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長慶問雲門 雪峰與麽道 還有出頭不得處麽 門云 有 慶云 作麽生 門云 不可總作野狐精見解 *雲峰云 *匹上不足 匹下有餘 我更與爾打葛藤 拈拄杖云 還見雪峰麽 咄 王令稍嚴 不許*攙奪行市 *大潙喆云 我更與爾諸人 *土上加泥 拈拄杖云 看看 雪峰向諸人面前放屙 咄 爲什麽屎臭也不知 雪峰示衆云 盡大地撮來如粟米粒大 古人*接物利生 有奇特處 只是不妨*辛懃 *三上投子 九到洞山 置漆桶木杓 到處作*飯頭 也只爲透脫*此事 及至洞山作飯頭 一日*洞山問雪峰 作什麽 峰云 淘米 山云 淘沙去米 淘米去沙 峰云 沙米一齊去 山云 大衆喫箇什麽 峰便覆盆 山云 子緣在德山 指令見之 纔到便問 *從上*宗乘中事 *學人還有分也無 德山打一棒云 道什麽 因此有省 後在*鰲山阻雪 謂*嵓頭云 我當時在德山棒下 如桶底脫相似 嵓頭喝云 爾不見道 *從門入者 不是家珍 須是自己胸中流出 蓋天蓋地 方有少分相應 雪峰忽然大悟 禮拜云 *師兄今日始是鰲山成道 如今人只管道 古人*特地做作 敎後人依*規矩 若恁麽 正是謗他古人 謂之*出佛身血 古人不似如今人苟且 豈以一言半句 以當平生 若扶竪宗敎 續佛壽命 所以吐一言半句 自然坐斷天下人舌頭 無爾著意路作情解 涉道理處 看他此箇示衆 蓋爲他曾見作家來 所以有作家鉗鎚 凡出一言半句 不是心機意識思量*鬼窟裏作*活計 直是*超群拔萃 *坐斷古今 不容*擬議 *他家用處 盡是如此 *一日示衆云 南山有一條*鱉鼻蛇 汝等諸人切須好看取 時*稜*道者出衆云 恁麽則今日堂中*大有人喪身失命去在 又云 盡大地是*沙門*一隻眼 汝等諸人 向什麽處屙 又云 *望州亭與汝相見了也 *烏石嶺與汝相見了也 *僧堂前與汝相見了也 時*保福問*鵝湖 僧堂前卽*且置 如何是望州亭烏石嶺相見處 鵝湖驟步歸*方丈 他常擧這般語示衆 只如道盡大地撮來如粟米粒大 這箇時節 且道以情識卜度得麽 須是打破*羅籠 得失是非一時*放下 洒洒落落 自然透得他*圈繢 方見他用處 且道 雪峰意在什麽處 人多作情解道 心是萬法之主 盡大地一時在我手裏 且喜沒交涉 到這裏 須是箇眞實漢 聊聞擧著 徹骨徹髓見得透 且不落情思意想 若是箇*本色行脚衲子 見他恁麽 已是*郞當爲人了也 看他雪竇頌云
●長慶; 長慶慧稜 慧稜(854-932) 五代後唐僧 號超覺 杭州(浙江)鹽官人(宋高僧傳作海鹽人) 俗姓孫 人稱孫公 十三歲於蘇州通玄寺出家受具足戒 歷參靈雲志勤 雪峰義存 玄沙師備等師 曾依止雪峰義存三十年 後爲其法嗣 唐代天祐三年(906) 住於泉州(福建)招慶院 後住福州(福建)長慶院 於後唐長興三年示寂 壽七十九 僧臘六十 [宋高僧傳十三 傳燈錄十八 佛祖歷代通載十七]
●雲峰; 底本作雪峰 依他本改 雲峰 雲峰文悅 文悅(998-1062) 宋代臨濟宗僧 江西南昌人 俗姓徐 七歲時剃髮於龍興寺 十九歲遊歷諸方 參謁筠州(江西)大愚守芝 開悟後承其法 竝隨侍守芝八年 守芝入寂後 師再遊方 參謁同安院慧南 爲首座 歷住翠巖寺 南嶽法輪寺等 後又住南嶽雲峰 故又稱雲峰文悅 嘉祐七年示寂 壽六十五 有語錄二卷行世 [續燈錄八 禪林僧寶傳二十二 五燈會元十二 佛祖歷代通載十八]
●匹上不足 匹下有餘; 又作疋上不足疋下有餘 指處于中等狀態 匹 比較
