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二二】 영가(永嘉) 현각대사(*玄覺大師)가 조계에 이르러 석장(錫)을 떨치고 병을 가지고 조(祖; 6조)를 세 번 돌았다. 조(祖)가 이르되 무릇 사문(沙門)이란 자는 3천 위의와 8만 세행(*三千威儀八萬細行)을 갖추어야 하거늘 대덕(大德)은 어느 지방으로부터 왔기에 큰 아만을 내는가. 스님이 가로되 생사(生死)의 일이 크고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합니다. 조가 가로되 어찌하여 무생(無生)을 체취(體取; 體得)하고 무속(無速)을 요득(了得)하지 않는가. 스님이 가로되 체취하니 곧 무생이며 요득하니 본래 신속(迅速)이 없더이다. 조가 가로되 이와 같고 이와 같다. 스님이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참례(參禮)하고 수유(須臾)에 고별을 고했다. 조가 가로되 도리어 너무 신속하지 않는가. 스님이 가로되 본래 스스로 움직임이 아니거늘 어찌 신속이 있으리오. 조가 가로되 누가 움직이지 않음임을 아는가. 스님이 가로되 인자(仁者; 상대방의 경칭)가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조가 가로되 네가 심(甚)히 무생(無生)의 뜻을 얻었다. 가로되 무생이거늘 어찌 뜻(意)이 있으리오. 조가 가로되 무의(無意)이거늘 누가 마땅히 분별하는가. 가로되 분별하여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 조가 감탄하며 가로되 선재, 선재로다. 어떤 책에 대동소이(大同小異)함.
법진일(法眞一)이 송하되 영가가 만 리에서 조계에 이르러/ 3배(拜)를 어찌하여 조금(略) 베풀지 않는가/ 도리어 선상을 세 바퀴 돈 후/ 탁연(卓然)히 진석(振錫)하는 위의(威儀)로다.
조계명(曺溪明)이 송하되 조계에 이르지 아니한 전에도 무슨 의심이 있으랴/ 월면(月面)처럼 당당(堂堂)하니 다시 이 누구인가/ 일숙(一宿)을 이미 이루자 귀계(歸計)가 늦었나니/ 노로(盧老)의 거편(擧鞭)이 더딤에 상간(相干)하지 않는다.
지비자(知非子)가 송하되 생사의 일사(一事)가 크나니/ 증료(證了)하고는 다시 머물지 않는다/ 조계에 일숙(一宿)하며 머물고는/ 장가(長歌)로 출문하여 떠났네.
설두현(雪竇顯)이 차화를 들어 至큰 아만을 내는가. 스님이 곧 할(喝)하고 이르되 당시에 만약 이 1할을 하득(下得)했더라면 용두사미를 보임을 면했으리라. 또 재거(再擧)하되 선상을 세 바퀴 돌고 석장을 한 번 떨치고 탁연(卓然)히 섰다. 조사를 대신해 이르되 조계에 이르지 아니한 전에 너에게 30방(棒) 주었다.
남명천(南明泉)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제인자(諸仁者)여, 이(此箇) 공안을 모두 말하기를 현각과 6조는 군신도합(君臣道合)했고 수유상투(水乳相投)했다 하거니와 도리어 단적(端的)한가 또는 아닌가. 남명(南明)이 말하나니 대소(大小) 조사가 용두사미다. 금일 이미 이 석구(惜口; 말을 아낌)를 얻지 못하니 제인을 위해 거듭 1편(徧)을 들겠다. 스님을 세 바퀴 돌고 석장을 떨치고 섰다. 제인자여 도리어 조사를 보느냐. 만약에 이 속을 향해 보아 얻는다면 정광탑(*淨光塔) 아래에 그침만이 아니라 온 시방세계와 찰찰진진(刹刹塵塵)에서 모두 조사를 보리라. 만약 보지 못한다면 산승이 너희를 위해 가리켜 내겠다. 이에 주장자를 집어 일으키고 이르되 보아라, 보아라. 벽면(劈面; 얼굴에)에 바람이 차가와 망망(忙忙)한 강 위의 객이 낚싯대를 거두는구나. 법좌를 한 번 쳤다.
