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62칙 수시 본칙 평창 송 평창

태화당 2021. 8. 27. 08:17

垂示云 以*無師智 發無作妙用 以*無緣慈 *不請勝友 向一句下 有殺有活 於一機中 有縱有擒 且道什麽人曾恁麽來 試擧看

 

無師智; 指非藉他力 不待他人敎 而自然成就之智慧 與自然智同義

無緣慈; 無緣慈悲 此慈悲惟在諸佛 蓋諸佛之心 不住於有爲無爲性之中 不住於過去現在未來世之中 知諸緣不實 顚倒虛妄 故心無所緣 但佛以衆生不知諸法實相 往來五道 心著諸法 取捨分別 故心無衆生緣 使一切衆生自然獲拔苦與樂之益 名無緣慈悲 [智度論二十 佛持論五]

不請勝友; 祖庭事苑二 不請之友 華嚴二十云 當要先令一切衆生 得無上菩提無餘涅槃然後成佛 何以故 非衆生請我發心 我自爲衆生作不請之友

 

수시(垂示)하여 이르되 무사지(*無師智)로써 무작묘용(無作妙用)을 발()하며 무연자(*無緣慈)로써 불청승우(*不請勝友)가 되어 1구 아래를 향해 유살유활(有殺有活)하고 1() 중에서 유종유금(有縱有擒)하나니 그래 말하라 어떤 사람이 일찍이 이렇게 왔는가, 시험삼아 들어보아라(擧看).

 

無師智; 타력을 빌리지 않고 타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 자연히 성취한 지혜를 가리킴. 자연지(自然智)와 같은 뜻.

無緣慈; 무연자비(無緣慈悲)니 이 자비는 오직 제불에 있음. 대개 제불의 마음은 유위무위의 자성 중에 머물지 않으며 과거ㆍ현재ㆍ미래세 가운데 머물지 않으면서 제연(諸緣)이 진실이 아니며 전도된 허망임을 아는지라 고로 마음에 소연(所緣)이 없음. 다만 불타는 중생이 제법의 실상을 알지 못해 5()에 왕래하면서 마음이 제법에 집착하고 취사분별(取捨分別)하기 때문에 고로 마음에 중생연(衆生緣)이 없이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자연히 발고여락(拔苦與樂; 고를 뽑고 낙을 줌)의 이익을 획득하게 함을 이름해 무연자비임 [지도론20. 불지론5].

不請勝友; 조정사원2. 불청지우(不請之友) 화엄경20에 이르되 응당 요컨대 먼저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위없는 보리와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얻게 한 연후에 성불하리니 무슨 연고냐, 중생이 나에계 요청하여 발심함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중생을 위해 요청하지 않은 벗(不請之友)이 되리라.

 

六二擧 雲門示衆云 乾坤之內土曠人稀 *六合收不得 宇宙之間休向鬼窟裏作活計 蹉過了也 中有一寶在什麽處 光生也 切忌向鬼窟裏覓 祕在*形山拶 點 拈燈籠向佛殿裏猶可商量 將三門來燈籠上雲門大師是卽是不妨誵訛 猶較些子 若子細撿點將來 未免屎臭氣

 

六合; 天地與四方 天下 宇宙

形山; 卽指肉身 又吾人之心性 吾人之一心乃祕藏於身中者 寶藏論 天地之內 宇宙之間 中有一寶 祕在形山

 

六二()하다. 운문이 시중(示衆)하여 이르되 건곤지내(乾坤之內)땅은 넓고 사람은 드물다. 육합(*六合)이 거둠을 얻지 못한다. 우주지간(宇宙之間)귀굴(鬼窟) 속을 향해 활계(活計)를 짓지 말아라. 차과(蹉過)했다. 가운데 한 보배가 있어 어느 곳에 있느냐. 빛이 생기(生起)하는구나. 귀굴(鬼窟) 속을 향해 찾음을 간절히 꺼린다. 형산(*形山)에 숨겨져 있나니 (; 압박하다)이다. (; 가리키다)이다. 등롱(燈籠)을 잡고 불전 속을 향하며 오히려 가히 상량(商量)할 만하다. 삼문(三門)을 가지고 등롱 위로 온다. 운문대사가 옳기는 곧 옳지만 효와(誵訛)임에 방애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지만 만약 자세히 검점(撿點)하여 가져 온다면 시취기(屎臭氣; 똥 냄새. 는 냄새)를 면하지 못한다.

