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30권)

선문염송집 권27 제1248칙

태화당 2022. 3. 24. 08:16

一二四八風穴因僧問 語默涉*離微 如何通不犯 師云 常憶江南三月裏 鷓鴣啼處百花香

 

海印信頌 鷓鴣啼處百花香 撫掌呵呵笑一場 因憶昔年遊歷所 送人*雲塢立斜陽

雲門杲頌 忽爾出門先見路 纔方洗脚便登舩 神仙秘訣眞堪惜 父子雖親不敢傳

竹庵珪頌 快騎駿馬上高樓 南北東西得自由 最好腰纏十萬貫 更來騎鶴下楊州

心聞賁頌 亂雲堆裏携佳妓 枯木嵓前唱艶詞 攪動春風歸去後 從敎猿鳥自相疑

松源頌 百花香處鷓鴣啼 百歲光陰七十稀 飜憶世間多少事 落便冝是得便冝

雪竇顯拈 曾有人問雪竇 對他道 劈腹剜心又且如何 復云 因風吹火 別是一家 傷鼈恕龜 必應有主

大潙秀拈 江南佳景 誠合如之 千載觀光 添人性? 儻成不爾 來年更有新條在 惱亂春風卒未休

枯木成上堂擧此話云 諸人還體悉得麽 若也體悉得去 便見釋迦老兒 四十九年*橫說豎說 未曾道着一字 達磨祖師小室九年 聲震十方 良久云 還會麽 無心道者方如此 未得無心也大難

天童覺擧此話 連擧雪竇云劈腹剜心 師云 露躶躶*圓陁陁 直是無稜縫 且道 風穴無稜縫 何似雪竇無稜縫 還會麽 *和光惹事 刮篤成家

又小叅僧問 記得 僧問風穴 語默涉離微 百花香 未審這裏是什所在 師云 超群像出名言 僧云 露露 師云 見个什麽 便與麽道 僧云 爭奈赤心片片 片片赤心 師云 言語道斷處 元非*過未今 僧云 雪竇道劈腹剜心 此意如何 師云 要且無你着意解處 僧云 只如和尙道 和光惹事 刮篤成家 又作麽生 師云 怕你入思惟 斷人作伎倆 僧云 還當得者僧問處也無 師云 似則便相似 依俙千萬里 僧云 忽若有人問和尙 語默涉離微 如何通不犯 師云 唵阿盧勒繼娑訶 僧云 信受奉行去也

翠嵓宗拈 風穴雖善能據款結案 要且只成答話 當時這僧問未絶 劈脊便打

佛鑑勤上堂云 伏承堂頭禪師 擧似風穴因緣 是他僧問風穴 百花香 禪師適來 已是錦上鋪花 山僧不可更向泥中洗土 只如禪師擧處 還有薦得底麽 其或未然 不免重重話會 禪師行一丈 老僧行一丈 禪師行一尺 老僧行一尺 且如諸人 又向甚處見風穴 要知麽 彩雲影裏仙人現 手把紅羅扇遮面 應須着眼看仙人 莫觀隨後紅羅扇

白雲昺拈 風穴和尙 入林不動草 入水不動波 眼睛裏 倒卓須彌 眉毛上 橫安世界 畢竟落在甚處 只許老胡知 不許老胡會

心聞賁拈 萬煅爐中 迸出火星一點 多少人迴避不及 *破面門

寒嵓升上堂擧此話云 大衆 醜婦照鏡不知醜 醉漢罵人不知醉 風穴恁麽答話 切恐而今人 盡去鷓鴣啼處會了 要得親切麽 行不得也奇奇

介庵朋上堂擧此話云 這僧編逼問將來 風穴信意答將去 可謂如風吹水 自然成紋 於斯會得 不爲諸法流注 便能越格超宗 其或未然 更聽一頌 放下佛法擔 知去就輕 蚊虻呑巨海 水牯過䆫欞