●攙奪行市; 又作攙行奪市 搶奪市場也 喩指禪林造作多事 濫用言說作略 行 胡郞切 買賣交易的營業處 卽市場也
●大潙喆; 大潙慕喆 慕喆(?-1095) 宋代臨濟宗僧 臨川(今屬江西)聞氏 依建昌永安圓覺得度 勵道甚勤 後至南昌 謁翠巖可眞爲侍者 世稱喆侍者 爲人剛直 以荷法爲志 出住潭州 遷慧光大潙 衆二千指 紹聖改元(1094) 奉驛召 引對延和殿 稱旨 錫紫服眞如號 尋補大相國寺 二年十月八日 無疾說偈別衆 良久示寂 有大潙山語錄 黃庭堅作序 [禪林僧寶傳二十五 統要續集二十一 五燈會元十二]
●土上加泥; 比喩增添一層癡迷
●接物利生; 卽接引化導世間衆生 相應其種種機根 而給與利益
●辛懃; 辛苦懃(通勤)勞
●三上投子 九到洞山; 又作三登投子九到洞山 指雪峰義存爲求法故 三登投子山參大同禪師 九到洞山參良价禪師
●飯頭; 禪宗叢林內之職稱 爲十務之一 卽隸屬典座之下 掌理大衆粥齋之人 其職責 酌量僧衆之人數 檢看米穀之精粗 分別水漿之淸濁 樽節菜蔬之多寡 顧慮柴薪之有無 乃至炊具之洗滌 餿淹之處理等 [幻住淸規飯頭條 象器箋職位類 僧堂淸規五飯頭條]
●此事; 指宗門一大事 指自己本分事
●洞山; 洞山良价 見下第四三則
●從上; 從前 以前
●宗乘; 各宗所弘之宗義及敎典云宗乘 多爲禪門及淨土門標稱自家之語
●學人; 泛稱學習佛法之人 多用作僧徒自稱
●鰲山; 在今湖南常德北部
●嵓頭; 巖頭全豁 全豁(828-887) 又作全奯 唐代僧 泉州(今屬福建)人 俗姓柯 出家於靈泉寺 受具足戒於長安西明寺 與雪峰義存 欽山文邃同修互勉 竝參訪仰山慧寂 又參學於德山宣鑑 承其法嗣 出居鄂州(今湖北武昌)巖頭院 大振宗風 故又稱巖頭全豁 唐光啓三年四月 賊亂 臨刃仍泰然自若 大喝一聲而終 壽六十 諡號淸儼大師 [宋高僧傳二十三 祖堂集七 景德傳燈錄十六]
●從門入者 不是家珍; 謂眞正之珍寶卽在自家之中
●師兄; 法兄之意 又爲同道中之泛稱
●特地; 特意做作 多餘累贅
●規矩; 禪林寶訓音義 規矩 圓器曰規 方器曰矩 乃叢林之模範也
●出佛身血; 五逆罪之一
●鬼窟裏作活計; 比喩陷於情識俗情妄念等 又作鬼趣裏作活計 鬼家活計等
●活計 生活之計策 禪錄中多比喩禪法或種種機用作略
●超群拔萃; 猶言出類拔萃 拔 超出 萃 指人群 物類
●坐斷; 截除 截斷 多用于禪機施設 謂截除語言知解 區別妄念 斷字 主眼也 坐者 平坐之義
●擬議; 思慮 遲疑 說文 擬 度也 說文 議 語也 ▲易繫辭上傳 言天下之至賾 而不可惡也 言天下之至動 而不可亂也 擬之而後言 議之而後動 擬議以成其變化
●他家; 他 別人 家 名詞詞綴
●一日; 一 相當于某
●鱉鼻蛇; 又作鼈鼻蛇 蛇名 其鼻如鱉(鼈) 此蛇最毒 傷人無藥可醫矣 比喩爲本來眞面目 或指雪峰自身 又喩指險惡疾速之機鋒
●稜道者; 指慧稜 嗣雪峰義存 見下第二三則
●道者; 禪人之稱呼
●大有人; 大 再也 如大前天 大後日 有 表示不定指
●沙門; 又作桑門 喪門 沙門那等 譯曰 息 息心 勤行 乏道 貧道等 新作室羅末拏 室摩那拏 譯曰功勞 勤息 修佛道之義也 又勤修息煩惱之義也 原不論外道佛徒 總爲出家者之都名
●一隻眼; 一指於佛法上 具有眞實正見之慧眼 非凡夫之肉眼 義同頂門眼 正眼 活眼 明眼 二與兩隻眼相對 只見一邊的深刻的眼光 此指一