 

六合; 천지와 사방이니. 천하, 우주.

形山; 곧 육체를 가리킴. 또 우리들 사람의 심성(心性)이니 우리들 사람의 일심은 곧 신중(身中)에 비장(祕藏)된 것임. 보장론. 천지의 안과 우주의 사이, 중간에 1()가 있어 형산(形山)에 비장(祕藏; )되어 있다.

 

雲門道 乾坤之內 宇宙之間 中有一寶 祕在形山 且道雲門意在釣竿頭 意在燈籠上 此乃肇法師寶藏論數句 雲門拈來示衆 肇公時於後秦逍遙園造論 寫維摩經 方知莊老未盡其妙 肇乃禮羅什爲師 又參瓦棺寺跋陀婆羅菩薩 從*西天二十七祖處 傳心印來 肇深造其堂奧 肇一日遭難 臨刑之時 乞七日假 造寶藏論 雲門便拈論中四句 示衆 大意云 如何以無價之寶 隱在陰界之中 論中語言 皆與宗門說話相符合 不見鏡淸問曹山 淸虛之理 畢竟無身時如何 山云 理卽如是 事作麽生 淸云 如理如事 山云 瞞曹山一人卽得 爭柰諸聖眼何 淸云 若無諸聖眼 爭知不恁麽 山云 *官不容針私通車馬 所以道 乾坤之內 宇宙之間 中有一寶 祕在形山 大意明人人具足箇箇圓成 雲門便拈來示衆 已是十分現成 不可更似座主相似 與爾注解去 他慈悲更與爾下注脚道 拈燈籠向佛殿裏 將三門來燈籠上 且道雲門恁麽道 意作麽生 不見古人云 無明實性卽佛性 幻化空身卽法身 又云 卽凡心而見佛心 形山卽是四大*五蘊也 中有一寶 祕在形山 所以道 諸佛在心頭 迷人向外求 內懷無價寶 不識一生休 又道 *佛性堂堂顯現 住相有情難見 若悟衆生無我 我面何殊佛面 *心是本來心 面是*娘生面 *劫石可移動 箇中無改變 有者 只認箇昭昭靈靈爲寶 只是不得其用 亦不得其妙 所以動轉不得 開撥不行 *古人道 窮則變 變則通 拈燈籠向佛殿裏 若是常情可測度得 將三門來燈籠上 還測度得麽 雲門與爾一時打破情識意想得失是非了也 雪竇道 我愛韶陽新定機 一生與人抽釘拔楔 又云 *曲木據位知幾何 利刃剪却令人愛 他道 拈燈籠向佛殿裏 這一句已截斷了也 又將三門來燈籠上 若論此事 如擊石火 似閃電光 雲門道 汝若相當去 且覓箇入路 微塵諸佛在爾脚跟下 *三藏*聖敎 在爾舌頭上 不如悟去好 *和尙子莫妄想 天是天地是地 山是山水是水 僧是僧俗是俗 良久云 與我拈面前按山來看 便有僧出問云 學人見山是山水是水時如何 門云 三門爲什麽從這裏過 恐爾死却 遂以手劃一劃云 識得時 是醍醐上味 若識不得 反爲毒藥也 所以道 *了了了時無可了 玄玄玄處直須呵 雪竇又拈云 乾坤之內宇宙之間 中有一寶祕在形山 掛在壁上 達磨九年 不敢正眼覷著 而今衲僧要見 劈脊便棒 看他本分宗師 終不將實法繫綴人 玄沙云 羅籠不肯住 呼喚不回頭 雖然恁麽 也是靈龜曳尾 雪竇頌云

 

西天二十七祖; 般若多羅 東天竺人 婆羅門種 幼失父母 遊行閭里匃求度日 若常不輕之類 不知名氏 或自言瓔珞 故人謂之瓔珞童子 年二十許 遇二十六祖不如蜜多 受付囑而成爲西天第二十七祖 得法後 至南天竺香至國 度王之第三子菩提多羅(卽菩提達磨) 竝付其法 未久卽自焚其身而寂 [出三藏記集九 傳燈錄二 五燈會元一]

官不容針私通車馬; 意謂法律嚴密 不容絲毫寬宥 然以私下人情却大可融通 故禪林每以此語 形容師家接引學人時自在方便之機法 或謂官不容針 私通車馬二語 原是唐人之俗諺 後爲禪林所引用 二語合之 卽謂表裏互用而竝行無礙

