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5권)

선문염송집 권4 제116칙

태화당 2021. 9. 30. 07:15

一一六崇嶽*慧安國師 與*北宗*神秀 *武后召入禁中供養 因澡浴以宮姬給侍 獨師怡然無他 后歎曰 入水始知有長人

 

無盡居士頌 秦苑仙娃白玉腮 *薔薇行水灑寒灰 柴門草戶無扃鑰 磊落金槌擊不開

 

第一一六則; 祖庭事苑一 入水見長人 桉耀禪師錄 唐武後召嵩山老安北宗神秀 入禁中供養 因澡浴 以宮姬給侍 獨安怡然無它 后歎曰 入水始知有長人

慧安; (582-709) 唐代僧 荊州支江(湖北)人 俗姓衛 又稱老安國師 五祖弘忍法嗣 隋大業(605-616)年中 大發丁夫 開通濟渠 饑殍相望 師乞食以救之 獲濟者衆 唐貞觀年中 於黃梅山參五祖 遂得心旨 武后聖曆二年(699)某夜 風雨交加 師爲嵩山神授菩薩戒 中宗神龍二年(706) 帝賜紫衣 尊以師禮 延入宮中 供養三載 景龍三年 辭歸嵩嶽少林寺 是年三月八日 閉戶偃身而入寂 壽一二八 [宋高僧傳十八 傳燈錄四 聯燈會要三]

北宗; 祖庭事苑五 秀能 慧能居於雙峯曹侯溪 神秀棲于江陵當陽山 同傳五祖之法 盛行天下 竝德行相高 於是道興南北 能爲南宗 秀爲北宗 以居處稱之也

神秀; (605-706) 唐代僧 汴州(河南開封之南)尉氏人 俗姓李 身長八尺 尨眉秀目 有巍巍威德 少覽經史 博學多聞 旣剃染受法 尋師訪道 後至蘄州雙峰東山寺 參五祖弘忍 唐高宗上元二年(675)十月 弘忍示寂 師遷江陵當陽山玉泉寺傳法 緇徒靡然歸其德風 道譽大揚 則天武后聞之 召入內道場 特加敬重 敕於當陽山建度門寺 以表旌其德 中宗卽位亦厚重之 師嘗奏武后召請慧能 亦自裁書招之 慧能固辭 答己與嶺南有緣 遂不踰大庾嶺 禪門乃有南能北秀之稱 神龍二年二月示寂於洛陽天宮寺 壽一二 敕號大通禪師 爲禪門諡號最早者 [宋高僧傳八 傳燈錄四 五燈會元二]

武后; 則天武后(624-705) 唐代許州(河南許昌)人 姓武 名曌(照同 武后自製此字) 又稱武后 武則天 則天后 則天帝 則天女帝 則天女皇 十四歲 被選入宮 爲太宗才人 以黠慧獲寵 帝崩 依制削髮爲尼 高宗卽位後 召入宮爲昭儀 未久立爲后 於高宗晩年 專決政事 帝崩 先後廢中宗睿宗 天授元年(690)改國號爲周 自稱則天金輪皇帝 爲中國歷史上唯一之女皇帝 富於權略 善於用人 執政達四十餘年 與比丘曇慈造大雲經 以爲符讖 然師事高僧神秀 法藏 義淨等 頗能屈己盡禮 又度僧 造寺 塑像 寫經 歷年爲之 終不厭倦 晩年恣肆專橫 朝政日壞 神龍元年十一月薨 壽八十二 諡則天皇后 [唐書六 新唐書七十六 佛法金湯編七] 佛祖統紀三十九 則天武后 曌 初入宮爲才人 太宗崩 出爲感業寺尼 高宗詣寺行香 是之納後宮拜昭儀 次年冊爲后 弘道元年(683)高宗崩 皇太子卽位 是爲中宗 光宅元年(685) 廢中宗爲廬陵王 武后自聽政

薔薇行水; 行 做也 以薔薇做香水也

 

一一六숭악 혜안국사(*慧安國師)와 북종(*北宗) 신수(*神秀), 무후(*武后)가 금중(禁中)으로 소입(召入)하여 공양함을 입었다. 조욕(澡浴)으로 인하여 궁희(宮姬)로 급시(給侍)하게 하자 오직 스님만 이연(怡然; 즐거워하는 모양)하며 다름이 없었다. 무후가 감탄하며 가로되 물에 들어가야 비로소 장인(長人)이 있는 줄 알겠다.