●望州亭; 在於雪峰山內
●烏石嶺; 雪峰山內有烏石嶺
●僧堂; 指禪林中僧衆日常修禪起臥之堂舍 又稱雲堂 坐堂 選佛堂 聖僧堂 枯木堂 禪宗七堂伽藍之一 卽凡於禪刹掛搭者 悉依戒臘而安排位次 凡坐禪 起臥 飮食 皆行於此堂
●保福; 保福從展 嗣雪峰義存 見下第二三則
●鵝湖; 鵝湖智孚 智孚 五代僧 福州(今屬福建)人 師事雪峰義存 居數年 得心傳 出居信州(今江西上饒)鵝湖 弘揚禪法 法化大行 [傳燈錄十八]
●且置; 放在前分句末尾 表示排除前分句內容 引出的後分句是主題句
●方丈; 一丈四方之室 又作方丈室 丈室 卽禪寺中住持之居室或客殿 亦稱函丈 正堂 堂頭 印度之僧房多以方一丈爲制 維摩禪室亦依此制 遂有方一丈之說 轉而指住持之居室 今轉義爲禪林住持 或對師家之尊稱 通稱方丈 或方丈和尙 [維摩經文疏二十二 法苑珠林二十九 大唐西域求高僧傳上慧輪傳 祖庭事苑六]
●羅籠; 控制 籠罩 亦作籠羅 羅 捕鳥的網 籠 鳥籠
●放下; 放手而置於下也 又云放下著 著字語助辭也
●圈繢; 套索也 又作圈圚 圈定的範圍 圈套 多指禪家接引施設 或機語作略
●本色; 眞面目 本來面目 本性
●郞當; 精神鬆懈不振 俗稱不整治
장경(*長慶; 嗣雪峰)이 운문(雲門; 文偃이니 嗣雪峰)에게 묻되 설봉이 이렇게 말씀하시매 도리어 출두(出頭)함을 얻지 못하는 곳이 있는가. 운문이 이르되 있다. 장경이 이르되 무엇인가(作麽生). 운문이 이르되 모두 야호정(野狐精)의 견해를 지음은 옳지 못하다. 운봉(*雲峰)이 이르되 위로 비교하면 부족하고 아래로 비교하면 여유가 있나니(*匹上不足 匹下有餘) 내가 다시 너희에게 갈등을 지어 주리라. 주장자를 잡고 이르되 도리어 설봉을 보느냐. 돌(咄), 왕령(王令)이 조금 엄하니 항시를 참탈함(*攙奪行市)을 허락하지 않는다. 대위철(*大潙喆)이 이르되 내가 다시 너희 제인(諸人)에게 토상가니(*土上加泥)하여 주겠다. 주장자를 잡고 이르되 보아라, 보아라, 설봉이 제인의 면전을 향해 똥을 누거늘 돌(咄), 무엇 때문에 똥 구린내도 알지 못하느냐 하였다. 설봉이 시중해 이르되 온 대지를 움켜쥐어 오매 좁쌀알 크기와 같다 하니 고인(古人)이 접물이생(*接物利生)하매 기특한 곳이 있음은 다만 이 신근(*辛懃)함에 방애되지 않음인지라 세 번 투자에 오르고 아홉 번 동산에 이르되( *三上投子 九到洞山) 칠통(漆桶)과 목작(木杓; 나무 구기)을 두고서 도처에 반두(*飯頭)가 된 것도 또한 다만 차사(*此事)를 투탈(透脫)하려 했기 때문이다. 동산(洞山)에 이르러(及至) 반두가 되었는데 어느 날 동산(*洞山)이 설봉에게 묻되 무엇을 하느냐. 설봉이 이르되 쌀을 입니다(淘). 동산이 이르되 모래를 일어 쌀을 보내느냐(去), 쌀을 일어 모래를 보내느냐. 설봉이 이르되 모래와 쌀을 일제히 보냅니다. 동산이 이르되 대중은 무엇을 먹느냐. 설봉이 문득 동이(盆)를 엎었다. 동산이 이르되 자네의 인연이 덕산(德山)에 있다 하고는 지령(指令)하여 그를 참견(參見; 찾아 뵘)하라 했다. 