五蘊; 又作五陰五衆五聚 翻譯名義集六 寒健陀 此云蘊 蘊謂積聚 古翻陰 陰乃蓋覆 積聚有爲 蓋覆眞性 又仁王云 不可說識 生諸有情色心二法 色名色蘊 心名四蘊 皆積聚性 隱覆眞實 此以色受想行識名爲五蘊 音義指歸云 漢來翻經爲陰 至晉僧叡改爲衆 至唐三藏改爲蘊

佛性堂堂顯現; 以下四句長沙景岑偈 見佛祖歷代通載十七

心是本來心; 傳燈錄三十南嶽懶瓚和尙歌 心是無事心 面是孃生面 劫石可移動 箇中無改變

娘生面; 又作孃生面 指本來面目 亦卽自心 本性 佛性 生面 如生的面貌(生動的面目)

劫石; 意指一劫之時間極爲長久 智度論三十八云 又如方百由旬石 有人百歲 持迦尸輕軟疊衣一來拂之 石盡 劫猶不澌

古人道; 易繫辭文也

曲木; 禪師說法時的座椅 見上第一五則

三藏; 經律論三藏 三藏法數五 三藏[出翻譯名義] 三藏者 謂經律論 各各含藏一切文理 故皆名藏 一修多羅藏 梵語修多羅 華言契經 契 合也 謂上契諸佛之理 下契衆生之機 故名契經也 二毘奈耶藏 梵語毘奈耶 華言律 又云善治 謂能治衆生之惡 如世法律 則能斷決重輕之罪 故名律也 三阿毘達磨藏 梵語阿毘達磨 亦名阿毘曇 華言論 論者論議也 瑜伽論云 問答決擇諸法性相 故名論也

聖敎; 聖人之所說 謂爲聖敎

和尙子; 對僧徒之稱 子 後綴

了了了時無可了; 傳燈錄二十九 同安察禪師十玄談云 了了了時無可了 玄玄玄處亦須訶

 

