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五】玄沙一日與韋監軍茶話次 軍云 *占波國人語話 稍難*弁 何況五天梵語 還有人*弁得麽 師提起*托子云 識得這箇 卽*弁得
悅齋居士頌 西天貝葉不難明 何必迢迢問梵僧 策起眉毛*羅什現 展開兩手見*摩騰
雲門偃拈 玄沙何用繁辭 又云 適來道什麽 又云 有什麽難辨
法眞一別 下口便知音
●第一○○五則; 聯燈會要二十三玄沙師備 監軍問 占波國人語稍難會 何況五天梵語 還有人辨得麼 師拈起槖子云 識得這箇 卽辨得
●占波國; 位於中印度吠舍離國南方之古國 見上第三七一則占波 ▲華嚴經傳記四 文明元年(684) 天竺梵僧三藏法師日照 在京師西太原寺翻經之次云 至南天竺國 近占波城 有一僧伽藍 名毘瑟奴 於中有諸頭陀僧等 竝小乘學 後忽有一大乘法師 持華嚴經一帙 來至其處
●弁; 當作辨 諸禪錄皆作辨 下同
●托子; 托盤 爲放置杯碗之臺子
●羅什; 鳩摩羅什(344-413 一說 350-409) 又作究摩羅什 鳩摩羅什婆 拘摩羅耆婆 略稱羅什 什 此云童壽 東晉龜玆國(新疆疏勒)人 四大譯經家之一 父母俱奉佛出家 素有德行 羅什自幼聰敏 七歲從母入道 遊學天竺 遍參名宿 博聞强記 譽滿五天竺 後歸故國 王奉爲師 前秦苻堅聞其德 遣將呂光率兵迎之 呂光西征旣利 遂迎羅什 然於途中聞苻堅敗沒 遂於河西自立爲王 羅什乃羈留涼州十六七年 直至後秦姚興攻破呂氏 羅什始得東至長安 時爲東晉隆安五年(401) 姚興禮爲國師 居於逍遙園 與僧肇僧嚴等 從事譯經工作 自後秦弘始五年(403)四月 羅什先後譯出中論 百論 十二門論(以上合稱三論) 般若 法華 大智度論 阿彌陀經 維摩經 十誦律等經論 其譯經之總數不一 出三藏記集稱三十五部 二九四卷 開元釋敎錄則謂七十四部 三八四卷 羅什通達多種外國語言 所譯經論內容卓拔 文體簡潔曉暢 至後世頗受重視 居十二年而入寂 時爲晉義熙九年 壽七十 或謂義熙五年示寂 又據梁高僧傳記載 姚興以羅什爲聰明超凡之輩 不欲其無嗣 遂以十女逼令受之 元魏孝文帝曾至洛陽 遣使覓羅什之後嗣 委任以官爵 迨至隋世 關中鳩摩氏猶有顯者 或卽羅什之後人 [大品般若經序 百論序 大智度論序 梁高僧傳二 廣弘明集二十三]
●摩騰; 迦葉摩騰 見上第八四六則摩騰
【一○○五】 현사가 어느 날 위감군(韋監軍)과 다화(茶話)하던 차에 감군이 이르되 점파국(*占波國) 사람의 어화(語話)는 조금 분변(*弁)하기 어렵습니다. 어찌 하물며 5천(天)의 범어를 도리어 변득(*弁得)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스님이 탁자(*托子)를 제기하고 이르되 이것을 식득(識得)하면 곧 변득(*弁得)한다.
열재거사(悅齋居士)가 송하되 서천의 패엽(貝葉)은 밝히기 어렵지 않거늘/ 하필이면 멀고 멀리 범승(梵僧)에게 묻겠는가/ 눈썹을 책기(策起; 들어 일으킴)하니 라집(*羅什)이 나타나고/ 두 손을 전개(展開)하니 마등(*摩騰)이 보인다.
운문언(雲門偃)이 염하되 현사는 어찌하여 번사(繁辭)를 쓰는가. 또 이르되 아까 무어라고 말했는가. 또 이르되 무슨 분변하기 어려움이 있으리오.
법진일(法眞一)이 별(別)하되 하구(下口; 開口)하면 곧 음을 안다.
●第一○○五則; 연등회요23 현사사비. 감군(監軍)이 묻되 점파국(占波國) 사람의 말도 조금 이회하기 어렵거늘 어찌 하물며 5천(天)의 범어를 도리어 변득(辨得)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스님이 탁자(槖子)를 염기(拈起)하고 이르되 이것을 식득(識得)하면 곧 변득(辨得)한다.
