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30권)

선문염송집 권27 제1246칙

태화당 2022. 3. 23. 07:41

一二四六汝州*風穴*延昭禪師 問南院 入門須辨主 端的請師分 院以左手 拍膝一下 師便喝 院以右手 拍膝一下 師又喝 院擧左手云 這箇且從闍梨 復擧右手云 這箇作麽生 師云 瞎 院拈起拄杖 師云 作什麽 奪拄杖 却打和尙去 莫言不道 院擲下拄杖云 今日被這黃面*浙子鈍置一上 師云 大似持鉢不得 詐道不飢 院云 上座莫曾到此閒麽 師云 是何言歟 院云 好好相借問 師云 也不得放過 院云 且坐喫茶

 

松源上堂擧此話云 嗄 也甚奇恠 一箇生笤箒 一个破糞箕 *搕?堆頭 也用得着 未免鈍置門風 若據正令而行 總欠一着在

 

第一二四六則; 此話出松源崇嶽禪師語錄上擧話文 碧巖錄第三十八則 風穴乃臨濟下尊宿 臨濟當初在黃檗會下栽松次 檗云 深山裏栽許多松作什麼 濟云 一與山門作境致 二與後人作標榜 道了便钁地一下 檗云 雖然如是 子已喫二十棒了也 濟又打地一下云 噓噓 檗云 吾宗到汝大興於世 潙山喆云 臨濟恁麼 大似平地喫交 雖然如是 臨危不變 始稱眞丈夫 檗云 吾宗到汝大興於世 大似憐兒不覺醜 後來潙山問仰山 黃檗當時 只囑付臨濟一人 別更有在 仰山云有 只是年代深遠 不欲擧似和尙 潙山云 雖然如是 吾亦要知 但擧看 仰山云 一人指南吳越令行 遇大風卽止 此乃讖風穴也 穴初參雪峯五年 因請益 臨濟入堂 兩堂首座齊下一喝 僧問臨濟 還有賓主也無 濟云 賓主歷然 穴云 未審意旨如何 峯云 吾昔與巖頭欽山 去見臨濟 在途中聞已遷化 若要會他賓主話 須是參他宗派下尊宿 穴後又見瑞巖 常自喚主人公 自云喏 復云 惺惺著 他後莫受人瞞却 穴云 自拈自弄 有什麼難 後在襄州鹿門 與廓侍者過夏 廓指他來參南院 …… 風穴初到南院 入門不禮拜 院云 入門須辨主 穴云 端的請師分 院左手拍膝一下 穴便喝 院右手拍膝一下 穴亦喝 院擧左手云 這箇卽從闍黎 又擧右手云 這箇又作麼生 穴云 瞎 院遂拈拄杖 穴云 作什麼 某甲奪却拄杖 打著和尙 莫言不道 院便擲下拄杖云 今日被這黃面浙子 鈍置一上 穴云 和尙大似持鉢不得 詐道不飢 院云 闍黎莫曾到此間麼 穴云 是何言歟 院云 好好借問 穴云 也不得放過 院云 且坐喫茶 爾看俊流自是機鋒峭峻 南院亦未辨得他 至次日南院只作平常問云 今夏在什麼處 穴云 鹿門與廓侍者同過夏 院云 元來親見作家來 又云 他向爾道什麼 穴云 始終只教某甲一向作主 院便打推出方丈云 這般納敗缺底漢 有什麼用處 穴自此服膺 在南院會下作園頭 一日院到園裏問云 南方一棒作麼生商量 穴云 作奇特商量 穴云 和尙此間作麼生商量 院拈棒起云 棒下無生忍 臨機不讓師 穴於是豁然大悟

風穴; 河南汝州風穴山 祖庭事苑六 風穴在汝州 昭禪師居焉 因處得名 其穴 夏則風出 寒則風入 有寒過者 笠子叩于地

延昭; 又作延沼(896-973) 北宋臨濟宗僧 浙江餘杭人 俗姓劉 少年卽魁偉有英氣 博覽諸書 依開元寺之智恭律師剃髮受具足戒 復遊學講肆 其後依止南院慧顒公 問法從學六年 竝嗣其法 長興二年(931) 入汝州之風穴古寺 留止七年 徒衆聞風來集 信徒竝重建此地 改爲叢林 宋太祖開寶六年八月示寂 壽七十八 有風穴禪師語錄一卷傳世 [傳燈錄十三 佛祖歷代通載十八 五燈會元十一]

浙子; 指延昭 浙江餘杭人

搕?; 見上第一六九則榼?

