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我見者 依諸凡夫說有五種 云何爲五 一者聞脩多羅說 如來法身 畢竟寂寞 猶如虛空 以不知爲破著故 卽謂虛空是如來性 云何對治 明虛空相是其妄法 體無不實 以對色故有 是可見相 令心生滅 以一切色法 本來是心 實無外色 若無外色者 則無虛空之相 所謂一切境界 唯心妄起故有 若心離於妄動 則一切境界滅 唯一眞心無所不徧 此謂如來廣大性智究竟之義 非如虛空相故 二者聞脩多羅說 世間諸法畢竟體空 乃至涅槃眞如之法亦畢竟空 從本已來自空 離一切相 以不知爲破著故 卽謂眞如涅槃之性唯是其空 云何對治 明眞如法身自體不空 具足無量性功德故 三者聞脩多羅說 如來之藏無有增減 體備一切功德之法 以不解故 卽謂如來之藏有色心法自相差別 云何對治 以唯依眞如義說故 因生滅染義示現說差別故 四者聞脩多羅說 一切世間生死染法 皆依如來藏而有 一切諸法不離眞如 以不解故 謂如來藏自體具有一切世間生死等法 云何對治 以如來藏從本已來 唯有過恒沙等諸淨功德 不離不斷 不異眞如義故 以過恒沙等煩惱染法 唯是妄有 性自本無 從無始世來未曾與如來藏相應故 若如來藏體有妄法 而使證會永息妄者 則無是處故 五者聞脩多羅說 依如來藏故有生死 依如來藏故得涅槃 以不解故 謂衆生有始 以見始故 復謂如來所得涅槃有其終盡 還作衆生 云何對治 以如來藏無前際故 無明之相亦無有始 若說三界外更有衆生始起者 卽是外道經說 又如來藏無有後際 諸佛所得涅槃與之相應 則無後際故
인아견(人我見)이란 것은 모든 범부에 의해 5종이 있음을 설하나니 무엇이 다섯이 되는가, 1자는 수다라(脩多羅)에 설하되 여래의 법신은 필경 적막(寂寞)함이 오히려 허공과 같다 함을 듣고 파착(破著; 집착을 깨뜨림)할 줄 알지 못하는 연고로써 곧 이르기를 허공이 이 여래성(如來性)이라 하나니 어떻게 대치(對治)하는가, 허공상(虛空相)은 이것이(是) 그 망법(妄法)이라서 체(體)가 없어 실답지 못하거늘 색(對)을 대하는 연고로써 있음이며 이 가견상(可見相)이 마음으로 하여금 생멸케 하거니와 일체 색법(色法)이 본래 이 마음이기 때문에(以) 실로 외색(外色)이 없으며 만약 외색이 없다면 곧 허공의 상(相)도 없다. 이른 바 일체경계가 오직 마음이 허망하게 일어나는 고로 있거니와 만약 마음이 망동(妄動)을 여의며 곧 일체경계가 멸하고 유일(唯一)의 진심(眞心)만 두루하지 않는 바 없나니 이를 일러 여래의 광대성지(廣大性智)의 구경지의(究竟之義)라서 허공상(虛空相)과 같지 않음을 밝히는 연고다. 2자는 수다라에 설하되 세간의 제법(諸法)이 필경 체(體)가 공하여 내지 열반과 진여의 법도 또한 필경 공(空)이니 종본이래(從本已來)로 스스로 공하여 일체상(一切相)을 여의었다 함을 듣고 파착(破著)할 줄 알지 못하는 연고로써 곧 이르기를 진여와 열반의 성품도 오직 이것은(是) 그(其) 공(空)이라 하나니 어떻게 대치(對治)하는가, 진여의 법신은 자체가 불공(不空)이라서 무량한 성공덕(性功德)을 구족함을 밝히는 연고다. 3자는 수다라에 설하되 여래지장(如來之藏)이 증감이 있지 아니하되 체(體)가 일체의 공덕지법(功德之法)을 갖추었다(備) 함을 듣고 이해하지(解) 못하는 연고로써 곧 이르되 여래지장(如來之藏)에 색(色)ㆍ심(心)ㆍ법(法)의 자상차별(自相差別)이 있다 하나니 어떻게 대치(對治)하는가, 오직 진여의 뜻에 의함으로써 설하는 연고며 생멸염(生滅染)의 뜻으로 인해 시현(示現)하여 차별을 설하는 연고다. 4자는 수다라에 설하되 일체세간의 생사염법(生死染法)이 모두 여래장에 의해 있음이라서 일체제법이 진여를 여의지 않는다 함을 듣고 이해하지 못하는 연고로써 이르기를 여래장의 자체에 일체세간의 생사 등의 법을 갖추어 있다 하나니 어떻게 대치(對治)하는가, 여래장에 종본이래(從本已來)로 오직 항사(恒沙)를 초과하는 등의 모든 정공덕(淨功德)이 있어 불리부단(不離不斷)하여 진여의 뜻과 다르지 않기 때문의 연고며 항사(恒沙)를 초과하는 등의 번뇌염법(煩惱染法)은 오직 이 망유(妄有)며 성품이 스스로 본무(本無)라서 무시세래(無始世來)로 좇아 일찍이 여래장과 더불어 상응치 않기 때문의 연고다. 만약 여래장의 체(體)에 망법(妄法)이 있으면서 증회(證會)하여 망(妄)을 영원히 쉬게 한다 하면 곧 옳은 곳이 없는 연고다. 5자는 수다라에 설하되 여래장에 의하는 고로 생사가 있으며 여래장에 의하는 고로 열반을 얻는다 함을 듣고 이해하지 못하는 연고로써 이르되 중생이 비롯함(始)이 있다 하며 비롯함을 보는 연고로써 다시 이르되 여래가 얻은 바 열반도 그 종진(終盡)이 있어서 도리어 중생이 된다 하나니 어떻게 대치(對治)하는가, 여래장은 전제(前際)가 없는 연고로써 무명지상(無明之相)도 또한 비롯함이 있지 않거늘 만약 설하기를 3계(界) 밖에 다시 중생의 시기(始起)가 있다 한다면 곧 이는 외도경(外道經)의 설이며 또 여래장은 후제(後際)가 있지 않아서 제불이 얻은 바 열반도 이와(之) 더불어 상응하여 곧 후제(後際)가 없는 연고다.
