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30권)

선문염송집 권28 제1320칙

태화당 2022. 4. 1. 08:48

一三二○】汝州*寶應*省念禪師因僧問 如何是佛 師云 新婦騎驢阿家牽 曾住首山

 

神鼎諲頌 新婦騎驢阿家牽 誰後復誰先 張三與李四 拱手賀堯年 從上諸聖摠皆然 坐起終諸沒兩般 有問又須向伊道 新婦騎驢阿家牽

道吾眞頌 手提巴鼻脚踏尾 仰面看天聽流水 天明送出路傍邊 夜靜還歸茅屋裏

海印信頌 新婦騎驢阿家牽 王老空中駕䥫船 井底掛㠶風勢惡 須彌頂上浪滔天

淨嚴遂頌 牽去騎來路坦平 尊卑老少若爲眀 柳眉桃臉頭如雪 月暗星沈信脚行

天童覺頌 *新婦騎驢阿家牽 *體段風流得自然 堪笑効顰隣舍女 向人添醜不成姸

又頌 衲僧舌頭眞个自由 渾崙裏許沒錐鉤 *輪扁斲工不授子 *庖丁游刃無全牛

仰山偉頌 顚倒顚顚倒顚 新婦騎驢阿家牽 若人會得顚倒處 獨自騎驢不用牽

保寧勇頌 七手八脚三頭兩面 耳聽不聞眼觀不見 啼得血流無用處 不如緘口過殘春

眞淨文頌 新婦騎驢阿家牽 低頭拈得一文錢 十字街頭拍手笑 東村王老屋頭穿

又頌 *張顚不似首山顚 不動毫芒百恠全 猶得黃龍再拈出 四方明眼若爲傳

雲門杲頌 新婦騎驢阿家牽 步步相隨不著鞭 歸到畫堂人不識 從今嬾更出門前

竹庵珪頌 阿家新婦兩同條 咫尺家鄕路不遙 可笑騎驢覔驢者 一生錯認*馬鞍橋

白雲昺頌 新婦騎驢阿家牽 萬里滄溟駕䥫船 參差島嶼分諸國 髣髴星河共一天

牧庵忠頌 *柳惲江頭賞白蘋 小風吹處曉煙輕 漁翁坐釣秋亭月 飜憶*苕溪說舊情

悅齋居士頌 新婦騎驢阿家牽 解道方纔得一邊 有箇十成巴鼻子 阿家馬後婦驢前

海會演上堂擧此話云 大衆 莫問新婦阿家 免煩路上波吒 遇飯卽飯 遇茶卽茶 同門出入 宿世寃家

 

第一三二; 此話出聯燈會要十一

寶應; 河南汝州葉縣寶應院

省念; (926-993) 五代臨濟宗僧 萊州(今山東掖縣)人 俗姓狄 號首山 幼入南禪寺受業 纔受具足戒 遍遊叢席 常修頭陀行 密誦法華經 人稱念法華 師事風穴延沼 得其心傳 名振四方 風靡一世 其後開法於汝州首山 爲第一世 又住汝州葉縣寶安山廣敎院 及城下寶應院等 淳化三年(992)十二月四日 上堂說偈曰 今年六十七 老病隨緣且遣日 今年記取來年事 來年記著今朝日 翌年十二月四日上堂辭衆 仍說偈曰 白銀世界金色身 情與非情共一眞 明暗盡時俱不照 日輪午後見全身 言訖 安坐入寂 壽六十八 [傳燈錄十三 五燈會元十一]

新婦騎驢阿家牽下; 從容錄四第六十五則 師(行秀)擧 圓通秀鐵壁頌云 何勞一日三梳頭 扎得根牢卽便休 大抵輸他肌骨好 不塗紅粉也風流 首山答話不用緣飾 自然婆婦體段俏措 如西施心痛 捧心而顰 更益其美 醜女學顰 更益其醜 此責口耳之學 不務妙悟者 一心也待做風流 四枝八脈傍不肯

體段; 身段 體態 指事物的形象

輪扁; 見上第一六則斲輪之伎

庖丁; 祖庭事苑二 全牛 莊子(養生主) 庖丁爲文慧君解牛 君曰 噫 善哉 技盖至此乎 庖丁釋刀對曰 臣之所好者道也 進乎技矣 始臣之解牛之時 所見無非牛者 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方今之時 臣以神遇而不以目視 說者曰 物以有而閡 道以虛而通 人之未聞道 則所見無非物也 猶其所解牛 所見無非牛也 人之旣聞道 則所見無非道也 猶其三年之後 未嘗見全牛也 方今之時 以神遇 不以目視 猶聞道者之以心契 而不以知知而識識也