●占波國; 중인도(中印度) 폐사리국(吠舍離國) 남방에 위치한 고국(古國). 위 제371칙 점파(占波)를 보라. ▲화엄경전기(華嚴經傳記; 五卷 唐 法藏集述) 4. 문명원년(文明元年; 684) 천축의 범승인 삼장법사 일조(日照)가 경사(京師)의 서쪽 태원사(太原寺)에 있으면서 번경(翻經)하던 차에 이르되 남천축국에 이르러 점파성(占波城) 근처에 한 승가람(僧伽藍)이 있었는데 이름이 비슬노였다. 이 중에 여러 두타승(頭陀僧) 등이 있었는데 모두 소승학(小乘學)이었다. 후에 홀연히 어떤 한 대승법사가 화엄경 1질을 가지고 와서 그곳에 이르렀다.
●弁; 마땅히 변(辨)으로 지어야 함. 여러 선록에 모두 변(辨)으로 지었음. 아래도 같음.
●托子; 탁반(托盤; 쟁반)이니 배완(杯碗)을 방치하는 대자(臺子; 받침대).
●羅什; 구마라집(鳩摩羅什; 梵 Kumārajīva; 344-413 一說 350-409)이니 또 구마라집(究摩羅什)ㆍ구마라집바ㆍ구마라기바로 지으며 약칭이 라집ㆍ집임. 여기에선 이르되 동수(童壽)며 동진(東晉) 구자국(龜玆國; 신강 소륵) 사람. 사대역경가(四大譯經家)의 한 사람. 부모는 다 봉불(奉佛)하여 출가했으며 본디 덕행이 있었음. 라집이 어릴 적부터 총민(聰敏)했으며 7세에 어머니를 좇아 입도(入道)했으며 천축에 유학하며 명숙(名宿)을 두루 참알했으며 박학강기했으며 명예가 5천축에 가득했음. 후에 고국(故國)에 돌아오자 왕이 받들어 스승으로 삼았음. 전진(前秦)의 부견(苻堅)이 그 덕망(德望)을 듣고 장군 여광(呂光)을 파견해 장병을 거느리고 그를 영접하게 했음. 여광이 서정(西征)에서 이미 승리하였고 드디어 라집을 영접했음. 그러나 도중에서 부견이 패몰(敗沒)했다 함을 듣고는 드디어 하서(河西)에서 자립하여 왕이 되었음. 라집은 이에 양주(涼州)에서 십육칠 년을 기류(羈留; 抑留)했음. 바로 후진(後秦)의 요흥(姚興)이 여씨(呂氏)를 공파(攻破)함에 이르자 라집이 비로소 동쪽 장안에 이름을 얻었으니 때는 동진 융안 5년(401)이 됨. 요흥이 예(禮)로 국사를 삼았음. 소요원(逍遙園)에 거주하면서 승조(僧肇)ㆍ승엄(僧嚴) 등과 함께 역경공작에 종사했음. 후진 홍시 5년(403) 4월부터 라집이 선후로 중론ㆍ백론ㆍ십이문론(이상 합칭이 三論)ㆍ반야ㆍ법화ㆍ대지도론ㆍ아미타경ㆍ유마경ㆍ십송률 등의 경론을 역출(譯出)했음. 그 역경의 총수(總數)는 일치하지 않음. 출삼장기집에선 35부, 294권이라 하고 개원석교록에선 곧 이르기를 74부, 384권이라 했음. 라집은 여러 종의 외국 어언(語言)을 통달하여 번역한 바 경론의 내용이 탁발(卓拔)하고 문체가 간결하고 효창(曉暢; 밝고 화창)하여 후세에 이르러 자못 중시(重視)를 받았음. 12년을 거주하다가 입적했으니 때는 진(晉) 의희 9년이 되며 나이는 70. 혹은 이르기를 의희 5년에 시적했다 함. 또 양고승전의 기재에 의거하자면 요흥이 라집을, 총명이 초범(超凡)한 무리로 여겨 그의 무사(無嗣)를 바라지 않아 드디어 10녀(女)로써 압박하여 그에게 받게 했음. 원위(元魏) 효문제가 일찍이 낙양에 이르자 사자를 보내 라집의 후사(後嗣)를 찾아 관작(官爵)을 위임했음. 수세(隋世)에 이르러 관중(關中)의 구마씨(鳩摩氏)에 아직 현저한 자가 있었으니 혹 곧 라집의 후인인가 함 [대품반야경서. 백론서. 대지도론서. 양고승전2. 광홍명집23].
●摩騰; 가섭마등(迦葉摩騰)이니 위 제846칙 마등(摩騰)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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