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六】韶州*雲門山*文偃禪師 拈拄杖示衆云 拄杖子 化爲龍 呑却乾坤了也 山河大地 甚處得來
雪竇顯頌 *拄杖子呑乾坤 徒說桃花浪奔 燒尾者不在拏雲㸕霧 曝腮者何必喪膽亡魂 拈了也 聞不聞 直須灑灑落落 休更紛紛紜紜 七十二棒且輕恕 一百五十難放君 師驀拈柱杖下座 大衆一時走散
霅溪益頌 山疊疊水瀰瀰 遊子天涯合早歸 禹門欲透桃花浪 待得風雷是幾時 歸到家鄕無个事 煙村一任杜鵑啼
丹霞淳上堂云 朕兆未分 賓主何立 *燃燈已後 兼帶權興 所以雲門和尙道 拄杖子化爲龍 至甚處得來 雲門恁麽道 美卽美矣 善卽善矣 子細看來 只能自利 殊無利他 丹霞卽不然 拄杖子化爲龍 南山起雲 北山下雨 直得靈苗繁秀 瑞草增輝 大千沙界盡吾家 何必*西瞿與*南贍 諸人若向這裏 委悉得去 可謂功不浪施 其或未然 不免落功勳去也 且道 不落功勳一句 又作麽生道 良久云 還會麽 撒手那邊千聖外 迴程堪作火中蓮
長蘆賾上堂擧此話 拈起拄杖云 拄杖只是木頭 不曾變化爲龍 亦不曾呑却乾坤 山河大地宛然猶在 有時客來須看 有時賊來須打 乃擊香臺一下 靠却拄杖云 若惣無事 却來*祗候禪床 還會麽 萬般施設不如常 又不驚人又久長
黃龍心拈 明眼宗師至今猶在 忽若有个漢出來道 者个是拄杖子 山河大地有甚過也 許伊具一隻眼
●第一○○六則; 此話出雲門錄上
●雲門山; 位於廣東省曲江縣東北 以雲門宗之祖雲門文偃 居此而稱名於世 文偃初參睦州道明 後至雪峰謁義存 領得玄要 旋承靈樹如敏禪師之後 住韶州靈樹寺 未久 遷於此山 再興廢址 建立新堂 號光泰禪院 後改稱證眞寺大覺寺雲門寺 以其敎化及於四方 禪徒輻輳 門風甚盛 遂依宗名而名此山爲雲門 [傳燈錄十九 古尊宿語錄十八 禪林僧寶傳二]
●文偃; (864-949) 唐末五代僧 爲雲門宗之祖 浙江嘉興人 俗姓張 法名文偃 幼懷出塵之志 從嘉興空王寺志澄出家 未久 至毘陵壇受具足戒 遍覽諸經 深究四分律 後至睦州(浙江省建德)參學於道明門下 經數載 盡得其道 又謁雪峰義存 依住三年 受其宗印 後歷叩諸方 參究玄要 名聲漸著 後梁乾化元年(911) 至曹溪(廣東省)禮六祖塔 後投於靈樹如敏會下 如敏推爲首座 貞明四年(918) 如敏示寂 師嗣其法席 主持靈樹寺 同光元年(923) 於雲門山創建光泰禪院 道風愈顯 海衆雲集 法化四播 後漢隱帝乾祐元年(948) 南漢王劉晟敕賜匡眞禪師 二年四月十日上表辭王 垂誡徒衆 端坐示寂 壽八十六 僧臘六十六 北宋乾德四年(966) 太祖復追諡大慈雲匡眞弘明禪師 師之機鋒險峻 門風殊絶 世稱雲門文偃 有雲門匡眞禪師廣錄三卷 語錄一卷行世 [古尊宿語錄十八 傳燈錄十九 禪林僧寶傳二 釋氏稽古略三 釋氏疑年錄五]
●燃燈; 燃燈佛 梵名提洹竭 提和竭羅 瑞應經譯曰錠光 智度論譯曰然燈 錠爲燈之足 釋迦如來因行中第二阿僧祇劫滿時逢此佛出世 買五華之蓮 以供養佛 布髮著地 令佛蹈之 以受未來成佛之記別 [修行本起經上 心地觀經一]