겨우 이르자 곧 묻되 종상(*從上)의 종승(*宗乘) 중의 일을 학인(*學人)도 도리어 분한(分限)이 있습니까 또는(也) 없습니까. 덕산이 한 방 때리고 이르되 무엇이라고 말하느냐 하매 이로 인해 살핌이 있었다. 후에 오산(*鰲山)에 있으면서 눈(雪)에 막혔는데 암두(*嵓頭)에게 일러 이르되 내가 당시에 덕산의 방하(棒下)에 있으매 마치 통의 밑바닥이 빠짐과 상사(相似)했습니다. 암두가 할(喝)하고 이르되 네가 말함을 보지 못했느냐, 문으로 좇아 들어온 것은 이 가진이 아니라(*從門入者 不是家珍) 하니 모름지기 이 자기의 흉중에서 유출해야 하늘도 덮고 땅도 덮으며 바야흐로 소분(少分) 상응함이 있다. 설봉이 홀연히 대오하고는 예배하고 이르되 사형(*師兄)이여 금일에야 비로소 이 오산에서 성도했습니다 하였다. 여금의 사람은 다만 관대(管帶)하여 말하되 고인(古人)이 특지주작(*特地做作)하여 후인으로 하여금 규구(*規矩)에 의하게 함이라 하나니 만약 이러할진대 바로 이는 저 고인을 비방함인지라 이를 일러 불타의 몸에 피를 냄(*出佛身血)이라 하느니라. 고인은 여금인(如今人)의 구차(苟且)함과는 비슷하지도 않거늘 어찌 일언반구(一言半句)로써 평생을 당적(當敵; 當)하리오. 이에(若) 종교(宗敎)를 붙들어 세워야 불타의 수명을 잇는지라 소이로 일언반구를 토(吐)함에도 자연히 천하인의 혀(舌頭)를 좌단(坐斷)하는지라 너희가 의로(意路)를 붙이거나 정해(情解)를 짓거나 도리에 건너갈 곳이 없다. 그(설봉)의 이러한(此箇) 시중(示衆)을 보아라, 대개(大蓋; 蓋) 그가 일찍이 작가를 친견하고 왔기 때문에 소이로 작가의 겸추(鉗鎚)가 있다. 무릇 일언반구를 냄에도 이 심기의식(心機意識)의 사량인 귀굴 속에서 활계를 지은(*鬼窟裏作*活計) 게 아니라서 바로 이 초군발췌(*超群拔萃)하여 고금을 좌단(*坐斷)하고 의의(*擬議)를 용납하지 않는다. 타가(*他家)의 용처(用處)가 모두 곧(是) 이와 같나니 어느 날(*一日) 시중해 이르되 남산에 한 가닥의 별비사(*鱉鼻蛇)가 있나니 너희 등 제인은 간절히 잘(好) 간취(看取)함을 써라(須). 때에 릉도자(*稜*道者)가 무리에서 나와 이르되 이러한 즉 금일 당중(堂中)에 대유인(*大有人)이 상신실명(喪身失命)하여 갑니다(在는 조사) 하였다. 또 이르되 온 대지가 이 사문(*沙門)의 일척안(*一隻眼)이니 너희 등 제인은 어느 곳을 향해 똥 눌 것인가. 또 이르되 망주정(*望州亭)에서 너희와 더불어 상견했고 오석령(*烏石嶺)에서 너희와 더불어 상견했고 승당(*僧堂) 앞에서 너희와 더불어 상견했다. 때에 보복(*保福)이 아호(*鵝湖)에게 묻되 승당 앞은 곧 그래 두고(*且置) 무엇이 이 망주정과 오석령에서 상견한 곳인가. 아호가 빠른 걸음(驟步)으로 방장()에 돌아갔다. 그(설봉)가 심상(尋常; 평상시)에 이런 종류의 말씀(這般語)을 들어 시중하였다. 지여(只如; 如는 例擧를 표시) 온 대지를 움켜쥐어 오매 좁쌀알 크기와 같다고 말한 이런(這箇) 시절을 그래 말하라, 정식(情識)으로써 복탁(卜度)함을 얻겠느냐. 