●第一二二則; 육조단경에 이르되 영가 현각선사는 온주 대씨의 아들이다. 소년에 경론을 학습했고 천태지관법문(天台止觀法門)에 정통했고 유마경을 봄으로 인해 심지(心地)를 발명(發明)했다. 우연히 스님(6조)의 제자인 현책(玄策)이 상방(相訪)하여 그와 더불어 극담(劇談; 격렬하게 토론)했는데 출언(出言)이 몰래 제조(諸祖)와 합치했다. 현책이 이르되 인자(仁者)의 득법사(得法師)가 누구입니까. 가로되 나는 방등경론(方等經論)을 청강(聽講)했고 각기 사승(師承)이 있으며 후에 유마경에서 불타의 심종(心宗)을 깨달았으나 증명할 자가 있지 않습니다. 현잭이 이르되 위음왕(威音王) 이전은 곧 옳으려니와 위음왕 이후에 무사자오(無師自悟)는 모두 이 천연외도(天然外道)입니다. 가로되 원컨대 인자(仁者)가 나의 증거(證據)가 되십시오. 현책이 이르되 나의 말은 가볍습니다. 조계에 6조 대사가 있으며 사방에서 운집했고 모두 이 수법(受法)하는 자들입니다. 만약 간다면 곧 더불어 함께 가겠습니다. 현각이 드디어 현책과 함께 내참(來參)하여 스님을 세 바퀴 돌고 석장을 떨치며 섰다 (운운).
●玄覺; (665-713) 당대승. 온주(溫州) 영가(永嘉; 浙江에 위치)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대(戴), 자(字)는 명도(明道), 호는 영가현각(永嘉玄覺). 8세에 출가하여 3장(藏)을 널리 탐구했으며 특히 천태지관(天台止觀)에 정통했음. 뒤에 온주(溫州)의 용흥사(龍興寺) 곁 바위 아래 스스로 선암(禪庵)을 구축(構築)하고 독거하며 학문을 연마했는데 늘 선관(禪觀)을 닦았음. 우연히 좌계현랑(左溪玄朗)의 격려로 인해 드디어 유방(遊方)할 뜻을 일으켜 동양현책(東陽玄策)과 함께 유방하며 도를 찾았음. 운양(韻陽)에 이르렀을 때 조계혜능(曹溪慧能)을 알현(謁見)했으며 혜능과 서로 문답하고 그 인가(印可)를 얻었음. 혜능이 그를 머물러 일숙(一宿)케 했는데 다음날 곧 용흥사(龍興寺)로 돌아간지라 당시의 사람들이 그를 일컬어 일숙각(一宿覺)이라 했음. 그 후 학자가 복주(輻湊)하였으며 호가 진각대사(眞覺大師)임. 현랑(左溪)이 글을 주어 산서(山棲)로 그를 초대하자 스님이 복서(覆書; 편지의 회답. 返信)하고 사퇴(辭退)했음. 선천(先天) 2년(713. 一說엔 開元二年 혹은 先天元年) 10월 17일에 부좌(趺坐; 책상다리)하고 입적했으니 나이는 49. 무상대사(無相大師)란 시호(諡號)를 주었으며 탑은 가로되 정광(淨光). 증도가(證道歌) 1편(篇)을 지었는데 범승(梵僧)이 천축으로 돌아가 전하자 그곳에서 다 흠앙(欽仰)하며 제목하기를 동토(東土)의 대승경(大乘經)이라 했음. 또 선종오수원지(禪宗悟修圓旨) 10편(篇) 및 관심십문(觀心十門)ㆍ영가집(永嘉集) 10권을 지었는데 모두 세상에 왕성히 전함 [송고승전8. 불조역대통재13. 불조통기10. 전등록5. 오등회원2].