●拄杖子呑乾坤下; 碧巖錄第六十則云 拄杖子呑乾坤 雪竇大意免人情解 更道徒說桃花浪奔 更不必化爲龍也 蓋禹門有三級浪 每至三月 桃花浪漲 魚能逆水 而躍過浪者卽化爲龍 雪竇道縱化爲龍 亦是徒說 燒尾者不在拏雲攫霧 魚過禹門 自有天火燒其尾 拏雲攫霧而去 雪竇意道 縱化爲龍 亦不在拏雲攫霧也 曝腮者何必喪膽亡魂 淸涼疏序云 積行菩薩 尙乃曝腮於龍門 大意明華嚴境界非小德小智之所造詣 獨如魚過龍門透不過者 點額而回 困於死水沙磧中 曝其腮也 雪竇意道 旣點額而回 必喪膽亡魂 拈了也聞不聞 重下注脚 一時與爾掃蕩了也
●西瞿; 西瞿耶尼 見上第二一二則西瞿耶尼
●南贍; 南贍部洲 見上第九三則南贍部洲
●祗候; 恭敬地探測 祗 只也 正也 廣雅 祗 適也 爾雅 祗 敬也 正字通 祗與祇通 候 探測 觀察 上已出
【一○○六】 소주(韶州) 운문산(*雲門山) 문언선사(*文偃禪師)가 주장자를 집어 시중해 이르되 주장자가 용으로 변화해 건곤을 삼켜버렸다. 산하대지를 어느 곳에서 얻어오리오.
설두현(雪竇顯)이 송하되 주장자가 건곤을 삼킨다 하여(*拄杖子呑乾坤)/ 부질없이(徒) 도화(桃花)의 낭분(浪奔; 물결처럼 흩날림)을 설한다/ 소미자(燒尾者)도 나운확무(拏雲㸕霧)에 있지 않거늘/ 폭시자(曝腮者)인들 하필이면 상담망혼(*喪膽亡魂)하리오/ 염(拈)해 마쳤으니/ 문(聞)이 불문(不聞)이므로/ 바로 쇄쇄낙락(灑灑落落)을 쓰고/ 다시 분분운운(紛紛紜紜)하지 말아라/ 칠십이 방(棒)은 다만 경서(輕恕)하고/ 일백오십은 그대를 놓아주기 어렵다. 스님(설두)이 주장자를 잡고 하좌(下座)하자 대중이 일시에 주산(走散)했다.
삽계익(霅溪益)이 송하되 산은 첩첩(疊疊)하고 물은 미미(瀰瀰; 찰랑거리다)하니/ 유자(遊子; 나그네)는 천애(天涯)에서 합당히 조귀(早歸)해야 한다/ 우문(禹門)에서 도화랑(桃花浪)을 투과하려고/ 풍뢰(風雷)를 기다리는데 이 어느 때인가/ 가향(家鄕)에 귀도(歸到)하니 개사(个事)가 없고/ 연촌(煙村)에 두견이 우는 대로 일임한다.
단하순(丹霞淳)이 상당하여 이르되 짐조(朕兆)가 나뉘지 않으면 빈주(賓主)를 어찌 세우리오. 연등(*燃燈) 이후 권흥(權興)을 겸대(兼帶)했다. 소이로 운문화상이 말하되 주장자가 용으로 변화해 至어느 곳에서 얻어오리오. 운문의 이러한 말은 아름답기(美)는 곧 아름답고 좋기(善)는 곧 좋지만 자세히 보아오매 다만 능히 자리(自利)하고 달리 이타(利他)가 없다. 단하는 곧 그렇지 않다. 주장자가 용으로 변화하자 남산에 구름을 일으키고 북산에 비를 내려 바로 영묘(靈苗)가 번수(繁秀)하고 서초(瑞草)가 증휘(增輝)함을 얻었다. 대천사계(大千沙界)가 모두 오가(吾家)거늘 하필이면 서구(*西瞿)와 남섬(*南贍)이리오. 제인이 만약 이 속을 향해 위실(委悉; 자세히 알다)함을 얻어 간다면 가위(可謂) 공을 헛되이 베풀지 않으려니와 그 혹 그렇지 못할진대 공훈(功勳)에 떨어짐을 면하지 못한다. 그래 말하라, 공훈에 덜어지지 않는 1구를 또 어떻게 말하겠는가. 양구하고 이르되 도리어 아느냐, 나변(那邊)을 살수(撒手; 손을 털다)하고 천성(千聖) 밖에서 회정(迴程)하여 가히 화중련(火中蓮)이 되리라.
