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了一法界義者 從信相應地觀察學斷 入淨心地隨分得離 乃至如來地能究竟離故
1법계임을 요지(了知; 了)하지 못함의 뜻이란 것은 신상응지(信相應地)로 좇아 학(學)이 단절되었음을 관찰하고 정심지(淨心地)에 들어 분한(分限; 分) 따라 여읨을 얻다가 이에 여래지(如來地)에 이르러서야 능히 구경(究竟)의 여읨인 연고다.
第四明無明治斷 然無明住地有二種義 若論作得住地門者 初地以上能得漸斷 若就生得住地門者 唯佛菩提智所能斷 今此論中不分生作 合說此二通名無明 故言入淨心地隨分得離 乃至如來地能究竟離也
제4 무명을 치단(治斷)함을 밝힘이다. 그러나 무명의 주지(住地)가 2종의 뜻이 있나니 만약 작(作)하여서 주지(住地)를 얻는 문(門)을 논한다면 초지(初地) 이상이라야 능히 점차 끊음을 얻고 만약 생하여 주지(住地)를 얻는 문을 좇는다면(就) 오직 불(佛)의 보리지(菩提智)라야 능단(能斷)하는 바이로되 여금의 이 논중에선 생(生)과 작(作)을 나누지 않고 이 둘을 합설(合說)하여 무명이라고 통명(通名)한지라 고로 말하되 정심지(淨心地)에 들어 분한(分限; 分) 따라 여읨을 얻다가 이에 여래지(如來地)에 이르러서야 능히 구경(究竟)의 여읨이라 했다.
言相應義者 謂心念法異 依染淨差別 而知相緣相同故 不相應義者 謂卽心不覺 常無別異 不同知相緣相故
말한 상응의 뜻이란 것은 이르자면 심(心)과 염법(念法)이 다르지만 염(染)과 정(淨)의 차별에 의하여선 지상(知相)과 연상(緣相)이 같은(同) 연고며 불상응의 뜻이란 것은 이르자면 곧 심의 불각이라서 늘 별이(別異)가 없으므로 같은 지상연상(知相緣相)이 없는(不) 연고다.
第五明相應不相應義 六種染中 前三染是相應 後三染及無明是不相應 相應中言心念法異者 心法之名也 迦旃延論中 名爲心及心所念法也 依染淨差別者 分別染淨諸法見慢愛等差別也 知相同者 能知相同 緣相同者 所緣相同也 此中依三等義以說相應 謂心念法異者是體等義 謂諸煩惱數 各有一體 皆無第二故 知相同者是知等義 緣相同者是緣等義 彼前三染 具此三義 俱時而有 故名相應 問 瑜伽論說 諸心心法 同一所緣 不同一行相 一時俱有 一一而轉 今此中說知相亦同 如是相違 云何和會 答 二義俱有 故不相違 何者 如我見是見性之行 其我愛者愛性之行 如是行別 名不同一行 而見愛等皆作我解 依如是義名知相同 是故二說不相違也 不相應中言卽心不覺常無別異者 是明無體等義 離心無別數法差別故 旣無體等 餘二何寄 故無同知同緣之義 故言不同知相緣相 此中不者 無之謂也 問 瑜伽論說 阿棃耶識 五數相應 緣二種境 卽此論中現色不相應染 何故此中說不相應 答 此論之意 約煩惱數差別轉義 說名相應 現識之中 無煩惱數 依是義故 名不相應 彼新論意 約徧行數 故說相應 由是道理 亦不相違也
