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止觀門中 在文有二 一者略明 二者廣說
△지관문(止觀門) 중에 재문(在文)이 둘이 있으니 1자는 약명(略明)이며 2자는 광설(廣說)이다.
云何修行止觀門 所言止者 謂止一切境界相 隨順奢摩他觀義故 所言觀者 謂分別因緣生滅相 隨順毗鉢舍那觀義故 云何隨順 以此二義漸漸修習 不相捨離 雙現前故
어떻게 지관문(止觀門)을 수행하는가, 말한 바 지(止)란 것은 이르자면 일체의 경계상(境界相)을 그침이니(止) 사마타(奢摩他)의 관의(觀義)에 수순(隨順)하는 연고다. 말한 바 관(觀)이란 것은 이르자면 인연의 생멸상(生滅相)을 분별함이니 비발사나(毗鉢舍那)의 관의(觀義)에 수순하는 연고다. 어떻게 수순하는가, 이 2의(義)로써 점점 수습(修習)하여 서로 사리(捨離)하지 않아야 쌍으로 현전(現前)하는 연고다.
初略中言謂止一切境界相者 先由分別作諸外塵 今以覺慧破外塵相 塵相旣止 無所分別 故名爲止也 次言分別生滅相者 依生滅門 觀察法相故言分別 如瑜伽論菩薩地云 此中菩薩 卽於諸法無所分別 當知名止 若於諸法勝義理趣 及諸無量安立理趣 世俗妙智 當知名觀 是知依眞如門 止諸境相 故無所分別 卽成無分別智 依生滅門 分別諸相 觀諸理趣 卽成後得智也 隨順奢摩他觀義 隨順毗鉢舍那觀義者 彼云奢摩他 此翻云止 毗鉢舍那 此翻云觀 但今譯此論者 爲別方便及與正觀 故於正觀仍存彼語 若具存此語者 應云隨順止觀義 及隨順觀觀義 欲顯止觀雙運之時卽是正觀 故言止觀及與觀觀 在方便時 止諸塵相 能順正觀之止 故言隨順止觀 又能分別因緣相故 能順正觀之觀 故言隨順觀觀 云何隨順以下 正釋此義 漸漸修習者 是明能隨順之方便 現在前者 是顯所隨順之正觀也 此中略明止觀之義 隨相而論 定名爲止 慧名爲觀 就實而言 定通止觀 慧亦如是 如瑜伽論聲聞地云 復次如是心一境性 或是奢摩他品 或是毗鉢舍那品 若於九種心住中心一境性 名奢摩他品 若於四種慧行中心一境性 名毗鉢舍那品 云何名爲九種心住 謂有苾芻 令心內住 等住 安住 近住 調順 寂靜 最極寂靜 專住一趣 及與等持 如是名爲九種心住 云何內住 謂從外一切所緣境界 攝錄其心 繫在於內 不外散亂 故名內住 云何等住 謂卽最初所繫縛心 其性麤動 未能令其等徧住故 次卽於此所緣境界 以相續方便 澄淨方便 挫令微細 徧攝令住 故名等住 云何安住 謂若此心雖復如是內住等住 然由失念 於外散亂 還復攝錄安置內境 故名安住 云何近住 謂彼先應如是如是親近念住 由此念故 數數作意內住其心 不令此心遠住於外 故名近住 云何調順 謂種種相 令心散亂 所謂五塵三毒男女等相 故彼先應取彼諸相爲過患想 由如是想增上力故 於彼諸相折挫其心不令流散 故名調順 云何寂靜 謂有種種欲恚害等諸惡尋思 貪欲蓋等諸隨煩惱 令心擾動 故彼先應取彼諸法爲過患想 由如是想增上力故 於彼心不流散 故名寂靜 云何名爲最極寂靜 謂失念故 卽彼二種暫現行時 隨所生起 然不忍受 尋卽反吐 故名最極寂靜 云何名爲專住一趣 謂有加行有功用無缺無間三摩地相續而住 故名專住一趣 云何等持 謂數修數習數多修習爲因緣故 得無加行無功用任運轉道 故名等持 又如是得奢摩他者 復卽由是四種作意 方能修習毗鉢舍那 故此亦是毗鉢舍那品 云何四種毗鉢舍那 謂有苾芻依止內心奢摩他故 於諸法中能正思擇 最極思擇 周徧尋思 周徧伺察 是名四種 云何名爲能正思擇 謂於淨行所緣境界 或於善巧所緣境界 或於淨惑所緣境界 能正思擇盡所有性 云何名爲最極思擇 謂卽於彼所緣境界 最極思擇如所有性 云何名爲周徧尋思 謂卽於彼所緣境界 由慧俱行 有分別作意 取彼相狀 周徧尋思 云何名爲周徧伺察 謂卽於彼所緣境界 審諦推求 周徧伺察 乃至廣說 尋此文意 乃說聲聞止觀法門 然以此法趣大乘境 卽爲大乘止觀之行 故其九種心住 四種慧行 不異前說 大乘境者 次下文中當廣分別依文消息也 止觀之相 略義如是
