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문무고

종문무고(宗門武庫) 071

태화당 2022. 8. 20. 08:45

71駙馬都尉*李公遵勗 *心要*石門聰禪師 甞作二句頌 寄*發運朱正辭 *許式*淮南* 朱以李頌示許 請共和之 頌曰學道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朱曰 雨催樵子還家 許曰 風送漁舟到岸 又請浮山遠禪師和曰 學道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通身雖是眼睛 也待紅爐再 *鉏麑觸樹迷封 *豫讓藏身吞炭 鷺飛影落秋江 風送蘆花兩岸 諸公見大敬之 李乃自和曰 參禪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直趣無上菩提 一切是非莫管 今唯傳後一頌而已

 

李公遵勗; 詳見48李和文

心要; 心爲心髓 要爲精要 謂法門之至極也 又心性上精要之法義也

石門聰; 石門蘊聰 詳見11慈照

發運; 指水陸發運使 卽轉運使 官名 唐代以後各王朝主管運輸事務的中央或地方官職 唐先天二年(713) 李傑始爲水陸發運使 使名之起於此 宋朝自乾德(963-967)以後 始置諸道轉運使以總利權 [事文外集八 百度百科]

許式; 宋代雲門宗居士 字叔矜 蘇州(今屬江蘇)人 擧進士 官尙書祠部郞中 出知洪州 參洞山曉聰得法 嘗贈曉聰詩云 夜坐連雲石 春栽帶雨松 [居士傳二十五 五燈會元十五 名公法喜志上]

淮南; 淮水以南

; 漕運使 漕運 利用水道(河道運河和海道) 調運糧食(主要是公糧)和貨物的一種專業運輸 漕運使就是負責漕運的官員 隋唐以後歷代朝廷都十分重視運河漕運 以其爲國家經濟的命脈 [百度知道 百度百科]

心頭; 心上 心間

鉏麑觸樹迷封; 鉏麑 一亦作鉏霓 春秋時 晉國力士 左傳宣公二年 宣子驟諫 公患之 使鉏麑賊之 晨往 寢門辟矣 盛服將朝 尙早 坐而假寐 麑退 嘆而言曰不忘恭敬 民之主也 賊民之主 不忠 棄君之命 不信 有一於此 不如死也 觸槐而死 [百度漢語]

豫讓藏身吞炭; 豫讓 又作預讓 姬姓 畢氏 春秋戰國時期晉國人 是晉卿智瑤(智伯)家臣 晉出公二十二年(453) 趙韓魏共滅智氏 豫讓用漆塗身 呑炭使啞 暗伏橋下 謀刺趙襄子未遂 後爲趙襄子所捕 臨死時 求得趙襄子衣服 拔劍擊斬其衣 以示爲主復仇 然後伏劍自殺 [百度百科]

 

71부마도위(駙馬都尉) 이공준욱(*李公遵勗)은 석문총(*石門聰) 선사에게서 심요(*心要)를 얻었다. 일찍이 2구 송을 지어 발운(*發運) 주정사(朱正辭)에게 기탁했다. 때에 허식(*許式)이 회남조(*淮南*)가 되었는데 주()가 이()의 송을 허식에게 보이면서 함께 이에 화(; 和答)하자고 청했다. 송왈(頌曰) 학도(學道)는 모름지기 이 철한(鐵漢)이라야 하나니 심두(*心頭)에 착수(著手)하면 곧 판단한다. 주왈(朱曰) 비가 초자(樵子)를 최촉(催促)해 환가(還家)한다. 허왈(許曰) 바람이 어주(漁舟)를 보내어 도안(到岸)했다. 또 부산원(浮山遠; 法遠) 선사에게 화()를 청했더니 가로되 학도는 모름지기 이 철한이라야 하나니/ 심두에 착수하면 곧 판단한다/ 통신(通身; 온몸)이 비록 이 안정(眼睛)일지라도/ 또한 홍로(紅爐)에 재단(; 저본에 再煆로 지었음)함을 기다린다/ 서예(鉏麑)는 나무에 부딪치며 봉강(封疆)을 혼미했고(*鉏麑觸樹迷封)/ 예양(豫讓)은 몸을 숨기고 숯을 삼켰다(*豫讓藏身吞炭)/ 해오라기는 날며 그림자를 추강(秋江)에 떨어뜨리고/ 바람은 양안(兩岸)으로 노화(蘆花)를 전송한다. 제공(諸公)이 보고 크게 그를 공경했다. ()가 이에 스스로 화()해 가로되 참선은 모름지기 이 철한이라야 하나니/ 심두(心頭)에 착수하면 곧 판단한다/ 바로 위없는 보리(菩提)로 취향(趣向)하고/ 일체의 시비에 상관(相管)하지 말아라. 여금에 오직 뒤의 1송만 전할 따름이다.