密庵傑擧此話云 風穴老和尙 將白麫 和麩殼糶了 引得後來人 徒向百花香處作道理 成群作隊 外邊打之遶 徑山卽不然 忽有問 語嘿涉離微 如何通不犯 卽對他道 致將一問來

 

第一二四八則; 此話出聯燈會要十一

離微; 見上第二九則離微

雲塢; 雲霧遮掩的村塢

橫說豎說; 多方論說 反復喩解 謂施展種種方便 縱橫自在地反復宣講佛法

圓陁陁; 同圓陀陀 形容物之圓形 禪家以此形容心體之圓轉無礙

和光惹事下; 拈頌說話曰 和光惹事者 和光惹同塵 惹同塵則惹得差別也 刮篤成家者 篤厚也 刮則淨盡也 成家者 家業成就也

過未今; 過去未來現今(現在)

; 玉篇 簉 衝也

 

一二四八풍혈(風穴), 중이 묻되 어묵(語默)은 이미(*離微)에 건너나니 어떻게 해야 통달해 범하지 않습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늘 추억하노니 강남의 3월 속에, 자고(鷓鴣)가 우는 곳에 백화가 향기롭다.

 

해인신(海印信)이 송하되 자고(鷓鴣)가 우는 곳에 백화가 향기롭나니/ 무장(撫掌; 拍掌)하며 한바탕 하하 웃는다/ 인하여 석년(昔年)에 유력(遊歷)하던 곳을 추억하노니/ 운오(*雲塢)에서 송인(送人)하며 사양(斜陽)에 섰다.

 

운문고(雲門杲)가 송하되 홀연히(忽爾) 출문하니 먼저 길이 보이고/ 겨우 막 세각(洗脚)하자 곧 배에 오른다/ 신선의 비결은 참으로 아낄 만하나니/ 부자가 비록 친하지만 감히 전하지 못한다.

 

죽암규(竹庵珪)가 송하되 쾌히 준마를 타고 고루(高樓)에 오르니/ 남북동서에서 자유를 얻었다/ 가장 좋기로는 허리에 십만 관()을 두루고/ 다시 와서 학을 타고 양주(楊州)에 내려간다.

 

심문분(心聞賁)이 송하되 난운퇴리(亂雲堆裏)에서 가기(佳妓)를 데리고/ 고목암전(枯木嵓前)에서 염사(艶詞)를 부른다/ 춘풍을 교동(攪動)하고 돌아간 후에/ 원숭이와 새가 스스로 서로 의심하는 대로 좇노라.

 

송원(松源)이 송하되 백화가 향기로운 곳에 자고가 우나니/ 백세의 광음(光陰)에 칠십이 드물다/ 도리어 세간의 다소사(多少事)를 추억하건대/ 편의에 떨어짐이 이 편의를 얻음이다.

 

설두현(雪竇顯)이 염하되 일찍이 어떤 사람이 설두에게 묻자 그에게 대답해 말하되 벽복(劈腹)하고 완심(剜心; 심장을 도려내다)한들 우차(又且) 어찌하겠는가. 다시 이르되 바람으로 인해 바람을 붊은 별다른 이 일가(一家)며 자라를 상하게 하고 거북을 용서함은 반드시 응당 주인이 있다.

 

대위수(大潙秀)가 염하되 강남의 가경(佳景)은 참으로 합당히 이와 같아서 천재(千載) 동안 관광(觀光)하더라도 사람에게 성조(?; ?疏豁할 조)를 더한다. 만일() 그렇지 않음을 이룬다면 내년에 다시 새로운 가지가 있어 춘풍에 뇌란(惱亂)하며 마침내 쉬지 않으리라.

 

고목성(枯木成)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제인이 도리어 체실(體悉)함을 얻겠는가. 만약에 체실함을 얻는다면 곧 석가노아(釋迦老兒; 釋迦老子)가 사십구 년 동안 횡설수설(*橫說豎說)하면서 일찍이 1자도 말하지 않았고 달마조사가 소실(小室)에서 9년 동안 명성이 시방을 진동했음을 보리라. 양구하고 이르되 도리어 아느냐, 무심한 도자(道者)는 바야흐로 이와 같으려니와 무심을 얻지 못하면 또한 매우 어렵다.

