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5권)

선문염송집 권3 제98칙(본문 한글)

태화당 2021. 9. 24. 07:17

九八달마대사(*達磨大師), 양무제(*梁武帝)가 묻되 무엇이 이 성제제일의(*聖諦第一義)입니까 함으로 인해 가로되 확연(廓然; 은 휑할 확)하여 성()이 없습니다. 무제가 이르되 짐(*)을 대한 자는 누구입니까. 조사가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不識). 무제가 계합하지 못하자 조사가 드디어 도강(渡江)하여 위()에 이르렀다. 분주소(汾州昭)가 대운(代云)하되 제자의 지혜가 얕습니다. 무제가 들어 지공(*誌公)에게 묻자 지공이 이르되 폐하(*陛下)는 도리어 이 사람을 아십니까. 무제가 이르되 알지 못합니다(不識). 지공이 이르되 이 분은 이 관음대사니 불타의 심인(*心印)을 전수했습니다. 제가 후회하고 마땅히 사신을 보내어 그를 부르려고() 하자 지공이 이르되 폐하는 부른다는 말씀을 하지 마십시오, 합국인(*闔國)이 가더라도 그는 또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설두현(雪竇顯)이 송하되 성제(聖諦)가 확연(廓然)커늘/ 어찌해야 마땅히 변적(*辨的)하겠는가/ 짐을 대한 자는 누구입니까 하매/ 도리어 이르되 불식(不識)이라 하고는/ 이로 인해 몰래 도강(渡江)하니/ 어찌 심극(深棘; 一作荊棘) ()함을 면할손가/ 온 나라 사람이 쫓아가더라도 다시 오지 않거늘/ 천고만고에 공연히 상억(*相憶)하는구나/ 상억함을 그쳐라/ 청풍이 잡지(匝地; 땅을 맴돎)하거늘 어찌 다함이 있으랴. 스님(설두)이 좌우를 돌아보며 이르되 이 속에 도리어 조사가 있느냐, 스스로 이르되 있다. 불러와서 노승(설두)의 발을 씻게 하리라(*與老僧洗脚).

 

대홍은(大洪恩)이 송하되 성제(聖諦)가 확연(廓然)커늘/ 어떻게 변식(辨識)하는가/ 축착개착(*築著磕著)하여/ 백천만억(百千*)이다/ 1구를 함부로(; 과 통함) 상전(相傳)하여/ 9년 동안 공연히 면벽했다/ 흥이 다하자 도리어 구일(舊日)의 유람을 사유하며/ 몰래 외짝 신(隻履)을 가지고 서국으로 돌아갔다. 긴초초혜(*緊悄草鞋)하라.

 

운거원(雲居元)이 송하되 돌돌(咄咄) 서래(西來)한 벽안호(*碧眼胡)/ 확연무성(廓然無聖)이라 하며 다시 도모함이 많다/ 9년 동안 단좌(端坐)하며 노롱(*撈籠)이 다하니/ 사람들이 양왕(梁王)이 있어 이 장부라 한다.

 

천복일(薦福逸)이 송하되 확연(廓然)이라 하여 1(; 살촉)이 요공(*遼空)하더니/ 불식(不識)이라 하여 거듭 추자(錐刺)를 내렸다/ 양제(梁帝)가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지 못하나니/ 천고만고에 소식이 없다.

 

법진일(法眞一)이 송하되 당기를 적면에 들매(*當機覿面)/ 양무(梁武)가 오히려(尙猶) ()했다/ 척리(隻履)로 공연히 돌아가니/ 도리어 총령(*葱嶺)의 서쪽을 좇는다.

