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七七】*月氏國王 聞*罽賓國有一尊者 名祇夜多 有大名稱 卽與群臣 往造彼國 禮見問法 王旣至 修敬已畢 乃請尊者 當爲開演 尊者曰 大王來時好道 今去亦如來時
*蔣山勤頌 至簡至易 最尊最貴 往還千聖頂?頭 世出世閒不思議 彈指圓成八萬門 一超直入如來地
又拈 佛法卽是世法 世法卽是佛法 以眞道而行 *風行草偃
●第七七則; 聯燈會要一 月氏國王 聞罽賓國有一尊者 曰祇夜多 有大名稱 卽與群臣 往彼國 禮見問法 修敬畢 請尊者爲開演 尊者云 大王時來好道 今去亦如來時 ▲雜寶藏經(十卷 元魏 吉迦夜共曇曜譯)七 月氏國有王 名栴檀罽尼吒 聞罽賓國 尊者阿羅漢 字祇夜多 有大名稱 思欲相見 卽自躬駕 與諸臣從 往造彼國 …… 於是月氏國王往其住處 見尊者祇夜多 覩其威德 倍生敬信 卽前稽首 却住一面 …… 時尊者祇夜多 卽便爲王 略說教法 王來時道好 去如來時 王聞教已 便卽還國 至其中路 群臣怨言 我等遠從大王 往至彼國 竟無所聞 然空還國 時月氏王 報群臣言 卿今責我無所得也 向時尊者 爲我說法 王來時道好 去如來時 卿等不解此耶 以我往昔 持戒布施 修造僧坊 造立塔寺 種種功德 以殖王種 今享斯位 今復修福 廣積衆善 當來之世 必重受福 故誡我言 王來時道好 去如來時
●月氏國; 是匈奴崛起以前 居於河西走廊祁連山古代遊牧民族 亦稱月支 禺知 公元前二世紀爲匈奴所敗 西遷伊犁河楚河一帶 後又敗於烏孫 遂西擊大夏 占領媯水(阿姆河)兩岸 建立大月氏王國 月氏西遷伊犁河楚河時 逐走了原居該地的塞種人(卽在亞洲的斯基泰人) 迫使塞種人分散 一部分南遷罽賓 一部分西侵巴克特里亞的希臘人王朝 建立大夏國 後來月氏復占大夏 並南下恒河流域建立貴霜王朝 [百度百科] △史記大宛列傳 月氏在大宛西可二三千里 其南則大夏 西則安息 北則康居也(大宛去長安萬二千五百五十里 月氏在天竺北可七千里)
又作月支 在印度之西 史記大宛列傳曰 月氏在大宛西可二三千里 其南則大夏 西則安息 北則康居也(大宛去長安萬二千五百五十里 月氏在天竺北可七千里) ▲玄應音義四 月支國 薄佉羅國應是也 在雪山之西北也 或云月氏
●罽賓國; 爲漢朝時之西域國名 位於印度北部 卽今喀什米爾一帶之地 △翻譯名義集三 罽賓 此云賤種 西域記云 迦濕彌羅 舊曰罽賓 訛也 北印度境 末田底迦 旣得其地 立五百伽藍 於諸異國買鬻賤人 以充投使 用供衆僧 末田底迦入寂滅後 彼諸賤人 自立君長 隣境諸國 鄙其賤種 莫與交親 謂之訖利多 唐言買得
●蔣山勤; 蔣山克勤 曾住金陵蔣山 見下第一四二○則
●風行草偃; 論語顔淵 君子之德風 小人之德草 草上之風 必偃
【七七】 월지국왕(*月氏國王)이 계빈국(*罽賓國)에 한 존자가 있는데 이름은 기야다(祇夜多)며 큰 명칭이 있다 함을 듣고는 곧 군신과 함께 그 나라에 가서 나아가 예의로 뵙고 법을 물으려 했다. 왕이 이미 이르러 수경(修敬; 경의를 표시함)을 이미 마치고는 이에 존자에게 마땅히 개연(開演)하기를 요청했다. 존자가 가로되 대왕이 오실 때 좋은 길이었으니 이제 떠나면서도 또한 올 때와 같습니다.
장산근(*蔣山勤)이 송하되 지간지이(至簡至易)하고/ 최존최귀(最尊最貴)하다/ 천성(千聖)의 정녕두(頂?頭; 정수리)를 왕환(往還)하니/ 세출세간(世出世閒)에 부사의(不思議)하다/ 손가락 퉁기매 팔만문(八萬門)을 원성(圓成)하고/ 한 번 초월해 여래지(如來地)에 직입(直入)한다.
또 염(拈)하되 불법이 곧 이 세법(世法)이며 세법이 곧 이 불법이다. 진도(眞道)로써 행하니 풍행초언(*風行草偃)이다.
