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功輔自當塗〈太平州也〉*絕江 *訪*白雲端和尙于海會 白雲問公 牛淳乎 公曰淳矣 白雲叱之 公拱而立 白雲曰 淳乎淳乎 *南泉*大潙 無異此也 仍贈以偈曰 牛來山中 水足草足 牛出山去 東觸西觸 又曰 上大人 化三千 可知禮也〈行狀〉
●絕江; 直渡也
●訪白雲; 郭功輔 乃現宰官身而作佛事 可謂在欲而無欲 居塵不染塵 亦是他宿植德本 有大因緣 故致根塵脫繫 一念無依 到此橋斷路窮 不免求人指示 故訪白雲於海會 白具通方正眼 運匠石之功 施無礙之辯 便問公牛淳乎 以公曾經大冶鎚鉗 已到不疑之地 謂全身擔荷 脫體承當 向他道淳矣 白雲居養子之緣 婆心太切 只恐他見道未穩 故以雷轟電掣之機 振地威雄之勢而叱之 可謂把關須用精嚴吏 不驗分明不放行 正如疾風知勁草 烈火辨眞金 公已是鼻孔撩天 脚跟點地的人 縱是八面風吹他不動 得處穩密 何妨八面風吹 見地唯深 豈懼四山來合 遂拱而立 謂得處自然忘計較 拈來全不費工夫 白雲到此 雪後始知松柏操 事難方顯丈夫兒 車不橫推 理無曲斷 滿口許他道 淳乎淳乎 南泉大潙無異此也 仍贈一偈 前二句頌他見地明白 謂饑飡嫩草遙山去 渴飮寒泉遶㵎廻 後二句 頌他放曠今時 謂放曠不耕空劫地 暮天何用牧歌催 又曰 上大人者 一是歸美之辭 二是出身活句 可謂大冶精金 還他作者
●白雲端; 舒州 白雲守端禪師 衡陽葛氏子 嗣楊岐方會禪師 南嶽下十二世
●南泉; 池州南泉普願禪師 鄭州新鄭王氏子 嗣馬祖道一禪師 一日上堂示衆云 王老師牧一頭水牯牛 擬向溪東牧 不免犯官家苗稼 擬向溪西牧 亦不免犯官家苗稼 不如隨分納些些 總不見得也
●大潙; 潭州潙山靈祐禪師 福州長溪趙氏子 嗣百丈懷海禪師 一日上堂曰 老僧百年後 向山下檀越家作一水牯牛 右脇書五字 潙山僧某甲 當時喚作潙山僧 却是水牯牛 喚作水牯牛 却是潙山僧 畢竟喚作甚麽卽得 仰山出衆 禮拜而退
【38】 공보(功輔; 郭正祥)가 당도(當塗)〈태평주(太平州; 지금의 安徽 當塗)다〉로부터 절강(*絕江)하여 해회(海會; 海會禪院)에서 백운단 화상을 참방(參訪)했다(*訪*白雲端和尙). 백운이 공(公)에게 묻되 소(牛)가 순(淳; 순박하다)한가. 공왈(公曰) 순(淳)합니다. 백운이 꾸짖었다. 공(公)이 공수(拱手)하고 섰다. 백운이 가로되 순한가(淳乎), 순한가. 남천(*南泉)과 대위(*大潙)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하여(仍) 게를 주어(贈) 가로되 소가 산중에 오니/ 물도 족하고 풀도 족하다/ 소가 산을 나가니/ 동쪽에 부딪히고 서쪽에 부딪힌다. 또 가로되 상대인(上大人) 화삼천(化三千)하니 가히 예를 안다(可知禮也) 〈行狀〉
●絕江; 직도(直渡)다.
