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염송집주(30권)

선문염송집 권30 제1398칙(한글)

태화당 2022. 4. 9. 09:04

一三九八홍주 황룡(*黃龍) 혜남선사(*慧南禪師)3전어(轉語)가 있어 학인에게 보여 이르되 내 손이 어찌하여 불수와 같으냐(我手何似佛手), 내 다리가 어찌하여 나귀 다리와 같으냐(我脚何似驢脚), 사람마다 모두 생연처(生緣處)가 있나니 어느 것이 이 상좌의 생연처(生緣處). 드디어 도송(都頌)을 이루었다. 생연(生緣)이 끊어진 곳에 여각(驢脚)을 드리우고/ 여각을 거둘 때 불수(佛手)를 열었다/ 오호(五湖)의 참학자(叅學者)에게 보고(報告)하나니/ 3()을 하나하나 투과하여 가지고 오너라.

 

해인신(海印信)이 송하되 만약 생연(生緣)을 묻는다면 진실로 속기(俗氣)/ 생연이 끊어진 곳에 무위(無爲)에 떨어진다/ 이도(二途)에 건너지 않으면 어떠한가/ 팔십 파파(婆婆; 노파)가 화미(畫眉)를 배운다.

 

내 손이 어찌하여 불수(佛手)와 같으냐/ 천상과 인간에 희유(稀有)하다/ 직요(直饒) 모두 이러하지 않으면/ 또한 가상(枷上; 칼 위)에 착뉴(着杻; 쇠고랑을 채움)함과 같다.

 

내 다리가 어찌하여 여각(驢脚)과 같으냐/ 받들어 납승을 위해 염각(拈却; 집어서 물리침)한다/ 석년(昔年)에 병이 있어 낫지 않았는데/ 여금에 또 독약을 만났다.

 

진정문(眞淨文)이 송하되 내 손이 어찌하여 불수(佛手)와 같으냐/ 번복(飜覆)하면서 누가 호추(好醜)를 분변하느냐/ 만약 사자지아(師子之兒; 사자니 後綴)가 아니라면/ 야간(野干)이 헛되이() 개구(開口)하리라.

 

내 다리가 어찌하여 여각(驢脚)과 같으냐/ 은현(隱現)하면서 천차(千差)며 만착(萬錯)이다/ 금강의 눈동자를 열려고 한다면/ 목전의 선악을 간취(看取)하라.

 

사람마다 모두 생연처(生緣處)가 있나니/ 인착(認着)하면 의전히 도리어 실로(失路)하리라/ 장공(長空)에 구름이 깨어지고 월화(月華; 월광)가 열리니/ 동서남북으로 그대가 가는 대로 좇는다.

 

천의회(天衣懷)가 송하되 앙앙(*昂昂)한 두각(頭角)이 운단(雲端; 구름 끝)에 나오니/ 늠름(凜凜)한 청풍에 천지가 차갑다/ 벽립(壁立)3()이 높고 또 깊은데()/ 탐현(探玄)하는 유자(*遊子)가 투과하기 도리어 어렵다/ 어렵고 어려움이/ 몇 가지이던가(幾何般)/ 불수(佛手)와 생연(生緣)을 어떻게(若爲) 이회하느냐/ 영주(瀛洲)는 원래 이 해중(海中)의 산이다.

 

정자본(淨慈本)이 송하되 상봉하면 생연(生緣)을 물음을 면하지 못하나니/ 1구로 당봉(當鋒)하는 의지(懿旨)가 가장 현묘하다/ 달마가 소림에서 척리(隻履)를 남기고/ 도리어 총령(葱嶺)에 오른 게 헛된 전()함이 아니다.

 

또 송하되 종문의 향상관(向上關)을 투과하려면/ 반드시 불수(佛手)와 아울러 여각(驢脚)을 밝혀야 한다/ 진금을 가금(假金)을 사용해 장식(裝飾)하지 말고/ 제호(醍醐)를 독약으로 인식하지 말아라.

 

경덕순(*景德順)이 송하되 장강에 구름이 흩어지고 물이 도도(滔滔)허더니/ 홀연히(忽爾) 광풍(狂風)에 파랑(波浪)이 곧 높아졌다/ 어가(漁家)의 현묘(玄妙)한 뜻을 알지 못하고/ 오로지() 파랑 속에서 풍도(風濤; 풍랑)를 일으킨다(). 뒤에 향성산(香城山)에 거주했음.

