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5권)

선문염송집주서(한글)

태화당 2021. 8. 28. 09:56

공안을 제기하고 화두를 간함은(*提公案看話頭) 황벽선사(*黃檗禪師)로부터 시작했으며 공안을 송하고 격외를 염()함은(*頌公案拈*格外) 분양(*汾陽)과 원오(*圓悟)에게서 일어났다. 그러나 고인의 공안(*古人之公案)은 모두 심원(心源)으로부터 유출(流出)한지라 겨우 사유(思惟)와 복탁(卜度)에 건너면 바로 십만팔천에 막히거늘 하물며 또 송을 짓고 염()을 지음은 마치 뒷간집에 단확(丹雘; 彩色總名)을 칠함과 같아서 다만 그 취기를 더할 뿐이다(只增其臭氣耳).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기는 하지만 하얀 얼굴로 사람에게 보여줌은 마침내 옳지 못하고 홍분을 찍어 단장(丹粧)해야 비로소 풍류다. 옥백과 종고는 인간의 예악이며(*玉帛鐘鼓人間之禮樂) 염송(拈頌)과 대별(**)은 선화(*禪和)의 풍류이다. 그 도는 뿌리가 없지만 영구히 견고하게 영무하나니(*其道無根永固榮茂) 전법하고 홍도(弘道)하는 묘가 그 가운데 있다. 무릇 고려 진각국사(*眞覺國師) 혜심(*慧諶)이 모은 바인 선문염송은 가히() 천하제일의 선서(禪書)가 되며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의 관절(*冠絶. 으뜸)이며 광전절후(*光前絶後)의 보장(寶藏)이며 참선학도(參禪學道. 참학)의 귀감(*龜鑑)이다. 혜심이 조계산(*曹溪山) 수선사(*修禪社)에 거주하면서 문인인 진훈(眞訓) 등과 함께 모은 것은 무릇 1,125칙이었고 후래에 청진국사(*淸眞國師)가 다시 상각(*商㩁)을 가하여 전에 보지 못한 제방의 공안을 주워모아 347칙을 더하였다. 그러나 현존하는 것은 1,463칙이다. 아득히 사유하노니(*緬惟) 지금으로부터 사십여 년 전 정원(淨圓)이 처음(*) 치문(*緇門)에 들자() 선사(*先師)가 이 집()을 나에게 보이시고는 향상(*向上)의 겸추(*鉗鎚)를 들어 일으켜 주야로 단련하고 삶으면서 나로 하여금 향상의 한 구멍(*向上一竅)이 있음을 알게 하셨다. 지우금(至于今) 머리가 희고 이가 누럼(*頭白齒黃)에 이르도록 행주좌와 어묵시순(語嘿視瞬)에 일찍이 저개(**. 를 또한 로 지음)의 일을 여의지 않는 것은 서기(庶幾. 거의) 타두(*打頭. 애초)에 염송을 만났음에 힘입었다. 이에 작년 11월 뜻을 이 집()의 입주(入註)에 두었는데 마침(*) 거사(*居士) 이철교(*李哲敎)가 있어() 염송의 광반(*光盤. CD), 관련된 몇 종의 참고 서적을 송부(送付)하였다. 입각(*立刻) 착수하여 곁으로 여러 서적과 그리고 중화전자불전을 참조하여 수교(讎校)하고 주해하여 12개의 달을 경과해 지금의 임진세 중동(仲冬)에 이르러 마침을 고했다. 주석은 대약(大約) 95백여 목(*餘目)이며 장수(*張數)는 염송집보다 조금 초과한다. 염송의 해설서인 염송설화(*拈頌說話)는 어로지류(*魚魯之謬)를 가히 세어 열거하지 못하며 평의(評議) 중에 선리(禪理)에 맞지 않는 게 많다. 고로 아홉을 버리고(*舍九) 하나를 좇아 그것을 채록(采錄)하였으니 시비와 장단은 단지(*) 명안(*明眼)에게 기탁한다.

단기 4345년 세재임진(2012) 중동일에 평심사주(平心寺) 정원이 태화당(泰華堂)에서 근서(謹序)한다.