초(初) 약중(略中)에 말한 이르자면 일체의 경계상(境界相)을 그침이니(止) 란 것은 먼저(先) 분별로 말미암아 모든 외진(外塵)을 짓다가 여금에 각혜(覺慧)로써 외진(外塵)의 상(相)을 깨뜨림이니 진상(塵相)을 이미 그치매(止) 분별하는 바가 없는지라 고로 이름하여 지(止)다. 차(次)에 말한 생멸상(生滅相)을 분별함이란 것은 생멸문(生滅門)에 의해 법상(法相)을 관찰하는지라 고로 말하되 분별(分別)이라 했다. 예컨대(如) 유가론(瑜伽論; 瑜伽師地論四十五) 보살지(菩薩地)에 이르되 이 중의 보살이 곧 제법(諸法)에 분별하는 바가 없나니 마땅히 알라 이름이 지(止)다. 만약 제법의 승의이취(勝義理趣) 및 모든 무량한 안립이취(安立理趣)와 세속의 묘지(妙智)엔 마땅히 알라 이름이 관(觀)이라 했다. 이로 알지니 진여문에 의해 모든 경상(境相)을 그치는지라 고로 분별하는 바가 없어서 곧 무분별지(無所分別)를 이루며 생멸문(生滅門)에 의하여 제상(諸相)을 분별하고 모든 이취(理趣)를 관(觀)함은 곧 후득지(後得智)를 이룬다. 사마타(奢摩他)의 관의(觀義)에 수순(隨順)하고 비발사나(毗鉢舍那)의 관의(觀義)에 수순한다는 것은 거기(彼; 天竺)에선 이르되 사마타며 여기(支那)에선 번역해 이르되 지(止)며 비발사나란 것은 여기에선 번역해 이르되 관(觀)이다. 단지 여금에 이 논을 번역한 자가 방편(方便) 및 더불어 정관(正觀)을 구별한지라 고로 정관(正觀)에선 거기(彼)의 말(語)을 그대로 두었거니와(仍存) 만약 여기의 말을 구비해 둔다면(存) 응당 이르되 지관(止觀)의 의(義)를 수순(隨順)하며 및 관관(觀觀)의 의(義)를 수순한다 해야 하리라. 지(止)ㆍ관(觀)을 쌍운(雙運)할 때엔 곧 이 정관(正觀)임을 나타내고자 함인지라 고로 말하되 지관(止觀) 및 더불어 관관(觀觀)이며 방편에 있을 때엔 모든 진상(塵相)을 지(止)하여 능히 정관(正觀)의 지(止)를 따름인지라(順) 고로 지관(止觀)을 수순(隨順)한다 라고 말함이다. 또 능히 인연상(因緣相)을 분별하는 연고로 능히 정관지관(正觀之觀)을 따르는지라(順) 고로 관관(觀觀)을 수순한다고 말함이다. 어떻게 수순하는가 이하는 이 뜻을 정석(正釋)함이다. 점점 수습한다는 것은 이는 능히 수순하는 방편을 밝힘이며 앞(前)에 나타나 있다(現在)는 것은 이는 수순할 바의 정관(正觀)을 나타냄이다. 이 중엔 지관(止觀)의 뜻을 약명(略明)했거니와 상(相)을 따라 논하자면 정(定)은 이름하여 지(止)며 혜(慧)는 이름하여 관(觀)이다. 실(實)을 좇아(就) 말하자면 정(定)도 지관(止觀)에 통하며 혜(慧)도 또한 이와 같다. 예컨대(如) 유가론(瑜伽論; 瑜伽師地論三十) 성문지(聲聞地)에 이르되 다시 다음에 이와 같은 심일경성(心一境性)은 혹 이 사마타품(奢摩他品)이며 혹 이 비발사나품(毗鉢舍那品)이다. 만약 9종 심주(心住) 중의 심일경성(心一境性)이면 이름이 사마타품(奢摩他品)이며 만약 4종 혜행(慧行) 중의 심일경성(心一境性)이면 이름이 비발사나품(毗鉢舍那品)이다. 무엇을 이름하여 9종 심주(心住)라 하는가, 이르자면 어떤(有) 필추(苾芻)가 심(心)으로 하여금 내주(內住)하며 등주(等住)하며 안주(安住)하며 근주(近住)하며 조순(調順)하며 적정(寂靜)하며 최극적정(最極寂靜)하며 일취(一趣)에 전주(專住)하며 및 더불어 등지(等持)케 하나니 이와 같음을 이름하여 9종 심주(心住)라 한다. 무엇이 내주(內住)인가, 이르자면 밖의 일체 소연경계(所緣境界)로 좇아 그 마음에 섭록(攝錄)하여 안에 계재(繫在)해서 밖으로 산란(散亂)하지 않게 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내주(內住)다. 