 

一二四六여주(汝州) 풍혈(*風穴) 연소선사(*延昭禪師)가 남원(南院)에게 묻되 입문(入門)하면 모름지기 주인()을 분변해야 합니다, 단적(端的)을 청컨대 스님이 분변하십시오. 남원이 왼손으로써 무릎을 한 번 쳤다. 스님이 곧 할()했다. 남원이 오른손으로써 무릎을 한 번 쳤다. 스님이 또 할했다. 남원이 왼손을 들고 이르되 이것(這箇)은 다만 사리(闍梨)를 좇겠지만, 다시 오른손을 들고 이르되 이것(這箇)은 어찌하겠는가. 스님이 이르되 눈멀었습니다(). 남원이 주장자를 집어 일으켰다. 스님이 이르되 무엇 하시렵니까. 주장자를 뺏아 도리어 화상을 때리더라도 도가 아니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남원이 주장자를 척하(擲下)하고 이르되 금일 이 황면(黃面) 절자(*浙子; 浙江 남자)에게 일상(一上; 一回) 둔치(鈍置; 괴롭히다)됨을 입었다. 스님이 이르되 발우를 소지(所持; )함도 얻지 못하고서 배고프지 않다고 거짓말(詐道)하심과 매우 흡사합니다. 남원이 이르되 상좌는 일찍이 차간(此閒)에 이르지 않았는가. 스님이 이르되 이 무슨 말씀입니까. 남원이 이르되 서로 차문(借問; 물어봄)을 매우 좋아하노라(好好). 스님이 이르되 또한 방과(放過; 放棄)함을 얻지 말아야 합니다. 남원이 이르되 다만 앉아서 차나 마시게.

 

송원(松源)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사(; 목메다), 또한 심히 기괴하다. 한 개는 생() 소추(笤箒; )며 한 개는 깨진() 분기(糞箕; 똥 삼태기)니 합삽퇴두(*搕?堆頭)에서나 또한 씀을 얻겠으므로 문풍(門風)을 둔치(鈍置; 희롱. 괴롭히다)함을 면하지 못한다. 만약 정령(正令)에 의거하여 행할진대 모두 1착 모자란다.

 

第一二四六則; 차화 송원숭악선사어록상(松源崇嶽禪師語錄上) 거화문(擧話文)에 나옴. 벽암록 제38. 풍혈(風穴)은 곧 임제하(臨濟下)의 존숙이다. 임제가 당초(當初)에 황벽회하(黃檗會下)에 있으면서 소나무를 심던 차에 황벽이 묻되 깊은 산속에 허다한 소나무를 심어서 무엇하려느냐. 임제가 이르되 하나는 산문에 경치(境致)를 지어 줌이며 둘은 후인에게 표방(標榜)을 지어 줌입니다. 말을 마치고는 땅에다 한 번(一下) (; 괭이로 파다)했다. 황벽이 이르되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자네는 이미 20() 먹었다. 임제가 또 한 번 땅을 때리고 이르되 허허(噓噓). 황벽이 이르되 오종(吾宗)이 너에 이르러 세상에 대흥하리라. 위산철(潙山喆; 慕喆)이 이르되 임제의 이러함이 평지끽교(平地喫交)와 매우 비슷하다(두 번 打地한 것을 ).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위험에 임해서 변하지 않아야 비로소 참다운 장부라고 일컫는다. 황벽이 이르되 오종(吾宗)이 너에 이르러 세상에 대흥하리라 하니 아이를 귀여워하느라 추태(醜態)를 깨닫지 못함(憐兒不覺醜)과 매우 흡사하다. 후래에 위산이 앙산에게 묻되 황벽이 당시에 다만 임제 1인에게 촉부(囑付)했는가 따로 다시 어떤 이가 있는가. 앙산이 이르되 있습니다만 다만 이 연대(年代)가 심원(深遠)하여 화상에게 거사(擧似)하고 싶지 않습니다. 위산이 이르되 비록 그러하여 이와 같으나 내가 또한 알고 싶으니 단지 들어 보아라. 앙산이 이르되 1인이 지남(指南)하여 오월(吳越)에서 영()을 행하다가 대풍(大風)을 만나면 곧 그칠 것입니다 했으니 이것은 곧 풍혈(風穴)을 참()한 것이다. 풍혈이 처음 설봉을 참()한 지 5년에 인하여 청익(請益)하되 임제가 입당(入堂)하매 양당(兩堂; 東堂西堂)의 수좌가 일제히 1()을 내리자 중이 임제에게 묻되 도리어 빈주(賓主)가 있습니까 또는 없습니까. 임제가 이르되 빈주가 역연(歷然)하다. 풍혈이 이르되 미심(未審)합니다, 의지(意旨)가 무엇입니까. 설봉이 이르되 내가 지난날 암두ㆍ흠산과 함께 가서 임제를 뵙고자 했는데 도중에 있으면서 이미 천화(遷化)하셨다 함을 들었다. 만약 그의 빈주화(賓主話)를 알고자 할진대 모름지기 이는 그 종파하(宗派下)의 존숙에게 참문(參問)해야 하리라 하였다. 풍혈이 또 서암(瑞巖)을 참견(參見)하니 늘 스스로 주인공(主人公)을 부르고는 자기가 이르되 스스로 이르되 낙(; , 대답하는 소리). 다시 이르되 성성착(惺惺著; 은 조사)하여 타후(他後)에 남의 속임(瞞却; 은 조사)을 받지 말아라 하거늘 풍혈이 이르되 자념자롱(自拈自弄)하니 무슨 어려움이 있으랴 하였다. 후에 양주(襄州) 녹문(鹿門)에 있으면서 곽시자(廓侍者)와 더불어 과하(過夏)하는데 곽()이 그에게 지시하므로 남원(南院; 慧顒이니 興化存獎法嗣)을 내참(來參)하였다 …… 풍혈이 처음 남원에 이르러 문에 들어가 예배하지 않자 남원이 이르되 문에 들어왔으면 모름지기 주인()을 분변해야 하리라. 풍혈이 이르되 단적(端的; 진실)을 스님이 분변하시기를 청합니다. 남원이 왼손으로 한 번(一下) 무릎을 쳤다 풍혈이 곧 할()했다. 남원이 오른손으로 한 번 무릎을 쳤다. 풍혈이 또 할했다. 남원이 왼손을 들고 이르되 이것(這箇)은 곧 사리(闍黎)를 좇겠지만, 또 오른손을 들고 이르되 이것(這箇)은 또 어찌하겠는가. 풍혈이 이르되 눈 멀었습니다. 남원이 드디어 주장자를 집었다. 풍혈이 이르되 무엇하시렵니까, 모갑이 주장자를 뺏아버려서 화상을 때리더라도(打著) 도가 아니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남원이 곧 주장자를 던져 떨어뜨리고 이르되 금일 이 황면(黃面) 절자(浙子; 浙江 남자)에게 일상(一上; 一回) 둔치(鈍置; 괴롭히다)됨을 입었다. 풍혈이 이르되 화상은 발우를 소지(所持; )함도 얻지 못하고서 배고프지 않다고 거짓말(詐道)하심과 매우 흡사합니다. 남원이 이르되 사리(闍黎)가 일찍이 차간(此間)에 이르지 않았는가. 풍혈이 이르되 이 무슨 말씀입니까. 남원이 이르되 차문(借問; 물어봄)을 매우 좋아하노라(好好). 풍혈이 이르되 또한 방과(放過; 放棄)함을 얻지 말아야 합니다. 남원이 이르되 다만 앉아서 차나 마시게 하였다. 너희가 보아라, 준류(俊流; 靈利漢. 品類)는 스스로 이 기봉이 초준(峭峻)하다. 남원도 또한 그를 분변함을 얻지 못했다. 다음날에 이르러 남원이 다만 평상문(平常問)을 지어 이르되 금년 여름은 어느 곳에 있었는가. 풍혈이 이르되 녹문(鹿門)에서 곽시자(廓侍者)와 더불어 함께 여름을 지냈습니다. 남원이 이르되 원래 작가를 친견하고 왔구나 하고 또 이르되 그가 너를 향해 무어라고 말하더냐. 풍혈이 이르되 시종(始終) 다만 모갑으로 하여금 한결같이 작주(作主)하라 하더이다. 남원이 문득 때리고 방장에서 밀어내며(推出; 퇴출) 이르되 저반(這般; 이런 종류), 패결(敗缺; 受挫)을 용납하는 놈을 어디에 쓸 곳이 있으리오. 풍혈이 이로부터 복응(服膺)하고 남원의 회하(會下)에 있으면서 원두(園頭)가 되었다. 어느 날 남원이 채원(菜園; ) 안에 이르러 물어 이르되 남방에선 1()을 어떻게 상량(商量)하는가. 풍혈이 이르되 기특하다는 상량을 짓습니다 하고는 풍혈이 이르되 화상의 차간(此間)에선 어떻게 상량합니까. 남원이 방()을 집어 일으키면서 이르되 방하(棒下)의 무생인(無生忍)은 기()에 임해서는 스승에게도 사양하지 않는다. 풍혈이 이에서 활연(豁然)하여 대오했다.

