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30권)

선문염송집 권29 제1367칙

태화당 2022. 4. 6. 08:41

一三六七筠州洞山*曉聦和尙 因僧問 旣是*泗州大聖 爲甚楊州出現 師云 *君子愛財 取之有道

 

蔣山泉頌 白日西沒 逝水東流 千兵易得 一將難求 *金剛嶺上靑松老 無限行人失路頭

悅齋居士頌 *無錐無地未爲貧 月白霜淸愁殺人 *二十五輪不住 至今無處頓渾身

 

第一三六七則 ; 此話出聯燈會要二十七 五燈會元十五洞山曉聰 遊方時在雲居作燈頭 見僧說泗州大聖近在揚州出現 有設問曰 旣是泗州大聖 爲甚麼却向揚州出現 師曰 君子愛財 取之以道 後僧擧似蓮華峯祥庵主 主大驚曰 雲門兒孫猶在 中夜望雲居拜之

曉聦; 正作曉聰(?-1030) 宋代雲門宗僧 韶州曲江(今屬廣東)杜氏 參文殊應眞悟旨 嗣其法 初混跡雲居爲燈頭 莫有知者 後被蓮華祥庵主發其幽光 聲名遂著 大中祥符三年(1010) 出世瑞州洞山 於山東北 手植松萬餘株 自稱栽松比丘 [廣燈錄二十三 禪林僧寶傳十一 五燈會元十五]

泗州大聖; 泗州 卽今江蘇省泗洪 泗陽 宿遷一帶 祖庭事苑六 僧伽 釋僧伽 何國人 姓何氏 始至西凉府 次歷江淮 當龍朔(661-663)初年也 卽隷名於山陽龍興寺 初將弟子慧儼同至臨淮 就信義坊居人乞地 下標志之言 決於此處建立伽藍 遂穴土 獲古碑 乃齊國香積寺也 得金像 衣葉刻普照王佛 居人歎異 嘗臥賀跋氏家 身忽長其牀榻各三尺許 次現十一面觀音形 其家擧族欣慶 遂捨宅焉 卽今寺是也 中宗景龍二年(708) 遣使詔赴內道場 帝御法筵 言談造膝 占對休咎 契若合符 仍褒飾其寺 曰普光王寺 四年 示疾 敕自內中往薦福寺安置 三月二日 儼然坐亡 神彩猶生 止瞑目爾 俗齡八十三 僧臘罔知 帝慘悼黯然 于時穢氣充塞而形體宛如 多見靈迹 敕有司給絹三百匹 俾回葬淮上 令郡官祖送 五月五日 抵于今所 帝以仰慕不忘 因問萬回公曰 彼僧伽何人也 曰 觀音菩薩也 經不云乎 應以比丘身得度者 故見沙門相也 見宋僧傳 宋高僧傳十八唐泗州普光王寺僧伽傳 咸通中(860-8 73)龐勛者 本徐州戍卒 擅離桂管 沿路劫掠 而攻泗州圍逼其城 伽於塔頂現形 外寇皆睡城中 偶出擊之 驚竄而陷宿州 以事奏聞 仍錫號證聖大師也 佛祖統紀四十六崇寧三年(1104)條 楊州奏 泗州大聖屢見於普慧塔

君子愛財取之有道; 拈頌說話曰 君子愛財云云者 傳云 廉士非不愛財 取之有道 貞婦非不愛色 結之以義 苟非其道 廉士不取故以保名 苟非其義 貞婦不爲故以全行

金剛嶺上靑松老; 宗統編年二十曰 聰(曉聰)嗣文殊眞 手植萬松於東嶺 而恒誦金剛般若經 山中人因名其嶺曰金剛

無錐無地未爲貧; 香嚴頌云 去年貧未是貧 今年貧始是貧 去年無卓錐之地 今年錐也無 見上第五九八則

二十五輪; 指二十五圓通 按楞嚴經五 二十五位菩薩各個皆具圓通 共有六塵六根六識七大等二十五圓通

 

一三六七균주 동산(洞山) 효총화상(*曉聦和尙), 중이 묻되 이미 사주대성(*泗州大聖)이거늘 무엇 때문에 양주(楊州)에서 출현했습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군자도 재물을 좋아하지만 그것을 취하매 도가 있다(*君子愛財 取之有道).