모름지기 이는 나롱(*羅籠)을 타파하여 득실시비를 일시에 방하(*放下)하여서 쇄쇄낙락(洒洒落落)해야 자연히 그(설봉)의 권궤(*圈繢)를 투득(透得)하여 바야흐로 그의 용처(用處)를 볼지니 그래 말하라, 설봉의 뜻이 어느 곳에 있느냐. 사람들이 많이들 정해(情解)를 지어 말하되 마음은 이 만법의 주(主)라서 온 대지가 일시에 나의 손 안에 있다 하나니 또한 교섭 없음을 기뻐하노라. 이 속에 이르러 모름지기 곧 이 진실한 자일진대 애오라지 거착(擧著)함을 들으면 철골철수(徹骨徹髓)하여 보아 꿰뚫음을 얻고 또한 정사의식(情思意想)에 떨어지지 않으리라. 만약 이 본색(*本色)으로 행각하는 납자일진대 그(설봉)의 이러함이 이미 이 낭당(*郞當)히 사람을 위함인 줄 보리라. 저 설두가 송운(頌云)함을 보아라.
●長慶; 장경혜릉임. 혜릉(慧稜) (854-932) 오대 후당승. 호는 초각(超覺)이며 항주(杭州; 절강) 염관(鹽官) 사람이며(송고승전엔 海鹽人으로 지어졌음) 속성(俗姓)은 손(孫)이며 사람들이 손공(孫公)이라 일컬었음. 13세에 소주(蘇州) 통현사(通玄寺)에서 출가해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영운지근(靈雲志勤)ㆍ설봉의존(雪峰義存)ㆍ현사사비(玄沙師備) 등의 스님들을 역참(歷參)했음. 일찍이 30년 동안 설봉의존에게 의지(依止)했고 후에 그의 법사(法嗣)가 되었음. 당대(唐代) 천우(天祐) 3년(906) 천주(泉州; 복건) 초경원(招慶院)에 주(住)하다가 뒤에 복주(福州; 복건) 장경원(長慶院)에 주(住)했음. 후당(後唐) 장흥(長興) 3년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79며 승랍은 60 [송고승전13. 전등록18. 불조역대통재17].
●雲峰; 저본에 설봉(雪峰)으로 지어졌음. 타본에 의해 고쳤음. 운봉(雲峰)은 운봉문열임. 문열(文悅) (998-1062) 송대 임제종승. 강서 남창(南昌) 사람이며 속성은 서(徐). 7세 때 용흥사에서 머리를 깎았고 19세에 제방을 유력(遊歷)했음. 균주(筠州; 강서)의 대우수지(大愚守芝; 임제하 6세)를 참알(參謁)해 개오(開悟)한 후 그의 법을 이었으며 아울러 수지(守芝)를 수시(隨侍)하기 8년이었음. 수지가 입적(入寂)한 후 스님이 다시 유방(遊方)하며 동안원(同安院)의 혜남(慧南)을 참알해 수좌가 되었고 취암사(翠巖寺)ㆍ남악 법륜사 등을 역주(歷住)했음. 후에 또 남악 운봉(雲峰)에 거주한지라 고로 또 운봉문열(雲峰文悅)이라 일컬음. 가우(嘉祐) 7년에 시적했으니 나이는 65. 어록 2권이 있어 행세(行世)함 [속등록8 선림승보전22. 오등회원12. 불조역대통재18].
●匹上不足 匹下有餘; 또 필상부족필하유여(疋上不足疋下有餘)로 지음 중등(中等)에 처한 상태를 가리킴. 필(匹)은 비교.
