞伽阿跋多羅寶經四)에 말하되 여래장이란 것은 이 선(善)과 불선(不善)의 인(因)이니 능히 두루 일체의 취생(趣生)을 흥조(興造)함이 비유컨대 기아(伎兒; 演藝者니 兒는 後綴)가 제취(諸趣)를 변현(變現)함과 같다. 이와 같은 등의 뜻이 생멸문에 있는지라 고로 말하되 일심이란 것은 이름이 여래장이다 했으니 이는 일심의 생멸문을 나타내었다(顯). 예컨대(如) 하문(下文; 권2)에 말하되 심생멸(心生滅)이란 것은 여래장에 의하는지라 고로 생멸심이 있다 내지 이 식(識)에 2종의 뜻이 있으니 1자는 각의(覺義)며 2자는 불각의(不覺義)다 했다. 마땅히 알지니 단지 생멸심을 취해 생멸문을 삼음만이 아니라 생멸의 자체 및 생멸상(生滅相)을 통취(通取; 모두 취함)하여 모두 생멸문 내의 뜻에 있다 함이다. 2문이 이와 같거늘 어찌하여 일심이라 하는가, 이르자면 염정(染淨)의 제법이 그 성(性)이 둘이 아니며(無) 진망(眞妄)의 2문(門)이 다름이 있음을 얻지 못하는지라 고로 이름하여 일(一)이다. 이 무이처(無二處)는 제법 중에 실(實)인지라 허공과 같지 않고 자성이 스스로 신해(性自神解)하므로 고로 이름하여 심(心)이다. 그러하여 이미 둘(二)이 있지 않다 했거늘 어찌하여 하나(一)가 있음을 얻겠는가, 하나도 있는 바가 없다면 무엇(誰)에 나아가 가로되 심(心)이라 하는가. 이와 같은 도리는 이언절려(離言絶慮; 언어를 여의고 사려를 끊음)라 무엇으로써 이를(之) 제목할지(目) 알지 못해 억지로 호하여(强號) 일심이라 했다. 말한 이 2종의 문이 모두 각기 일체법을 총섭(總攝)했다는 것은 위에서 세운 중 이 심이 곧 일체의 세간과 출세간의 법을 거둔다를 해석했음이다. 위에선 바로(直) 마음이 일체법을 거둠을 밝혔고 여금의 이 해석 중에선 그 2문(門)이 모두 각기 총섭(總攝)했음을 밝혔다(顯). 말한 이 2문(門)이 서로 여의지 않기 때문의 연고라 한 것은 이는 2문이 각기 총섭한 뜻을 해석했음이다. 진여문이란 것을 밝히려고 한다면 염정(染淨)의 통상(通相; 共同의 상)이니 통상의 밖에 별다른 염정(染淨)이 없는지라 고로 염정의 제법을 총섭함을 얻는다. 생멸문이란 것은 염정을 별현(別顯)함이니 염정의 법을 갖추지(該) 않는 바가 없는지라 고로 또한 일체제법을 총섭한다. 통별(通別)이 비록 다르지만 제등(齊等; 齊)히 보내는(遣) 바가 없는지라 고로 말하되 2문이 서로 여의지 않는다. 의(義)를 총석(總釋)함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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