 

장산천(蔣山泉)이 송하되 백일(白日)은 서쪽으로 잠기고/ 서수(逝水)는 동쪽으로 흐른다/ 천병(千兵)은 얻기 쉬우나/ 일장(一將)은 구하기 어렵다/ 금강령상의 청송로(*金剛嶺上靑松老)/ 무한한 행인이 노두(路頭; 는 조사)를 잃는다.

 

열재거사(悅齋居士)가 송하되 송곳이 없고 땅이 없음은 가난이 아니니(*無錐無地未爲貧)/ 달은 희고 서리는 맑아 사람을 너무 수심케 한다/ 이십오륜(*二十五輪)에 머물러 거주하지 않고/ 지금토록 온몸(渾身)이 머물() 곳이 없다.

 

第一三六七則 ; 차화는 연등회요27에 나옴. 오등회원15 동산효총(洞山曉聰). 유방(遊方)할 때 운거에 있으면서 등두(燈頭; 등을 관리하는 소임)가 되었는데 사주대성(泗州大聖; 僧伽大師)이 최근에 양주(揚州)에 있으면서 출현했다고 말하는 중을 보았다. 물음을 베풂이 있어 가로되 이미 이 사주의 대성이거늘 무엇 때문에 도리어 양주를 향해 출현했는가. 스님이 가로되 군자가 재물을 사랑하지만 도로써 그것을 취한다(君子愛財 取之以道). 후에 중이 연화봉 상암주(祥庵主)에게 들어 보이자 암주가 크게 놀라며 가로되 운문의 아손이 아직 있다. 중야에 운거를 바라보며 그에게 예배했다.

曉聦; 바르게는 온총(曉聰; ?-1030)으로 지음. 송대 운문종승. 소주 곡강(지금 광동에 속함) 두씨(杜氏). 문수응진(文殊應眞; 운문하 2)을 참알(參謁)해 오지(悟旨)했고 그의 법을 이었음. 처음 운거(雲居)에 혼적(混跡)하여 등두(燈頭)가 되었는데 아는 자가 있지 않았음. 후에 연화상암주(蓮華祥庵主)가 그의 유광(幽光)을 냄을 입어 성명(聲名)이 비로소 드러났음. 대중상부 3(1010) 서주(瑞州) 동산(洞山)에서 출세했고 산의 동북에 손수 만여(萬餘) 그루의 소나무를 심고는 자칭 재송비구(栽松比丘)라 했음 [광등록23. 선림승보전11. 오등회원15].