第三辨相中 先明人我見 於中有二 總標 別釋 別釋之中 別顯五種 各有三句 初出起見之由 次明執相 後顯對治 初執中言卽謂虛空是如來性者 計如來性同虛空相也 第二中言乃至涅槃眞如之法亦畢竟空者 如大品經云 乃至涅槃如幻如夢 若當有法勝涅槃者 我說亦復如幻如夢故 第三中言因生滅染義示現者 如上文言 以依業識生滅相示 乃至廣說故 第四中言不離不斷等者 如不增不減疏中廣說也 第五中言若說三界外更有衆生始起者卽是外道經說者 如仁王經之所說故 上來五執 皆依法身如來藏等總相之主而起執故 通名人執也
제3 변상(辨相) 중 선(先)은 인아견(人我見)을 밝혔다. 이 중에 둘이 있으니 총표(總標)와 별석(別釋)이다. 별석의 가운데 5종을 별현(別顯)했고 각기 3구가 있다. 초(初는 기견(起見)의 이유를 표출(表出; 出)했고 차(次)는 집상(執相)을 밝혔고 후(後)는 대치(對治)를 밝혔다(顯). 초집(初執) 중에 말한 곧 이르기를 허공이 이 여래성(如來性)이란 것은 여래성이 허공상(虛空相)과 같다고 계탁(計度)함이다. 제2 중에 말한 내지 열반과 진여의 법도 또한 필경 공(空)이란 것은 예컨대(如) 대품경(大品經; 대반야경32)에 이르되 내지 열반도 여환여몽(如幻如夢)이다. 만약 마땅히 열반보다 수승한 법이 있다 하더라도(若當有法勝涅槃者) 나는 설하기를 또한 다시 여환여몽(如幻如夢)이라 하리라 한 연고다. 제3 중에 말한 생멸염(生滅染)의 뜻으로 인하여 시현(示現)한다는 것은 상문(上文; 권5)에 말하되 업식에 의하기 때문에 생멸상(生滅相)을 보인다 내지 광설(廣說)함과 같은 연고다. 제4 중에 말한 불리부단(不離不斷) 등이란 것은 부증불감소(不增不減疏) 중에 광설함과 같다. 제5 중에 말한 만약 설하기를 3계(界) 밖에 다시 중생의 시기(始起)가 있다 한다면 곧 이는 외도경(外道經)의 설이란 것은 인왕경의 소설(所說)과 같은 연고다. 상래(上來)의 5집(執)이 모두 법신여래장(法身如來藏) 등 총상지주(總相之主)에 의해 기집(起執)하는 연고로 통명(通名)이 인집(人執)이다.
法我見者 依二乘鈍根故 如來但爲說人無我 以說不究竟 見有五陰生滅之法 怖畏生死 妄取涅槃 云何對治 以五陰法自性不生 則無有滅 本來涅槃故
법아견(法我見)이란 것은 2승(乘)의 둔근(鈍根)에 의하는 연고로 여래가 단지 인무아(人無我)를 설했거니와 설(說)이 구경(究竟)이 아니기 때문에 5음(陰)의 생멸지법(生滅之法)을 보고 생사를 포외(怖畏)하여 허망하게 열반을 취하나니 어떻게 대치(對治)하는가, 5음법(陰法)의 자성은 불생(不生)이기 때문에 곧 멸이 있지 않나니 본래 열반인 연고다.
法我見中 亦有三句 初明起見之由 見有以下 次顯執相 云何以下 顯其對治 文相可知
법아견(法我見) 중에 또한 3구가 있다. 초(初)는 기견(起見)의 이유를 밝혔고 견유(見有) 이하는 차(次) 집상(執相)을 밝혔고(顯) 어떻게(云何) 이하는 그 대치를 밝혔으니(顯) 문상(文相)을 가히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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