무엇이 등주(等住)인가, 이르자면 곧 최초의 계박(繫縛)된 바 마음은 그 성(性)이 추동(麤動)하여 능히 그로 하여금 등편(等徧)히 주(住)케 하지 못하는 연고로 다음에 곧 이 소연경계(所緣境界)에 상속방편(相續方便)과 징정방편(澄淨方便)으로써 꺾어(挫) 미세하게 하여 편섭(徧攝)해 주(住)하게 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등주(等住)다. 무엇이 안주(安住)인가, 이르자면 이 마음이 비록 다시 이와 같이 내주(內住)ㆍ등주(等住)하나 그러나 실념(失念)으로 말미암아 밖으로 산란(散亂)하는지라 도리어 다시 섭록(攝錄)하여 내경(內境)에 안치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안주(安住)다. 무엇이 근주(近住)인가, 이르자면 그(彼)가 먼저 응당 이와 같고 이와 같다 하여 친근하며 주하기를 상념하나니(念住) 이 상념을 말미암는 연고로 자주자주(數數) 작의(作意)하여 그 마음을 내주(內住)하여 이 마음으로 하여금 멀리 밖에 주(住)하지 않게 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근주(近住)다. 무엇이 조순(調順)인가, 이르자면 갖가지 상(相)이 마음으로 하여금 산란(散亂)하게 하나니 이른 바 5진(塵)ㆍ3독(毒)ㆍ남녀 등의 상(相)이라, 고로 그가 먼저 응당 그 제상(諸相)을 취해 과환상(過患想)으로 삼나니 이와 같은 상(想)의 증상력(增上力)을 말미암는 연고로 저 제상(諸相)을 절좌(折挫)하여 그 마음이 유산(流散)하지 않게 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조순(調順)이다. 무엇이 적정(寂靜)인가, 이르자면 갖가지 욕(欲)ㆍ에(恚; 성낼 에)ㆍ해(害) 등의 여러 악심사(惡尋思)와 탐(貪)ㆍ욕(欲)ㆍ개(蓋) 등 여러 수번뇌(隨煩惱)가 마음으로 하여금 요동(擾動)하게 함이 있는지라 고로 그가 먼저 응당 그 제법(諸法)을 취하여 과환상(過患想)으로 삼나니 이와 같은 상(想)의 증상력(增上力)을 말미암는 연고로 그것(彼)에 마음이 유산(流散)하지 않는지라 고로 이름이 적정(寂靜)이다. 무엇을 이름하여 최극적정(最極寂靜)이라 하는가, 이르자면 실념(失念)하는 연고로 곧 그 2종이 잠시 현행(現行)할 때 곳(所)을 따라 생기(生起)하나 그러나 인수(忍受)하지 않고 이윽고(尋) 곧 반토(反吐)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최극적정(最極寂靜)이다. 무엇을 이름하여 일취(一趣)에 전주(專住)함인가, 이르자면 가행(加行)도 있고 공용(功用)도 있어서 무결무간(無缺無間)하여 삼마지(三摩地)가 상속하여 주(住)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일취(一趣)에 전주(專住)함이다. 무엇이 등지(等持)인가, 이르자면 삭수(數修; 자주 닦음)하고 삭습(數習)하여 삭다(數多)한 수습修習)으로 인연을 삼는 연고로 무가행(無加行)ㆍ무공용(無功用)을 얻어 임운(任運)하여 도(道)를 굴리는지라(轉) 고로 이름이 등지(等持)다. 또 이와 같이 사마타(奢摩他)를 얻은 자는 다시 곧 이 4종 작의(作意)를 말미암아야 바야흐로 능히 비발사나(毗鉢舍那)를 수습(修習)하는지라 고로 이것도(此) 또한 이 비발사나품(毗鉢舍那品)이다. 무엇이 4종 비발사나인가, 이르자면 어떤 필추가 내심(內心)의 사마타에 의지(依止)하는 연고로 제법 가운데에 능히 바르게 사택(思擇)하며 가장 지극히 사택하며 주편(周徧)히 심사(尋思)하며 주편(周徧)히 사찰(伺察)하나니 이 이름이 4종이다. 무엇을 이름하여 능히 바르게 사택(思擇)함인가, 이르자면 정행(淨行)에 소연(所緣)하는 경계와 혹은 선교(善巧)에 소연(所緣)하는 경계와 혹은 정혹(淨惑)에 소연(所緣)하는 경계를 능히 바르게 사택(思擇)하여 소유한 성(性)을 다함(盡)이다. 