 

또 송하되 남해의 파사(波斯; 파사인)가 대당(大唐)에 들어오자/ 어떤 사람이 보물을 감별(鑑別)하며 곧 상량()했다/ 어떤 때(或時)는 싼값을 만나고 어떤 때는 비싼 값이니/ 해가 서봉(西峰)에 이르고 그림자가 점차 길어졌다.

 

또 송하되 황룡 노화상이/ () 생연어(生緣語)가 있다/ 산승이 그를 승사(承嗣)했으니/ 금일 그대를 위해 거()하겠다/ 그대를 위해 거하나니/ 고양이(猫兒)는 오로지() 노서(老鼠)를 잡을 줄 안다.

 

삽계익(霅溪益)이 송하되 사람마다 저() 생연(生緣)이 있나니/ 어찌 꼭 양원(*梁原)을 다 요()하겠는가/ 만약 노승의 생처(生處)를 묻는다면/ 여지(荔枝)의 향이 남원(南園)에 가득하다.

 

내 손이 어찌 불수(佛手)와 같으냐/ 종래로 적삼은 있으나 소매가 없다/ 어떤 때 한가히 사람 앞을 향했다가/ 불각에 쌍주(雙肘; 두 팔꿈치)를 노출했다.

 

내 다리가 어찌하여 여각(驢脚)과 같으냐/ 추워지면(寒來) 꼭 말착(襪着; 버선을 신다)을 요한다/ 진흙물을 답착(踏著)하게 하지 말지니/ 신발마저(和鞋) 일시에 젖어버린다.

 

총송(摠頌) 파도는 묘묘(渺渺; 그지없이 넓고 아득하다)하고 물은 만만(漫漫; 가없다. 가득하다)한데/ 황룡산 아래 3()을 일으켰다/ 무한한 배가 천뢰(淺瀨; 얕은 여울)에 잠기고/ 얼마나 많은 배가 심탄(深灘; 깊은 여울)에 빠졌던가/ 오직 어옹(漁翁)이 있어 상관하지 않고/ 취하여(醉來) 천한(天寒)에 일임한다.

 

불안원(佛眼遠)이 송하되 불수(佛手)ㆍ여각(驢脚)ㆍ생연(生緣)이여/ 황룡은 원래 이 말이 없었다/ 직요(直饒) 이렇게 알더라도/ 아농(我儂; )은 또한 상허(相許)하지 않는다/ 사해(四海)의 선인(禪人)에게 봉보(奉報)하노니/ 첫째 착거(錯擧)함을 얻지 말아라.

 

자항박(慈航朴)이 송하되 불수(佛手), 여각(驢脚)과 생연(生緣)이라 하니/ 선덕문(宣德門; 開封의 선덕문) 앞에서 영()을 이미 전했다/ 용산(龍山; 了朴)을 필경 아는 사람이 없어/ 다 말하기를 분양(汾陽)의 적실(的實)한 골손(骨孫; 손자)이라 한다(了朴은 분양하 7).

 

개암붕(介庵朋)이 송하되 내 손이 어찌 불수(佛手)와 같으냐 하니/ 하늘 가득히 성두(星斗; 별의 總稱)를 전개했다/ 거두매(收來) 천지가 잠장(潜藏; 隱藏)하고/ 쓰는 곳에 오비토주(烏飛兔走)한다.

 

내 다리가 어찌하여 여각(驢脚)과 같으냐 하니/ 건곤이 모두 장악(掌握)으로 돌아온다/ 권서(卷舒)하매 자재히 종횡하나니/ 시인(時人)이 복탁(卜度)하는 대로 일임한다.

 

사람마다 저() 생연(生緣)이 있나니/ 촉처(觸處)에 팔혈칠천(*八穴七穿)한다/ 가히 슬프나니 말뚝을 박고 노를 저으면서(釘樁搖櫓)/ 육지에 배를 지탱할 줄 알지 못하네.

 

열재거사(悅齋居士)가 송하되 내 손이 어찌하여 불수(佛手)와 같으냐 하니/ 상산사우(*商山四友)에게 말을 기탁한다/ 사소한 상한(霜寒)을 인내하면서/ 인간의 오두(*五斗)를 연모하지 않음만 같지 못하다.

 

내 다리가 어찌하여 여각(驢脚)과 같으냐 하니/ 이 제호(醍醐)와 독약에 일임한다/ 제불과 육도사생(*六道四生)/ 일체 염착(染着)함을 얻지 못한다.