 

禪門拈頌集; 30. 고려의 혜심(慧諶)과 진훈(眞訓) 등이 편()했음. 이 집()은 석존 이래로부터 당송제사(唐宋諸師)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의 선가(禪家)의 기연(機緣)ㆍ어구(語句)ㆍ염송(拈頌)의 대성(大成). 무릇 1,463(). 편자(編者)인 진각국사혜심(眞覺國師慧諶)은 조계종조(曹溪宗祖)인 지눌(知訥)의 제자임. 조계산(曹溪山) 수선사(修禪社)에 거주하며 문인(門人)인 진훈(眞訓) 등과 이 책을 편집(編輯)했음. 증보염송발(增補拈頌跋)을 안험(按驗. 查驗)하니 진각(眞覺)이 문인 등에게 고화(古話)를 채집(採集)하게 했는데 무릇 1,125()이었음. 후에 청진국사(淸眞國師)가 전에 보지 못한 바의 제방공안(諸方公案)을 주워 347칙을 더했다 함. 그러나 현존하는 것은 총 1,463칙임. 차본(此本; 禪門拈頌集註)은 고려대장경보유판(高麗大藏經補遺版)을 저본으로 삼았으며 선문제서(禪門諸書)를 방조(傍照)하여 수교(讐校)하고 주해했음.

禪門; 이는 선종의 법문을 가리킴. 또 선종문류(禪宗門流)ㆍ선종(禪宗)ㆍ불심종(佛心宗)ㆍ선가(禪家)로 지음.

; 평석(評釋). 평의(評議).

; 조정사원6(祖庭事苑六; 八卷 宋 善卿編正). 가타(伽陀; gāthā) 여기에선 이르되 풍송(諷頌). 또 이르되 불송송(不頌頌)이니 이르자면 장행(長行)을 송()하지 않기 때문이며 혹은 이름이 직송(直頌)이니 이르자면 바로 게()로써 설법하기 때문임. 여금의 유가(儒家)에서 이르는 바 덕업(德業)을 유양(游揚; 浮揚)하고 성공(成功)을 포찬(褒讚; 는 기릴 포. 은 기릴 찬)하는 것인 풍송(諷頌). 이른 바 직송(直頌)이란 것은 스스로 심지(心地)가 개명(開明; 열려 환함)하고 부처의 지견에 통달하지 못했다면 능히 짓지 못하거늘 금시의 무리가 왕왕 이르기를 송은 기미(綺靡; 는 비단 기. 고울 기. 는 사치할 미. 예쁠 미. 곧 호화롭게 꾸밈)를 숭상하지 않으므로 솔이(率爾; 은 대강 솔. 경솔할 솔. 곧 수월하게. 갑자기)하게 가히 이룬다 하거니와 너무 알지 못하나니 세간의 시장(詩章)보다 어려움이 원심(遠甚; 멀고 심함). 고로 제기(齊己)의 용아서(龍牙序; 龍牙居遁이니 洞山良价法嗣)에 이르되 그 체()는 비록 시()이지만 그 뜻()은 시가 아니라 한 것임.

; 선림보훈음의(禪林寶訓音義; 一卷 明 大建較). ()는 편수(篇首)니 문()의 상서(庠序)와 같다. 원각소초수문요해1(圓覺疏鈔隨文要解一; 十二卷 元 凊遠述). 또 서()란 것은 상서(庠序). 이아(爾雅)에 이르되 동서(東西)의 담장을 가로되 서()라 했다. 택사(宅舍)의 천심(淺深)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상서(庠序)를 보고 그 사람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이마와 눈(額目)을 보고 작자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그 서()를 보라.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三十卷 高麗 覺雲撰). 행정(行靜; 未詳)이 이르되 서()란 것은 서(; 실마리). 고치()가 서()를 얻으면 1()의 실을 서진(緖盡)함과 같이 이 집()이 서()를 얻으매 1()의 뜻을 다한다.

