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一○則; 연등회요2 6조 혜능대사. 신주(辛州) 노씨(盧氏)의 아들이다. 득법한 후 남해 법성사에 자취를 숨겼다. 우연히 바람이 찰간의 깃발을 날리자 두 중이 있어 대론(對論)하는데 하나는 이르되 바람이 움직임이라고 했고 하나는 이르되 깃발이 움직임이라 하면서 왕복하며 일찍이 이치에 계합하지 못했다. 스님이 이르되 이 바람이 움직임이 아니며 이 깃발이 움직임이 아니라 인자(仁者)의 마음이 움직임입니다. 두 중이 송연(悚然; 오싹)했다.
●慧能; (638-713) 당대승. 또 혜능(惠能)으로 지음. 동토 선종 제6조며 호(號)가 육조대사(六祖大師)ㆍ대감선사(大鑑禪師)임. 조사의 관적(貫籍)은 범양(范陽; 하북)이며 속성(俗姓)은 노(盧). 남해(南海) 신흥(新興; 광동)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일찍 죽었음. 집이 가난하여 늘 땔나무를 채집(採集)하고 물을 길어 그 홀어머니를 봉양했음. 어느 날 땔나무를 지고 시장에 이르렀다가 나그네의 금강경 독송함을 듣고 마음이 곧 개오(開悟)했음. 당시에 5조 홍인(弘忍)이 기주(蘄州) 황매(黃梅; 호북성 동남 黃梅縣)의 동선원(東禪院)에 주(住)하면서 법문(法門)이 매우 흥성(興盛)했음. 스님이 곧 앞으로 가서 배알(拜謁)했는데 5조가 드디어 대방(碓房; 방앗간)에 들어가 쌀을 찧게 했음. 여덟 달이 지난 어느 날 밤 스님을 불러 입실케 하고 몰래 의법(衣法)을 전수(傳授)했음. 아울러 그를 보내면서 밤을 이어 남쪽으로 돌아가 사회(四會)와 회집(懷集)의 사이에 은거하라 했음. 의봉(儀鳳) 원년(676) 남해(南海)에 이르러 법성사(法性寺)에서 인종법사(印宗法師)를 만나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다음해 소양(韶陽)의 조계(曹溪) 보림사(寶林寺)로 이주(移住)하여 돈오법문(頓悟法門)을 크게 선양(宣揚)했는데 신수(神秀)의, 북방에서 제창(提倡)한 바 점오법문(漸悟法門)과 상대되므로 사가(史家)가 남돈북수(南頓北漸)ㆍ남능북수(南能北秀)라 일컬음. 그의 제자 법해(法海)가 그의 교설(敎說)을 가지고 한 책을 편성(編成)하고는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이라고 이름했으며 세상에 성행(盛行)했음. 후에 자사(刺史) 위거(韋據)의 청에 응해 대범사(大梵寺)에서 법당(法幢)을 수립(樹立)했고 오래지 않아 조계로 돌아가 대법(大法)을 홍포(弘布)했는데 도속(道俗; 僧俗)이 귀의하며 숭배했음. 신룡(神龍) 원년(705) 중종(中宗)이 내시(內侍) 설간(薛簡)을 파견하여 스님을 불러 경사(京師; 首都. 帝都. 師는 서울 사)에 이르게 하자 스님이 질병을 일컬으며 고사(固辭)하고 가지 않자 황제가 이에 칙명으로 마납가사(摩衲袈裟) 및 보발(寶鉢) 등의 물건을 주었으며 아울러 칙명으로 보림사(寶林寺)를 고쳐 중흥사(中興寺)로 만들었음. 3년(707)에 다시 법천사(法泉寺)의 편액(扁額)을 주었음. 스님이 또 일찍이 집을 희사(喜捨)해 국은사(國恩寺)를 만들었는데 선천(先天) 원년(712)에 문인(門人)에게 명령해 절 안에 보은탑(報恩塔)을 건립케 하고 다음해 7월 국은사로 돌아갔다가 8월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76. 스님의 육신이 무너지지 않아 지금까지 그대로 존재하며 조계로 돌아가 머묾. 헌종(憲宗) 때 대감선사(大鑑禪師)로 시호(諡號)했음. 유록(遺錄)으론 육조단경(六祖壇經) 1권, 금강경구결(金剛經口訣) 등이 있음. 그 중 육조단경은 처음 법해(法海)가 스님의 어요를 집록(集錄)함으로 말미암았으며 후인이 절략(節略)한 바가 많아 조의(祖意)의 전모를 능히 보지 못했음. 원대(元代) 덕이(德異)가 이에 제방을 탐구(探求)해 그 전문을 얻었으며 지원(至元) 28년(1291) 종보(宗寶)가 거듭 새롭게 3종의 이본(異本)을 교대(校對)하여 그 와오(訛誤)를 정정(訂正)하고 그 절략(節略)을 상세히 하여 제자의 청익기연(請益機緣)을 증보하여 인행(印行)했으니 지금 대정장 제48책에 수록되었음. 스님의 사법제자(嗣法弟子) 40여 인 중에 하택신회(荷澤神會)ㆍ남양혜충(南陽慧忠)ㆍ영가현각(永嘉玄覺)ㆍ청원행사(靑原行思)ㆍ남악회양(南嶽懷讓) 등이 가장 저명함. 후세의 임제ㆍ조동 등 오가칠종(五家七宗)의 선(禪)을 열었음 [육조단경. 불조통기29. 송고승전8. 전등록5. 석씨계고략3. 전법정종기6].