 

李公遵勗; 상세한 것은 48이화문(李和文)을 보라.

心要; 심은 심수(心髓)가 되고 요는 정요(精要)가 되나니 이르자면 법문의 지극임. 또 심성상(心性上)의 정요(精要)한 법의(法義).

石門聰; 석문온총(石門蘊聰)이니 상세한 것은 11자조(慈照)를 보라.

發運; 수륙발운사(水陸發運使)를 가리킴. 곧 전운사(轉運使). 벼슬이름임. 당대 이후 각 왕조(王朝)에서 운수(運輸) 사무를 주관한 중앙 혹 지방의 관직. 당 선천 2(713) 이걸(李傑)이 처음으로 수륙발운사(水陸發運使)가 되었으며 사명(使名)이 여기에서 비롯했음. 송조(宋朝)에선 건덕(963-967) 이후로부터 비로소 제도(諸道)에 전운사를 설치해 이권(利權)을 총괄했음 [사문외집8. 백도백과].

許式; 송대 운문종 거사. 자는 숙긍이며 소주(지금 강소에 속함) 사람. 진사에 선발되었고 벼슬이 상서사부낭중(尙書祠部郞中)이었고 나가서 홍주를 지()했음. 동산효총(洞山曉聰)을 참해 득법했고 일찍이 효총에게 준 시에 이르되 밤에 연운석(連雲石)에 앉았고 봄에 대우송(帶雨松)을 심는다 [거사전25. 오등회원15. 명공법희지상].

淮南; 회수(淮水) 이남.

; 조운사(漕運使)를 가리킴. 조운(漕運)은 수도(水道; 河道 運河海道)를 이용하여 양식(주요는 이 公糧)과 화물을 조운(調運)하는 일종의 전업운수(專業運輸). 조운사(漕運使)는 바로 이, 조운을 부책(負責)하는 관원임. 수ㆍ당 이후 역대 조정에서 모두 운하의 조운을 십분 중시하여 그것으로 국가 경제의 명맥으로 삼았음 [백도지도. 백도백과].

心頭; 심상(心上). 심간(心間).

鉏麑觸樹迷封; 서예(鉏麑)는 한편으론 서예(鉏霓)로 지음. 춘추 시 진국(晉國)의 역사(力士). 좌전 선공(宣公) 2. 선자(宣子)가 취간(驟諫; 여러 차례 나아가 간함)했다. 선공이 이를 우환으로 여겼다. 서예(鉏麑)를 시켜 그를 죽이게() 했다. 새벽에 갔는데 침문(寢門)이 열렸다. 성복(盛服; 화려한 옷차림)하고 장차 조현(朝見)하려 하는데 아직 일러 앉아서 가매(假寐)했다. 서예가 물러나 탄식하며 말해 가로되 공경을 잊지 않으니 인민의 주(). 인민의 주를 죽이면 불충(不忠)이며 주군의 명을 버리면 불신(不信)이다. 여기에서 하나가 있으니 죽음만 같지 못하다. 홰나무에 부딪쳐 죽었다 [백도한어].

豫讓藏身吞炭; 예양(豫讓)은 또 예양(預讓)으로 지음. 희성(姬姓)이며 필씨(畢氏). 춘추전국 시기 진()나라 사람. 이는 진경(晉卿) 지요(智瑤; 智伯)의 가신(家臣). () 출공 22(453) 조한위(趙韓魏)가 함께 지씨(智氏)를 없앴음. 예양이 옻을 사용해 몸에 바르고 숯을 삼켜(呑炭) 벙어리가 되게 하였으며 몰래 다리 아래 숨어 조양자(趙襄子)를 모자(謀刺; 찔러 죽임을 도모함)했으나 이루지 못했음. 후에 조양자에게 사로잡히는 바가 되었고 죽음에 임한 때 조양자의 의복을 구득(求得)하여 검을 뽑아 그 옷을 격참(擊斬)하여 주군을 위해 복구(復仇; 복수)함을 보였음. 연후에 복검(伏劍; 검으로 스스로 벰)하여 자살했음 [백도백과].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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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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