장로색(長蘆賾)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주장자를 집어 일으켜 이르되 주장자는 다만 이 목두(木頭; 나무)니 일찍이 변화하여 용이 되지 않으며 또한 일찍이 건곤을 삼켜버리지도 않은지라 산하대지가 완연히 아직 있다. 어떤 때 객이 오면 봄을 쓰고 어떤 때 도적이 오면 때림을 쓴다. 이에 향대(香臺)를 한 번 치고 주장자에 기대고는 이르되 만약 모두 무사(無事)하다면 돌아와서 선상을 지후(*祗候)한다. 도리어 아느냐, 만반의 시설이 심상(尋常)과 같지 않지만 또 사람을 경동(驚動)하지 않고 또 구장(久長)하다.
황룡심(黃龍心)이 염하되 명안종사가 지금(至今) 아직 있다. 홀약(忽若) 개한(个漢)이 있어 나와 말하되 이것은 이 주장자거늘 산하대지가 무슨 허물이 있느냐 한다면 그에게 일척안(一隻眼)을 갖추었다고 허락한다.
●第一○○六則; 차화는 운문록상에 나옴.
●雲門山; 광동성 곡강현 동북에 위치함. 운문종의 조사 운문문언이 여기에 거주했으므로 세상에 칭명(稱名)했음. 문언은 처음에 목주도명(睦州道明)을 참했고 후에 설봉에 이르러 의존(義存)을 참알하여 현요(玄要)를 영득(領得; 깨침)했음. 이윽고 영수여민선사(靈樹如敏禪師)의 뒤를 승계하여 소주 영수사에 거주하다가 오래지 않아 이 산으로 옮겼고 폐지(廢址)를 재흥하여 신당(新堂)을 건립하고 호를 광태선원(光泰禪院)이라 했는데 후에 개칭하여 증진사ㆍ대각사ㆍ운문사라 했음. 그의 교화가 사방에 미쳤고 선도(禪徒)가 복주(輻輳)하여 문풍이 매우 성했음. 드디어 종명(宗名)에 의해 이 산을 이름해 운문이라 했음 [전등록19. 고존숙어록18. 선림승보전2].
●文偃; (864-949) 당말(唐末) 오대승. 운문종(雲門宗)의 개조(開祖)가 됨. 절강 가흥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장(張)이며 법명은 문언(文偃)임. 어려서 출진(出塵)의 뜻을 품고 가흥(嘉興) 공왕사(空王寺)의 지징(志澄)을 좇아 출가했음. 오래지 않아 비릉단(毘陵壇)에 이르러 구족계를 받았음. 여러 경을 편람(遍覽)하였고 사분율(四分律)을 깊이 연구했음. 후에 목주(睦州; 절강성 建德)에 이르러 도명(道明; 黃檗希運의 法嗣)의 문하(門下)에서 참학(參學)해 몇 해가 지나 그 도를 다 얻었음. 또 설봉의존(雪峰義存)을 알현(謁見)해 3년을 의지하며 머물고 그의 종인(宗印)을 받았음. 후에 제방을 다니며 고문(叩問)하면서 현요(玄要)를 참구하였고 명성이 점차 드러났음. 후량(後梁) 건화 원년(911) 조계(曹溪; 廣東省)에 이르러 육조탑(六祖塔)에 예배하고 뒤에 영수여민(靈樹如敏)의 회하(會下)에 투입했는데 여민이 추천(推薦)해 수좌가 되었음. 정명 4년(918) 여민이 시적하자 스님이 그 법석을 이어 영수사(靈樹寺)를 주지(主持)했음. 동광 원년(923) 운문산에 광태선원(光泰禪院)을 창건하자 도풍(道風)이 더욱 환해져 해중(海衆)이 운집하였고 법화(法化)가 사방으로 퍼졌음. 후한(後漢) 은제(隱帝) 건우 원년(948) 남한왕(南漢王) 유성(劉晟)이 광진선사(匡眞禪師)로 칙사(敕賜)했으며 2년 4월 10일에 표(表)를 올려 왕을 고별하고 도중(徒衆)에게 훈계(訓戒)를 내리고는 단정히 앉아 시적(示寂)했음. 나이는 86이며 승랍은 66. 북송 건덕 4년(966) 태조(太祖)가 다시 추시(追諡)하여 대자운광진홍명선사(大慈雲匡眞弘明禪師)라 했음. 스님의 기봉(機鋒)이 험준하고 문풍(門風)이 수절(殊絶)했으며 세칭이 운문문언(雲門文偃)임. 운문광진선사광록(雲門匡真禪師廣錄) 3권과 어록 1권이 있어 행세(行世)함 [고존숙어록18. 전등록19. 선림승보전2. 석씨계고략3. 석씨의년록5].
