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일적

태화일적(泰華一滴) 289

태화당 2020. 11. 9. 10:13

289朱熹 字元晦 號晦菴 婺源人 少年不樂讀時文 因聽一尊宿談禪 直指本心 遂悟昭昭靈靈一着 年十八 從劉子翬游 翬意其留心擧業 搜之篋中 惟大慧語錄一帙而已 甞致書道謙曰 向蒙妙喜開示 從前記持文字 心識計較 不得置絲毫許在胸中 但以狗子話 時時提撕 願投一語 警所不逮 謙答曰 某二十年 不能到無疑之地 後忽知非勇猛直前 便是一刀兩段 把這一念 提撕狗子話頭 不要商量 不要穿鑿 不要去知見 不要强承當 熹於言下有省 有久雨齋居誦經詩曰 端居獨無事 聊披釋氏書 暫息塵累牽 超然與道居 門掩竹林幽 禽鳴山雨餘 了此無爲法 身心同晏如 …… 然熹恨釋氏末流 輙昌言排之 晚年目盲 嘆曰 六祖眞聖人也 佛祖綱目三十八

 

주희(朱熹)는 자()가 원회(元晦)며 호()가 회암(晦菴)이며 무원인(婺源人)이다. 소년(少年; 젊은 시절)에 시문(詩文)을 읽기를 즐겨하지 않았다. 인하여 한 존숙(尊宿; 나이가 많고 도덕이 높은 스님)이 담선(談禪)하면서 본심(本心)을 직지(直指)함을 듣고 드디어 소소영령(昭昭靈靈)의 일착(一著)을 깨쳤다. 나이 열여덟에 유자휘(劉子翬)를 좇아 노닐었는데 휘()의 뜻으로는 그가 거업(擧業; 科擧의 일)에 유의(留意)하리라 여기고 협중(篋中; 은 대상자 협)을 수색(搜索)하니 오직 대혜어록(大慧語錄) 1() 뿐이었다. 일찍이 도겸(道謙; 大慧法嗣)에게 글을 보내 가로되 접때 묘희(妙喜; 大慧)의 개시(開示)를 입어 종전(從前)의 기지(記持)한 문자와 심식계교(心識計較)를 실터럭만큼도 흉중(胸中)에 둠을 얻지 못하고 단지 구자화(狗子話)로써 때때로 제시(提撕; 提示 參究의 뜻. 할 서나 보통 시로 발음)합니다. 원컨대 한마디를 던져 미치지 못한 바를 경책(警責)하십시오. 도겸이 답해 가로되 모()가 이십 년 동안 능히 의심 없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가 후에 홀연히 그름을 알아 용맹스럽게 앞으로 나아가 바로 이 일도(一刀)로 양단(兩斷)하여 이 일념을 잡아 구자화두(狗子話頭)를 제시(提撕)하였습니다. 상량(商量)을 요()하지 않으며 천착(穿鑿)을 요하지 않으며 지견(知見)을 제거함을 요하지도 않으며 애써 승당(承當)함을 요하지도 않습니다. 주희가 언하(言下)에 살핌이 있었다. 오랜 비에 재거(齋居)하며 송경(誦經)하다 라는 시(久雨齋居誦經詩)가 있으니 가로되 단거(端居)하며 홀로 일이 없나니/ 애오라지 석씨의 글을 피열(披閱)하노라/ 잠시 진루(塵累)의 견인(牽引)을 쉬고/ 초연히 도와 더불어 거처하도다./ 죽림의 그윽함에 문을 닫으니/ 산우(山雨)의 나머지에 새가 우는구나/ 이 무위법을 깨치니/ 몸과 마음이 한가지로 안여(晏如)하도다 …… 그러나 주희는 석씨(釋氏)의 말류(末流)를 한탄하며 번번이 왕성한 말로 그것을 배척(排斥)하였다. 만년엔 눈이 멀었는데 탄식하며 가로되 육조(六祖)가 참다운 성인(聖人)이로다.

'태화일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화일적(泰華一滴) 291  (0) 2020.11.09
태화일적(泰華一滴) 290  (0) 2020.11.09
태화일적(泰華一滴) 288  (0) 2020.11.09
태화일적(泰華一滴) 287  (0) 2020.11.09
태화일적(泰華一滴) 286  (0) 2020.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