提公案看話頭; 선관책진(禪關策進; 一卷 明 袾宏輯) 균주황벽운선사시중(筠州黃檗運禪師示衆). 미리 앞에 만약 타불철(打不徹; 는 동사의 前綴이니 實義가 없음. 다분히 사람의 동작과 행위를 표시함)하면 납월삼십일(臘月三十日)이 도래하매 너희의 열란(熱亂)을 관취(管取)한다. 일반의 외도가 있어 사람이 공부(工夫)를 지음을 겨우 보면 바로 냉소하면서 오히려 저개(這箇; 이것)가 있느냐 한다. 내가 다만 너희에게 묻는다. 홀연히 목숨을 마칠 때에 임()하면 너희가 무엇을 가져 생사에 저적(抵敵生死; 생사윤회에 응대함. 생사를 초월함. 이는 禪悟의 뒤의 受用)하겠는가. 모름지기 이는 한가할 때 판득해 마쳐야(辦得下) 바쁠 때 씀을 얻어서 다소(多少) 힘을 들어(省力) 임갈굴정(臨渴掘井)을 기다리지 않으며 수각()이 갈마들지 않음을 짓는다. 전로(前路)가 망망(茫茫)한데 호찬난당(胡鑽亂撞; 어지럽게 뚫고 두드림)하니 고재고재(苦哉苦哉)로다. 평일에 다만 구두삼매(口頭三昧)를 배워 설선설도(說禪說道)하고 가불매조(呵佛罵祖)하다가 이 속에 이르러선 도무지 씀을 얻지 못한다. 다만 타인을 속임을 관대(管帶)하다가 어찌 금일 스스로 속아버릴 줄 알겠는가. 너희 형제가(兄弟家)에게 권하나니 색력(色力)이 강건(康健)함을 쫓을 때 저() 분효(分曉; 분명)를 토취(討取)해야 한다. 저사(這些; 這箇)의 관려자()는 매우 이 용이하건만 스스로 이 너희가 가서 사지(死志) 아래에서 공부를 지음을 긍정하지 않고서 다만 관대(管帶)하여 말하되 어렵고도 또 어렵다 한다. 만약 이 장부한(丈夫漢)이라면 저() 공안(公案)을 간()하리라. 중이 조주(趙州)에게 묻되 구자(狗子; . 後綴)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조주가 이르되 없다(). 단지 이륙시(二六時; 하루 종일. 12時辰) 중에 저() 무자(無字)를 간()하나니 주참야참(晝參夜參)하면서 행주좌와(行住坐臥)와 착의흘반(著衣吃飯) 하는 곳과 아시방뇨(屙屎放尿; 똥을 누고 오줌을 싸다)하는 곳에 심심(心心)이 상고(相顧)하면서 용맹하게 정채(精彩)를 붙여 저() 무자(無字)를 지킨다. 일구세심(日久歲深)하고 타성일편(打成一片; 한 조각을 이룸)하매 홀연히 심화(心華)가 문득 피어 불조지기(佛祖之機)를 깨치면 곧 천하 노화상이 설두(舌頭; . 는 조사)로 속임을 입지 않는다. (便) 큰 입을 벌릴 줄 알아 달마의 서래는 무풍기랑이며 세존의 염화(拈花)는 일장패궐(一場敗闕)이라 한다. 이 속에 이르면 무슨 염라노자(閻羅老子)를 설하느냐 천성(千聖)이라도 오히려 너희를 어찌하지 못하리라. 바로 이러한(這般) 기특이 있다고 말함을 믿지 않겠는가.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은가 하면 사()는 유심(有心)한 사람을 두렵게 한다. 평왈(評曰; 袾宏이 평왈) 이것이 후대의 제공안간화두(提公案看話頭)의 시작이다. 그러나 무자(無字)에 집정(執定)함이 필요치 않나니 혹은 무자 혹은 만법 혹은 수미산 혹은 사료소료(死了燒了) 등이며 혹은 염불을 참구(參究)하되 1칙을 지킴을 따라 깨달음을 기한으로 삼아야 한다. 의심하는 바가 같지 않아도 깨침엔 곧 둘이 없다.

黃檗; 희운(希運; ?-850)이니 당대승(唐代僧). 복주(福州) 민현(閩縣) 사람이며 성씨는 불상. 백장회해(百丈懷海)의 법사(法嗣)니 남악하(南嶽下) 3. 어릴 적에 홍주(洪州)의 황벽산(黃檗山)에서 출가했음. 세칭이 황벽희운(黃檗希運). 아래 제388칙 희운(希運)을 보라.

頌公案拈格外; 위림도패선사찬향록하(爲霖道霈禪師餐香錄下; 二卷 書記太泉錄). 사가송고서(四家頌古序) 옛날의 공안은 송()이 없었다. 송은 분양(汾陽; 善昭)으로부터 시작했다. 분양의 뒤에 설두(雪竇; 重顯)가 이를 계승했으며 호칭이 송고지성(頌古之聖)이다. 이를 이어 제가(諸家)에서 다 송이 있었다. 동상(洞上; 曹洞)의 송명(頌名)으로 가장 현저한 자는 3인이니 투자청(投子靑; 義靑)ㆍ단하순(丹霞淳; 子淳)ㆍ천동각(天童覺; 正覺)이 이것이다. 송은 평()이 없었는데 평은 원오(圓悟; 克勤)로부터 시작되었다. 원오의 뒤에 만송(萬松; 行秀)과 임천(林泉; 從倫)이 이를 이었다. 원오는 설두를 평했고 만송은 천동을 평했고 임천은 단하와 투자를 평했으니 이것이다. 후인이 이를 합쳐 제목을 사가송고(四家頌古)라 했으며 선자(禪者)가 기대어 지남(指南)으로 삼거니와 나는 도는 본래 언어를 여의었고 언어가 미치지 못함으로 삼는다. 고존숙(古尊宿)이 중생()을 위해 작칙(作則)하고 임기(臨機)하여 염출(拈出)함은 석화전광(石火電光)과 같은지라 참으로() 안변수친(眼辨手親)이 아니면 벌써 이는 백운만리(白雲萬里). 소이로 이를 송하는 것은 공중에 조적(鳥跡)을 서사(書寫)하고 개울 밑에서 어종(魚蹤)을 헤아림()과 같아서 단지 상상지간(想像之間)과 방불(髣髴)할 따름이거늘 하물며 또 이것()을 좇아 평()함이겠는가 (운운).