●燃燈; 연등불(燃燈佛; 梵 Dipamkara)임. 범명(梵名)은 제원갈(提洹竭)ㆍ제화갈라(提和竭羅)니 서응경에 번역해 가로되 정광(錠光)이라 했고 지도론엔 번역해 가로되 연등(然燈)이라 했음. 정(錠)은 등(燈)의 발임. 석가여래가 인행(因行) 중 제2아승기겁이 찼을 때 이 부처의 출세를 만났음. 5화(華)의 연꽃을 사서 불타에게 공양하고 머리카락을 펴서 땅에 깔고 불타로 하여금 그것을 밟게 했고 미래에 성불한다는 기별(記別)을 받았음 [수행본기경상. 심지관경1].
●拄杖子呑乾坤下; 벽암록 제60칙에 이르되 주장자가 건곤을 삼킨다 하니 설두의 대의(大意)는 사람의 정해(情解)를 면하게 함이다. 다시 말하되 부질없이(徒) 도화(桃花)의 낭분(浪奔; 물결처럼 흩날림)을 설한다 하니 다시 변화하여 용이 됨이 필요치 않음이다. 대개 우문(禹門; 龍門)에 삼급랑(三級浪)이 있으니 매년(每) 3월에 이르러 도화(桃花)가 낭창(浪漲; 물결이 불어남)하면 물고기가 능히 물을 거스르는데 도약하여 물결을 지나는 자는 곧 변화하여 용이 되지만 설두가 말하되 비록 변화해 용이 되더라도 역시(亦是) 부질없는 설이다 하였다. 소미자(燒尾者)도 나운확무(拏雲攫霧; 구름과 안개를 움켜쥠)에 있지 않거늘 이라고 함은 고기가 우문(禹門)을 지나면 저절로 천화(天火)가 있어 그 꼬리를 태우고 나운확무(拏雲攫霧)하여 가나니 설두가 뜻에 말하되 비록 변화해 용이 되더라도 또한 나운확무에 있음이 아니라 함이다. 폭시자(曝腮者; 뺨을 햇볕에 쬐는 자)인들 하필이면 상담망혼(喪膽亡魂)하리오 함은 청량소서(淸涼疏序)에 이르되 적행보살(積行菩薩)일지라도 오히려 곧 용문에 폭시(曝腮)한다 하였으니 대의(大意)는 화엄경계(華嚴境界)는 소덕소지(小德小智)의 조예(造詣)할 바가 아님임을 밝힌 것이니 오직(獨; 一作猶) 고기가 용문을 지나려고 하다가 뚫어 지나가지 못한 자는 이마에 점 찍히고(點額) 돌아와 사수(死水; 止水)의 사적(沙磧; 모래톱) 가운데에 곤욕(困辱; 困)하면서 그 뺨을 볕에 쬠(曝)과 같다 함이니 설두의 뜻에 말하되 이미 이마에 점 찍히어(點額) 돌아왔는지라 반드시 상담망혼(喪膽亡魂)하리라 함이다. 염(拈; 공안을 들어 설하고 아울러 評議를 가함)해 마쳤으니 문(聞)이 불문(不聞)이므로 라고 하여 거듭 주각을 내리어 일시에 너희에게 소탕(掃蕩)하여 주었음이다.
●西瞿; 서구야니니 위 제212칙 서구야니(西瞿耶尼)를 보라.
●南贍; 남섬부주니 위 제93칙 남섬부주(南贍部洲)를 보라.
●祗候; 공경지(恭敬地)에서 탐측(探測)함. 지(祗)는 지(只)임. 정(正)임. 광아 지(祗) 적(適)이다. 이아 지(祗) 경(敬)이다. 정자통 지(祗)와 지(祇)는 통한다. 후(候)는 탐측(探測). 관찰. 위에 이미 나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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