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30권)

선문염송집 권27 제1228칙

태화당 2022. 3. 20. 08:22

一二二八*鼎州德山*緣密圓明禪師 示衆云 *及盡去也 直得三世諸佛 口掛壁上 猶有一人 呵呵大笑 若識此人 叅學事畢

 

投子靑頌 *雙盲入暗路崎嶇 日落捿蘆暫得甦 爭似石人眠半夜 免敎*舜讓守林居 須知花綻非干木 無脚行時早觸途 昨朝風起長安道 元是崑崙進國圖

天童覺頌 收 把斷襟喉 風磨雲拭 水冷天秋 錦鱗莫謂無滋味 釣盡滄浪月一鉤

投子靑拈 然雖如是 德山大似藏盡楚天月 猶存漢地星

天童覺小叅 僧問 記得德山道及盡去也 呵呵大笑 未審阿那个是此人 師云 通身無影像時 其間却有眼在 僧云 轉身踏着鐵崑崙 方信黑風吹不入 師云 是須恁麽去 僧云 正風吹不入時 還著得一言半句也無 師云 風吹入也 僧云 玲瓏八面自回合 峭峻一方誰敢窺 師云 正是風頭上句 僧云 只如風後底句 又作麽生 師云 天童却忘了 僧禮拜 師乃云 三世諸佛 六代祖師 只是明心了事底漢 阿你諸人 還明得自己心也未 還了得自己事也未 你若明得心 你若了得事 更無毫髮分外底 更無毫髮欠小底 淨盡脫得了 通身恁麽去 言語有所不到 是非有所不及 如熱鐵上 泊蚊子不得 了無外因緣 了無他影像 照與照者 二俱寂滅 於寂滅中 能證寂滅者 是你自己 若恁麽 桶底子脫去 地水火風 五蘊十八界 掃盡無餘 作麽生是盡不得底 所以德山圓明大師道 及盡去也 叅學事畢 諸兄弟 於絶氣息時 斷蹤迹處 須具眼始得 那時歷歷不沉 靈靈絶待 便能闊步大方 周旋普應 入一塵 一切塵中坐道場 入一處 一切處所作佛事 至於草木叢林 山河大地 還有一件一事分外底麽 都只是你現形處 是你說法處 是你出身處 門門恁麽來 法法恁麽住 中閒無往來相 秪者靈明絶待底 是諸人自己 若與諸法待對 卽不成自己 若是身空 則眼處空 眼處空則色處空 以自己合自己 於一切法中 如空合空 似水入水相似 何用作分析 何用作安堵 所以道 似地擎山 不知山之孤峻 如石含玉 不知玉之無瑕 个時平等平等 無起滅 無往來 無好惡 無取捨 恰恰好好 是平等相 若有小分相觸 便成礙塞 你若淨盡去 自然具足 放下去 自然現成 若於一切處 百雜碎*大大小小*方方圓圓 見處立色不得 全色是見 聞處立聲不得 全聲是聞 乃至香味觸法 亦復如是 還曾恁麽來麽 若也恁麽來 方知道 性自平等 無平等者 珎重

 

第一二二八則; 此話出宏智錄二擧話文

鼎州; 今湖南常德 宋大中祥符五年(1012) 朗州改鼎州 據說是因武陵縣境 在沅澧二水匯合處有鼎水 昔有神鼎出乎其間 故改名 [百度百科]

緣密; 五代楚僧 號圓明 雲門文偃法嗣 住鼎州德山 [五燈會元十五 傳燈錄二十二 聯燈會要二十六]

及盡去; 拈頌說話曰 及盡者 玄微及盡也 行李地人 廉纎脫盡 徹底無事也

雙盲; 拈頌說話曰 雙盲者 謂雙目盲也

舜讓守林居; 空谷集六第九十六則 舜以天下讓于單卷 卷曰 予立于宇宙之中 冬日衣皮毛 夏日衣葛絺 春耕種 形足以勤勞 秋收斂 形足以休食 日出而作日入而息 逍遙於天地之間而心意自得 吾何以天下爲 單卷 姓單名卷

方方圓圓; 泛指事物的形體形狀

大大小小; 指大小人物或事物等

 

一二二八정주(*鼎州) 덕산 연밀원명(*緣密圓明) 선사가 시중하여 이르되 없어짐에 이르면(*及盡去) 바로 삼세제불이 입을 벽 위에 걺을 얻을 것이다. 오히려 한 사람이 있어 하하(呵呵) 대소한다. 만약 이 사람을 안다면 참학사를 마친다.