 

무진거사(無盡居士)가 송하되 진원(秦苑)의 선왜(仙娃; 仙女)가 백옥(白玉)의 뺨인데/ 장미로 향수를 만들어(*薔薇行水) 차가운 재에 뿌렸다/ 시문초호(柴門草戶)에 경약(扃鑰; 문 자물쇠)이 없는데/ 뇌락(磊落; 壯大)한 금추(金槌)로 쳐도 열리지 않는다.

 

第一一六則; 조정사원1. 입수견장인(入水見長人) 요선사록(耀禪師錄)을 안험(桉驗; 按驗과 같음)하니 당()의 무후(武後; 則天武后)가 숭산노안(嵩山老安)과 북종신수(北宗神秀)를 불러 금중(禁中; 宮中)에 들게 해 공양했고 조욕(澡浴; 목욕)으로 인해 궁희(宮姬)로써 급시(給侍)했는데 유독 안()만 이연(怡然; 는 기쁠 이)하며 다름이 없자 무후가 감탄하며 가로되 입수(入水)하고서야 비로소 장인(長人; 뛰어난 사람)이 있는 줄 알겠다.

慧安; (582-709) 당대승. 형주 지강(支江; 호북)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위(). 또 노안국사(老安國師)라 일컬음. 5조 홍인(弘忍)의 법사. () 대업(大業; 605-616)년 중에 정부(丁夫)를 많이 내어 제거(濟渠; 通濟渠大運河)를 개통했는데 굶어 죽은 이가 상망(相望)하자 스님이 걸식하여 그들을 구제했으며 구제를 얻은 자가 많았음. () 정관년(貞觀年) 중에 황매산(黃梅山)에서 5()를 참알(參謁)하고 드디어 심지(心旨)를 얻었음. 무후(武后) 성력 2(699) 어느 날 밤 풍우가 교가(交加)하는데 스님이 숭산신(嵩山神)을 위해 보살계를 주었음. 중종(中宗) 신룡 2(706) ()가 자의(紫衣)를 주고 스승의 예()로써 존중했음. 궁중에 맞아들여 공양하기 3()였음. 경룡 3년 고별하고 숭악(嵩嶽) 소림사로 돌아가 이 해 38일에 문을 닫고 몸을 눕혀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128 [송고승전18. 전등록4. 연등회요3].].

北宗; 조정사원5. 수능(秀能) 혜능은 쌍봉 조후계(曹侯溪)에 거주했고 신수는 강릉 당양산(當陽山)에 살았다(). 한가지로 5조의 법을 전해 천하에 성행했으며 아울러 덕행이 서로 높았다. 이에 도가 남북에 흥성했으며 혜능은 남종(南宗)이 되고 신수는 북종(北宗)이 되었으니 거처로써 그것을 일컬음이다.