●訪白雲; 곽공보(郭功輔)는 곧 재관신(宰官身)을 나타내어 불사를 지었으니 가위(可謂) 재욕(在欲)하면서 무욕(無欲)이며 거진(居塵)하면서 염진(染塵; 紅塵에 오염)되지 않았다. 역시(亦是) 그는 숙세(宿世)에 덕본(德本)을 심었고 큰 인연이 있는지라 고로 근진(根塵)의 계박(繫縛)을 벗어나고 일념도 의지함이 없음에 이르렀다(致). 여기에 이르러 다리가 끊어지고 길이 다해(橋斷路窮) 타인의 지시(指示)를 구함을 면하지 못한지라 고로 해회(海會)에서 백운을 참방했다. 백운은 통방(通方)의 정안(正眼)을 갖추어 장석(匠石)의 공(功)을 운행하고 무애(無礙)의 변(辯)을 베풀어 곧 공(公)에게 묻되 소가 순(淳)한가. 공은 일찍이 대야(大冶; 매우 불리다)의 추겸(鎚鉗)을 겪고 이미 불의지지(不疑之地)에 이르렀으니 이르자면 전신(全身)으로 담하(擔荷)하고 탈체(脫體; 전체)로 승당(承當)하여 그를 향해 말하되 순(淳)합니다. 백운이 양자지연(養子之緣)에 거처하면서 파심(婆心)이 매우 간절하여(太切) 다만 그의 견도(見道)가 미온(未穩)할까 염려한지라 고로 뇌굉전체(雷轟電掣)의 기(機)로써 땅을 진동하는 위웅(威雄)의 기세(氣勢)로 꾸짖었으니 가위(可謂) 파관(把關)은 모름지기 정엄(精嚴)한 관리(官吏)를 써서 분명함을 증험(證驗)하지 못하면 방행(放行; 통행을 準許)하지 않았고 바로 질풍(疾風)이 경초(勁草)를 알고 열화(烈火)가 진금(眞金)을 분변함과 같았다. 공(公)은 이미 이 비공요천(鼻孔撩天)하고 각근점지(脚跟點地)한 사람인지라 비록 이 팔면풍(八面風)이 그에게 불어도 부동(不動)하였다. 득처(得處)가 온밀(穩密)하거늘 어찌 팔면풍이 불매 방애(妨礙)되며 견지(見地)가 오직 깊거늘 어찌 사산(四山; 四面에 둘려 있는 산들)이 와서 합함을 두려워하겠는가. 드디어 공수(拱手)하고 섰다. 이르자면 득처(得處)는 자연히 계교(計較)를 잊었고 염래(拈來)하매 완전히 공부(工夫)를 허비하지 않는다. 백운이 여기에 이르러 설후(雪後)에 비로소 송백의 절조(節操)를 알고 일이 어려워야 바야흐로 장부아(丈夫兒; 兒는 조사)를 나타내며 수레는 가로로 밀지 못하고 이치는 굽게 끊지 못하는지라 만구(滿口)에 그를 허가(許可)하여 말하되 순(淳)한가, 순한가. 남천(南泉)과 대위(大潙)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인하여(仍) 1게를 주었다(贈). 앞 2구는 그의 견지(見地)가 명백함을 송했으니 이르자면 주리면 눈초(嫩草)를 먹으며 요산(遙山; 산을 逍遙)하며 가고 목마르면 한천(寒泉)을 마시며 요간(遶㵎)하며 돌아온다. 뒤 2구는 그의 방광(放曠)하는 금시(今時)를 송했으니 이르자면 방광(放曠)하며 공겁(空劫)의 땅을 갈지(耕) 않거늘 모천(暮天)에 어찌 목가(牧歌)를 최촉(催促; 催. 저본에 摧로 지었음)함을 쓰겠는가. 또 가로되 상대인(上大人)이라 한 것은 1은 이 귀미지사(歸美之辭)며 2는 이 출신(出身)의 활구(活句)다. 가위(可謂) 매우 불린 정금(大冶精金)은 저 작자(作者)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白雲端; 서주(舒州) 백운(白雲; 백운산) 수단선사(守端禪師; 1025-1072)니 형양(衡陽) 갈씨(葛氏)의 아들이다. 양기(楊岐; 양기산) 방회선사(方會禪師)를 이었으니 남악하 12세다.
●南泉; 지주(池州; 지금의 安徽 貴池) 남천(南泉; 남천산) 보원선사(普願禪師; 748-834)니 정주(鄭州) 신정(新鄭) 왕씨의 아들이며 마조 도일선사(道一禪師; 南嶽懷讓을 이었음)를 이었다. 어느 날 상당하여 시중(示衆)해 이르되 왕노사(王老師)가 1두(頭; 양사)의 수고우(水牯牛; 물소)를 기른다(牧). 계동(溪東)을 향해서 방목(放牧)하려니 관가(官家)의 묘가(苗稼; 곡식)를 범함을 면하지 못하고 계서(溪西)를 향해 방목하려니 또한 관가의 묘가를 범함을 면치 못한다. 수분(隨分)하여 조금(些些) 수납(受納)하고 모두 견득(見得)하지 않음만 같지 못하다.