무엇을 이름하여 가장 지극히 사택함인가, 이르자면 곧 저 소연(所緣)의 경계에 가장 지극히 사택하여 소유한 성과 같게 함이다(如所有性). 무엇을 이름하여 주편(周徧)히 사택함인가, 이르자면 곧 저 소연(所緣)의 경계에 혜(慧)가 구행(俱行)함으로 말미암아 분별로 작의(作意)함이 있어서 저 상상(相狀)을 취하여 주편(周徧)히 심사(尋思)함이다. 무엇을 이름하여 주편(周徧)히 사찰(伺察)함인가, 이르자면 곧 저 소연(所緣)의 경계에 심체(審諦; 자세히 관찰함)하며 추구(推求)해서 주편(周徧)히 사찰(伺察)함이라 하고 내지 광설(廣說)했다. 이 문의(文意)를 심사(尋思; 尋)하건대 이에 성문(聲聞)의 지관법문(止觀法門)을 설했거니와 그러나 이 법으로써 대승(大乘)의 경계로 취향(趣向; 趣)한다면 대승의 지관지행(止觀之行)이 되는지라 고로 그(其) 9종 심주(心住)와 4종 혜행(慧行)이 앞의 설과 다르지 아니하리라. 대승의 경계란 것은 차(次) 하문(下文) 중에 마땅히 널리 분별하리니 의문(依文)하여 소식(消息; 酌量)하라. 지관지상(止觀之相)은 약의(略義)가 이와 같다.
●사마타(奢摩他); <梵> śamatha. 또 사마타(舍摩他)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지식(止息)이며 또 가로되 적정(寂靜)이니 이르자면 정정(正定)으로 침도(沈掉)를 여읨임 [慧琳音義二十一 翻梵語三]. 위 권5의 각주에 이미 나왔음.
●비발사나(毗鉢舍那); <梵> vipaśyanā. 또 비바사나(毘婆舍那)로 지음. 번역해 가로되 관(觀)ㆍ견(見)ㆍ종종관찰(種種觀察)등이니 사리(事理)를 관견(觀見)함임.
●필추(苾芻); <梵> bhikṣu. <巴> bhikkhu. 또 비구(比丘)ㆍ필추(苾蒭)로 지음. △조정사원4(祖庭事苑四). 필추(苾蒭) 서국(西國)의 풀 이름이니 5의(義)를 포함하는지라 번역하지 않음. 1은 체성(體性)이 유연함이니 출가하여 능히 신어(身語)의 추광(麤獷; 獷은 사나울 광)을 절복(折伏)함에 비유함. 2는 뻗친 넝쿨이 두루 퍼짐이니 법을 전하고 중생을 제도하되 연련(延連; 벋어 이어짐)하여 끊기지 않음에 비유함. 3은 형향(馨香; 馨은 향기 형)이 멀리 풍김(聞)이니 출가하여 계덕(戒德)이 분복(芬馥; 芬은 향기 분. 馥은 향기 복. 곧 향기가 높은 모양)하여 중생들이 맡는 바가 됨에 비유함. 4는 질병을 치료함이니 출가하여 능히 번뇌의 독해(毒害)를 끊음에 비유함. 5는 늘 일광(日光)을 등지지 않음이니 출가하여 사람들이 늘 광명을 봄에 비유함.
●3독(毒); 조정사원7(祖庭事苑七). 3독(毒) 이르자면 탐(貪)ㆍ진(嗔)ㆍ치(癡)임. 사해탈경(四解脫經)에 이르되 3독이 3(塗)를 감응하나니 진분(嗔忿; 성냄)은 화도(火塗; 지옥도)며 간탐은 도도(刀塗; 아귀도)며 우치는 혈도(血塗; 축생도)이다.
●삼마지(三摩地); 현응음의6(玄應音義六). 삼매(三昧) 바른 말로는 삼마지(三摩地; 梵 samādhi)니 여기에선 이르되 등지(等持)임. 모든 공덕을 등지함임. 혹은 이르되 정정(正定)이니 이르자면 한 경계에 인연을 머물러 모든 사란(邪亂)을 여읨임. 예전에 이른 삼마제(三摩提)는 그름. △번역명의집4(翻譯名義集四). 삼매(三昧) 여기에선 이르되 조직정(調直定)이며 또 이르되 정정(正定)이며 또는 이르되 정수(正受)다. 규봉소(圭峯疏)에 이르되 모든 수(受)를 받지 않으므로 정수(正受)라고 이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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