 

투자청(投子靑)이 송하되 쌍맹(*雙盲)이 입암(入暗)하니 길이 기구(崎嶇)한데/ 해 떨어지자 갈대에 쉬면서 잠시 깨어남()을 얻었다/ 어찌 석인(石人)이 반야(半夜)에 자면서/ 순양(舜讓)을 면하게 해 수림(守林)하며 거주함만(免敎*舜讓守林居) 같으랴/ 수지(須知)할지니 꽃이 터짐은 나무에 상간(相干)되지 않고/ 발로 행함이 없을 때 벌써 촉도(觸途)한다/ 작조(昨朝)에 바람이 장안의 길에 일어났거니와/ 원래 이 곤륜(崑崙)이 진국(進國)하는 그림이다.

 

천동각(天童覺)이 송하되 거두어()/ 금후(襟喉)를 파단(把斷)했다/ 바람이 갈고 구름이 닦고(風磨雲拭)/ 물이 차고 하늘은 가을이다/ 금린(錦鱗)을 자미(滋味)가 없다고 이르지 말지니/ 창랑(滄浪; 滄波)을 낚아 없애는 한 갈고리의 달이다.

 

투자청(投子靑)이 염하되 그러하여 비록 이와 같지만 덕산은 초천(楚天)의 달을 숨겨 없앴으나 오히려 한지(漢地)의 별이 존재함과 매우 흡사하다.

 

천동각(天童覺)이 소참에 중이 묻되 기득(記得)컨대 덕산이 말 하되 없어짐에 이르면(及盡去) 하하 대소한다. 미심하오니 어느 것이 이 차인(此人)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온몸(通身)이 영상(影像)이 없을 때 그 사이에 도리어 눈이 있다. 중이 이르되 전신(轉身)하여 철곤륜(鐵崑崙)을 답착(踏着)해야 흑풍이 불어도 들어오지 않을 줄 비로소 믿을 것입니다. 스님이 이르되 이는 꼭 이러해야 한다. 중이 이르되 바로 바람이 불어도 들어오지 못할 때 도리어 일언반구(一言半句)를 착득(著得)합니까 또는 아닙니까. 스님이 이르되 바람이 불어 들어왔다. 중이 이르되 영롱(玲瓏)한 팔면이 스스로 회합(回合)하거늘 초준(峭峻)한 일방(一方)을 누가 감히 엿보겠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바로 이는 풍두상(風頭上)의 구(). 중이 이르되 지여(只如) 풍후(風後)의 구()는 또 어떻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천동(天童)이 도리어 망각했다. 중이 예배했다. 스님이 이에 이르되 삼세제불과 육대조사(六代祖師)는 다만 이 명심(明心)하여 요사(了事; 일을 마치다)한 자다. 아이(阿你; 너희) 제인이 도리어 자기의 마음을 명득(明得)했느냐 또는 아니냐. 도리어 자기의 일()을 요득(了得)했느냐 또는 아니냐. 너희가 만약 마음을 명득(明得)했거나 너희가 만약 일()을 요득(了得)했다면 다시 호발(毫髮)만큼도 분외(分外; 분한 밖)의 것이 없고 다시 호발(毫髮)만큼도 흠소(欠小; 모자라다)한 것이 없다. 정진(淨盡)하여 탈득(脫得)하고는 온몸이 이렇게 가리니 언어가 이르지 않는 곳이 있고 시비가 미치지 않는 곳이 있어 마치 열철(熱鐵) 위에 모기(蚊子)가 머묾()을 얻지 못함과 같다. 마침내() 밖의 인연이 없고 마침내 다른() 영상(影像)이 없어서 조()와 조자(照者)가 둘 다 적멸이며 적멸 중에 적멸을 능증(能證)하는 자가 이 너의 자기이다. 만약 이러하면 통 밑바닥(桶底子)이 탈출한지라 지수화풍(地水火風)5온ㆍ18계를 쓸어 없애 나머지가 없거늘 무엇을 이 없앰을 얻지 못할 것이겠는가. 소이로 덕산 원명대사가 말하되 없어짐에 이르면(及盡去) 참학사를 마친다. 제형제여, 기식(氣息)이 끊어졌을 때와 종적이 단절된 곳에서 모름지기 구안(具眼)해야 비로소 옳다. 그때(那時)엔 역력(歷歷)하여 불침(不沉)하고 영령(靈靈)하여 절대(絶待)니 곧 능히 대방(大方)을 활보(闊步)하고 주선(周旋)하며 보응(普應)하나니 1()에 들면 일체의 진중(塵中)에서 도량에 앉고 1()에 들면 일체처에서 짓는 바의 불사(佛事). 초목총림과 산하대지에 이르기까지 도리어 11(一件一事)라도 분외(分外)의 것이 있느냐. 모두 다만 이 네가 현형(現形)하는 곳이며 이 네가 설법하는 곳이며 이 네가 출신(出身)할 곳이다. 문문(門門)이 이렇게 오고 법법(法法)이 이렇게 머무나니 중간에 왕래상(往來相)이 없어 다만 이 영명(靈明)하여 절대(絶待)한 것이다. 이 제인(諸人)의 자기가 만약 제법과 대대(待對; 等待하고 對答)한다면 곧 자기를 이루지 못한다. 만약 이 신()이 공()하면 곧 안처(眼處)도 공하고 안처가 공하면 곧 색처(色處)도 공한다. 자기로써 자기와 합하면 일체법 중에서 허공이 허공에 합함과 같고 물이 물에 들어감과 같거늘 어찌 분석을 용작(用作)하며 어찌 안도(安堵)를 용작하리오. 소이로 말하되 땅이 산을 받들지만 산의 고준(孤峻)함을 알지 못함과 같고 돌이 옥을 머금었지만 옥의 티 없음을 알지 못함과 같다. 이때(个時) 평등평등하여 기멸(起滅)이 없고 왕래가 없고 호오(好惡)가 없고 취사가 없어 흡흡호호(恰恰好好; 매우 恰好)하여 이 평등상(平等相)이거니와 만약 소분(小分)이라도 상촉(相觸)함이 있으면 곧 애색(礙塞)을 이룬다. 너희가 만약 정진(淨盡)하여 가면 자연히 구족하고 방하(放下)하여 가면 자연히 현성(現成)한다. 만약 일체처에서 대대소소(*大大小小)와 방방원원(*方方圓圓)을 백잡쇄(百雜碎; 산산조각 내다)하면 견처(見處)에서 색을 세움을 얻지 못하나니 전색(全色)이 이 견()이며 문처(聞處)에서 소리를 세우지 못하나니 전성(全聲)이 이 문()이다. 내지 향미촉법(香味觸法)도 또한 다시 이와 같다. 도리어 일찍이 이러히 왔느냐, 만약에 이러히 왔다면 비로소 본성이 저절로 평등한지라 평등하게 하는 자가 없다고 말할 줄 알 것이다. 진중(珎重)하라.