운문이 말하되 건곤지내(乾坤之內)와 우주지간(宇宙之間)의 가운데 한 보배가 있어 형산(形山)에 숨겨져 있나니 라고 하니 그래 말하라 운문의 뜻이 조간(釣竿; 낚싯대)의 끝에 있느냐 뜻이 등롱(燈籠)의 위에 있느냐. 이것은 이 조법사(肇法師; 僧肇)의 보장론(寶藏論)의 몇 구()인데 운문이 집어 와서 시중한 것이다. 조공(肇公)이 당시()에 후진(後秦)의 소요원(逍遙園)에서 논을 지었는데 유마경을 서사하다가 바야흐로 장로(莊老), 그 묘()를 다하지 못한 것을 알고 승조가 이에 라집(羅什)을 참례(參禮; )하여 스승으로 삼았다. 또 와관사(瓦棺寺) 발타바라(跋陀婆羅) 보살을 참례()하였으니 서천 27(*西天二十七祖)의 처소로 좇아 심인(心印)을 전수(傳受)하여 왔는지라 승조가 그의 당오(堂奧)에 깊이 나아갔다. 승조가 어느 날 조난(遭難)하여 형(; 사형)에 임할 때에 7일의 말미(; 와 통함)를 구걸하여 보장론을 지었다. 운문이 곧 논중(論中)4구를 집어 시중했다. 대의(大意)로 이르자면 어찌하여 무가지보(無價之寶)를 음계(陰界; 蘊界5온과 18)의 가운데 숨겨놓으리오 함이니 논중의 어언(語言)이 모두 종문의 설화와 더불어 서로 부합(符合)한다. 보지 못하느냐 경청(鏡淸; 道怤)이 조산(曹山; 本寂)에게 묻되 청허지리(淸虛之理)에 필경 몸이 없을 때엔 어떻습니까. 조산이 이르되 이()는 곧 이와 같지만 사()는 어찌하겠는가. 경청이 이르되 여리여사(如理如事)입니다. 조산이 이르되 조산 한 사람을 속임은 곧 옳지만 제성(諸聖)의 눈은 어찌하려느냐. 경청이 이르되 만약 제성의 눈이 없다면 어찌 이러하지 않음을 알리오. 조산이 이르되 관가에선 침도 용납하지 않지만 사적으론 거마도 통한다(*官不容針私通車馬) 하였다. 소이로 말하되 건곤지내와 우주지간의 중간에 한 보배가 있어 형산에 숨겨져 있다 하였으니 대의(大意)는 사람마다 구족하며 낱낱마다(箇箇) 원성(圓成; 원만성취)하였음을 밝힌 것이다. 운문이 곧 염래(拈來)하여 시중하니 이미 이 십분현성(十分現成)한지라 다시 마치 좌주(座主)와 상사하여 너희에게 주해하여 줌은(는 조사) 옳지 못하다. (운문)가 자비로 다시 너희에게 주각(注脚)을 내려 주어 말하되 등롱(燈籠)을 잡고 불전 속을 향하며 삼문(三門)을 가지고 등롱 위로 온다 하니 그래 말하라 운문이 이러히 말한 뜻이 무엇인가. 보지 못하느냐 고인(永嘉)이 이르되 무명의 실성(實性)이 곧 불성이며 환화(幻化)의 공신(空身)이 곧 법신이다(證道歌文) 하며 또 이르되 범심(凡心)에 즉(; 붙다)해서 불심을 나타낸다() 하였다. 형산(形山)은 곧 이 4() 5(*五蘊)이니 중간에 한 보배가 있어 형산에 숨겨져 있는지라 소이로 말하되 제불은 심두(心頭; 는 조사)에 있꺼늘/ 미인(迷人)이 밖을 향해 구한다/ 안에 무가(無價)의 보배를 품고서도/ 일생토록 쉴 줄을 알지 못한다 하였으며 또 말하되 불성이 당당히 현현하였건만(*佛性堂堂顯現)/ 주상(住相)하는 유정은 보기가 어렵다/ 만약 중생이 무아(無我)임을 깨달으면/ 아면(我面)이 어찌 불면(佛面)과 다르리오 하였으며 마음은 이 본래심이며(*心是本來心)/ 얼굴은 이 낭생면((*娘生面)이다/ 겁석(*劫石)은 가히 이동하지만/ 개중(箇中; 이 중)엔 개변(改變)이 없다) 하였다. 어떤 자는 다만 저() 소소영령(昭昭靈靈)을 인정해 보배로 삼나니 다만 이는 그 용()을 얻지 못한 것이며 또한 그 묘()도 얻지 못한 것인지라 소이로 동전(動轉)함을 얻지 못하며 개발(開撥)하여 행하지 못한다. 고인이 말하되(*古人道) ()한 즉 변하고 변한 즉 통한다 하였다. 등롱을 잡고 불전 속을 향함은 이에() 이 상정(常情)으로도 가히 측탁(測度)함을 얻거니와 삼문을 가지고 등롱 위로 옴을 도리어 측탁함을 얻겠느냐. 운문이 너희에게 일시에 정식의상(情識意想)과 득실시비를 타파하여 주었음이다. 설두가 말하되(위 제6칙을 보라) 내가 소양(韶陽; 운문)의 신정기(新定機)를 사랑하노니 일생 동안 사람들에게 추정발설(抽釘拔楔)해 주었다 했으며 또 이르되 곡목(*曲木)에서 거위(據位)한 이가 얼마인 줄 아느냐 날카로운 칼날로 베어버려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하게 한다 하였다. 그가 말하되 등롱을 잡고 불전 속을 향하고 라고 한 이 1구에 이미 절단해 마쳤거늘 또 삼문을 가지고 등롱 위로 온다 하니 만약 차사(此事)를 논할진대 돌을 치는 불과 같고 번쩍하는 번갯빛과 흡사하다. 운문이 말하되 너희가 만약 상당(相當; 꼭 맞음)해 가서 다만() () 입로(入路)를 찾았다면 미진(微塵)의 제불이 너희의 각근하(脚跟下; 발꿈치 아래)에 있고 삼장(*三藏)의 성교(*聖敎)가 너희의 설두상(舌頭上; 혀 위)에 있으리니 오거(悟去; 는 조사)의 좋음만 같지 못니라. 화상자(*和尙子)여 망상하지 말아라, 하늘은 이 하늘이며 땅은 이 땅이며 산은 이 산이며 물은 이 물이며 승()은 이 승이며 속()은 이 속이다. 양구(良久)하고 이르되 나(운문)에게 면전의 안산(按山)을 집어 주어 와 보아라. 곧 어떤 중이 나와 물어 이르되 학인이 산은 이 산이며 물은 이 물임을 볼 땐 어떻습니까. 운문이 이르되 삼문(三門)이 무엇 때문에 이 속으로 좇아 지나가는가 하고는 너희가 죽어버릴까 염려하여 드디어 손으로 한 획을 긋고 이르되 식득(識得)할 때는 이 제호(醍醐)의 상미(上味; 최상의 맛)지만 만약 앎을 얻지 못한다면 도리어 독약이 된다 하였다. 소이로 말하되 또렷 또렷 또렷할 때 가히 또렷함이 없고(*了了了時無可了) 가물 가물 가물거리는 곳에 바로 꾸짖음을 써라 하였다. 설두가 또 염운(拈云)하되 건곤지내(乾坤之內)와 우주지간(宇宙之間)의 중간에 한 보배가 형산에 숨겨져 있으며 벽 위에 걸려 있거니와 달마가 9년토록 감히 정안(正眼)으로 처착(覷著; 엿보다)하지 못했나니 이금(而今; 지금)의 납승이 보고자 한다면 등에다가(劈脊) 곧 몽둥이질() 하리라 하니 저 본분종사를 보아라, 마침내 실법(實法)을 가져서 사람을 계철(繫綴)하지 않는다. 현사가 이르되 나롱(羅籠; 制御)하여도 머물기를 긍정하지 않으며 호환(呼喚)해도 머리를 돌리지 않는다 하니 비록 그러하여 이러하지만 또한 이 영귀가 꼬리를 당김이다(靈龜曳尾). 설두가 송해 이르되