제5 상응과 불상응의 뜻을 밝힘이다. 6종의 염(染) 가운데 앞 3염(染)은 이 상응이며 뒤 3염 및 무명은 이 불상응이다. 상응 중에 말한 심(心)과 염법(念法)이 다르다는 것은 심과 법의 이름이다. 가전연론(迦旃延論) 중에 이름하여 심(心) 및 심소념법(心所念法)이라 했다. 염(染)과 정(淨)의 차별에 의한다는 것은 염정(染淨)의 제법(諸法)에 견(見)ㆍ만(慢)ㆍ애(愛) 등의 차별을 분별함이다. 지상(知相)이 같다(同)는 것은 능지(能知)의 상이 같음이며 연상(緣相)이 같다는 것은 소연(所緣)의 상이 같음이다. 이 중에 3등(等)의 뜻에 의해 상응을 설했음이니 이르자면 심(心)과 염법(念法)이 다르다는 것은 체등(體等)의 뜻이니 이르자면 모든 번뇌의 수(數)에 각기 1체(體)만 있고 모두 제2는 없는 연고다. 지상(知相)이 같다는 것은 이 지등(知等)의 뜻이며 연상(緣相)이 같다는 것은 이 연등(緣等)의 뜻이다. 저(彼) 앞의 3염(染)은 이 세 뜻을 갖추어 구시(俱時; 同時. 一時)에 있는지라 고로 이름이 상응이다. 묻되 유가론(권1)에 설하되 모든 심과 심법은 소연(所緣)이 동일하지만 행상(行相)은 동일하지 않아서 일시에 모두 있되(俱有) 하나하나 구른다 했거늘 여금의 이 가운데선 설하기를 지상(知相)도 또한 같다 하니 이와 같이 상위(相違)하거늘 어떻게 화회(和會)하겠는가. 답하되 두 뜻이 모두(俱) 있는지라 고로 상위하지 않나니 왜냐하면 예컨대(如) 내가 본다 함은 이 견성(見性; 보는 성품)의 행(行)이며 그 내가 사랑한다는 것은 애성(愛性)의 행(行)이니 이와 같이 행(行)이 다름을 이름하여 동일치 아니한 행(不同一行)이지만 보거나(見) 사랑한다(愛)는 등은 모두 아해(我解; 내가 알다)를 짓는다. 이와 같은 뜻에 의해 이름이 지상(知相)의 동(同)인지라 이런 고로 2설(說)이 상위(相違)하지 않는다. 불상응(不相應) 중에 말한 곧 심의 불각이라서 늘 별이(別異)가 없다는 것은 이는 체(體) 등의 뜻이 없음을 밝혔음이니 심(心)을 여의면 별다른 수법(數法)의 차별이 없는 연고다. 이미 체(體) 등이 없거늘 나머지 둘인들 어디에 기탁(寄託; 寄)하겠는가, 고로 동지동연(同知相緣)의 뜻이 없나니 고로 말하되 같은 지상연상(知相緣相)이 없다 했다(不同知相緣相). 이 중의 부(不)란 것은 무(無)를 일컬음이다(無之謂也). 묻되 유가론에 설하되 아리야식이 5수(數)로 상응하여 2종의 경계를 반연하다 하니 곧 이 논중의 현색불상응염(現色不相應染)이거늘 무슨 연고로 이 중에선 설하기를 불상응(不相應)이라 했는가. 답하되 이 논의 뜻은 번뇌수(煩惱數)가 차별로 구르는 뜻을 괄약하여 설명(說名)하여 상응이라 했거니와 현식(現識)의 가운데엔 번뇌수가 없나니 이 뜻에 의하는 고로 이름이 불상응이며 저 신론(新論; 유가론)의 뜻은 편행수(徧行數)를 괄약한지라 고로 상응이라 설했나니 이 도리로 말미암아 또한 상위(相違)하지 않는다.
●가전연(迦旃延); <梵> Kātyāna. 또 마하가다연나(摩訶迦多衍那)ㆍ마하가지야야나(摩訶迦底耶夜那)로 지음. 혹 명칭이 대가전연(大迦旃延)이니 의역하자면 대전척종남(大剪剔種男)임. 불타의 십대제자의 하나. 서인도 아반제국(阿槃提國) 사람. 불타의 제자 중에 논의제일(論議第一)로 일컬음. 구사론광기1(俱舍論光記一)에 이르죄 육족론(六足論) 중의 아비달마시설론(阿毘達磨施設論)은 스님이 지은 것이다 [法華經文句一下 慧琳音義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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