 

생연(生緣)이 이 어느 곳이냐 하니/ 삼양보(三兩步) 진전(進前)하라/ 좌구(坐具)를 어깨(肩頭)에 싣고()/ 바로 삼문 밖으로 나가거라.

 

무진거사(無盡居士)가 송하되 황룡 노한이 3관을 말하니/ 2월 춘풍이 요초(料峭; 微寒)하여 차다/ 불수(佛手)는 친하지 않고 여각(驢脚)은 흡사하나니/ 강서(江西)의 회리(會裏)에 아만을 냄을 이루었다(着生謾).

융경한(*隆慶閑), 황룡이 묻되 사람마다 모두 생연처(生緣處)가 있나니 사리(闍梨)의 생연은 어느 곳에 있느냐 함으로 인해 스님이 이르되 신조(晨朝; 아침)에 백죽(白粥)을 먹었는데 이금(而今)에 배가 또 고픕니다. 황룡이 이르되 내 손이 어찌하여 불수(佛手)와 같으냐. 스님이 이르되 달 아래 비파(琵琶)를 희롱합니다. 황룡이 이르되 내 다리가 어찌하여 여각(驢脚)과 같으냐. 스님이 이르되 노사(鷺鷥; 해오라기)가 눈에 서도 같은 색이 아닙니다. 황룡이 이르되 네가 만약 이러하다면 수발(鬚髮)을 체제(剃除)하여 마땅히 무슨 일을 하겠는가. 스님이 이르되 다만 무사(無事)를 요합니다. 황룡이 이르되 이미 이 무사(無事)하거늘 왜 체발(剃髮)을 쓰느냐. 스님이 이르되 만약 체발하지 않는다면 어찌 무사(無事)를 알겠습니까. 황룡이 이르되 이러하다면 곧 몇 소리 청경(淸磬)은 시비 밖이거늘 일개의 한인(閑人)이 천지 사이다. 스님이 이르되 이 무슨 말씀입니까. 황룡이 이르되 원래 이(是箇) 영리(刢利)한 납자로구나. 스님이 이르되 또한 소득(消得; 쓰다)함이 없습니다. 황룡이 할로 한 번 할했다. 스님이 두드려서 한 번 두드리고(拍一拍) 곧 나갔다.

 

임간록(林閒錄)에 이르되 남선사(南禪師)가 적취(積翠)에 거주할 때 불수(佛手)ㆍ여각(驢脚)ㆍ생연(生緣)의 말로써 학자에게 물었는데 답자(荅者)가 매우 많았지만 남공(南公)은 눈을 감고(冥目) 입정(入定)한 듯했으며 일찍이 그것을 가부(可否)하지 않았다. 학자가 추출(*趨出)하면서 마침내 그 시비를 알지 못했다. 고로 천하에서 이를 일러 삼관어(三關語)라 했다. 만년에 게 3수를 자작(自作)했는데 이제 다만 그 둘을 기록한다. 가로되 아수(我手)와 불수(佛手)를 제거(齊擧)하나니/ 선류(禪流)는 직하(直下)에 천취(薦取)하라/ 간과(干戈)를 동하지 않고 말하는 곳에/ 자연히 초불월조(超佛越祖)한다. 아각(我脚)과 여각(驢脚)을 병행(並行)하나니/ 걸음마다 모두 무생(無生)에 계합한다/ 바로 구름이 개이고 해가 나타남을 얻으면/ 이 도가 비로소 종횡(縱橫)함을 얻는다. 운개지(雲蓋智; 守智) 선사가 일찍이 나에게 말해 가로되 지난날() 내가 황벽에 재입(再入)하여 방당(坊塘)에 이르렀더니 한 중이 산중으로부터 옴을 보았다. 인하여 삼관어(三關語)를 묻되 형제가 근일에 어떻게 상량()하느냐 하자 중이 가로되 말이 있어 심묘(甚妙)하나니 가이(可以) 뜻을 보이겠다. 내 손이 어찌하여 불수(佛手)와 같으냐, 가로되 월하(月下)에 비파(琵琶)를 희롱한다. 혹왈(或曰) 먼 길에 공발(空鉢)을 받들었다(). 내 다리가 어찌하여 여각(驢脚)과 같으냐, 가로되 해오라기가 눈에 서도 같은 색이 아니다. 혹왈 공산(空山)에서 낙화를 밟는다. 무엇이 이 너의 생연처(生緣處)인가, 가로되 모갑은 모처의 사람이다. 때에 그를 희롱하여 가로되 앞길에서 어떤 사람이 상좌에게 묻되 무엇이 이 불수ㆍ여각ㆍ생연의 의지(意旨)인가 하매 네가 먼 길에 공발(空鉢)을 받든 것을 가지고 그에게 대답하겠는가. 해오라기가 눈에 서도 같은 색이 아닌 것으로 그에게 대답하겠는가. 만약 모두 가져서 대답한다면 곧 불법이 혼람(混濫)할 것이며 만약 간택하여 대답한다면 곧 기사(機事)가 편고(偏枯). 그 중이 직시(直視)하며 말하는 바가 없었다. 내가 일러 가로되 설봉이 말한 것이다(雪峰道底).

