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문무고

종문무고(宗門武庫) 086

태화당 2022. 8. 25. 08:21

86*峨嵋山白長老 嘗云 鄕人雪竇有頒百餘首 其詞意不甚出人 何乃浪得大名於世 遂作頌千首 以多十倍爲勝 自編成集 妄意他日名壓雪竇 到處求人賞音 有大和山主者 遍見當代有道尊宿 得法於*法昌遇禪師 出世住大和稱山主 氣吞諸方不妄許可 白携其頌往謁之 求一言之鑑 取信後學 大和見乃唾云 此頌如人患鵶臭當風立地 其氣不可聞 自是白不敢出似人 後黃魯直聞之 到成都大慈寺 大書於壁云 峨嵋白長老 千頌自成集 大和曾有言 鵶臭當風立

 

峨嵋山; 位於四川峨眉縣西南約七公里處 爲普賢菩薩顯靈說法之道場 又作峨眉山 蛾眉山 與五臺山 普陀山 九華山等 共稱支那四大靈山 山中聖壽萬年寺爲普賢菩薩示現之中心道場 其起源乃因晉時蒲翁見普賢菩薩顯現 遂於此山建白水普賢寺 明萬曆年間 改稱萬年寺 明淸兩代峨眉山佛敎禪宗發展至鼎盛時期 明代新建了會宗堂 大峨寺 仙峰寺 金頂華藏寺 淸初 臨濟宗破山海明法嗣貫之 可聞師徒又創建伏虎寺 峨眉山原有寺院七十餘所 幾經興廢後 現存較爲著名的禪寺 有報國寺 萬年寺 洪椿坪

法昌遇; 倚遇(1005-1081) 宋代雲門宗僧 漳州(今屬福建)林氏 自幼依郡之崇福得度 有大志 受具遊方 名著叢席 參南嶽谷泉 返潭州北禪 參智賢 喜其機語捷健 乃傾心師事甚久 晩至西山棲息三年 後住洪州法昌老屋數間 刀耕火種 安樂於道 [聯燈會要二十八 宗統編年二十六 續傳燈錄五]

 

86아미산(*峨嵋山) 백장로(白長老)가 일찍이 이르되 향인(鄕人)인 설두가 송()이 백여수(百餘首) 있거니와 그 사의(詞意)가 사람을 초출(超出)할 무엇이 아닌데 어찌해서 이에 맹랑(孟浪; 터무니없다)하게도 세상에서 대명(大名)을 얻는가 하고는 드디어 송()을 천수(千首) 지었는데 10배의 많음으로써 승리를 삼아 스스로 편집(編輯)해 문집(文集)을 만들었고 망령(妄靈)된 뜻으로 다른 날에 이름이 설두를 누르고자 하였으며 이르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상음(賞音; 은 구경할 상)을 요구(要求)했다. 대화산주(大和山主)란 자가 있었으니 두루 당대(當代)의 도가 있는 존숙(尊宿)을 친견했으며 법창우(*法昌遇) 선사에게서 법을 얻었고 출세(出世)해 대화(大和)에 거주하면서 산주(山主)라고 일컬었는데 기()가 제방(諸方)을 삼켰으며 망령되이 허가(許可; 印可)하지 않았다. ()이 그의 송()을 가지고 가서 그를 예알(禮謁)했는데 한마디의 감식(鑑識)을 구해 후학(後學)에게 믿음을 취하고자 했다. 대화(大和)가 보고서 이에 침 뱉고 이르되 이 송()은 마치 사람이 병환(病患)으로 까마귀 냄새가 나는데(鵶臭) 바람을 맞으며 땅에 서면 그 취기(臭氣)를 가히 맡을 수 없음과 같다. 이로부터 백()이 감히 끄집어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다. 후에 황노직(黃魯直; 黃庭堅)이 이를 듣고 성도(成都) 대자사(大慈寺)에 이르러 벽에다 대서(大書)하여 이르되 아미(峨嵋) 백장로가/ 천 송을 스스로 편집함을 이루었다/ 대화(大和)가 일찍이 말이 있었으니/ 아취(鵶臭)로 바람을 맞으며 섰다.

 

峨嵋山; 사천 아미현 서남 약 7곳에 위치함. 보현보살이 현령(顯靈)하여 설법하는 도량이 됨. 또 아미산(峨眉山)ㆍ아미산(蛾眉山)으로 지음. 오대산ㆍ보타산ㆍ구화산 등과 더불어 공칭(共稱) 지나의 4대 영산(靈山). 산중에 성수만년사는 보현보살이 시현하는 중심 도량이 됨. 그 기원은 곧 진시(晉時)에 포옹(蒲翁)이 보현보살의 현현(顯現)을 봄으로 인해 드디어 이 산에 백수보현사를 건립했고 명 만력년 간 만년사로 개칭했음. 명ㆍ청 양대(兩代)의 아미산은 불교의 선종이 발전하여 정성(鼎盛; 全盛)한 시기에 이르렀음. 명대에 새로 회종당ㆍ대아사ㆍ선봉사ㆍ금정화장사를 건립했음. 청초에 임제종 파산해명의 법사 관지(貫之)와 가문(可聞)ㆍ사도(師徒)가 또 복호사를 창건했음. 아미산엔 원래 사원 70여 소가 있었는데 몇 번의 흥폐(興廢)를 경력한 후 현존하는, 상당히 저명한 선사(禪寺)로는 보국사ㆍ만년사ㆍ홍춘평(洪椿坪).

法昌遇; 의우(倚遇; 1005-1081)니 송대 운문종승. 장주(지금 복건에 속함) 임씨(林氏). 어릴 적부터 군()의 숭복(崇福)에게 의지해 득도(得度)했으며 대지(大志)가 있었음. 수구(受具)하고 유방(遊方)하며 이름이 총석(叢席)에 드러났음. 남악곡천(南嶽谷泉)을 참알했다가 담주(潭州)의 북선(北禪)으로 돌아와 지현(智賢)을 참알했는데 그의 기어(機語)가 첩건(捷健)함을 좋아해 곧 마음을 기울여 사사(師事)함이 매우 오래였음. 만년에 서산에 이르러 서식(棲息)하기 3년이었고 후에 홍주 법창(法昌)의 낡은 가옥 수간(數間)에 거주하면서 도경화종(刀耕火種)하며 도에 안락(安樂)했음 [연등회요28. 종통편년26. 속전등록5].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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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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