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靈源謂*長靈卓和尙曰 道之行固自有時 昔慈明放意於荊楚間 含耻忍垢 見者忽之 慈明笑而已 有問其故 對曰 *連城與瓦*礫相觸 予固知不勝矣 逮見*神鼎後 譽播叢林 終起臨濟之道 嗟乎 道與時也 苟可强乎〈筆帖〉
●長靈卓; 東京天寧長靈守卓禪師 泉州莊氏子 嗣靈源淸禪師 南嶽十四世
●連城; 趙有卞和璧 秦昭王欲以十二連城貿之 趙遣相如送之入秦 相如視秦王惟有愛璧之心 而無割城之意 乃詐曰 璧有瑕 請示之 玉授璧與相如 如將璧却倚柱立 怒髮衝冠 謂曰 臣聞布衣之交 尙不忍相欺 況大國乎 王若急臣 臣頭璧俱碎於柱 王恐璧碎 使人扶相如起
●礫; 小石也
●神鼎; 潭州神鼎洪諲禪師 襄水扈氏子 嗣首山念禪師 南嶽下九世 尋常一衲 以度寒暑 後隱衡嶽 有一貴豪來山遊 見師氣貌閑靜 一鉢無餘 遂拜請住神鼎 十年枯淡 室無升米 一鉢挂壁 日收盞飯 一枯木床爲法座 殘僧數輩圍之 始終如此 後宗風大振 門弟子氣吞諸方 由是慈明 髮長不剪 敝衣而特往見鼎 鼎曰 汾陽有西河師子是否 慈明指後厲聲曰 屋倒矣 鼎回顧相視 慈明坐脫隻履而視之 鼎老忘問 又失公所在 慈明遂整衣且行且日 見面不如聞名 遂去 鼎遣人追之不返 鼎嘆曰 汾陽有此兒也 慈明自此名重四方
【90】 영원(靈源; 惟淸)이 장령탁(*長靈卓) 화상에게 일러 가로되 도를 행함엔 이에(固) 저절로 시절이 있다. 지난날(昔) 자명(慈明; 楚圓)이 형초(荊楚; 현재 호북성을 가리킴) 사이에 방의(放意)하면서 치욕(恥辱; 耻)을 머금고(含) 구오(垢汙: 垢)를 인수(忍受; 忍)했다. 보는 자가 그를 경홀(輕忽)히 여기자 자명이 웃을 따름이었다. 어떤 이(有)가 그 연고를 묻자 대왈(對曰) 연성(*連城)과 와력(瓦*礫)이 상촉(相觸)하면 내가 이에(固) 이기지 못할 줄 안다. 신정(*神鼎)을 상견한 후에 이르러(逮) 명예가 총림에 전파(傳播)되었고 마침내 임제의 도를 일으켰다. 차(嗟; 탄식)라, 도와 시(時)를 참으로(苟) 가히 억지로 하겠는가. 〈筆帖〉
●長靈卓; 동경(東京; 開封) 천녕(天寧) 장령(長靈) 수탁선사(守卓禪師; 1065-1123)니 천주(泉州; 지금의 복건성 천주) 장씨(莊氏)의 아들이며 영원청(靈源淸) 선사를 이었으니 남악 14세다.
●連城; 조(趙)에 변화벽(卞和璧)이 있었다. 진소왕(秦昭王; 前 325-前 251. 재위 前 307-前 251)이 12연성(連城)으로써 그것과 바꾸고(貿) 싶어했다. 조(趙)에서 상여(相如; 藺相如)를 보내어 그것을 호송하여 입진(入秦)케 했다. 상여가 진왕(秦王)을 보매 오직 애벽지심(愛璧之心)만 있고 할성지의(割城之意)가 없었다. 이에 속이어(詐) 가로되 벽(璧)에 하(瑕; 옥의 티)가 있으니 청하여 그것을 보이겠습니다. 왕이 벽(璧)을 상여에게 주었다. 상여가 벽을 가지고 도리어 기둥에 기대어 섰다. 노발(怒髮)이 충관(衝冠)했다. 일러 가로되 신(臣)이 듣건대 포의지교(布衣之交; 평민 간의 友誼)도 오히려 상기(相欺)를 참지 못한다 했거늘 하물며 대국(大國)이겠습니까. 왕이 만약 급박(急臣)한다면 신(臣)의 머리와 벽(璧)이 모두 기둥에 부서질 것입니다. 왕이 벽이 부서질까 염려하여 사람을 시켜 상여를 도와(扶) 일으키게 했다.