格外; 통상적 분별과 이념, 지식과 견해를 초월함.

汾陽; 선소(善昭; 947-1024)니 송대 임제종승. 태원(太原; 山西) 사람이며 속성은 유(). 수산성념(首山省念)의 법사(法嗣)니 임제하 5. 분주(汾州; 지금의 山西汾陽) 태자원(太子院)에 주()했음. 아래 제1334칙 선소(善昭)를 보라.

圓悟; 극근(克勤. 1063-1135)이니 송대 임제종 양기파승. 사호(賜號)가 원오(圓悟). 사천(四川) 숭녕(崇寧) 사람이며 속성은 낙(; ). 오조법연(五祖法演)을 이었으니 임제하 10. 아래 제1420칙 극근(克勤)을 보라.

古人之公案只增其臭氣耳; 영각원현선사광록30(永覺元賢禪師廣錄三十; 三十卷 嗣法道霈重編). 고인의 공안은 모두 부사의(不思議) 가운데로부터 유출(流出)한다. 겨우 사유(思惟)에 건너면 곧 격천산(隔千山)이다. 금인(今人)이 경솔(輕率)하게 뜻을 써서 복탁(卜度)하고 사우(師友; 가히 求敎하거나 혹 互相 切磋하는 사람을 가리킴)가 강습(講習)한다. 예컨대() 소림필기(少林筆記) 및 경절사가송고주(煢絶四家頌古註) 등의 서책은 일언반구(一言半句)라도 아울러 이 사연(邪涎)이니 그 혹란(惑亂)을 만나면 곧 길이 오문(悟門)을 막거늘 하물며 또 작송작념(作頌作拈)함은 마치 측옥(廁屋; 뒷간)에 단확(丹雘; 彩色總名)을 칠함과 같아서 다만 그 냄새를 더할 뿐이다. 여금에 진실로 의지(意志)를 가지고 참선하는 자는 반드시 꼭 이런 등의 악지악습(惡知惡習)을 좌단(坐斷)하고 단단(單單; 오로지)히 봉하(縫罅; 꿰맨 틈)가 없는 곳을 향해 찬연(鑽硏)하되 분연(憤然)히 개사(箇死; )가 대두(對頭)함을 만남과 같이하여 바로 모름지기 이를 없앤 이후(而後)에 조식(朝食)해야 한다.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용심한다면 곧 보소(寶所)가 근처에 있으리니 결정코 서로 속임이 아니다.

玉帛鐘鼓人間之禮樂; 허당화상어록1(虛堂和尙語錄一; 十卷 宋 參學妙源編). 스님이 이르되 예절은 옥백이 아니면 표하지 못하고 음악은 종고가 아니면 전하지 못한다(禮非玉帛而不表 樂非鐘鼓而不傳).

; 대어(代語)니 대운(代云), 대왈(代曰). 선가에서 수설(垂說)할 때 타인의 하어(下語)에 대체함이니 가히 두 종류로 나눔. 1은 사가(師家)가 스스로 학인의 하어에 대신함이니 사가가 수어(垂語)한 후에 매번 학인으로 하여금 하어케 하매 만약 대중 중에 말한 바가 계합하지 않으면 곧 사가가 스스로 하어하여 대중을 대신함이니 가히 별어(別語)와 통함. 그러나 별어는 일반적으로 다분히 두 사람의 대화의 정형(情形)을 가리킴이니 제삼자가 국외(局外)의 사람의 입장에 기초해 대신하여 서술하는 말이므로 고로 대어와는 다름. 오직 총림 중에 늘 대어와 별어를 가지고 아울러 일컬어 대별(代別)이라 함. 선종의 모든 어록 중에서 운문어록에 대어가 가장 많음. 대개 종문의 대어와 별어는 운문으로 시작을 삼음. 2는 사가가 스스로 고인의 하어에 대신함이니 사가가 고칙(古則)을 들면서 고인의 말이 없은 곳을 만났을 때 이에 대신해 하어함임.

; 별어(別語)니 별운(別云), 별왈(別曰). 곧 선승이 타인의 대화 문답 중에 타인이 이미 회답한 것으로 나아가 따로 자기의 견식(見識)을 가하여 회답하는 언어를 가리킴. 또 통상 대어(代語)와 병칭하여 대별(代別)이라 함.

禪和; 선화자(禪和子)나 선화자(禪和者)의 약칭(略稱)이니 곧 참선하는 자.