●印宗; (627-713) 당대승. 오군(강소 오현) 사람. 당(唐) 함형 원년(670) 경사(京師)에 이르자 칙명으로 대경애사(大敬愛寺)에 거주케 했으나 간절히 사양하고 받지 않았음. 기춘(蘄春)에 가서 홍인대사(弘忍大師)를 참알(參謁)했고 후에 광주(廣州) 법성사(法性寺)에서 열반경을 선강(宣講)했는데 6조 혜능대사를 만나 비로소 현리(玄理)를 깨달았고 혜능을 전법사(傳法師)로 삼았음. 그는 양(梁)으로부터 당(唐)에 이르기까지의 제방의 현달자(賢達者)의 말씀을 채집하여 심요집(心要集)을 저성(著成)했으며 행세(行世)함. 선천 2년 2월 회계산 묘희사에서 시적했으니 나이는 87 [전등록5. 송고승전4].
●新開作者曾拈却; 신개(新開)는 원명(院名)이니 악주 파릉 신개 호감선사(顥鑒禪師)를 가리킴. 운문문언을 이었음. 아래 제1219칙을 보라. 신개작자증염각(新開作者曾拈却)이란 차하(次下)에 파릉감(巴陵鑒)의 염(拈)이 있음.
●禪和; 선화자(禪和子)ㆍ선화자(禪和者)의 약칭. 곧 참선자.
●玄玄爲獨脚; 향엄(香嚴; 智閑)화상의 독각송(獨脚頌)에 이르기를 새끼는 줄(啐; 줄줄 빨 줄)하고 어미는 탁(啄)하여/ 새끼가 껍질이 없음을 깨닫는다/ 어미와 새끼가 다 죽어야/ 응연(應緣)하매 그르치지 않으리니/ 동도(同道)로 창화(唱和)하매/ 묘현(妙玄)이 독각(獨脚)이다. 아래 제740칙 자줄모탁(子啐母啄)을 보라.
●崑崙; 곤륜산(崑崙山)이니 또 곤륜산(昆侖山)ㆍ곤산(崑山)ㆍ곤륜(崑崙)으로 지음. 곧 신비성(神祕性)의 산악임. 전설 중의 영산(靈山)이 됨. 서로 전하기를 혹 황하의 근원이라 하며 혹 아뇩달지(阿耨達池; 梵 Anavatapta)라 하며 혹 서왕모의 거처라 함. ▲지관보행전홍결조람2. 세속에 이르는 곤륜(崑崙)이란 것은 이르자면 향산(香山)이다.
●叙; 서敍), 서(敘)와 같음. 서(敘)의 속자.
●拈却; 각(却)은 물림(退), 물러가게 함(使退).
●鼻孔撩天; 비공요천(鼻孔遼天)과 같은 뜻. 뜻으로 이르자면 선법을 성오(省悟)하여 초연히 세상을 벗어나 요천(撩天; 하늘을 취하다)하면서 하늘 가를 향해 올라 천공(天空)을 향해 비행함.