張顚; 見上第一八四則張顚

馬鞍橋; 卽馬鞍 其拱起處形似橋 故稱

柳惲; (465-517) 字文暢 生於宋泰始元年 祖籍河東解州(今山西運城) 南朝梁著名詩人 音樂家 梁天監元年(502) 蕭衍建立梁朝 柳惲爲侍中 與沈約等 共同定新律 歷任散騎常侍 廣州(今廣東廣州)刺史 吳興(今浙江吳興縣)太守等 梁天監十六年卒 享年五十三歲 [百度百科] 祖庭事苑三 白蘋汀 古詩 柳惲江洲採白蘋 惲甞作吳興太守 爲政淸淨 人吏懷之

苕溪; 浙江湖州苕溪

 

一三二○】 여주 보응(*寶應) 성념선사(*省念禪師), 중이 묻되 무엇이 이 부처입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신부가 나귀를 탔고 아가(阿家; 시어머니)가 이끈다(新婦騎驢阿家牽). 일찍이 수산(首山)에 거주했음.

 

신정인(神鼎諲)이 송하되 신부가 나귀를 탔고 아가(阿家)가 이끄니/ 누가 뒤며 다시 누가 앞이냐/ 장삼(張三)과 이사(李四)/ 공수(拱手)하며 요년(堯年)을 경하(慶賀)한다/ 종상(從上)의 제성(諸聖)이 모두 다 그러하여/ 좌기(坐起)하며 마침내(終諸; 는 조사) 두 가지가 없다/ 어떤 이가 물으면 또 꼭 그를 향해 말하되/ 신부가 나귀를 탔고 아가(阿家)가 이끈다.

 

도오진(道吾眞)이 송하되 손에 파비(巴鼻)를 잡고 발로 꼬리를 밟고서/ 얼굴을 쳐들고 하늘을 보면서 유수(流水)를 듣는다/ 천명(天明)에 길 방변(傍邊; 近旁, 附近)으로 송출(送出)했다가/ 야정(夜靜)에 모옥(茅屋) 속으로 환귀(還歸; 귀환)한다.

 

해인신(海印信)이 송하되 신부가 나귀를 탔고 아가(阿家)가 이끌고/ 왕로(王老)가 공중에서 철선(䥫船)을 부린다/ 정저(井底)에 돛을 거니 풍세(風勢)가 사납고/ 수미정상에 파랑(波浪)이 하늘에 넘친다.

 

정엄수(淨嚴遂)가 송하되 견거(牽去)하고 기래(騎來)하매 길이 탄평(坦平)하나니/ 존비(尊卑)와 노소(老少)를 어떻게 밝히나/ 버들 눈썹 도화 뺨에 머리는 백설과 같은데/ 달은 어둡고 별은 잠기고 신각(信脚; 발길 닿는 대로)하여 다닌다.

 

천동각(天童覺)이 송하되 신부가 나귀를 탔고 아가(阿家)가 이끄니(*新婦騎驢阿家牽)/ 체단(*體段)의 풍류가 자연(自然)을 얻었다/ 가히 우습구나 효빈(効顰)하는 이웃집 여자여/ 사람을 향해 첨추(添醜)하고 예쁨을 이루지 못하네.

 

또 송하되 납승의 혀는 진짜로 자유스럽나니/ 혼륜(渾崙)한 이허(裏許; 이면)에 송곳과 갈고리가 없다/ 윤편(*輪扁)이 깎는 공교(工巧)를 아들에게 전수하지 못했고/ 포정(*庖丁)이 칼날을 놀리매 전우(全牛)가 없었다.

 

앙산위(仰山偉)가 송하되 전도(顚倒), 전도, 전도니/ 신부가 나귀를 탔고 아가(阿家)가 이끈다/ 어떤 사람이 전도된 곳을 회득(會得)한다면/ 독자(獨自)로 나귀 타면서 이끎을 쓰지 않으리라.

 

보녕용(保寧勇)이 송하되 칠수팔각(七手八脚)이며 삼두양면(三頭兩面)이니/ 귀로 들어도 듣지 못하고 눈으로 보아도 보지 못한다/ 울어 피 흘림을 얻더라도 쓸 곳이 없나니/ 입 닫고 남은 봄을 지냄만 같지 못하다.