 

천동각(天童覺)이 송하되 확연(廓然)하여 무성(無聖)이라 하니/ 내기(*來機)가 경정(*徑廷)하다/ 얻으면 코를 범하지 않으면서 휘근하고(*得非犯鼻而揮斤)/ 잃으면 머리를 돌리지 않으면서 타증(*失不迴頭而墮甑)한다/ 요료(寥寥)히 소림에 냉좌(冷坐)하면서/ 묵묵히 정령(正令)을 전제(全提)한다/ 추청(秋淸)하니 달이 상륜(霜輪)을 돌리고/ 하담(河淡)하니 북두가 야병을 드리운다(*斗垂夜柄)/ 의발(衣鉢)을 승승(*繩繩)하여 아손에게 부촉하니/ 이로 좇아 인천(人天)에 약병(藥病)을 이루었다.

 

보녕용(保寧勇)이 송하되 통홍(通紅; 온통 붉음)하게 소득(燒得; 은 조사)하여 한 망치 때리매/ 두루 무수한 화성(*火星)이 낢을 만났다/ 십성(十成)으로 아름답게 금강으로 뚫어/ 문전을 향해 펼쳐 누구에게 매여(賣與)하나.

 

삽계익(霅溪益)이 송하되 제일의(第一義)/ 확혜요혜(廓兮寥兮)하여 상제(*象帝)를 초월한다/ 여러 해의 역일(曆日; 冊曆)을 가져서 보지 않거늘/ 어찌 춘분과 아울러 하지를 분변하겠는가/ 요동백학은 떠나서 종적이 없거늘(*遼東白鶴去無蹤)/ 삼산(*三山)만 공연히 청천(靑天) 밖에 떨어졌다.

 

승천회(承天懷)가 송하되 남천(南天; 남천축)의 대사(大士)는 쌍모(雙眸; 두 눈)가 푸르고/ 양토(梁土)의 현왕(賢王)은 척안(隻眼)이 밝다/불식(不識)과 확연(廓然)은 쓸 곳이 없나니/ 고종(孤蹤; 외로운 자취)이 마라(懡㦬; 부끄러움)하여 서경(*西京)에 이르렀다().

 

불감근(佛鑑勤)이 송하되 비로소 누각의 한 소리 종을 들었는데/ 날이 따스하여 창룡(蒼龍)의 잠이 바로 농후(濃厚)하다/ 봉황대(*鳳凰臺) 위의 북을 재격(再擊)하매/ 야반에 상란(祥鸞)이 비무(飛舞)하지 않았다/ 제기(帝基)가 영고(永固)하여 반석(磐石)과 같은데/ 호승(*胡僧)이 평생의 힘을 써서 없앴다/ 멀리에서 소림(*小林; 少林)을 가리키며 귀거래(歸去來; 는 조사)하니/ 춘풍에 일경(一徑)의 꽃이 낭자(*狼藉)하다.

 

혼성자(混成子)가 송하되 확연(廓然)하여 무성(無聖)임을 믿는 사람이 드무나니/ 중교(重敎; 막중한 가르침)를 알지 못해 대기(*大機)를 잃었다/ 면벽구년(面壁九年)도 원고(寃苦)가 극심(極甚)하거늘/ 어찌 척리(隻履)로 또 서귀(西歸)함을 감내하리오.

 

장산천(蔣山泉)이 염하되 작연(*灼然)히 이 자가 알지 못했다(不識). 그래 말하라 빈가(賓家)의 불식(不識)인가 주가(主家)의 불식인가. 직요(直饒; 縱然) 변득(辨得)함이 분명하더라도 콧구멍이 나의 손 안에 있다.

 

황룡심(黃龍心)이 차화를 들고는 중에게 묻되 분명히 저() 달마의 면전에 있거니와 어떻게 저() 불식(不識)의 도리를 설하겠는가. 중이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不識). 스님이 불자를 잡아 일으키고 가로되 달마가 이 속에 있다.

 

백운연(*白雲演)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어 불식(不識)하고는 이어서 들되 황매의 의지 불법을 알지 못한다(*黃梅意旨不會佛法). 스님이 이르되 대소대(*大小大) 조사가 문착(問着)한 것에 곧 이 불식(不識)ㆍ불회(不會)라 했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아손이 땅에 두루한가. 곧 이르되 1인이 허()를 전하매 만인이 실()로 전한다.