 

운문고(雲門杲)가 자복(資福)에 이르자 상당을 청했다. 들되 향성순(*香城順) 화상이 차화를 송해 이르되 황룡 노화상이 저() 삼관어(三關語)가 있다 노서를 잡는다(捉老鼠). 광감영(*廣鑑英) 선사가 이 송을 봄으로 인해 이에 가로되 좋기는 곧 좋지만 다만(*) 학자가 무사(無事)라는 이회를 지어 갈까 염려스럽다. 스님이 이르되 성재(誠哉), 이 말이여. 산승이 금일 또한 저() 송자(頌子)가 있다. 황룡의 차어(此語)는 천지를 덮나니/ 종래로 전밀(縝密; 촘촘하고 빽빽함)하여 바람이 통하지 않는다/ 후곤(後昆; 후손)이 전례에 따라 그 음향을 승계하여/ 모두 말하되 고양이가 충()을 잡을 줄 안다. 자복(資福)은 곧 광감(廣鑑)의 법손(法孫).

 

第一三九八則; 위 제1034칙 불수여각정(佛手驢脚呈)을 보라. 오종록2 앙산. 남탑광용(南塔光涌) 선사가 북방을 유람하면서 임제를 참알하고 다시 돌아와 스님을 모셨다. 스님이 이르되 네가 와서 무엇하려는가. 남탑이 이르되 화상을 예배하고 뵈려 함입니다. 스님이 이르되 도리어 화상을 보는가. 남탑이 이르되 봅니다. 스님이 이르되 화상이 나귀와 어찌하여 같은가. 남탑이 이르되 모갑이 보기에도 화상이 또한 부처와 같지 않습니다. 스님이 이르되 만약 부처와 같지 않다면 이 무엇과 같은가. 남탑이 이르되 만약 같은 바가 있다면 나귀와 어찌 다르겠습니까. 스님이 크게 놀라며 이르되 범부와 성인을 둘 다 잊어야 정()이 사라지고 체가 나타난다. 내가 이것으로써 사람들을 시험하기가 20년인데 해결해 마치는 자가 없었다. 자네는 이를 보임(保任)하라. 스님이 매양 사람들에게 일러 이르되 이 자(; 남자의 통칭)는 육신불(肉身佛)이다.

黃龍; 황룡산임. 또 명칭이 보산(輔山)이니 강서 수수현 서쪽에 위치함. 상전(相傳)하기를 산정에 한 마리의 황룡이 있어 능히 바람을 부르고 비를 부른지라(呼風喚雨) 고로 명칭이 황룡산임. 당대(唐代) 회기(誨機)가 개산했음. 송대 혜남(慧南)이 일찍이 여기에 거주하면서 선법을 광홍(廣弘)했고 황룡파를 성립했음. 그 후 조심(祖心)ㆍ오신(悟新)ㆍ유청(惟淸)ㆍ지명(智明)ㆍ덕봉(德逢)ㆍ도진(道震)ㆍ법충(法忠) 등이 상계(相繼)하여 여기에 거주했고 종풍이 자못 흥성했으며 150여 년의 시절을 경력하자 법통이 비로소 쇠절(衰絶)을 고했음. 산중에 황룡원이 있으며 일명이 영안사며 지금 혜남과 조심 두 스님의 탑이 존재함 [선림승보전22, 29. 고금도서집성직방전제848].