 

진정문(眞淨文)이 송하되 신부가 나귀를 탔고 아가(阿家)가 이끄나니/ 머리를 숙이매 1()의 돈을 주웠다(拈得)/ 십자가두에서 박수하고 웃나니/ 동촌(東村) 왕로(王老)의 옥두(屋頭; 가옥)가 뚫렸다.

 

또 송하되 장전(*張顚)이 수산의 전()만 같지 못하나니/ 호망(毫芒; 터럭의 까끄라기)을 움직이지 않고도 백괴(百恠; 온갖 奇怪)가 완전하다/ 오히려 황룡(黃龍; 克文)이 다시 염출(拈出)함을 얻었거니와/ 사방의 명안(明眼; 명안인)이 어떻게 전하겠는가.

 

운문고(雲門杲)가 송하되 신부가 나귀를 탔고 아가(阿家)가 이끄나니/ 걸음마다 상수(相隨)하며 채찍질하지 않는다/ 화당(畫堂)에 귀도(歸到)하매 사람이 알지 못하나니/ 금일로부터 다시 문앞으로 나감에 게을러졌다.

 

죽암규(竹庵珪)가 송하되 아가(阿家)와 신부, 둘이 동조(同條)/ 가향(家鄕)이 지척(咫尺)이라 길이 멀지 않다/ 가히 우습구나 나귀를 타고 나귀를 찾는 자여/ 일생토록 마안교(*馬鞍橋)로 착인(錯認)했다.

 

백운병(白雲昺)이 송하되 신부가 나귀를 탔고 아가(阿家)가 이끄나니/ 만 리 창명(滄溟)에 철선(䥫船)을 부린다/ 참치(參差)한 도서(島嶼)는 제국(諸國)을 나누고/ 방불(髣髴)한 성하(星河)는 한가지로 일천(一天)이다.

 

목암충(牧庵忠)이 송하되 유운(*柳惲)이 강두(江頭; 강변)에서 백빈(白蘋; 흰 마름꽃)을 감상하는데/ 소풍(小風)이 부는 곳에 효연(曉煙; 새벽 아지랑이)이 가볍다/ 어옹(漁翁)은 추정(秋亭)의 달에 앉아 낚시하는데/ 도리어 초계(*苕溪)에서 구정(舊情)을 설함을 추억한다.

 

열재거사(悅齋居士)가 송하되 신부가 나귀를 탔고 아가(阿家)가 이끄나니/ 바야흐로(方纔) 일변(一邊)을 얻었다고 말할 줄 알았다/ () 십성(十成)의 파비자(巴鼻子; 는 조사)가 있나니/ 아가(阿家)는 마후(馬後)며 신부는 여전(驢前)이다.

 

해회연(海會演)이 상당하여 차화를 들고 이르되 대중이여, 신부와 아가(阿家)를 묻지 말지니 노상에서 파타(波吒; 苦難)하는 번뇌를 면한다. 밥을 만나면 곧 밥이며 차를 만나면 곧 차니 동문(同門)으로 출입하면 숙세(宿世)의 원가(寃家; 怨讎).

 

第一三二; 차화는 연등회요11에 나옴.

寶應; 하남 여주 섭현(葉縣) 보응원(寶應院).

省念; (926-993) 오대 임제종승. 내주(萊州; 지금의 산동 액현) 사람이며 속성은 적()이며 호가 수산(首山). 어릴 적에 남선사에 들어가 수업(受業)했고 겨우 구족계를 받자 총석(叢席)을 두루 다녔음. 늘 두타행(頭陀行)을 닦았으며 몰래 법화경을 외운지라 사람들이 호칭하기를 염법화(念法華)라 했음. 풍혈연소(風穴延沼)를 사사(師事)하여 그 심전(心傳)을 얻었으며 명성을 사방에 떨쳐 일세(一世)를 풍미(風靡)했음. 그 후 여주(汝州) 수산(首山)에서 개법(開法)하여 제1세가 되었고 또 여주 섭현(葉縣) 보안산(寶安山)의 광교원(廣敎院) 및 성() 아래의 보응원(寶應院) 등에 주()했음. 순화 3(992) 124일에 상당해 게를 설해 가로되 금년에 67이니/ 늙고 병들어 인연 따라 또 날을 보낸다/ 금년에 내년의 일을 기취(記取)하고/ 내년에 금조(今朝)의 일을 기억하라. 다음해 124일에 상당하여 대중에게 고별하며 이에 게를 설해 가로되 백은세계(白銀世界)의 금색신(金色身)이여/ ()과 비정(非情)이 한가지로 일진(一眞)이다/ 명암이 다한 때 다 비추지 못하나니/ 일륜(日輪)의 오후에 전신을 보이리라. 말을 마치자 안좌(安坐)하여 입적했으니 나이는 68 [전등록13. 오등회원11].