●大潙; 담주(潭州) 위산(潙山) 영우선사(靈祐禪師; 771-853)니 복주(福州) 장계(長溪) 조씨(趙氏)의 아들이며 백장(百丈; 백장산) 회해선사(懷海禪師)를 이었다. 어느 날 상당하여 가로되 노승이 백년후(百年後; 死滅後) 산 아래 단월가(檀越家)를 향해 한 마리 수고우(水牯牛)가 되리라. 우협(右脇)에 5자(字)를 썼으니(書) 위산승모갑(潙山僧某甲)이다. 당시에 위산승이라고 불러 지으면 도리어 이 수고우며 수고우라고 불러 지으면 도리어 이 위산승이다. 필경 무엇이라고 불러 지어야 곧 옳겠는가(卽得). 앙산(仰山)이 대중에서 나와 예배하고 물러났다.
上大人 化三千; 具云 上大人丘乙己 化三千七十士 爾小生八九子 佳作仁可知禮也 現今解意紛紜 未有確信的定說 大慧書栲栳珠云 此孔子上其父書也 上大人(上 上書大人 謂叔梁紇) 丘(聖人名) 乙己化三千七十士爾(乙 一通 言一身所化士如許) 小生八九子佳(八九七十二也 言弟子三千中 七十二人更佳) 作仁(作猶爲也) 可知禮也(仁禮相爲用 言七十子善爲仁 其於禮可知)
갖추어 이르자면 상대인구을기(上大人丘乙己) 화삼천칠십사(化三千七十士) 이소생팔구자(爾小生八九子) 가작인가지례야(佳作仁可知禮也)임. 현금에 해의(解意)가 분운(紛紜)하여 확신적인 정설(定說)이 있지 않음. 대혜서고로주(大慧書栲栳珠; 일본 無著道忠 著)에 이르되 이는 공자가 그 아버지에게 올린 글이다. 상대인(上大人; 上은 대인에게 글을 올림이니 이르자면 叔梁紇임)하오니 구(丘; 聖人의 이름)가 을기화삼천칠십사이(乙己化三千七十士爾; 乙은 一과 통함. 말하자면 一身으로 교화한 바의 사내가 이와 같음)니다. 소생팔구자가(小生八九子佳; 八九는 七十二니 말하자면 제자 3천 중에 72인이 다시 아름답다)니 작인(作仁; 作은 爲와 같음)하여 가지례야(可知禮也; 仁과 禮를 서로 씀이 됨이니 말하자면 70의 제자가 잘 仁을 지어 그 禮를 가히 안다)이다.
宰官; 一周代冢宰的屬官 二泛指官吏 三特指縣官 此指二
1. 주대(周代) 총재(冢宰)의 속관(屬官). 2. 널리 관리를 가리킴. 3. 특별히 현관(縣官)을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根塵; 指六根(眼耳鼻舌身意)與 六塵(色聲香味觸法) 又作根境
6근(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의)과 6진(색ㆍ성ㆍ향ㆍ미ㆍ촉ㆍ법)을 가리킴. 또 근경(根境)으로 지음.
通方; 通大方 通方便 又通達 方 大方 方便
대방을 통달함. 방편을 통달함. 또 통달. 방(方)은 대방, 방편.
匠石; 指石的巧匠 出自莊子徐無鬼 後亦用以泛稱能工巧匠 ▲莊子徐無鬼 莊子送葬 至惠子之墓 顧謂從者曰 郢人以堊慢其鼻端 若蠅翼 使匠石斵之 匠石運斧成風而斵之 盡堊而鼻不傷 郢人立不失容
돌의 교장(巧匠)을 가리킴. 장자 서무귀로부터 나왔음. 후에 또한 공작에 능한 교장(巧匠)의 범칭(泛稱)으로 쓰였음. ▲장자 서무귀. 장자가 송장(送葬)하다가 혜자의 묘에 이르렀다. 종자(從者)를 돌아보고 일러 가로되 영인(郢人)이 악(堊; 흰흙. 백토)을 그 코 끝에 칠했는데 파리의 날개와 같았다. 장석(匠石)을 시켜 그것을 깎게 했다. 장석이 도끼를 휘둘러 바람을 이루면서 그것을 깎았다. 백토가 없어졌지만 코는 상하지 않았으며 영인도 선 채 안용을 잃지 않았다.