 

第一二二八則; 차화는 굉지록2 거화문(擧話文)에 나옴.

鼎州; 지금의 호남 상덕(常德)이니 송 대중상부 5(1012) 낭주를 고쳐 정주라 했음. ()에 의거하자면 이는 무릉현경(武陵縣境), 원례(沅澧) 2()가 모여 합하는 곳에 정수(鼎水)가 있고 옛날에 신정(神鼎)이 그 사이에서 나옴이 있음으로 인해 고로 개명했음 [백도백과].

緣密; 오대 초승(楚僧). 호는 원명이며 운문문언의 법사며 정주 덕산에 거주했음 [오등회원15. 전등록22. 연등회요26].

及盡去; 염송설화에 가로되 급진(及盡)이란 것은 현미가 없어짐에 이름(玄微及盡). 행리(行李)하는 사람이 염섬(廉纎; 廉纖)을 탈진(脫盡)하여 철저히 무사(無事)함임.

雙盲; 염송설화에 가로되 쌍맹(雙盲)이란 것은 이르자면 쌍목(雙目)이 눈먼 것임.

舜讓守林居; 공곡집 제96. ()이 천하를 선권(單卷)에게 양도하려고 하자 선권이 가로되 나는 우주의 가운데 서서 겨울날에 피모(皮毛)를 입고 여름날에 갈치(葛絺; 칡베)를 입고 봄에 경종(耕種)하면서 근로로 형족(形足; 형체의 만족)하고 가을에 수렴(收斂)하면서 휴식으로 형족(形足)한다. 해가 나오면 일하고 해가 들어가면 쉬면서 천지의 사이에 소요하면서 심의(心意)가 자득(自得; 스스로 만족)하거늘 내가 무엇 때문에 천하를 위하겠는가. 선권(單卷)은 성이 선()이며 이름이 권()이다.

方方圓圓; 널리 사물의 형체와 형상을 가리킴.

大大小小; 대소의 인물 혹 사물 등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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