新婦騎驢阿家牽下; 종용록4 65. 스님(行秀)이 거()했다. 원통(圓通) 수철벽(秀鐵壁)이 송운(頌云)하되 어찌 노고롭게 하루에 세 번 머리를 빗질하리오/ 근뢰(根牢; 根基牢固)를 찰득(扎得; 뽑다)하고 곧 바로 쉰다/ 대저(大抵) 그 기골(肌骨)의 아름다움에 지나니()/ 홍분을 바르지 않아도 또한 풍류다. 수산(首山)의 답화(答話)는 연식(緣飾; 修飾)을 쓰지 않았나니 자연히 파부(婆婦; 노파와 신부)의 체단(體段; 體態)이 초조(俏措; 美好貌)하였다. 마치 서시(西施)가 심통(心痛; 가슴의 통증)으로 가슴을 받들고 찡그리자 다시 그 아름다움을 더함과 같다. 추녀(醜女)가 찡그림을 배우자(學顰) 다시 그 추함을 더했나니 이것은 구이지학(口耳之學)으로 묘오(妙悟)에 힘쓰지 않는 자를 책망함이다. 일심은 또한 풍류를 지음을 기다리지만 사지팔맥(四枝八脈)이 곁에서 불긍(不肯)한다.

體段; 신단(身段)이니 체태(體態). 사물의 형상(形象)을 가리킴.

輪扁; 위 제16칙 착륜지기(斲輪之伎)를 보라.

庖丁; 조정사원2. 전우(全牛) 장자(養生主) 포정(庖丁)이 문혜군(文慧君)을 위해 소를 분해했다. ()이 가로되 희(; 탄식할 희). 잘하는구나. 기술이 대개 여기에 이르는가. 포정이 칼을 놓고 대답해 가로되 신()이 좋아하는 바의 것은 도()입니다. 기술보다는 진경(進境; 진보한 경지)입니다. 처음 신이 소를 분해할 때는 보이는 것이 소 아닌 게 없었습니다. 3년 후에는 일찍이 전우(全牛)를 보지 못했습니다. 방금(方今)의 때엔 신이 신()으로써 만나고 눈으로써 보지 않습니다. 설자(說者)가 가로되 물()은 유()를 써서 막히고 도()는 허()를 써서 통한다. 사람이 도를 듣지 못하면 곧 보이는 것이 물()이 아님이 없나니 마치 그 소를 분해하는 바 보이는 것이 소가 아님이 없음과 같다. 사람이 이미 도를 들으면 곧 보이는 게 도가 아님이 없나니 마치 그 3년 후에 일찍이 전우(全牛)를 보지 못함과 같다. 방금의 때에 신()으로써 만나고 눈으로써 보지 않음은 마치 도를 들은 자가 마음을 써서 계합하고 지()로써 지()하거나 식()으로 식()하지 않음과 같다.

張顚; 위 제184칙 장전(張顚)을 보라.

馬鞍橋; 곧 말의 안장이니 그 공기(拱起; 맞잡아 일어나다)한 곳의 형상이 다리와 같은지라 고로 일컬음.

柳惲; (465-517) 자는 문창(文暢)이며 송 태시 원년에 출생했으며 조적(祖籍)은 하동 해주(지금의 산서 운성). 남조 양()의 저명한 시인이며 음악가. 양 천감 원년(502) 소연(蕭衍)이 양조(梁朝)를 건립하자 유운이 시중(侍中)이 되었음. 심약(沈約) 등과 공동으로 신율(新律)을 제정했음. 산기상시(散騎常侍)ㆍ광주(지금의 광동 광주)자사ㆍ오흥(지금의 절강 오흥현)태수 등을 역임(歷任)했음. 양 천감 16년에 죽었으며 향년은 53[백도백과]. 조정사원3. 백빈정(白蘋汀) 고시(古詩) 유운강주채백빈(柳惲江洲採白蘋; 유운이 강주에서 백빈을 캐다). 유운은 일찍이 오흥태수가 되었으며 시정(施政)이 청정해 인리(人吏)가 그를 회포(懷抱)했다.

苕溪; 절강 호주(湖州) 초계(苕溪).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daum.net)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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