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주해

벽암록 제98칙 송 평창

태화당 2021. 8. 28. 09:19

禪家流漆桶 一狀領過愛輕薄也有些子 呵佛罵祖如麻似粟 滿肚參來用不著只宜有用處 方木不逗圓孔 闍黎與他同參 堪悲堪笑天平老天下衲僧跳不出 不怕旁人攢眉 也得人*鈍悶 却謂當初悔行脚未行脚已前錯了也 踏破草鞋堪作何用 一筆句下 錯錯是什麽 雪竇已錯下名言了也 西院淸風頓*銷鑠西院在什麽處 何似生 莫道西院 三世諸佛天下老和尙 亦須倒退三千始得 於斯會得 許爾天下橫行 復云 忽有箇衲僧出云錯一狀領過 猶較些子 雪竇錯何似天平錯西院又出世 據款結案 總沒交涉 且道畢竟如何 打云 錯

 

鈍悶; 無情無緒貌

銷鑠; 一熔化(消除) 二久病枯瘦 此指一

 

선가류(禪家流; 品類)칠통들을 일장영과(一狀領過)하는구나. 경박(輕薄)을 좋아하여 또한 조금(些子) 있어서 가불매조(呵佛罵祖)함이 삼과 같고 좁쌀과 같다. 밥통()에 가득 채워 참래(參來; 는 조사)하나 씀을 얻지 못한다 다만 의당(宜當) 쓸 곳이 있지만 모난 나무가 둥근 구멍에 맞지 않나니 사리(설두)가 그(천평)와 더불어 동참이다. 가히() 슬프고 가히 우습나니 천평로(天平老)천하 납승이 뛰어 벗어나지 못한다. 옆 사람의 눈썹 찌푸림을 두려워하지 않는구나. 또한 남의 둔민(*鈍悶)을 얻는구나. 도리어 이르되 당초에 행각을 후회한다 하는구나 행각하지 아니한 이전에 틀려버렸다. 짚신을 답파(踏破)하여 차마 어디에 씀을 짓겠는가. 일필구하(一筆句下; 一筆로 좍 그어 내림)하라. 틀렸다(), 틀렸다() 함이여 이 뭣고. 설두가 이미 명언(名言)을 착하(錯下)했다. 서원(西院)의 청풍이 문득 소삭(*銷鑠)했다 서원이 어느 곳에 있으며 무엇과 흡사한가(何似生). 서원을 말하지 말아라, 삼세제불과 천하 노화상일지라도 또한 반드시 3(3천 리)을 도퇴(倒退)해야 비로소 옳나니 이에서 회득(會得)한다면 너에게 천하를 횡행(橫行)함을 허락하리라. 다시 이르되 홀연히 어떤(有箇) 납승이 나온다면 이르되 틀렸다() 하리니 일장영과(一狀領過)해야 오히려 조금은 상당하다. 설두의 착()이 천평의 착과 어찌 같은가(何似) 서원이 또 세상에 나왔구나. 거관결안(據款結案)이다. 모두 교섭이 없으니 그래 말하라 필경 어떠한가. 때리고 이르되 틀렸다().

 

鈍悶; 무정무서(無情無緒)한 모양.

銷鑠; 1. 용화(熔化; 消除). 2. 오랜 병으로 고수(枯瘦). 여기에선 1을 가리킴.

 

禪家流愛輕薄 滿肚參來用不著 這漢會則會 只是用不得 尋常目視雲霄道 他會得多少禪 及至向烘罏裏纔烹 元來一點使不著 五祖先師道 有一般人參禪 如琉璃甁裏搗糍糕相似 更動轉不得 抖擻不出 觸著便破 若要活潑潑地 但參*皮殼漏子禪 直向高山上 撲將下來 亦不破亦不壞 *古人道 設使言前薦得 猶是*滯殼迷封 直饒句下精通 未免觸途狂見 堪悲堪笑天平老 却謂當初悔行脚 雪竇道 堪悲他對人說不出 堪笑他會一肚皮禪 更使些子不著 錯錯這兩錯 有者道 天平不會是錯 又有底道 無語底是錯 有什麽交涉 殊不知 這兩錯 如擊石火似閃電光 是他向上人行履處 如仗劍斬人直取人咽喉命根方斷 若向此劍刃上行得 便七縱八橫 若會得兩錯 便可以見西院淸風頓銷鑠 雪竇上堂 擧此話了 意道錯 我且問爾 雪竇這兩錯 何似天平錯 且參三十年

 