 

西天二十七祖; 반야다라(般若多羅; Prajñātāra). 동천축 사람이며 바라문종(婆羅門種). 어려서 부모를 잃고 마을(閭里)로 유행(遊行)하면서 개구(匃求; 구걸)로 날을 보냈음. 마치 상불경(常不輕)의 무리와 같았으며 명씨(名氏)를 알지 못했음. 혹 스스로 말하기를 영락(瓔珞)이라 한지라 고로 사람들이 그를 일러 영락동자(瓔珞童子)라 했음. 나이 20 쯤에 26조 불여밀다(不如蜜多)를 만나 부촉(付囑)을 받고 서천의 제27조가 되었음. 법을 얻은 후에 남천축 향지국(香至國)에 이르러 왕의 셋째 아들인 보리다라(菩提多羅; 곧 보리달마)를 제도하고 아울러 그의 법을 부촉했으며 오래지 않아 곧 스스로 그 몸을 태워 입적했음 [출삼장기집9. 전등록2. 오등회원1].

官不容針私通車馬; 뜻으로 이르자면 법률이 엄밀하여 실터럭만큼의 관유(寬宥; 寬恕)도 용납하지 않으나 그러나 사하(私下; 암암리. 비공식으로)의 인정으론 도리어 대가(大可; 매우 그럴 만함)로 융통함. 고로 선림에서 매번 이 말로써 사가가 학인을 접인할 때 자재한 방편의 기법(機法)을 형용함. 혹 이르기를 관불용침과 사통거마의 2()는 원래 당나라 사람의 속언(俗諺; 속담)이라 함. 후에 선림에서 인용하는 바가 되었으며 2어를 합하면 곧 표리가 호용(互用)하며 병행하매 무애함을 일컬음임.

五蘊; 5()5()5()로 지음. 번역명의집6. 새건다(塞健陀; skandha) 여기에선 이르되 온(). 온은 적취(積聚)를 말함. 옛날에 음()으로 번역했음. ()은 곧 개부(蓋覆). 유위(有爲)를 적취하고 진성(眞性)을 개부함임. 또 인왕경(仁王經)에 이르되 불가설(不可說)의 식()이 모든 유정(有情)의 색()과 심()의 두 법을 낸다. 색은 이름이 색온(色蘊)이며 심은 이름이 4()이다. 다 적취의 성품이며 진실을 숨기고 덮는다. 이는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5온이라고 이름함임. 음의지귀(音義指歸)에 이르되 한()나라 이래로 경을 번역하면서 음()으로 지었다. ()나라 승예(僧叡)가 고쳐서 중()으로 지었는데 당나라 삼장(三藏; 玄奘)에 이르러 고쳐서 온()으로 지었다.

