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三九六】郢州大陽山*楷禪師 因僧問 師唱誰家曲 宗風嗣阿誰 師云 金鳳夜捿無影樹 峯巒纔露海雲遮
丹霞淳頌 等閑應問豈安排 一句全提隱顯該 薄霧依依籠古徑 孤峯終不露崔嵬
●第一三九六則; 此話出禪林類聚九
●楷; 道楷(1043-1118) 宋代曹洞宗僧 沂州沂水(山東沂水)人 俗姓崔 幼隱伊陽山中 學辟穀之術 後悟其非 棄而習佛 於京師術臺寺出家 後參投子義靑得法 元豐五年(1082)弘法於沂州仙洞山 竝先後住持洛陽之招提 郢州之大陽山 隨州之大洪山崇寧保壽禪院 東京天寧寺等刹 大揚洞上之風 從者如雲 崇寧三年(1104) 徽宗聞其名 召住京師十方淨因禪院 賜紫衣及定照禪師之號 師以衣非佛制 卻而不受 帝怒 黥而流放淄州 師終不屈 後帝悟 聽其自便 師遂於芙蓉湖上建寺 大揚禪風 學者風從 政和七年(1117) 徽宗賜以華嚴禪寺一額 後又賜名興化寺 於翌年五月入寂 壽七十六 世稱芙蓉道楷 法嗣有丹霞子淳 淨因法成等 有芙蓉道楷禪師語要一卷(又作定照禪師語要) [禪林僧寶傳十七 聯燈會要二十八 湖北金石志十]
【一三九六】 영주 대양산 해선사(*楷禪師)가, 중이 묻되 스님은 누구 집 노래를 부르며 종풍은 누구에게서 이었습니까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금봉(金鳳)이 밤에 무영수(無影樹)에 쉬는데 봉만(峯巒; 산봉우리)이 겨우 드러나자 해운(海雲)이 가린다.
단하순(丹霞淳)이 송하되 등한히 질문에 응하면서 어찌 안배(安排)하리오/ 1구로 전제(全提)하매 은현(隱顯)을 갖추었다/ 박무(薄霧)는 의의(依依)하며 옛길을 에웠는데/ 고봉(孤峯)은 마침내 최외(崔嵬; 산이 오똑하게 높고 험함)를 드러내지 않는다.
●第一三九六則; 차화는 선림유취9에 나옴.
●楷; 도해(道楷; 1043-1118)니 송대 조동종승. 기주 기수(산동 기수) 사람이며 속성은 최. 어릴 적에 이양산 가운데 은거하며 벽곡(辟穀)의 술법을 배웠는데 후에 그 그름을 깨닫고 버리고서 불법을 학습했으며 경사(京師) 술대사에서 출가했음. 후에 투자의청(投子義靑)을 참알해 득법했음. 원풍 5년(1082) 기주 선동산에서 홍법했고 아울러 선후(先後)로 낙양의 초제ㆍ영주의 대양산ㆍ수주의 대홍산숭녕보수선원ㆍ동경의 천녕사 등의 사찰에 주지(住持)하면서 동상(洞上)의 종풍을 크게 드날렸으며 따르는 자가 구름과 같았음. 숭녕 3년(1104) 휘종이 그의 이름을 듣고 불러서 경사의 시방정인선원에 주(住)하게 하고 자의(紫衣)와 및 정조선사란 호를 주었으나 스님이 옷이 불제(佛制)가 아니란 까닭으로 돌려주고 받지 않자 제(帝)가 노하여 경(黥. 刺字할 경이니 얼굴이나 팔뚝의 살을 따고 홈을 내어 먹물로 죄명을 찍어 넣던 벌)하고 치주(淄州)로 유방(流放; 유배)했으나 스님은 마침내 굽히지 않았으며 뒤에 제(帝)가 깨닫고 그 스스로 편한 대로 함을 청허(聽許. 聽도 許임)했음. 스님이 드디어 부용호상(芙蓉湖上)에 절을 세우고 선풍을 크게 드날렸으며 학자가 풍종(風從; 바람처럼 따름)했음. 정화 7년(1117) 휘종이 화엄선사(華嚴禪寺)의 1액(額)을 주었으며 후에 또 흥화사란 이름을 주었음. 다음해 5월에 입적했음. 나이는 76이며 세칭이 부용도해(芙蓉道楷). 법사에 단하자순ㆍ정인법성 등이 있으며 부용도해선사어요(또 정조선사어요로 지음) 1권이 있음 [선림승보전17. 연등회요28. 호북금석지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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