其道無根永固榮茂; 조정사원2. 당성교서기(唐聖敎序記; 唐太宗大唐三藏聖敎序하고 高宗述聖記를 지었음)이르되 이름은 날개가 없어도 멀리 날고 도는 뿌리가 없어도 길이 견고하다(名無翼而長飛 道無根而永固).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7(大唐大慈恩寺三藏法師傳七). 술성기(述聖記)에 이르되 이런 까닭으로 이름은 날개가 없어도 멀리 날고 도는 뿌리가 없어도 길이 견고하다. 도와 이름이 유경(流慶)하여 수고(遂古; 遂 久也 往也)를 겪으며 진상(鎭常)하고 응신()에 부감(赴感)하여 진겁(塵劫)을 지나며 불후(不朽)한다.

眞覺國師; 고려시대 전라도 송광사에서 배출(輩出)한 바의 16국사의 하나. 1. 보조국사지눌(普照國師知訥; 1158-1210). 2. 진각국사혜심(眞覺國師慧諶; 1178-1234). 3. 청진국사몽여(淸眞國師夢如; ?-1252). 4. 진명국사혼원(眞明國師混元; 1191-1271). 5. 원오국사천영(圓悟國師天英; 1215-1286). 6. 원감국사충지(圓鑑國師沖止; 1226-1292). 7. 자정국사(慈靜國師). 8. 자각국사(慈覺國師). 9. 담당국사(湛堂國師). 10. 혜감국사만항(慧鑑國師萬恆; 1249-1319). 11. 자원국사(慈圓國師). 12. 혜각국사(慧覺國師). 13. 각진국사복구(覺眞國師復丘; 1270 -1355). 14. 정혜국사(淨慧國師). 15. 홍진국사(弘眞國師). 16. 고봉국사법장(高峰國師法藏; 1350-1428).

慧諶; (1178-1234) 고려 진각국사(眞覺國師)니 법휘(法諱)는 혜심(慧諶)이며 자는 영을(永乙)이며 자호(自號)는 무의자(無衣子). 속성은 최씨(崔氏)며 이름은 식()이니 나주 화순현(和順縣) 사람. (; )의 휘()는 완()이니 향공(鄕貢; 고려 때, 科擧에서 지방의 제 1차 시험에 합격한 사람)의 진사(進士)며 모친은 배씨(裵氏). 부친은 일찍 죽었고 모친으로부터 출가를 구걸했으나 모친이 허락하지 않고 업유(業儒; 유학에 종사)하도록 권면(勸勉)했음. 그러나 늘 염경(念經)하고 지주(持呪)하면서 음무(淫巫)와 요사(妖祠)를 훼척(毁斥)하기를 좋아했음. 승안(承安) 6년 신유(1201) 사마시(司馬試)를 거행하자 이에 합격했고 이 해 대학에 들어갔음. 모친의 병환을 듣고 드디어 환향하여 시질(侍疾)했는데 명년에 모친이 즉세(卽世; 죽어 세상을 떠남)했음. 당시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조계산에 있으면서 새로 수선사(修禪社)를 열어 도화(道化)가 방금 성했는데 스님이 질러 나아가 참례하고 영재(營齋)하여 천모(薦母)를 청했으며 인하여 체도(剃度)를 걸구(乞求)했고 국사가 허락했음. 이에 앞서 국사가 설두중현선사(雪竇重顯禪師)가 입원(入院)하는 꿈을 꾸고는 마음에 이를 이상하게 여겼는데 다음날 스님이 내참(來參)한지라 이로 말미암아 더욱 기이하게 여겼음. 스님은 일찍이 오산(蜈山)에 있으면서 한 반석(磐石)에 앉아 주야로 늘 습정(習定)했고 매일 5경에 이르면 창게(唱偈)가 매우 높아() 대략 10리 가량 들렸으며 조금도 실시(失時)하지 않았으므로 듣는 자가 이로써 후단(候旦; 아침을 살핌)했음. 또 지리산(智異山) 금대암(金臺庵)에 거주하면서 대상(臺上)에 연좌(宴坐)했는데 눈이 쌓여 정수리가 잠겼으나 오히려 올좌(兀坐)한 게 마치 고주(枯株)처럼 움직이지 않았음. 그 각고(刻苦)가 이와 같았음. 무진(1208) 보조국사가 스님에게 사석(嗣席)을 명하고 곧 규봉(圭峰)으로 퇴안(退安)하려 하자 스님이 고사(固辭)하고는 드디어 지리산으로 가서 절적멸영(絶迹滅影)한 것이 몇 해였음. 대안(大安) 경오(1210) 국사가 입적하자 문도가 주상에게 알렸고 칙령을 받들어 계주(繼住)하게 하자 스님이 불획이(不獲已; 부득이)하여 입원하여 개당했음. 고종이 즉위하자 선사(禪師)를 제수(制授)했고 또 대선사를 가했음. 그 선석(選席)을 경력하지 않고 바로 치질(緇秩)에 오른 것은 스님으로부터 비롯했음. 정우(貞祐) 기묘(1219) 조칙으로 단속사(斷俗寺)에 주()하게 했는데 여러 번 사양했으나 윤허하지 않으므로 명년에 입원했음. 그러나 본사(本社)를 상서지소(常棲之所)로 삼았음. 갑오(1234) 626일 문인(門人)을 불러 촉사(囑事)하고 마곡(麻谷)에게 일러 가로되 노한(老漢)이 금일 매우 바쁘다(痛忙). 마곡이 망연(茫然)했고 스님이 미소했으며 가부(趺而)하고 화(; 죽음)했음. 다음날 월등사(月燈寺)의 북봉(北峯)에서 다비(茶毗)하고 영골(靈骨)을 거두어 본산(本山)으로 귀환했음. 주상이 이를 듣고 진도(震悼)했으며 증시(贈諡)하여 진각국사(眞覺國師)라 했음. 향수(享壽)57이며 납은 32. 진각국사비명(眞覺國師碑銘)을 보라. 동사열전1(東師列傳一) 보조국사전(普照國師傳). 사법사문(嗣法沙門)은 무의자(無衣子) 혜심(惠湛)이다.