●攙奪行市; 또 참항탈시(攙行奪市)로 지음. 시장을 창탈(搶奪; 강제로 빼앗음)함. 선림에서 많은 일을 조작하고 언설의 작략을 남용함을 비유로 가리킴. 항(行)은 호랑절(胡郞切; 항)이니 매매하고 교역하는 영업처, 곧 시장임.
●大潙喆; 대위모철임. 모철(慕喆) (?-1095) 송대 임제종승. 임천(臨川; 지금 강서에 속함) 문씨(聞氏). 건창(建昌) 영안원각(永安圓覺)에게 의지해 득도(得度)했고 도에 힘씀이 매우 부지런했음. 후에 남창(南昌)에 이르러 취암가진(翠巖可眞)을 참알하고 시자가 되었음. 세칭이 철시자(喆侍者)임. 사람됨이 강직했고 하법(荷法; 법을 짊어짐)으로 뜻을 삼았음. 출세해 담주(潭州)에 거주하다가 혜광(慧光) 대위(大潙)로 옮겼는데 대중이 2천 지(指)였음. 소성(紹聖) 개원(1094) 역소(驛召; 역마로 부름을 전함)를 받들어 연화전(延和殿)에서 인대(引對)하였고 칭지(稱旨; 主上의 뜻에 부합함)했으며 자복(紫服)과 진여(眞如)의 호를 주었음. 이윽고 대상국사(大相國寺)에 보임(補任)했음. 2년 10월 8일 질병 없이 게를 설하여 대중과 이별하고 양구(良久)에 시적했음. 대위산어록이 있으며 황정견(黃庭堅)이 서를 지었음 [선림승보전25. 통요속집21. 오등회원12].
●土上加泥; 1층의 치미(癡迷)를 증첨(增添)함에 비유함.
●接物利生; 곧 세간의 중생을 접인(接引)하여 화도(化導)함이니 그 갖가지의 기근(機根)에 상응해 이익을 급여함임.
●辛懃; 신소(辛苦)하며 근(懃; 通勤)로(勞)함.
●三上投子 九到洞山; 또 삼등투자구도동산(三登投子九到洞山)으로 지음. 설봉의존이 법을 구하기 위한 고로 세 번 투자산에 올라 대동선사(大同禪師)를 참하고 아홉 번 동산에 이르러 양개선사(良价禪師)를 참했음을 가리킴.
●飯頭; 선종 총림 안의 직칭(職稱)이니 십무(十務)의 하나가 됨. 곧 전좌(典座)의 아래 예속되어 대중의 죽재(粥齋)를 장리(掌理; 管掌)하는 사람임. 그 직책은 승중(僧衆)의 사람 수를 작량(酌量)하고 미곡(米穀)의 정조(精粗)를 검간(檢看)하고 수장(水漿)의 청탁(淸濁)을 분별하고 채소의 다과(多寡)를 준절(樽節; 節省. 樽은 撙과 통함)하고 땔감의 유무를 고려하고 내지 취구(炊具)의 세척과 수엄(餿淹; 음식 찌꺼기)의 처리 등임 [환주청규반두조. 상기전직위류. 승당청규5반두조].
●此事; 종문(宗門)의 일대사를 가리킴. 자기의 본분사를 가리킴.
●洞山; 동산양개(洞山良价)니 아래 제43칙을 보라.
●從上; 종전(從前). 이전(以前).
●宗乘; 각종(各宗)에서 홍포(弘布)하는 바의 종의(宗義)와 및 교전(敎典)을 종승이라고 말함. 다분히 선문(禪門)과 및 정토문(淨土門)에서 자가(自家)의 말을 표칭(標稱)함임.
●學人; 불법을 학습하는 사람을 널리 일컬음. 다분히 승도(僧徒)의 자칭으로 지어 씀.
●鰲山; 지금의 호남 상덕(常德) 북부에 있음.