●天台; 천태산이니 절강 대주부(臺州府; 천태현) 불하령산맥 동북단(東北端)에 위치함. 또 호칭이 천제산(天梯山)이며 혹 호칭이 대악(臺嶽)임. 산형(山形)이 8엽(葉)의 복련(覆蓮)과 같으며 8지(支)ㆍ8계(溪) 및 상대(上臺)ㆍ중대ㆍ하대 등이 있으며 3성(星)의 대수(臺宿)와 같으므로 고로 명칭이 천태(天台)임.
●鴈蕩泉; 어떤 사람인지 미상.
●黃梅踏碓翁; 6조 혜능을 가리킴. 육조단경에 가로되 다음날 조(5조)가 몰래 대방(碓坊)에 이르러 혜능이 요석(腰石)하고 쌀을 찧음을 보았다. 말해 가로되 구도(求道)하는 사람은 법을 위해 몸을 잊어야 하나니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한다.
●翁; 남성에 대한 경칭(敬稱).
●瑞鹿先; 서록본선(瑞鹿本先; 942-1008) 송대 법안종승. 정씨에게서 출생했고 온주 영가 사람. 나이 25에 사미가 되었고 천태 국청사에 나아가 만분계(滿分戒)를 받았음. 곧 덕소국사(德韶國師)에게 나아가 10년 동안 복근(服勤; 힘든 일에도 부지런히 종사함)하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온주 서록사(瑞鹿寺)에 주(住)했고 발이 성읍을 다니지 않았고 손이 재백(財帛)에 건너지 않았고 와구를 시설하지 않았고 견사(繭絲; 고치에서 뽑은 실. 비단)를 입지 않았고 묘재(卯齋)로 하루종일이었고 신단(申旦; 1일 또 1일)에 연좌(宴坐)했음. 대중상부 원년 8월 망일(望日; 15일) 입적했음. 열세(閱世; 時世를 경력)가 67이며 좌(坐; 座臘)는 42하(夏). 저서에 죽림집10권과 시사(詩辭) 천여 수가 있음 [전등록26. 오등회원10. 선림승보전7].
●承天宗; 승천전종(承天傳宗)이니 송대 운문종승. 천주 승천사(承天寺)에 주(住)했고 세칭이 승천종선사며 설두중현(운문하 3세)을 이었음 [연등회요28. 오등회원16].
●揺; 요(搖)의 간자(簡字).
●晴暉; 청천(晴天)의 양광(陽光)을 가리킴. 매우 미호(美好)한 양자(樣子)를 형용.
●資壽揵; 건(揵)은 첩(捷)으로 의심됨.
●騾兒; 아(兒)는 조사. 조정사원1 라(騾) 로과절(盧戈切; 라)이니 나귀가 아비며 말이 어미임.
●圓通秀; 원통법수(圓通法秀)임. 천의의회(天衣義懷)를 이었으니 운문하 5세며 사호(賜號)가 원통(圓通). 위 제55칙 보녕수(保寧秀)를 보라.
●雪峯圓; 설봉도원(雪峯道圓)이니 송대 황룡파승. 남웅(지금 광동에 속함) 사람. 어릴 적에 유방했고 혜남이 황벽 적취암에 거주한다 함을 듣고 가서 그에게 의지했으며 드디어 대철(大徹)했음. 출세해 대유 운봉사(雲封寺; 어떤 책엔 雪峯寺로 지어졌음)에 주(住)했음 [속전등록16. 보속고승전8. 보등록4].
●傍若; 방약무인(傍若無人)의 약칭(略稱).
●法昌遇; 법창의우(法昌倚遇; 1005-1081)니 송대 운문종승. 장주(지금 복건에 속함) 임씨(林氏). 어릴 적부터 군(郡)의 숭복(崇福)에게 의지해 득도(得度)했으며 대지(大志)가 있었음. 수구(受具)하고 유방(遊方)하며 이름이 총석(叢席)에 드러났음. 남악곡천(南嶽谷泉)을 참알했다가 담주(潭州)의 북선(北禪)으로 돌아와 지현(智賢; 운문하 3세)을 참알했는데 그의 기어(機語)가 첩건(捷健)함을 좋아해 곧 마음을 기울여 사사(師事)함이 매우 오래였음. 만년에 서산에 이르러 서식(棲息)하기 3년이었고 후에 홍주 법창(法昌)의 낡은 가옥 수간(數間)에 거주하면서 도경화종(刀耕火種)하며 도에 안락(安樂)했음 [연등회요28. 종통편년26. 속전등록5].
선문염송집주
불교신문 광고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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