泗州大聖; 사주는 즉금의 강소성 사홍ㆍ사양ㆍ숙천 일대. 조정사원6. 승가(僧伽) 석승가(釋僧伽; 628-710)는 하국(何國) 사람이며 성이 하씨(何氏). 처음 서량부에 이르렀고 다음으론 강회(江淮; 揚子江淮水)를 경력했는데 용삭(661663) 초년에 해당한다. 곧 산양의 용흥사에 이름을 붙여() 놓고 처음에 제자 혜엄을 데리고 함께 임회(臨淮)에 이르러 신의방(信義坊)의 거인(居人; 住民)에게 나아가 땅을 구걸해 푯말을 내려 거기에 기록()하고 말하되 결정코 이곳에 가람을 건립하리라. 드디어 땅을 파자(은 뚫을 혈) 고비(古碑)를 획득했는데 곧 제국(齊國)의 향적사였으며 금상(金像)을 얻었는데 옷자락()에 보조왕불(普照王佛)이 새겨져 있었다. 거인(居人)이 탄이(歎異; 괴이함을 감탄함)했다. 일찍이 하발씨(賀跋氏)의 집에 누웠는데 몸이 홀연히 길어져 그 상탑(牀榻; 平床)의 각 3척 가량()이었고 다음엔 11면 관음형(觀音形)을 나타냈다. 그 집의 거족(擧族; 는 다 거. 곧 온 가족)이 흔경(欣慶; 은 기쁠 흔. 좋아할 흔)했고 드디어 집을 희사했으니 즉금의 사()가 이것이다. 중종 경룡 2(708) 사자를 보내 조칙으로 내도량(內道場; 궁궐 안에서 佛道를 닦던 집)에 다다르게 하고 제()가 법연(法筵; 은 대자리. 좌석)에 거둥했다(). 언담(言談)하며 무릎을 나아가 휴구(休咎; 길흉)를 점쳐 대답했는데 계합함이 합부(合符; 符節이니 이를 써서 신분을 증명한 고대의 符信. 合符는 곧 合致하는 符節)와 같았다. 인하여 그 사()를 포식(褒飾; 褒賞하여 꾸밈)하여 가로되 보광왕사(普光王寺)라 했다. 4시질(示疾)하매 칙령해 내중(內中; 內道場 )으로부터 천복사로 가서 안치하게 했다. 32일에 엄연(儼然)히 좌망(坐亡)했는데 신채(神彩; 정신과 풍채. 뛰어나게 훌륭한 풍채)가 생시와 같았으되 단지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속령(俗齡)83이며 승랍은 알지 못한다. ()가 참도(慘悼; 은 비참할 참. 는 슬플 도. 곧 매우 슬퍼함)하여 암연(黯然; 은 어두울 암. 슬플 암)했는데 이때 더러운 기운이 가득 찼으며 형체가 완여(宛如)했다. 많이 영적(靈迹)을 나타냈다. 유사(有司)에게 칙령하여 비단 3백 필()을 공급하여 회상(淮上)으로 회장(回葬)하게 하면서 군()의 관리에게 조송(祖送; 는 길제사 조. 餞送할 조. 곧 떠나는 사람을 전송함)하게 했다. 55일에 지금의 장소에 이르렀다. ()가 앙모하여 잊지 못한지라 인해 만회공(萬回公)에게 물어 가로되 그 승가(僧伽)는 어떤 사람입니까. 가로되 관음보살입니다. 경에 이르지 않았습니까. 응당 비구신(比丘身)을 써서 득도(得度)할 자라 했으므로 고로 사문의 모양을 나타낸 것입니다. 송승전(宋僧傳)을 보라. 송고승전18 당사주보광왕사승가전(唐泗州普光王寺僧伽傳) 함통 중(860-873) 방훈(龐勛)이란 자는 본래 서주(徐州)의 수졸(戍卒)이었다. 계관(桂管)을 마음대로 떠나(擅離) 길을 따라 겁략하더니 사주(泗州)를 공격하면서 그 성을 둘러싸 핍박했다. 승가(僧伽)가 탑 꼭대기에 형상을 나타냈다. 외구(外寇)가 다 성 안에서 잠들었는데 마침() 나가서 그들을 격파했다. 놀라서 달아났으며 숙주(宿州)를 함락했다. 사건을 주문(奏聞)하자 곧 증성대사(證聖大師)란 호를 주었다. 불조통기46 숭녕 3(1104) (). 양주(楊州)에서 아뢰기를 사주대성(泗州大聖)이 누차 보혜탑에 나타났습니다.

君子愛財取之有道; 염송설화에 가로되 군자애재 운운한 것은 전()에 이르되 염사(廉士)가 재물을 사랑히지 않음은 아니지만 그것을 취하면서 도가 있고 정부(貞婦)가 색을 사랑하지 않음은 아니지만 그것과 결합하면서 의()를 쓴다. 진실로 그 도가 아니면 염사는 취하지 않는 고로 이름을 보존하고 진실로 그 의()가 아니면 정부가 하지 않는 고로 행실을 온전히 한다.

金剛嶺上靑松老; 종통편년20에 가로되 총(; 曉聰)은 문수진(文殊眞)을 이었다. 손수 동령(東嶺)에 만송(萬松)을 심었으며 항상 금강반야경을 외웠다. 산중의 사람들이 인하여 그 고개()를 이름해 가로되 금강이라 했다.

無錐無地未爲貧; 향엄(香嚴)의 송에 이르되 거년(去年)의 가난은 이 가난이 아니며/ 금년의 가난이 비로소 이 가난이다/ 거년은 송곳 세울 땅이 없었지만/ 금년은 송곳도 없다. 위 제598칙을 보라.

二十五輪; 이십오원통(二十五圓通)을 가리킴. 릉엄경5를 안험컨대 25() 보살이 각개(各個)가 모두 원통을 갖추었고 공히 6진ㆍ6근ㆍ6식ㆍ7() 25원통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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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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