●嵓頭; 암두전활임. 전활(全豁) (828-887) 또 전활(全奯)로 지음. 당대승이며 천주(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이며 속성은 가(柯). 영천사에서 출가하였고 장안의 서명사(西明寺)에서 구족계를 받았음. 설봉의존(雪峰義存)ㆍ흠산문수(欽山文邃)와 함께 수행하고 서로 권면(勸勉)했음. 함께 앙산혜적(仰山慧寂)을 참방했고 또 덕산선감(德山宣鑑)에게 참학(參學)해 그 법사(法嗣)를 이었음. 출세하여 악주(鄂州; 지금의 湖北 武昌)의 암두원(巖頭院)에 거주하면서 종풍을 크게 떨친지라 고로 또 칭호가 암두전활(巖頭全豁)임. 당 광계(光啓) 3년 4월에 도적이 난입하자 칼날에 임해 그대로 태연자약(泰然自若)했으며 대갈일성(大喝一聲)하고 마쳤으니 나이는 60이며 시호는 청엄대사(淸儼大師) [송고승전23. 조당집7. 경덕전등록16].
●從門入者 不是家珍; 이르자면 진정한 진보는 곧 자가의 가운데 있음,
●師兄; 법형의 뜻. 또 동도(同道) 중의 범칭(泛稱)이 됨.
●特地; 특의(特意)로 주작(做作)함이니 많이 남아 누췌(累贅; 군더더기)임.
●規矩; 선림보훈음의. 규구(規矩) 둥근 기구를 가로되 규(規)며 모난 기구를 가로되 구(矩)니 곧 총림의 모범임.
●出佛身血; 오역죄(五逆罪)의 하나.
●鬼窟裏作活計; 정식(情識)ㆍ속정(俗情)ㆍ망념 등에 빠짐에 비유. 또 귀취리작활계(鬼趣裏作活計)ㆍ귀가활계(鬼家活計) 등으로 지음.
●活計 생활(生活)의 계책(計策)이니 선록 중에 다분히 선법(禪法) 혹은 갖가지 기용(機用)의 작략(作略)에 비유함.
●超群拔萃; 출류발췌(出類拔萃)라고 말함과 같음. 발(拔)은 초출이며 췌(萃)는 인군(人群), 물류(物類)를 가리킴.
●坐斷; 절제(截除), 절단(截斷). 다분히 선기의 시설에 사용함. 이르자면 어언과 지해, 구별과 망념(妄念)을 절제함. 단자(斷字)는 주안(主眼; 주된 목표)이며 좌(坐)란 것은 평좌(平坐)의 뜻.
●擬議; 사려. 지의(遲疑; 주저하며 의심함). 설문(說文) 의(擬) 탁(度; 헤아리다)이다. 설문 의(議) 어(語)다. ▲역(易) 계사상(繫辭上) 전(傳). 천하의 지색(至賾; 가장 精微한 奥理)을 말해도 가히 악(惡; 過錯)하지 않고 천하의 지동(至動; 가장 細致한 변화)을 말해도 가히 난(亂; 혼란)하지 않는다. 이를 의(擬)한 후에 말하고 이를 의(議)한 후에 동(動)하나니 의의(擬議)하여 그 변화를 이룬다.
●他家; 타(他)임. 다른 사람임. 가(家)는 명사의 사철(詞綴; 接辭).
●一日; 일(一)은 모(某)에 상당함.
●鱉鼻蛇; 또 별비사(鼈鼻蛇)로 지음. 뱀 이름이니 그 코가 별(鱉; 鼈; 자라)과 같음. 이 뱀은 가장 독하므로 사람을 상해하면 가히 치료할 약이 없음. 비유로 본래의 진면목으로 삼음. 혹은 설봉 자신을 가리킴. 또 비유로 험악하고 질속(疾速)한 기봉을 가리킴.
●稜道者; 혜릉(慧稜)을 가리킴. 설봉의존(雪峰義存)을 이었음. 아래 제23칙을 보라.
●道者; 선인(禪人)의 칭호임.
●大有人; 대(大)는 재(再)임. 예컨대(如) 대전천(大前天; 그그저께). 대후일(大後日; 오늘 후의 제3일). 유(有)는 부정지(不定指)를 가리킴.