 

불감근(佛鑑勤)이 상당하여 거()했다. 달마가 처음 무제를 상견하자 무제가 묻되 무엇이 이 성제의 제일의입니까 지공(誌公)이 이르되 이 분은 이 관음대사니 불타의 심인을 전수하여 불타의 양화(揚化)를 도웁니다. 스님이 이르되 그리려고 해도 그림을 이루지 못하고 빚으려고 해도(塑也) 빚음을 이루지 못하거늘 무엇으로 인해 달마가 계합하지 못하자 달마가 도강(渡江)했는가. 아느냐, 대개 무제는 달마의 범어(梵語)를 알지 못했고 달마는 무제의 당언(唐言)을 이해하지() 못한지라 적면(覿面; 당면)하여 호월(*胡越)을 보임에 이르렀다. 지공(誌公)이 비로 잘 번역했지만 강연(剛然)히 압량위천(壓良爲賤)하여 범을 그리다가 삵을 이룸을 보임에 이르렀다.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지만 제인이 어느 곳을 향해 달마를 보느냐. 만약에 당면에서 견득(見得)할진대 바야흐로, 산승이 여금에 1변은 당언(唐言)이며 1변은 범어(梵語)였다고 말할 줄 알 것이다. 혹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백운이 끊어진 곳이 이 청산이더니 행인은 다시 청산 밖에 있더라이다.

 

장로분(*長蘆賁)이 상당하여 이르되 달마가, 양왕이 성제(聖諦)를 물음을 보고는 다만 저 불식(不識)이라고 말함을 얻었고 6조가, 황매가 의발을 부촉함을 보고는 다만 저 불회라고 말함을 얻었다(*只道得箇不會). 천하 노화상이 다만 이 불식불회(不識不會)를 가지고 납승을 감험(勘驗)하매 천하 납승이 이 불식불회에 눈동자가 바뀌어버리고 콧구멍이 뚫려버림을 입는다. 장로(長蘆)가 이러히 말함은 이 식()했느냐, 이 회()했느냐. 이는 눈동자가 바뀌어버리고 콧구멍이 뚫려버림을 입은 것이니 어떻게 해야 출신일구(*出身一句)를 말함을 얻겠는가. 이름이 높으면 완석(*頑石)에 새기지 않더라도 노상 행인의 입이 이 비석이다.

 