佛性堂堂顯現; 이하 4구는 장사경잠(長沙景岑)의 게니 불조역대통재17을 보라.

心是本來心; 전등록30 남악나찬화상가(南嶽懶瓚和尙歌). 마음은 이 무사심(無事心)이며/ 얼굴은 이 양생면(孃生面)이다/ 겁석은 가히 이동하지만/ 개중(箇中; 이 가운데)은 개변(改變)이 없다.

娘生面; 또 양생면(孃生面)으로 지음. 본래면목을 가리킴. 또한 곧 자심ㆍ본성ㆍ불성.. 생면(生面)은 생적(生的; 산 것)과 같은 면모(생동적인 면목).

劫石; 뜻이 1겁의 시간이 극히 장구함을 가리킴이니 지도론38에 이르되 또 예컨대() 사방 백 유순(旬石)의 돌을 어떤 사람이 백세에 가시(迦尸)의 가볍고 부드러운 베(으로 의심됨)를 가지고 한 번 와서 이를 떨친다. 돌은 없어지더라도 겁은 오히려 다하지 않는다.

古人道; () 계사문(繫辭文).

曲木; 선사가 설법할 때의 좌의(座椅). 위 제15칙을 보라.

三藏; 경ㆍ율ㆍ론 3(). 삼장법수5. 3() [출번역명의] 3장이란 것은 이르자면 경ㆍ율ㆍ론이니 각각 일체의 문리(文理)를 함장(含藏)했으므로 고로 다 이름이 장(). 1. 수다라장(修多羅藏) 범어로 수다라(修多羅; sūtra)는 화언(華言)으로 계경(契經)이니 계()는 합(). 이르자면 위로는 제불의 이치에 계합하고 아래론 중생의 근기에 계합하나니 고로 이름이 계경임. 2. 비나야장(毘奈耶藏) 범어로 비나야(毘奈耶; vinaya) 는 화언으로 율()이며 또 이르되 선치(善治). 이르자면 능히 중생의 악을 다스림이 세간의 법률과 같나니 곧 능히 무겁거나 가벼운 죄를 단결(斷決)하므로 고로 이름이 율임. 3. 아비달마장(阿毘達磨藏) 범어로 아비달마(阿毘達磨; abhidharma)는 또한 이름이 아비담(阿毘曇)이니 화언으로 논(). 논이란 것은 논의임. 유가론에 이르되 모든 법의 성상(性相)을 문답하고 결택(決擇)하므로 고로 이름이 논이다.

聖敎; 성인의 소설(所說; 설한 바)을 일컬어 성교라 함.

和尙子; 승도(僧徒)에 대한 호칭. 자는 후철.

了了了時無可了; 전등록29 동안찰선사(同安察禪師)의 십현담(十玄談)에 이르되 또렷 또렷 또렷할 때 가히 또렷함이 없고 가물 가물 가물거리는 곳에 또한 꾸짖음을 써라.

 

看看高著眼 用看作什麽 驪龍玩珠 古岸何人把釣竿孤危甚孤危 壁立甚壁立 賊過後張弓 腦後見腮 莫與往來 雲冉冉打斷始得 百匝千重 *炙脂帽子鶻臭布衫水漫漫左之右之 前遮後擁 明月蘆花君自看看著則瞎 若識得雲門語 便見雪竇末後句

 

炙脂帽子鶻臭布衫; 沾染油脂的帽子 帶著體臭的布衫 喩指塵俗煩惱 虛妄知見等

 

보아라 보아라 높이 착안하라. 봄을 써서 무엇하려는가. 이룡(驪龍)이 구슬을 희롱한다. 고안(古岸)에 어떤 사람이 낚싯대를 잡았다 고위(孤危; 높이 뛰어난 모양)하기는 매우 고위하고 벽립(壁立; 가파른 산 언덕이 섬)은 매우 벽립이지만 도적이 지나간 후 활을 당김이다. 뇌후(腦後)에서 뺨이 보이거든 더불어 왕래하지 말아라. 구름은 염염(冉冉; 점점 나아감)하고 타단(打斷; 단절)해야 비로소 옳다. 백잡천중(百匝千重)이다. 자지의 모자며 골취의 포삼이다(*炙脂帽子鶻臭布衫) 물은 만만(漫漫; 길면서 무변한 樣子)하니 좌지우지(左之右之)며 전차후옹(前遮後擁; 앞에선 끊고 뒤에선 에워쌈)이다. 명월과 노화(蘆花; 갈대꽃)를 그대가 스스로 보아라 본다면(看著) 곧 눈 멀어지리라. 만약 운문어(雲門語)를 식득(識得)하면 곧 설두의 말후구를 보리라.