 

천동각(天童覺)이 차화를 들고 이어서 들되 설두가 이르되 벽복완심(劈腹剜心). 스님이 이르되 노나라(露躶躶; 발가벗어 드러내는 모양.)하고 원타타(*圓陁陁)하여 바로 이것은 능봉(稜縫)이 없다. 그래 말하라, 풍혈의 능봉이 없음이 설두의 능봉이 없음과 어찌 같은가. 도리어 아느냐, 화광야사(*和光惹事)하여 괄독성가(刮篤成家)했다.

 

또 소참에 중이 묻되 기득(記得)하건대 중이 풍혈에게 묻되 어묵(語默)은 이미(離微)에 건너나니 백화가 향기롭다. 미심하오니 이 속에 이 무엇이 소재(所在)합니까. 스님이 이르되 군상(群像)을 초월하고 명언(名言)을 벗어났다. 중이 이르되 드러났습니다, 드러났습니다(露露). 스님이 이르되 저() 무엇을 보았기에 곧 이렇게 말하느냐. 중이 이르되 적심(赤心)이 편편(片片)하고 편편한 적심임을 어찌하겠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언어도단처(言語道斷處)는 원래 과미금(*過未今)이 아니다. 중이 이르되 설두가 말한 벽복완심(劈腹剜心)은 이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요차(要且) 네가 의해(意解)를 붙일 곳이 없다. 중이 이르되 지여(只如) 화상이 말한 화광야사(和光惹事) 괄독성가(刮篤成家)는 또 무엇입니까. 스님이 이르되 네가 사유(思惟)에 들어가 사람이 기량(伎倆)을 짓는 것을 끊을까 두려워했음이다. 중이 이르되 도리어 이 중의 문처(問處)에 당득(當得; 當敵)하겠습니까 또는 아닙니까. 스님이 이르되 흡사하기는 곧 바로 상사하지만 의희(依俙)하여 천만 리다. 중이 이르되 홀약(忽若) 어떤 사람이 화상에게 묻되 어묵(語默)은 이미(離微)에 건너나니 어떻게 해야 통달해 범하지 않습니까. 스님이 이르되 옴() 아로륵계사하阿盧勒繼娑訶). 중이 이르되 신수봉행(信受奉行)하여 가겠습니다.

 

취암종(翠嵓宗)이 염하되 풍혈이 비록 잘 능히 거관결안(據款結案)하였지만 요차(要且) 다만 답화(答話)를 이루었다. 당시에 이 중의 물음이 단절되지 아니하여서 등에다가 곧 때렸어야 한다.

 

불감근(佛鑑勤)이 상당하여 이르되 엎드려 들었는데(伏承) 당두선사(堂頭禪師)가 풍혈인연(風穴因緣)을 거사(擧似)하셨다. 이는 그 중이 풍혈에게 묻되 백화가 향기롭다. 선사가 적래(適來; 조금 전)에 이미 이 금상포화(錦上鋪花)인지라 산승이 다시 진흙 가운데를 향해 흙을 씻음은 옳지 못하다. 지여(只如) 선사가 든 곳을 도리어 천득(薦得; 領會)할 이가 있느냐. 그 혹 그렇지 못할진대 중중(重重) 화회(話會)함을 면하지 못한다. 선사가 1()을 행하시면 노승도 1장을 행하고 선사가 1()을 행하시면 노승도 1척을 행한다. 차여(且如) 제인은 또 어느 곳을 향해 풍혈을 보느냐. 알고자 하느냐, 채운(彩雲)의 그림자 속에 선인(仙人)이 나타나/ 손으로 홍라선(紅羅扇; 붉은 비단 부채)을 잡고 얼굴을 가렸다/ 응당 꼭 선인을 착안하여 볼지니/ 뒤따르며 홍라선(紅羅扇)을 보지 말아라.