숭명교(*嵩明敎)의 진제무성론(*眞諦無聖論)에 이르되 진제(眞諦)란 것은 무엇인가, 극묘(極妙)하여 절대(絶對)를 말함이다. 성인(聖人)이란 것은 무엇인가, 신지(神智)의 유위(*有爲)를 말함이다. 유위(有爲)는 곧 권()을 말함이며 절대(絶對)는 곧 실()로 나아감()이다. ()의 소이는 전심(全心)이라서 민적(泯迹; 자취를 泯沒)함이며 권()의 소이는 섭말(攝末)하여 추본(趍本; 趨本)함이다. 그러한 즉 진제란 것은 어찌 기간(其間)에 의의(擬議)를 용납하겠는가. 애오라지 시험삼아 우언(寓言; 말에 기탁하다)하자면 그 온(; 쌓이다)을 밝힘일 뿐이다. 무릇 진제란 것은 군생(群生)의 원심(元心)이며 중성(衆聖)의 실제(*實際)니 여()이면서 여()가 아니며 비여(非如)도 아니다. 군심(群心)에 숨어도 어둠지() 않고 성지(聖智)에 나타나도 밝지 않다. 신명(*神明)이 능히 헤아리지 못하고 교력(*巧曆)이 능히 궁구하지 못한다. 고로 반야(般若)에 가로되 제일의 진제(眞諦)는 이룸도 없고 얻음도 없다 하였다. 그 체()를 말하여 그것을 둔다면 곧 청정하고 공확(空廓; 비어서 휑함)하여 성범(聖凡)이 민연(泯然; 泯滅)하고 그 조()를 말하여 그것을 쓴다면 곧 만유(萬有)에 미륜(*彌綸)하고 군동(群動; 衆人)을 고무(鼓舞)한다. 그러한 즉 체()로 그것을 둔다면 그 본()과 같고 조()로 그것을 쓴다면 그 말()과 같아서 그 심명(心冥)에 당하여 본()에 이른다. 묵묵히 청정하며 절성기지(絶聖棄智)하니 이것도 또한 마땅하다. 이른 바 제일의제(第一義諦)는 확연(廓然)하여 공적(空寂)한지라 성인이 있지 않거늘 누가 그르다 하겠는가, 진인(秦人)이 매우 심한 경정(徑廷)으로 삼아 인정(人情)을 가까이 하지 않았거니와 만약 성인이 없다면 무()를 아는 자는 누구이겠는가. 이 또한 그 미지(微旨)를 깨닫지() 못한 것이다. 약부(若夫; 語氣詞) 범성(凡聖)의 지각(知覺)이란 것은 진제(眞諦)의 영향(影響)이며 망심(妄心)의 반연(攀緣)일 뿐이다. 영향을 둔다면 곧 명수(名數)에 응체(凝滯)하고 반연(攀緣)을 쓴다면 곧 분별에 현혹(眩惑)된다. 이러한 즉 비성(非聖)이면서 성()이며 성인(聖人)인지라 소이로 대성(大聖)은 무지(無知)하면서 그 진지(眞知)를 아나니 소이로 두루 안다. 석인(昔人)이 석인(昔人)에게 물음이 있어 가로되 무엇이 이 제일의제(第一義諦)입니까. 응답해 가로되 확연(廓然)하여 성()이 없습니다. 문자(問者)가 혹왈(或曰) ()을 대한 자는 누구입니까. 응답해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不識). 그러나 이 사람은 성()을 몰라서() 참으로 알지 못함(不識)이 아니다. 대개 사람에게 형언(形言)으로써 진제(眞諦)를 구하게 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거늘 문인(問人)이 깨닫지 못하고 이에 다시 운운 각주구검(*刻舟求劒)이라서 멀고 또한 멀다. 손가락으로써 표월(*摽月)하면 그 손가락의 소이는 달에 있으며 말로써 도를 비유하면 그 말의 소이니 도에 있거늘 말을 돌아보면서 그 도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도를 알지 못함이며 손가락만 보고(*眎指) 그 달을 보지 못한다면 달을 알지 못함이다. 소이로 지인(至人)은 늘 언상(言象)의 밖()에서 묘오(妙悟)하여 홀로 형해(形骸)의 밖에서 얻는다. 정명(*淨名)이 묵시(默示)하매 문수가 칭선(稱善)했고 공생(空生)이 무설(無說)로써 설하매 천제(天帝)가 무문(無聞)으로써 들었음이 그것이 그러하지 않는가.

 

임간록(*林間錄)에 이르되 오중(吳中)의 강사들이 다분히 제조(諸祖)의 전법게를 번역한 사람이 없음을 비웃자 선자(*禪者)가 그들과 더불어 변설(辯說)하다가 그 진상(眞相)을 잃어 마침 거듭 그 비방을 더하였다(). 달관영(*達觀頴) 선사가 그들을 타일러() 가로되 이것(*)은 달마가 2조를 위해 말한 것이거늘 어찌 역인(譯人)을 썼겠는가. 예컨대() 양무제가 처음 그(달마)를 보고서 곧 묻되 무엇이 이 성제의 제일의입니까. 답왈 확연(廓然)하여 성()이 없습니다. 진운(進云)하되 짐을 대한 자는 누구입니까. 또 가로되 알지 못합니다(不識). 달마로 하여금 방언(方言)을 통달하지 않게 했다면 곧 어찌하여 이때에 곧 그렇게 능했겠는가. 강사들이 감히 다시 언사(言辭)가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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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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