●礫; 소석(小石)이다.
●神鼎; 담주(潭州) 신정(神鼎; 신정사) 홍인선사(洪諲禪師)니 양수(襄水) 호씨(扈氏)의 아들이며 수산념(首山念; 省念이니 風穴延沼의 法嗣) 선사를 이었으니 남악하 9세다. 심상(尋常)에 1납(衲)으로 한서(寒暑)를 지냈고 후에 형악(衡嶽)에 은거했다. 1귀호(貴豪; 貴戚豪門)가 있어 산에 와 유람하다가 스님의 기모(氣貌)가 한정(閑靜)하고 1발(鉢)에 나머지가 없음을 보고 드디어 예배하고 청해 신정(神鼎)에 주(住; 住持)하게 했다. 십 년 동안 고담(枯淡)했고 실내에 승미(升米)가 없었고 1발(鉢)만 벽에 걸렸고 하루에 잔반(盞飯)을 거두었고 1고목상(枯木床)을 법좌로 삼았고 잔승(殘僧) 수배(數輩)가 위요(圍遶)했고 시종 이와 같았다. 후에 종풍을 대진(大振)했고 문제자(門弟子)는 기(氣)가 제방(諸方)을 삼켰다. 이로 말미암아 자명(慈明)이 두발(頭髮)을 길러 자르지 않고 해진 옷으로 특별히 가서 신정(神鼎; 洪諲)을 상견했다. 신정이 가로되 분양(汾陽)에 서하사자(西河師子)가 있다던데 그런가. 자명이 뒤를 가리키며 사나운 소리로 가로되 집이 무너졌습니다(倒). 신정이 돌아보며 상시(相視)했다. 자명이 앉아서 척리(隻履)를 벗고 이를 보았다. 정로(鼎老)가 질문을 잊었고 또 공(公; 자명)의 소재(所在)도 잃었다. 자명이 드디어 정의(整衣)하고 차행(且行)하고 차왈(且曰; 저본에 且日로 지었음)하되 얼굴을 봄이 이름을 들음만 같지 못합니다. 드디어 떠났다. 신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따르게(追) 했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신정이 탄식하며 가로되 분양(汾陽)에 이런 남아(男兒; 兒)가 있는가. 자명이 이로부터 사방에 명성이 현혁(顯赫; 重)했다.
卞和; 又作和氏 春秋時楚國人 是和氏璧的發現者
또 화씨(和氏)로 지음. 춘추 시 초국(楚國) 사람이니 이는 화씨벽(和氏璧)을 발현(發現; 찾아냄)한 자임.
且; 發辭也 又只也 却也 禪宗典籍中常用且字 如且住(暫且停止) 且莫(暫且莫要 或作罷之意) 且道(試說看) 且如(例如) 且說(轉語詞) 且置(暫且擱置)等語 其用法與語意竝無一定
발사(發辭)임. 또 지(只)임. 각(却)임. 선종 전적 중에 차자(且字)를 상용함. 예컨대(如) 차주(且住; 暫且 정지)ㆍ차막(且莫; 暫且 莫要, 혹 罷의 뜻을 지음)ㆍ차도(且道; 시험삼아 설해 보라)ㆍ차여(且如; 例如)ㆍ차설(且說; 轉語詞)ㆍ차치(且置; 暫且 擱置) 등의 말임. 그 용법과 의의는 모두 일정함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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