慧南; (1002-1069) 송대승. 임제종 황룡파(黃龍派)의 개조(開祖). 신주(信州) 옥산(玉山; 강서 상요) 사람이며 속성(俗姓)은 장(). 어릴 적에 유업(儒業)을 익혔으며 경사(經史)를 박통(博通)했음. 11세에 정수원(定水院) 지란(智鑾)을 좇아 출가했으며 19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서현징식(棲賢澄諟)ㆍ운봉문열(雲峰文悅)ㆍ석상초원(石霜楚圓) 등 여러 존숙을 두루 참알(參謁)하다가 드디어 석상초원의 법을 이었음. 스님이 처음엔 동안(同安) 숭승선원(崇勝禪院)에 주()하며 개당설법(開堂說法)했는데 4()이 귀추(歸趨)했음. 오래지 않아 귀종사(歸宗寺)로 이지(移至)했는데 당우(堂宇)가 돌연(突然)히 화재를 만나 전사(全寺)가 모두 훼손(毁損)됨으로 인해 드디어 원통(寃痛)하게 옥사(獄事)에 연좌(連坐)됨을 입었음. 이자(吏者; 獄吏)가 백단(百端; 온갖 방법)으로 틈을 구했으나 스님이 이연(怡然)히 허물을 끌어당겼음. 오래 후에 사면(赦免)되어 이에 황벽(黃檗)으로 퇴거했으며 계곡 위에 적취암(積翠庵)을 축조(築造)했는데 사방에서 접종(接踵; 사람이 잇따르다)하여 이르렀음. 요청을 받아 황룡산(黃龍山) 숭은원(崇恩院)에 이르러 종풍을 크게 진작(振作)했으며 호남ㆍ호북ㆍ강서ㆍ민월(閩粤) 등의 땅에 두루 미쳤음. 이 일계통(一系統)이 곧 황룡파를 위성(蔚成)했으며 일본 임제종의 개조(開祖)인 영서(榮西)도 곧 이 한 유파(流派)에서 원출(源出)했음. 스님이 매번 공안으로 4()을 널리 제도했는데 실중(室中)에서 늘 불수(佛手)ㆍ여각(驢脚)ㆍ생연(生緣)3전어(三轉語. 은 양사)를 시설해 학인을 감험(勘驗)했음. 30여 년에 그 지취(旨趣)에 계합하는 자가 드물게 있는지라 세칭이 황룡삼관(黃龍三關). 스님이 황룡에 주()할 때 법석이 정성(鼎盛; 융성)하였으며 송() 희녕(熙寧) 2년에 입적(入寂)했으니 나이는 68. 세칭이 황룡혜남(黃龍慧南)이며 휘종(徽宗) 대관(大觀) 4(1110) 추시(追諡)하여 보각선사(普覺禪師)라 했음. 동문인 방회(方會)의 양기파(楊岐派)와 대치(對峙)하며 임제ㆍ위앙ㆍ조동ㆍ운문ㆍ법안 등 5()와 더불어 병칭(竝稱)하여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 함. 유작(遺作)에 황룡남선사어록(黃龍南禪師語錄)ㆍ어요(語要)ㆍ서척집(書尺集) 1권이 있어 행세(行世). 문하(門下)의 회당조심(晦堂祖心)ㆍ보봉극문(寶峰克文)ㆍ늑담홍영(泐潭洪英) 등은 다 선림에 치명(馳名)했음 [속전등록7. 선종정맥17. 석씨계고략4].

昂昂; 고고(孤高)하고 자여(自如)한 모양 [선림보훈음의].

遊子; 집을 떠나 멀리 노닐거나 혹 외향(外鄕)에 오래 거주하는 사람을 가리킴.

景德順; 또 명칭이 상람순(上藍順)이니 송대 황룡파승. 서촉 사람. 출가 후에 원통거눌과 동행하여 촉에 이르렀고 후에 황룡혜남(黃龍慧南)을 참해 그의 심법을 얻었음. 홍주(강서) 상람선원ㆍ경복ㆍ향성ㆍ쌍봉 여러 사찰을 역주(歷住)했음. 그의 접화(接化)가 친절하여 사람들이 순파파(順婆婆)로 호칭했음. 나이는 80여며 향성산에서 좌화(坐化)했음 [보등록4. 속전등록16].

梁原; 양원향(梁原鄉)이니 감숙성 평량시 영대현에 속함. 옛날에 양원(良原), 부원(溥原)의 명칭이 있었음. 수대(隋代)에 일찍이 양원현(良原縣)을 설립했음으로 인해 후에 연변(演變; 변화하고 발전하다)하여 양원(梁原)이라 했음 [백도백과].