●第七七則; 연등회요1. 월지국왕(月氏國王)이 계빈국(罽賓國)에 한 존자가 있는데 가로되 기야다(祇夜多)며 큰 명칭이 있다 함을 듣고는 곧 군신과 함께 그 나라에 가서 예의로 뵙고 법을 물으려 했다. 수경(修敬; 경의를 표시함)을 마치고는 존자에게 개연(開演)하기를 요청했다. 존자가 이르되 대왕이 때에 오시면서 좋은 길이었으니 이제 떠나면서도 또한 올 때와 같습니다. ▲잡보장경(雜寶藏經; 十卷 元魏 吉迦夜共曇曜譯) 7. 월지국에 왕이 있었으니 이름이 전단계니타(栴檀罽尼吒)였다. 계빈국의 존자 아라한의 자(字)는 기야다(祇夜多)며 큰 명칭이 있다 함을 듣고서 사념(思念)하며 상견하고자 하였다. 곧 자기가 몸소 어거(馭車; 駕)하여 여러 군신과 더불어 그 나라에 왕조(往造; 가서 禮訪)하였다 …… 이에 월지국왕이 그의 주처(住處)로 가서 존자 기야다를 친견했는데 그 위덕(威德)을 보고서 배(倍)로 경신(敬信)이 났다. 곧 앞에서 계수(稽首)하고 도리어 일면(一面)에 머물렀다 …… 때에 존자 기야다가 곧 바로 왕을 위해 교법(教法)을 약설(略說)하기를 왕이 올 때의 길이 좋았으니(來時道好) 감도 올 때와 같습니다(去如來時). 왕이 가르침을 들은 다음 바로 곧 환국했다. 그 중로(中路)에 이르자 군신(群臣)이 원망하며 말하되 아등(我等)은 멀리에서 대왕을 수종(隨從)하며 가서 그 나라에 이르렀지만 마침내 들은 바도 없었는데 그러나 공연히 환국합니다. 때에 월지왕이 군신에게 알려 말하되 경(卿)들이 지금 나의 무소득을 책망하는가. 향시(向時; 지난번)에 존자가 나에게 설법하시기를 왕이 올 때의 길이 좋았으니(來時道好) 감도 올 때와 같습니다(去如來時) 하셨거니와 경등(卿等)은 이것을 해석하지 못하는가. 내가 왕석(往昔; 지난날)에 지계(持戒)하며 보시하고 승방(僧坊)을 수조(修造)하고 탑사(塔寺)를 조립(造立)한 갖가지 공덕으로 왕종(王種)을 심어서 지금 이 자리를 향유(享有)하거니와 지금 다시 복을 닦으면서 널리 중선(衆善)을 쌓으니 당래지세(當來之世)에 반드시 거듭 복을 받는지라 고로 나에게 분부하여(誡) 말씀하되 왕이 올 때의 길이 좋았으니 감도 올 때와 같습니다 하셨다.
●月氏國; 이는 흉노가 굴기(崛起; 興起)하기 이전에 하서주랑(河西走廊)과 기련산(祁連山)에 거주했던 고대 유목민족이니 또한 칭호가 월지(月支)ㆍ우지(禺知)임. 공원전(公元前) 2세기에 흉노에게 패하는 바가 되어 서쪽 이리하(伊犁河)와 초하(楚河) 일대로 옮겼음. 후에 또 오손(烏孫)에게 패하자 드디어 서쪽으로 대하(大夏)를 공격하여 규수(媯水; 阿姆河) 양안을 점령하고 대월지왕국을 건립했음. 월지가 서쪽 이리하(伊犁河)와 초하(楚河)로 옮길 때 그 땅에 원래 거주하던 새종인(塞種人; 곧 亞洲에 있던 斯基泰人; 스키타이족)이 쫓겨 달아났으며 새종인을 압박하여 분산되게 하였음. 일부분은 남쪽 계빈(罽賓)으로 옮겼고 일부분은 서쪽으로 파극특리아(巴克特里亞; 박트리아)의 희랍인 왕조를 침략하여 대하국(大夏國)을 건립했음. 후래에 월지가 다시 대하를 점령하고 아울러 항하(恒河) 유역(流域)으로 남하하여 귀상왕조(貴霜王朝; 梵 Kushan)를 건립했음 [백도백과]. △사기 대완열전(大宛列傳) 월지(月氏)는 대완(大宛) 서쪽 이삼천 리 가량에 있다. 그 남방은 곧 대하(大夏)며 서방은 곧 안식(安息)이며 북방은 곧 강거(康居)다(大宛은 장안에서 떨어지기가 만2천5백5십 리며 월지는 천축 북쪽 7천 리 가량에 있다). △현응음의4. 월지국(月支國) 박구라국(薄佉羅國)이 응당 이것이다. 설산의 서북에 있으며 혹 이르되 월지(月氏)다.
●罽賓國; 한조(漢朝) 때 서역의 나라 이름. 인도 북부에 위치하며 즉금의 객십미이(喀什米爾; Kashmir) 일대의 땅. △번역명의집3. 계빈(罽賓) 여기에선 이르되 천종(賤種)이다. 서역기에 이르되 가습미라(迦濕彌羅) 구역에 가로되 계빈이라 한 것은 잘못이다. 북인도경이다. 말전지가(末田底迦)가 이미 그 땅을 얻고는 5백 가람을 세웠는데 여러 다른 나라에서 천인(賤人)을 매육(買鬻; 매매)하여 역사(役使; 일을 시킴. 일꾼)로 충원하고 중승(衆僧)에게 공양하는 데 썼다. 말전지가가 입적하여 멸도한 후 그 여러 천인이 스스로 군장을 세웠는데 이웃 지경의 여러 나라에서 그 천종(賤種)을 더럽게 여겨 교친(交親)하지 않았으며 그들을 일컬어 흘리다(訖利多)라 했으니 당나라 말로는 매득(買得: 사서 얻었다)이다.
●蔣山勤; 장산극근(蔣山克勤)이니 일찍 금릉 장산(蔣山)에 주(住)했음. 아래 제1420칙을 보라.
●風行草偃; 논어 안연(顔淵). 군자는 덕풍(德風)이며 소인(小人)은 덕초(德草)니 풀 위에 바람 불면 반드시 눕는다.
선문염송집주
불교신문 광고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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