 

炙脂帽子鶻臭布衫; 유지(油脂)에 첨염(沾染; 오염)된 모자와 체취(體臭)를 가진 포삼(布衫)이니 진속(塵俗)의 번뇌와 허망한 지견 등을 비유로 가리킴.

 

若識得雲門語 便見雪竇爲人處 他向雲門示衆後面兩句 便與爾下箇注脚云 看看 爾便作瞠眉瞠眼會 且得沒交涉 古人道 靈光獨耀 逈脫*根塵 *體露眞常 不拘文字 心性無染 本自圓成 但離妄緣 卽*如如佛 若只向瞠眉努眼處坐殺 豈能脫得根塵 雪竇道 看看 雲門如在古岸把釣竿相似 雲又冉冉 水又漫漫 明月映蘆花 蘆花映明月 正當恁麽時 且道是何境界 若便直下見得 前後只是一句相似

 

根塵; 指六根(眼耳鼻舌身意)與 六塵(色聲香味觸法) 又作根境 止觀一下 根塵相對 一念心起

體露眞常; 全然顯露事物之眞實永常之相狀 體 表現 體現

如如; 萬事萬物之眞實相平等無二 稱爲如如 金剛經註解三 如如者 得無所有境界 故維摩經云 如者不二不異 一切法亦如也 衆聖賢亦如也 至於彌勒亦如也 金剛經心印疏下 如如者 如於眞如也

 

만약 운문의 말을 식득(識得)한다면 곧 설두의, 사람 위하는 곳을 보리라. (설두)가 운문이 시중(示衆)한 후면의 양구(兩句; 등롱을 잡아 운운한 양구)를 향해 곧 너희에게 저() 주각을 내려 주어 이르되 보아라 보아라 하니 너희가 곧 당미당안(瞠眉瞠眼;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부릅뜸)으로 이회를 짓는다면 또한 교섭 없음을 얻는다. 고인(古人; 百丈懷海)이 말하되 영광(靈光)이 홀로 빛나 멀리 근진(*根塵; 6근과 6)을 벗어났으니 진상이 체로하여(*體露眞常) 문자에 구애되지 않는다. 심성(心性)은 물듦이 없는지라 본래 스스로 뚜렷이() 이루어졌나니 단지 망연(妄緣)만 여읜다면 곧 여여(*如如)한 부처다 하였거늘 만약 다만 당미노목(瞠眉努眼; 눈썹을 치켜세우고 눈을 부릅뜸)하는 곳을 향해 좌살(坐殺; 너무 심하게 앉아버림)하면 어찌 능히 근진(根塵)을 벗어남을 얻겠는가. 설두가 말하되 보아라 보아라, 운문이 마치 고안(古岸)에 있으면서 낚싯대를 잡은 것과 상사하다. 구름은 또 염염(冉冉)하고 물은 또 만만(漫漫)하며 명월이 노화(蘆花)를 비추고 노화가 명월을 비추니 바로 이러한 때를 당하여선 그래 말하라 이 어떤 경계인가 함이니 만약 곧 직하(즉각)에 견득(見得)한다면 전후가 다만 이 1구와 상사하리라.

 

根塵; 6(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6(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을 가리킴. 또 근경(根境)으로 지음. 지관1. 근진(根塵)이 상대하여 일념심(一念心)이 일어난다.

體露眞常; 전연(全然; 완전)히 사물의 진실하고 영상(永常)한 상상(相狀)이 현로(顯露; 환히 드러남). ()는 표현, 체현(體現; 체가 나타남).

如如; 만사만물의 진실상이 평등하여 둘이 없음을 일컬어 여여라 함. 금강경주해3. 여여(如如)란 것은 무소유를 얻은 경계다. 고로 유마경에 이르되 여()란 것은 불이불이(不二不異)니 일체법도 또한 여()며 뭇 현성도 또한 여며 미륵에 이르기까지도 또한 여다. 금강경심인소하. 여여란 것은 진여(眞如)에 여()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