 

백운병(白雲昺)이 염하되 풍혈화상은 입림(入林)하면 풀을 움직이지 않고 입수(入水)하면 파도를 움직이지 않으며 눈동자 속에 수미(須彌)를 거꾸로 세웠고 눈썹 위에 세계를 가로 안치했다. 필경 어느 곳에 떨어져 있느냐. 다만 노호(老胡)가 앎()을 허락하지만 노호가 앎()을 허락하지 않는다.

 

심문분(心聞賁)이 염하되 만 번 불린() 화로 속에 화성(火星; 불똥) 1점이 병출(迸出)하였으니 다소인(多少人)이 회피함이 미치지 못해 면문(面門)을 추파(*)하였다.

 

한암승(寒嵓升)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대중이여 추부(醜婦)가 거울에 비추면서 추함을 알지 못하고 취한(醉漢)이 사람을 욕하면서 취한 줄 알지 못한다. 풍혈이 이렇게 답화(答話)하매 이금(而今)의 사람들이 모두 자고가 우는 곳으로 가서 이회할까 하여 절실히 염려스럽다. 친절을 얻고자 하느냐. 행함을 얻지 못해야 기기(奇奇)하다.

 

개암붕(介庵朋)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이 중이 편핍(編逼; 編成하여 逼迫)해 물어 가지고 오매 풍혈이 신의(信意; 뜻에 맡기다)하여 답해 가져 갔으니 가위(可謂) 바람이 물에 불매 자연히 무늬를 이룸과 같다. 이에서 회득(會得)한다면 제법에 유주(流注)되지 않고 곧 능히 월격초종(越格超宗)하려니와 그 혹 그렇지 못할진대 다시 1송을 청취하라. 불법의 짐을 방하(放下)하면/ 거취가 가벼운 줄 훤히 안다()/ 문맹(蚊虻; 모기와 등에)이 거해(巨海)를 삼키고/ 수고(水牯; 물소)가 창령(䆫欞; 창살의 뜻)을 지나간다.

 

밀암걸(密庵傑)이 차화를 들고 이르되 풍혈 노화상이 흰 밀가루를 가지고 밀기울(麩殼)에 섞어 팔고 나서 후래인(後來人)이 도연히 백화가 향기로운 곳을 향해 도리를 짓고 성군작대(成群作隊)하여 외변으로 타지요(打之遶; 迂回)함을 인득(引得)했다. 경산(徑山; 咸傑)은 곧 그렇지 않다. 홀연히 어떤 이가 묻되 어묵(語嘿)은 이미(離微)에 건너나니 어찌해야 통달해 범하지 않겠는가. 곧 그에게 대답해 말하되 1()을 이루어() 가지고 오너라.

 

第一二四八則; 차화는 연등회요11에 나옴.

離微; 위 제209칙 이미(離微)를 보라.

雲塢; 운무(雲霧)가 차엄(遮掩)하는 촌마을(村塢).

橫說豎說; 다방(多方)으로 논설하고 반복하여 유해(喩解). 이르자면 갖가지 방편을 시전(施展)하고 종횡자재지(縱橫自在地)에서 반복하여 불법을 선강(宣講).

圓陁陁; 원타타(圓陀陀)와 같음. 물건의 원형을 형용함. 선가(禪家)에서 이로써 심체(心體)의 원전무애(圓轉無礙)를 형용함.

和光惹事下; 염송설화에 가로되 화광야사(和光惹事)란 것은 화광(和光)하여 동진(同塵)을 야기(惹起)함이니 동진을 야기하면 곧 차별을 야득(惹得)함임. 괄독성가(刮篤成家)란 것은 독()은 후()며 괄()은 곧 정진(淨盡)이며 성가(成家)란 것은 가업을 성취함임.

過未今; 과거ㆍ미래ㆍ현금(現今; 現在).

; 옥편 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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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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