鎚鉗; 又作鉗鎚 鉗 鐵鋏 鎚 鐵鎚 兩者皆爲鍛鍊金屬所必使用之器具 禪宗用以比喩師家敎導弟子之嚴格
또 겸추(鉗鎚)로 지음. 겸(鉗)은 쇠집게며 추(鎚)는 쇠망치. 양자는 다 금속을 단련하는 곳에서 반드시 사용하는 기구. 선종에서 사가가 제자를 교도하면서의 엄격함의 바유로 씀.
承當; 承受機緣 領悟禪法
기연을 승수(承受)하여 선법을 영오(領悟)함.
養子之緣; 養育子息之緣 喩師家慈悲之深
자식을 양육하는 인연이니 사가의 자비가 깊음에 비유.
婆心; 同老婆心 指禪師接引學人 唯恐其不能領悟 多用言句施設 一片慈悲心腸
노파심과 같음. 선사가 학인을 접인하면서 오직 그가 능히 영오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다분히 언구의 시설을 쓰는 한 조각의 자비의 심장을 가리킴.
雷轟電掣; 轟 象聲詞 轟響 電掣 電光閃過
굉(轟)은 상성사(象聲詞)니 굉향(轟響)이며 전체(電掣)는 전광(電光)이 번쩍이며 지나감.
鼻孔撩天; 與鼻孔遼天同義 意謂省悟禪法 超然脫世 撩天沖向天際 飛向天空
비공요천(鼻孔遼天)과 같은 뜻. 뜻으로 이르자면 선법을 성오(省悟)하여 초연히 세상을 벗어나 요천(撩天; 하늘을 취하다)하면서 하늘 가를 향해 올라 천공을 향해 비행함.
脚跟點地; 脚跟 卽脚之後跟 於禪林常轉指本來自我 脚跟點地 指前後際斷 徹見本來面目 一切功夫皆有著落
각근은 곧 발의 뒤꿈치. 선림에선 늘 전(轉)하여 본래의 자아를 가리킴. 각근점지는 전후제가 끊어져 철저히 본래면목을 보아서 일체의 공부가 다 착락(著落; 결과)이 있음을 가리킴.
工夫; 或作功夫 謂參禪也
혹 공부(功夫)로 지음. 참선을 말함.
放曠; 一無限時空 廣大無邊 二豪放曠達 不拘禮俗 此指二
1. 무한한 시간과 공간. 광대무변. 2. 호방광달(豪放曠達)하여 예속(禮俗; 예의범절에 관한 풍속)에 구애되지 않음. 여기에선 2를 가리킴.
空劫; 四劫之第四 世界自成立至破壞之間 分爲成劫 住劫 壞劫 空劫等四階段 稱爲四劫 空劫 卽謂此時期之世界已壞滅 於欲界與色界之有情有色身者之中 唯存色界第四禪天 其他則全然虛空 又世界形成以前而萬物未生之時期 亦稱爲空劫 [俱舍論十二 瑜伽師地論二 立世阿毘曇論九]
4겁의 제4. 세계가 성립함으로부터 파괴에 이르는 사이를 나누어 성겁ㆍ주겁ㆍ괴겁ㆍ공겁 등의 4계단으로 삼는데 일컬어 4겁이라 함. 공겁은 곧 이르자면 이 시기의 세계는 이미 괴멸하여 욕계와 색계의 유정에 색신이 있는 자 중에 오직 색계의 제사선천(第四禪天)만 생존하고 기타는 곧 전연(全然; 완전히) 허공임. 또 세계가 형성되기 이전에 만물이 나지 아니한 시기를 또한 일컬어 공겁이라 함 [구사론12. 유가사지론2. 입세아비담론9].
出身; 省悟 徹悟
성오. 철오.
作者; 同作家 機用傑出的禪家高手
작가와 같음. 기용(機用)이 걸출한 선가의 고수.
王老師; 池州南泉之普願禪師 姓王氏 承馬祖之法 弘道於南泉 常自稱王老師
지주 남천의 보원선사는 성이 왕씨며 마조의 법을 승계했고 남천에서 홍도(弘道)했는데 늘 자칭이 왕노사였음.
卽得; 得 適合 適當 正好 可
득(得)은 적합. 적당. 정호(正好). 가(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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