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합주

선림보훈합주 071

태화당 2022. 9. 30. 08:06

71 眞淨文和尙 久參黃龍 初有不出人前之言 後受洞山請 道過西山 訪*杳城順和尙 順戲之曰 *諸葛昔年稱隱者 茅廬堅請出山來 松華若也沾春力 根在深岩也著開 眞淨謝而退順語錄

香城順; 西山香城景順禪師 蜀州人也 嗣黃龍南禪師 乃坐脫於香城

諸葛; 諸葛亮 字孔明 瑯琊人 躬耕於南陽之西臥龍崗 與徐庶爲友 時劉玄德屯兵於新野 庶見之告曰 諸葛孔明臥龍也 將軍盍往見之 此人可以就見 不可以屈 由是玄德遂詣亮所 凡三往而從之 遂拜爲軍師 後爲蜀漢相

 

71 진정문(眞淨文; 克文) 화상이 오래 황룡을 참()했고 처음엔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으나 후에 동산(洞山)의 청()을 수락(受諾)했다. 길이 서산(西山)을 지나는데() 향성순(*杳城順; 景順) 화상을 참방했다. 경순(景順)이 그를 희롱해 가로되 제갈(*諸葛)이 석년(昔年)에 은자(隱者)라고 일컫더니/ 모려(茅廬)에서 견청(堅請)하매 출산(出山)하여 왔다/ 송화(松華)가 만약에 춘력(春力)을 더한다면()/ 뿌리가 심암(深岩)에 있으면서 또한 개화하리라(著開). 진정이 감사하며 물러났다. 順語錄.

香城順; 서산 향성(香城) 경순선사(景順禪師)니 촉주(蜀州; 지금의 四川 崇慶縣) 사람이며 황룡남(黃龍南; 慧南이니 楚圓의 법사) 선사를 이었고 이에 향성(香城)에서 좌탈(坐脫; 앉아서 遷化)했다.

諸葛; 제갈량(諸葛亮; 181-234)이니 자가 공명(孔明)이며 낭야(瑯琊) 사람이다. 남양(南陽)의 서쪽 와룡강(臥龍崗)에서 몸소 경작하며 서서(徐庶)와 더불어 벗이 되었다. 때에 유현덕(劉玄德)이 신야(新野)에 둔병(屯兵)하자 서서(徐庶)가 이를 보고 고()해 가로되 제갈공명(諸葛孔明)은 와룡(臥龍)입니다. 장군(將軍)이 어찌하여 가서 그를 보지 않습니까. 이 사람은 가이(可以) 나아가서 상견해야 하나니 가히 굴종(屈從)케 하지 못합니다. 이로 말미암아 현덕이 드디어 제갈량(諸葛亮; )의 처소로 나아갔는데 무릇 세 번 가자 이를 좇았다. 드디어 제배(除拜)하여 군사(軍師)로 삼았고 후에 촉한(蜀漢)의 승상(丞相; )이 되었다.

 


徐庶; (-230) 字元直 豫州潁川(治今河南省禹州市)人 東漢末年劉備帳下謀士 後歸曹操 徐庶本名徐福 [百度百科]

(-230) 자는 원직(元直)이며 예주 영천(治所는 지금의 하남성 우주시) 사람. 동한 말년 유비 장하(帳下)의 모사(謀士)였으나 후에 조조에게 돌아갔음 서서는 본명이 서복(徐福)이었음. [백도백과].

 

劉玄德; 劉備(161-223) 字玄德 東漢末年幽州涿郡涿縣(今河北省涿州市)人 西漢中山靖王劉勝的後代 三國時期蜀漢開國皇帝 政治家 史家又稱他爲先主 [百度百科]

유비(劉備; 161-223)의 자가 현덕(玄德)이니 동한 말년 유주 탁군 탁현(지금의 하북성 탁주시) 사람. 서한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의 후대임. 삼국시기 촉한의 개국황제며 정치가. 사가(史家)에서 또 그를 일컬어 선주(先主)라 함 [백도백과].

 

軍師; 師 掌握專門知識或精通某種技術的人 如廚師 技師 工程師

()는 전문지식을 장악하거나 혹 모종의 기술에 정통한 사람이니 주사ㆍ기사ㆍ공정사 같은 것.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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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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