●錫; 석장(錫杖)임. 범어로는 극기라(隙棄羅)ㆍ끽기라(喫棄羅)임. 또 성장(聲杖)ㆍ유성장(有聲杖)ㆍ지장(智杖)ㆍ덕장(德杖)ㆍ명장(鳴杖)ㆍ금석(金錫)으로 지으며 비구 18물(物)의 하나임. ▲번역명의집7. 극기라(隙棄羅)는 여기에선 이르되 석장이다. 떨칠 때 석석성(錫錫聲)을 짓기 때문의 연고이다. 십송(十誦)엔 성장(聲杖)으로 이름했고 석장경(錫杖經)엔 또 지장(智杖)으로 이름했고 또 이름이 덕장(德杖)이니 지행(智行)의 공덕을 나타내는 연고이다. 성인의 표치(幖幟)며 현사(賢士)의, 도법을 명기(明記)하는 깃발이다. 근본잡사(根本雜事)에 이르되 비구(比丘)가 걸식(乞食)하면서 장자(長者)의 집에 깊이 들어가자 드디어 기방(譏謗; 譏는 나무랄 기)을 초래했다. 비구가 불타에게 사뢰자 불타가 이르시되 가히 소리를 지어 경각(警覺)하라. 그가 곧 하하(呵呵; 呵는 웃을 가. 원음이 하)하며 소리를 지어 훤뇨(喧鬧. 喧은 시끄러울 훤. 鬧는 시끄러울 뇨)해서 다시 기훼(譏毀)를 초래했다. 불타가 억제하여 청허(聽許; 聽은 허락할 청)하지 않자 드디어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가인(家人)이 괴이히 여겨 묻되 무엇 때문에 나의 문을 타파하느냐. 침묵하며 대답이 없었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응당 석장(錫杖)을 만들어라. 필추(苾蒭)가 알지 못했다. 불타가 말씀하시되 장두(杖頭)에 고리(鐶)를 안치하되 둥글기는 잔구(醆口; 醆은 술잔 잔)와 같이 하고 작은 고리를 안치해 요동(搖動)하여 소리를 지어 경각(警覺)을 하라. 요동은 한 두 번이 옳나니 듣는 사람이 없을 때는 곧 떠나감을 써라. 오백문론(五百問論) 지석(持錫)함엔 여러 일이 있다. 능히 악충(惡蟲)과 독수(毒獸) 등을 경각한다. 의정(義淨)이 이르되 석장은 모두 3분(分)이 있다. 상분(上分)은 이 석(錫; 주석)이며 중(中)은 나무며 하(下)는 혹 아각(牙角)이다. 만약 2고6환(二股六鐶)이면 이는 가섭불의 법제(法製)며 만약 4고12환(四股十二鐶)이면 이 석가불의 법제다.
●三千威儀八萬細行; 불제자가 지수(持守)하는 일상의 위의의 작법이 됨. 앉고 일하고 나아가고 물러서면서 위덕과 의칙(儀則)이 있음을 일컬어 위의라 함. 비구가 응당 지수(持守)하는 바의 250계를 행ㆍ주ㆍ좌ㆍ와 4위의에 배합하면 합계가 1천 계(戒)가 되고 삼세(三世; 일설엔 三聚淨戒)에 순전(循轉)하면 곧 3천 위의(威儀)를 이룸. 다시 신구(身口)의 칠지(七支; 殺ㆍ盜ㆍ淫ㆍ兩舌ㆍ惡口ㆍ妄言ㆍ綺語)와 탐ㆍ진ㆍ치 3독 및 등분(等分) 등 4종 번뇌에 다시 배합하면 공히 8만4천을 이룸. 여러 경에서 그 대수(大數)를 들어 다만 팔만세행(八萬細行)으로 일컬음. 정심계관법(淨心誡觀法)은 소승과 대승의 같지 않음에 착안하여 이르기를 보살계에 8만 위의가 있고 성문계에 3천 위의가 있다 했음. 또 팔종강요상(八宗綱要上)에서 이르기를 승계(僧戒)와 니계(尼戒)가 같지 않아 승(僧)은 250계가 있으니 곧 3천 위의에 6만 세행이며 니(尼)는 340계가 있으니 곧 8만 위의에 12만 세행이라 했음. 여러 문헌을 상고(詳考)하니 가장 일찍 삼천위의의 명목을 채용한 것은 곧 중용의 우우대재(優優大哉)라 예의가 3백이며 위의가 3천이다 [릉엄경문구5. 법화삼대부보주11. 대장법수68].
●淨光塔; 영가(永嘉)의 탑 이름임. 불조통기10 선사현각장(禪師玄覺章)에 가로되 사시(賜諡)는 무상대사(無相大師)며 탑왈 정광(淨光)이다.
●劈面; 벽(劈)은 충착(冲著), 정대착(正對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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