皮殼漏子禪; 皮殼漏子 與皮袋同義 卽指人之身體 比喩不破 轉義强固之意 皮殼漏子禪 轉指任運自在之禪機 又作皮可漏子禪 殼 比喩人之身軀 漏 泄漏屎尿

古人; 風穴延沼 見五燈會元十一

滯殼迷封; 意謂癡迷愚鈍 亦指被情識學解所纏 難以省悟

 

선가류(禪家流; 品類)가 경박(輕薄)을 좋아하여 밥통()에 가득 채워 참래(參來; 는 조사)하나 씀을 얻지 못한다 하니 저한(這漢)이 알기야 곧 알지만 다만 이 씀을 얻지 못함이다. 심상(尋常)에 눈으로 운소(雲霄; 높은 하늘)를 바라보며 말하되 그(; 천평)가 다소의 선()을 회득(會得)했다고 말하다가 홍로(烘罏) 속을 향해 겨우 삶음에 이르러선(及至) 원래 한 점도 사용함을 얻지 못한다使不著). 오조선사(五祖先師)가 말하되 어떤 일반인의 참선은 마치 유리병 속에서 자고(糍糕; 찰떡. 는 인절미. 는 떡)를 찧음과 상사하여 다시는 동전(動轉)함을 얻지 못하며 두수(抖擻; 터는 것)하여도 나오지 못하여 촉착(觸著)하면 곧 깨어지거니와 만약 활발발지(活潑潑地)를 요할진대 단지 피각루자선(*皮殼漏子禪)을 참구해야 하나니 바로 고산(高山) 위로 향해 가서(의 뜻이 있음) 거꾸로 떨어뜨려도(撲將下來) 또한 깨어지지 않고 또한 부서지지도 않는다 하였다. 고인이 말하되(*古人道) 설사 언전(言前)에 천득(薦得; 領悟)하더라도 오히려 이는 체각미봉(*滯殼迷封)이며 직요(直饒; 縱然) 구하(句下)에 정통(精通)하더라도 촉도광견(觸途狂見; 도처에서 헛것을 봄)을 면하지 못한다 했다. 가히() 슬프고 가히 우습나니 천평로(天平老), 도리어 이르되 당초에 행각을 후회한다 하는구나 함은 설두가 말하되 그(천평)가 남을 대하여 설해 내지 못함이 가히 슬픈 것이며 그가 일두피선(一肚皮禪)을 안 것이 가히 우습나니 다시 사자(些子)로 하여금 얻지 못하게(不著) 했다 함이다. 틀렸다(), 틀렸다() 한 이 양착(兩錯)을 어떤 자는 말하되 천평이 알지 못한 것이 이 착()이라 하며 또 어떤 이는 말하되 말이 없은 것이 이 착()이라 하나니 무슨 교섭이 있으리오. 너무 알지 못하나니 이 양착(兩錯)이 돌을 치는 불과 같으며 번쩍하는 번갯빛과 흡사하여 이는 저 향상인(向上人)의 행리처(行履處)라서 마치 검을 가지고() 사람을 베매 바로 사람의 인후(咽喉)를 취해야 명근(命根)이 비로소 끊어짐과 같나니 만약 이 칼날 위를 향해 행함을 얻는다면 곧 칠종팔횡(七縱八橫)하고 만약 양착(兩錯)을 회득(會得)한다면 곧 가이(可以; 는 조사) 서원의 청풍이 문득 소삭(銷鑠)함을 보리라. 설두가 상당하여 차화(此話)를 들고 나서 뜻에 말하되 착()이라 하나니 내가 다만() 너희에게 묻는다, 설두의 이 양착(兩錯)이 천평의 착과 어찌 같은가(何似), 다만() 30년을 참()하라.

 

皮殼漏子禪; 피각루자(皮殼漏子)는 피대(皮袋)와 같은 뜻이니 곧 사람의 신체를 가리킴. 불파(不破)에 비유함. 전의(轉義)하여 강고(强固)의 뜻. 피각루자선은 전()하여 임운자재(任運自在)한 선기(禪機)를 가리킴. 또 피가루자선(皮可漏子禪)으로 지음. ()은 사람의 신체에 비유하고 루()는 시뇨(屎尿)를 설루(泄漏).

古人; 풍혈연소니 오등회원11을 보라.

滯殼迷封; 뜻으로 이르자면 치미(癡迷)하고 우둔함. 또한 정식(情識)과 학해(學解)에 묶이는 바를 입어 성오(省悟)하기 어려움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