●沙門; 또 상문(桑門)ㆍ상문(喪門)ㆍ사문나(沙門那) 등으로 지음. 번역해 가로되 식(息)ㆍ식심(息心)ㆍ근행(勤行)ㆍ핍도(乏道)ㆍ빈도(貧道) 등임. 신역으론 실라말나(室羅末拏)ㆍ실마나나(室摩那拏)로 지음. 번역해 가로되 공로ㆍ근식(勤息)이니 불도를 닦음의 뜻임. 또 부지런히 닦아서 번뇌를 쉰다는 뜻임. 원래는 외도와 불도(佛徒)를 논하지 않고 모두 출가한 자의 도명(都名)이 됨.
●一隻眼; 1. 불법상(佛法上)에 진실정견(眞實正見)의 혜안을 갖추어 있음을 가리킴. 범부의 육안이 아니며 뜻이 정문안(頂門眼)ㆍ정안(正眼)ㆍ활안(活眼)ㆍ명안(明眼)과 같음. 2. 양척안(兩隻眼)과 상대됨. 단지 일변(一邊)만 보는 심각(深刻)한 안광임.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望州亭; 설봉산 안에 있음.
●烏石嶺; 설봉산 안에 오석령이 있음.
●僧堂; 선림 중에 승중(僧衆)이 일상에 수선(修禪)하고 기와(起臥)하는 당사(堂舍)를 가리킴. 또 명칭이 운당(雲堂)ㆍ좌당(坐堂)ㆍ선불당(選佛堂)ㆍ성승당(聖僧堂)ㆍ고목당(枯木堂)이며 선종 칠당가람(七堂伽藍)의 하나임. 곧 무릇 선찰(禪刹)에서 괘탑(掛搭)하는 자는 모두 계랍(戒臘)에 의해 위차(位次)를 안배하며 무릇 좌선(坐禪)ㆍ기와(起臥)ㆍ음식(飮食)을 다 이 승당에서 행함.
●保福; 보복종전(保福從展)이니 설봉의존(雪峰義存)을 이었음. 아래 제22칙을 보라.
●鵝湖; 아호지부임. 지부(智孚) 오대승. 복주(지금 복건에 속함) 사람. 설봉의존(雪峰義存)을 사사(師事)했고 거주한 지 몇 년 만에 심전(心傳)을 얻었음. 출세해 신주(信州; 지금의 강서 상요) 아호(鵝湖)에 거주하며 선법을 홍양했고 법화(法化)를 크게 행했음 [전등록18].
●且置; 전분구(前分句) 말미에 놓아두어 전분구의 내용을 배제하고 인출하는 후분구가 이 주제구(主題句)임을 표시함.
●方丈; 1장(丈)의 사방의 실(室)이니 또 방장실ㆍ장실로 지음. 곧 선사(禪寺) 중 주지의 거실 혹 객전(客殿). 또 명칭이 함장(函丈)ㆍ정당(正堂)ㆍ당두(堂頭). 인도의 승방은 다분히 사방 1장을 제도(制度)로 삼았으며 유마의 선실(禪室)도 또한 이 제도에 의했으니 드디어 사방 1장의 설이 있음. 전(轉)하여 주지의 거실을 가리키며 이제 전의(轉義)하여 선림의 주지가 됨. 혹 사가(師家)에 대한 존칭이니 통칭이 방장이며 혹 방장화상임 [유마경문소22. 법원주림29. 대당서역구법고승전상혜륜전].
●羅籠; 공제(控制; 억눌러 꼼짝 못하게 함. 제어함). 농조(籠罩; 널리 덮음). 또 농라(籠羅)로 지음. 라(羅)는 새를 잡는 그물이며 롱(籠)은 조롱(鳥籠; 새장).
●放下; 손을 놓아 아래에 둠임. 또 이르되 방하착(放下著)이니 착자는 어조사임.
●圈繢; 투삭(套索; 올가미)임. 또 권궤(圈圚)로 지음. 권정(圈定; 동그라미를 쳐서 확정하다)의 범위. 권투(圈套; 올가미). 다분히 선가에서 접인(接引)하는 시설이나 혹 기어(機語)의 작략(作略)을 가리킴.
●本色; 진면목. 본래면목. 본성.
●郞當; 정신이 송해(鬆懈; 느슨함)하여 진작(振作)하지 못함이니 속칭이 부정치(不整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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