風穴; 하남 여주 풍혈산. 조정사원6 풍혈(風穴)은 여주(汝州)에 있으며 연소선사(延沼禪師)가 거주했다. 처소를 인해 이름을 얻었으니 그 혈(; 동굴 혈)은 여름엔 곧 바람이 나가고 추워지면 곧 바람이 들어온다. 추위를 지내는 자가 있으면 삿갓이 땅을 두드린다.

延昭; 또 연소(延沼; 896-973)로 지음. 북송 임제종승. 절강 여항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유(). 어린 나이에 곧 괴위(魁偉)하고 영기(英氣)가 있었으며 여러 책을 박람(博覽)하였음. 개원사의 지공율사에게 의지해 머리를 깎았고 구족계를 받았음. 다시 강사(講肆)에 유학(遊學)하다가 그 후 남원혜옹공(南院慧顒公)에 의지하여 법을 묻고 좇아 배우기 6년이었고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으며 장흥 2(931) 여주(汝州)의 풍혈고사(風穴古寺)에 들어가 머물기 7년이었음. 도중(徒衆)이 풍모(風貌)를 듣고 와서 모였으며 신도가 아울러 이 땅을 중건(重建)하매 바뀌어 총림이 되었음. () 태조(太祖) 개보 68월에 시적(示寂)했으니 나이는 78. 풍혈선사어록(風穴禪師語錄) 1권이 있어 세상에 전함 [전등록13. 불조역대통재18. 오등회원11].

浙子; 연소(延昭)를 가리킴. 절강(浙江) 여항(餘杭) 사람임.

搕?; 위 제169칙 합삽(榼?)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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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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