神秀; 당대승. 변주(하남 개봉의 남) 울지(尉氏)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이(). 신장이 8척이며 큰 눈썹에 빼어난 눈(尨眉秀目)이었으며 외외(巍巍)한 위덕(威德)이 있었음. 어릴 적에 경사(經史)를 열람했고 박학다문(博學多聞)했음. 이미 체염(剃染)하고 수법(受法)하고는 스승을 찾고 도를 물었음. 후에 기주(蘄州)의 쌍봉산(雙峰山) 동산사(東山寺)에 이르러 5조 홍인(弘忍)을 참알(參謁)했음. 당 고종 상원 2(675) 10월에 홍인이 시적하자 스님이 강릉(江陵) 당양산(當陽山) 옥천사(玉泉寺)로 옮겨 전법(傳法)했음. 치도(緇徒; 僧徒)가 쓰러질 듯 그의 덕풍(德風)에 귀의했고 도예(道譽)를 크게 드날렸음.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이를 듣고 내도량(內道場)에 불러들여 특별히 경중(敬重)을 더했으며 칙령으로 당양산(當陽山)에 도문사(度門寺)를 세워 그의 덕을 표정(表旌)했음. 중종이 즉위하자 또한 그를 후중(厚重)하였음. 스님이 일찍이 무후(武后)에게 아뢰어 혜능(慧能)을 소청(召請)하게 했으며 또한 스스로 서신을 지어 그를 초청했지만 혜능이 고사(固辭)하며 답하기를 자기는 영남(嶺南)에 인연이 있다 하며 드디어 대유령(大庾嶺)을 넘지 않았음. 선문에 남능북수(能北秀之)의 호칭이 있음. 신룡 22월에 낙양의 천궁사(天宮寺)에서 시적했으니 나이는 102. 칙호(敕號)가 대통선사(大通禪師)니 선문에서 시호의 가장 이른() 자가 됨 [송고승전8. 전등록4. 오등회원2].

武后; 측천무후(624-705)니 당대 허주(하남 허창) 사람. 성은 무()며 이름은 조(; 와 같음. 무후가 스스로 이 글자를 제작했음). 또 호칭이 무후ㆍ무측천ㆍ측천후ㆍ측천제ㆍ측천여제ㆍ측천여황. 14세에 선출을 입어 입궁했고 태종의 재인(才人)이 되었으며 힐혜(黠慧: 은 약다. 영리하다)로 총애를 얻었음. ()가 붕어하자 제도에 의해 머리를 깎고 니(; 비구니. 사미니)가 되었음. 고종이 즉위한 후 불러 입궁시켜 소의(昭儀)로 삼았는데 오래지 않아 세워 후()로 삼았음. 고종 만년에 정사(政事)를 전결(專決)했음. 제가 붕어하자 선후로 중종ㆍ예종을 폐위했으며 천수 원년(690) 국호를 고쳐 주()로 삼고 자칭 측천금륜황제(則天金輪皇帝)라 했음.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가 되었음. 권략(權略)에 풍부하여 용인(用人)을 잘했으며 집정하기 40여 년에 도달했음. 비구 담자(曇慈)와 대운경(大雲經)을 만들어 부참(符讖)으로 삼았음. 그러나 고승 신수(神秀)ㆍ법장(法藏)ㆍ의정(義淨) 등을 사사(師事)하면서 자못 능히 자기를 굽혀 예절을 다했음. 또 도승(度僧)ㆍ조사(造寺)ㆍ소상(塑像)ㆍ사경을 역년(歷年; 많은 해를 거치다)하며 이를 했으며 마침내 염권(厭倦)하지 않았음. 만년에 자사전횡(恣肆專橫; 권세를 자기 멋대로 부림)했으며 조정은 날로 붕괴되었음. 신룡 원년 11월에 훙()했고 나이 82. 시호가 측천황후 [당서6. 신당서76. 불법금탕편7]. 불조통기39. 칙천무후 조() 처음 입궁하여 재인(才人)이 되었다. 태종이 붕어하자 출궁하여 감업사(感業寺) ()가 되었다. 고종이 사원으로 나아가 행향(行香)하고 이에 후궁으로 받아들여 소의(昭儀)를 제배(除拜)했다. 다음해 책봉해 후()로 삼았다. 홍도 원년(683) 고종이 붕어하자 황태자가 즉위했으니 이것이 중종이 된다. 광택 원년(685) 중종을 폐하여 여릉왕으로 삼고 무후가 스스로 청정(聽政)했다.

薔薇行水; ()은 주()니 장미로 향수를 만듦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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