冠絶; ()은 뭇 사람을 초출하여 지위가 제일에 거처함이며 절()은 재기(才技)가 특이하여 독일무이(獨一無二).

韓國佛敎全書;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에서 편()한 바의 한국불교총서임. 서기 19791월 제1책을 초간한 후 1996년에 이르기까지 총 12책을 간행했음.

光前絶後; 또한 가로되 절후광전(絶後光前)이니 앞뒤로 유비(類比; 비교)할 이가 없음의 뜻. 후생에 이와 같은 현자가 없으므로 고로 가로되 절후(絶後)며 그 현덕(賢德)이 전세를 빛냈으므로 고로 가로되 광전(光前). 벽암록(碧巖錄) 14칙 종전초(種電鈔). 광전절후(光前絶後) 문선(文選) 심휴(沈休)의 글. () 안륙(安陸)의 소왕비문(昭王碑文)에 이르되 응기(應期)하여 탄덕(誕德; 賢德을 탄생)하니 절후광전(絶後光前)이다. ()이 가로되 진()의 기거(起居) ()에 가로되 안제(安帝)가 조서로 이르기를 원공(元功; 으뜸 되는 큰 공)의 성덕(聖德)이 기전절후(起前絶後). 세상에서 마땅히 다시는 이와 같은 현자가 없으므로 고로 이르되 절후(絶後)며 그 현덕이 조고(祖考)를 빛냈으므로 고로 이르되 광전(光前)이다.

龜鑑; ()는 거북의 등 껍데기니 고대에 점복을 하는 데 썼으며 드디어 점복의 명칭이 되었음. ()은 거울이니 비춤임.

曹溪山; 지금의 전라남도 송광면(松光面)과 주암면(住岩面) 일대(一帶)의 지역에 위치함.

修禪社; 지금의 전라남도 순천시(順天市) 송광면(松光面) 조계산(曹溪山) 송광사(松廣寺)를 가리킴.

淸眞國師; ()가 몽여(夢如. ?-1252)니 고려시대 전라도 송광사에서 배출(輩出)한 바 16국사 중의 제3. 위를 보라.

商㩁; 상량(商量)하고 연토(硏討). ()은 연토(硏討).

緬惟; 광운(廣韻; 五卷 北宋 陳彭年等編纂) () ()이다. 옥편(玉篇; 六朝時代字典 顧野王纂) () 사모(思皃; 사유하는 모양).

乍入; ()는 초(). (. 겨우).

緇門; ()는 흑()이며 승의(僧衣)의 색이 흑이므로 고로 승려를 일컬어 치류(緇流) 혹 치도(緇徒)라 함. 치문이란 것은 치류(緇流)의 문이니 불문(佛門)을 가리켜 말함. 불법금탕편중간서(佛法金湯編重刻序)와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을 보라. 치문경훈1(緇門警訓一; 十卷 明 如巹續集). 고인이 이르되 그도 이미 장부며 나도 또한 그러하니 응당 자경(自輕)하여 퇴굴(退屈)하지 말아라(彼旣丈夫我亦爾 不應自輕而退屈) 했다. 만약 이와 같지 못하면 헛되이 치문(緇門)에 있다.