八穴七穿; 또한 칠천팔혈(七穿八穴)로 지음. 역순종횡(逆順縱橫)하며 자유자재하고 통달하여 장애가 없음의 뜻. ()은 천투(穿透).

商山四友; 상산사호(商山四皓)를 가리킴. 조정사원3. 상산음(商山吟) 상산은 곧 4(; 흴 호)가 은둔한 바의 땅임. ()는 빈미(鬢眉; 귀밑털과 눈썹)가 교백(交白)이니 늙은이를 일컬음임. 4호란 것은 1은 동원공(東園公)이며 2는 기리계(綺里季)3은 하황공(夏黃公)이며 4는 녹리선생(角里先生; 은 사람 이름 록). 안사고가 가로되 4호의 칭호는 본래 한()에서 일어났으며 다시 가히 일컬을 성명이 없다 (운운).

五斗; 도잠(陶潛; 365-427) 동진 사람. 호는 연명(淵明)이며 자는 원량. 문 앞에 5()를 심고는 스스로 호하기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했음. 팽택령(彭澤令)이 되었는데 이때 군에서 독우(督郵)를 파견해 이르렀음. 현리(縣吏)는 마땅히 속대(束帶)하고 독우를 뵈어야 했음. 도잠이 이에 탄식하며 가로되 내가 능히 5()의 쌀을 위해 허리 굽혀 여리(閭里)의 소아를 향하지 못하겠다. 이에 스스로 인수(印綬; 는 인끈 수)를 풀고 떠나가서 심양의 상시(桑柴)에 거주했음. 위에 이미 나왔음.

六道四生; 6도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아수라ㆍ인간ㆍ천상 등 6종 세계를 가리키며 또 육도중생이 출생하는 형태에 의해 가히 태생ㆍ난생ㆍ습생ㆍ화생 등의 4()로 분류하며 병칭하여 64(六道四生)이라 함. 그 중에 인취(人趣)와 축생취는 각기 4생을 갖추고 귀취(鬼趣)는 태화(胎化) 2생에 통하며 일체의 지옥과 제천(諸天) 및 중유(中有)는 오직 화생함 [구사론8].

隆慶閑; 융경경한(隆慶慶閑; 1027-1081)이니 송대 황룡파승. 고전(지금 복주에 속함) 탁씨. 나이 11에 세속을 버렸고 17에 득도했으며 20에 두루 참문했음. 후에 황룡혜남(黃龍慧南)을 알현해 그의 법을 이음을 얻었음. 여릉태수 장공감의 요청으로 융경원(隆慶院)에 거주했음. 스님이 융경에 거주한 지 기년(期年; 1)도 아니되어서 종릉태수 왕공소의 요청으로 용천에 거주했음. 해를 넘기지도 않아서 병 때문에 떠남을 구했는데 여릉의 도속이 배에 실어 돌아가 융경의 동당에 거주케 하면서 모심이 더욱 두터웠음. 원풍 43월에 시적했음. 사유(闍維; 화장)하던 날에 구름이 일어나고 바람이 불어 기와를 날리고 나무를 꺾었는데 연기가 미치는 곳 동서남북 40리의 무릇 초목과 자갈 사이에서 모두 금색과 같은 사리를 얻었음. 그 획득한 바를 계산하매 거의 몇 섬이었음. 열세(閱世)55며 좌하는 36 [속전등록15. 오등회원17. 선림승보전25].

趨出; 소보(小步)로 질행(疾行)하면서 물러남이니 공경(恭敬)을 보임임.

香城順; 또 명칭이 경덕순(景德順)이니 황룡혜남의 법사. 위 경덕순(景德順)을 보라.

廣鑑英; 광감행영(廣鑑行瑛)이니 혹 행영(行英)으로 지음. 송대 황룡파승. 자는 광감(廣鑑)이며 계주 영복(광서 영복) 모씨. 본주(本州) 보리사에 의지하며 수업(受業)했고 홍주 늑담 동림 조각상총(照覺常總)을 참해 득법했고 여산 개선사에서 출세했음. 황정견이 찬()해 이르되 보리장(菩提場) 가운데의 유협(游俠)이다. 나이 40여에 적()했음 [보등록6. 오등회원17. 오등전서38].

; ()와 통함. ().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daum.net)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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