先師; 일우선사(一愚禪師)를 가리킴. 법휘(法諱)는 법철(法徹)이며 당호(堂號)는 일우(一愚)며 경주이씨(慶州李氏). 단기 4251년 무오세(戊午歲; 1918) 430일 경남진영(慶南進永)에서 탄생했고 4322년 기사세(己巳歲; 1989) 52일 부산구포(釜山龜浦)의 초려(草廬)에서 시적(示寂). 세수(世壽)72며 승납(僧臘)40. 스님은 일찍이 양산(梁山) 통도사에서 선문염송집을 강설하였고 또 순천(順天) 송광사에서 임제어록을 강설했음.

向上; 아래로부터 위에 이르고 말()로부터 본()에 이름을 가리킴. 이와 반대로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고 본으로부터 말에 이름은 일컬어 향하(向下)라 함. 선종은 미경(迷境)으로부터 오경(悟境)에 직입(直入)하여 상구보리(上求菩提)의 공부(工夫)를 일컬어 향상문(向上門)이라 하고 이와 반대로 오경(悟境)으로부터 순응하여 미경(迷境)에 들어가 자재(自在)한 화타(化他)의 묘용(妙用)을 시현함을 일컬어 향하문(向下門)이라 함. 선종전적(禪宗典籍) 중에서 이런 종류의 용어가 각처에 산현(散見). 예컨대() 지극한 대도를 형용함을 일컬어 향상일로(向上一路)라 하고 불도의 지극한 오리(奧理)를 탐구(探求)함을 일컬어 향상극칙사(向上極則事)ㆍ향상관려자(向上關棙子)ㆍ향상사(向上事)라 함. 학인의 제일의제(第一義諦)를 추련(鎚鍊)함을 일컬어 향상겸추(向上鉗鎚)라 하고 능히 자뢰(藉賴)하여 제불의 구극경계(究極境界)의 대역량대기용(大力量大機用)에 직입함을 일컬어 향상일기(向上一機)라 하고 가히() 능히 철저하게 제불경계를 체득하는 사람을 일컬어 향상인(向上人)ㆍ향상기(向上機)라 하고 극오(極悟)의 지극한 어구(語句)를 일컬어 향상일구(向上一句)라 하고 극오(極悟)의 지극한 종지(宗旨)를 일컬어 향상종승(向上宗乘)이라 함.

鉗鎚; 쇠집게와 쇠망치니 본시(本是) 철장(鐵匠)의 공구(工具). 비유로 선사가 학인을 계발(啓發)하고 접인(接引)하는 시설(施設)을 가리킴. 겸추(鉗錘)ㆍ겸건(鉗鍵)과 더불어 같은 뜻임.

向上一竅; 벽암록 제36칙에 가로되 다시 모름지기 전제시절(全提時節)의 향상일규(向上一竅)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 종전초(種電鈔)에 가로되 장자 제물(齊物) ()에 가로되 규()란 것은 관규(關竅)의 지요(至要)함의 뜻이다. 지금의 뜻은 수지(須知)에서 전제시(全提時)에 이르기까지, 향상의 지요(至要)한 곳이 있음이다.

頭白齒黃; 늙은 모양을 표시함.

; 대사(代詞)니 저(; 선록에 다분히 로 지었음)에 상당함.

; ()ㆍ저()의 뜻. 예컨대() 개리(箇裏)ㆍ개인(箇人) . 이는 당대(唐代) 이후에 유행하던 속어(俗語). 이 밖에 또한 양사(量詞)의 용()으로 지어 수사(數詞)나 지시대명사(指示代名詞)의 뒤에 두나니 예컨대 3()4. 혹은 강조어(强調語)의 용()으로 짓나니 예컨대 벽암록 제1칙 저() 불자(佛字)라고 말하더라도 타니대수(拖泥帶水)며 저() 선자(禪字)라고 말하더라도 만면(滿面)에 참황(慚惶)이다.

打頭; 기초(起初), 개두(開頭), 최초의 뜻. 원오록15(圓悟錄十五; 圓悟佛果禪師語錄; 二十卷 宋 紹隆等編). 이른 바 타두(打頭)에 작가를 만나지 못하면 늙음에 이르러 다만 골동(骨董; 가치 없는 물건)을 이룬다.

會有; ()는 흡()ㆍ정치(正値)에 상당함. 에컨대() 마침() 그 적()을 만났다.

居士; 범어로 이르되 가라월(迦羅越; gṛha-pati)ㆍ가라월(伽羅越)은 여기에선 이르되 장자(長者)ㆍ가주(家主)ㆍ가장(家長). 인도 4() 중의 폐사종(吠舍種)의 부호(富豪)를 가리킴. 혹은 재가하면서 도가 있는 남자(). 경률의 전적 가운데 늘 폐사종의 부호를 일컬어 거사라 함. 불교 중의 거사는 늘 고래로 일컫는 바의 장자와 혼동함. 예컨대() 혜원(慧遠)의 유마의기1(維摩義記一末)에 거사에 2이 있다. 1은 자산을 광대하게 쌓은 거재지사(居財之士)를 이름해 거사라 하고 2는 재가하면서 수도하는 거가도사(居家道士)를 이름해 거사라 한다 했는데 후자가 곧 불교 중의 거사가 됨. 예컨대() 인도의 유마(維摩)나 현호(賢護) 등은 늘 불도를 닦는 재가 보살이며 및 지나(支那)의 양대(梁代)의 부대사(傅大士)ㆍ북위(北魏)의 유겸지(劉謙之)ㆍ당대의 이통현(李通玄) 등은 불도에 능통한 재가자임. 지금은 곧 널리 재가하면서 수도하는 남자를 가리켜 거사라 함. 또한 여인을 호칭하여 재가하면서 수도하는 여자를 거사라 함이 있음. 지나(支那)에 있어서 거사라는 일사(一詞)는 원래 예기(禮記) 옥조편(玉藻篇)에 나옴. 한비자 일서(一書) 중에도 또한 이르기를 임율(任矞)과 화사(華仕) 등의 거사가 있다 했음. 모두 자못 도예(道藝)가 있으나 사환(仕宦; 벼슬)을 구하지 않는 처사(處士)를 가리킴. 그 후 지나 한국과 일본에선 다분히 경률에서 설한 바의 본의에 의하지 않고 도가 있는 처사를 널리 일컬어 거사라 함. 수릉엄경의소주1(首楞嚴經義疏註一)ㆍ법화경연의71(法華經演義七之一)ㆍ조정사원3(祖庭事苑三)ㆍ대불정수릉엄경6(大佛頂首楞嚴經六)ㆍ십송률6(十誦律六)ㆍ유마경문소9(維摩經文疏九)를 보라.

李哲敎; 정해생(丁亥生; 1947) 현금(現今)의 재경불자(在京佛子)니 전동국대학교도서관사서(前東國大學校圖書館司書).

光盤; CD

立刻; 즉각(卽刻)이니 립()은 즉각.

餘目; ()은 조목(條目).

張數; ()은 양사(量詞).

拈頌說話; 30. 고려 각운(覺雲) (). 선문염송염송설화회본(禪門拈頌拈頌說話會本)의 편자(編者)의 주()에 가로되 이능화(李能和)가 이르되 각운(覺雲)이 두 사람이 있다. 1은 진각국사(眞覺國師)의 제자가 되나니 이름이 각운이며 1은 환암국사(幻菴國師)의 제자가 되나니 또한 이름이 각운이며 호는 귀곡(龜谷)이다. 모두 고려 사람이다. 연대(年代)가 현격(懸隔)하여 세인(世人)이 모두 후자로써 설화를 지은 각운으로 삼지만 그러나 의단(疑端)이 없지 않다. 또 이르되 염송설화 중에 인용하는 것이 다분히 무의자(無衣子)의 말씀이다. 교회(敎誨)를 친승(親承)하지 않은 자라면 능히 이와 같이 못하리라. 곧 각운이 진각의 제자가 됨이 명확하다(朝鮮佛敎通史下編 529-530). 또 본서(本書)의 우주옹(字宙翁)의 발문(跋文)에 가로되 해동 진각대사(眞覺大士)가 제록(諸錄)을 엽취(獵取; 찾아서 취함)하여 전등과 대조하여 염송 오륙권(五六卷; 30)을 집성(集成)하여 각운에게 전했고 각운이 수선사(修禪社)에서 봉명(奉命)하여 입원(入院)한 지 3년 동안 섭세(涉世)를 망연(忘然; 잊음)했다. 엄관(掩觀)한 지 7일 만에 찬연(粲然)하고 명저(明著)한지라 고로 굽어 후곤(後昆)을 위했다. 이를 서사하여 기록할 때 붓끝에서 5색 사리가 빗방울(雨點) 같이 떨어졌다 운운. 이 발문에 의거하자면 설화의 작자는 혜심(慧諶)의 직제자(直弟子) 각운이 명확하다.

魚魯之謬; ()와 로()의 오류를 분효(分曉; 분명)하지 못함임. 혜림음의(慧琳音義; 一切經音義 百卷 唐 慧琳撰) (). 어로지류(魚魯之謬)를 나눔이 드물고 다분히 시해지오(豕亥之誤)를 전한다.

舍九; ()는 사()와 같음.

; ()ㆍ지()와 용이 같음. ().

明眼; 명안인(明眼人)이니 능히 도리를 판별할 안목을 갖춘 사람.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daum.net)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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