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靈源謂黃太史曰 古人云 抱火措於積薪之下 而𥨊其上 火未及然 固以爲安 此誠喻安危之機死生之理 明如杲日 間不容髮 夫人平居燕處 罕以生死禍患爲慮 一旦事出不測 方頓足*扼腕而捄之 終莫能濟矣〈筆帖〉
●古人云; 漢文帝 六年 淮南厲王長謀反 廢處蜀郡 嗔恚不食死 梁太傅賈誼上疏曰 臣竊惟事勢 可爲痛哭者一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 若其他背理而傷道者 難徧以疏擧 進言者皆言 天下已安已治矣 臣獨以爲未也 曰安且治者 非愚則諛 皆非事實知治亂之體者也 夫抱火厝之積薪之下 而𥨊其上 火未及燃 固爲之安 方今之勢 何以異此 本末舛逆 首尾衡決 國制搶攘 非甚有紀 陛下何不壹令臣得熟數之於前 因陳治安之䇿 試詳擇焉
●扼腕; 上持也 下手腕也 謂跌脚捶胸 以手持腕 救之晚矣
【91】 영원(靈源; 惟淸)이 황태사(黃太史; 黃庭堅)에게 일러 가로되 고인이 이르되 불을 안아(抱) 적신(積薪)의 아래 두고 그 위에 잠들면서(𥨊) 불이 연소(燃燒; 然)함에 미치지(及) 아니하여서는 이에(固) 안전함으로 삼는다. 이것은 참으로(誠) 안위지기(安危之機)와 사생지리(死生之理)의 밝기가 고일(杲日)과 같아서 사이에 머리카락도 용납하지 않음에 비유함이다. 무릇 사람이 평소 연처(燕處; 편안한 곳)에 거처하면서 생사의 화환(禍患)을 우려(憂慮)함이 드물다가 일단(一旦)에 일이 불측(不測)에서 나오면 바야흐로 돈족(頓足)하고 액완(*扼腕)하며 그것을 구원(救援; 捄)하려고 하지만 마침내 능히 구제(救濟)하지 못한다. 〈筆帖〉
●古人云; 한(漢; 西漢) 문제(文帝) 6년(前 174) 회남(淮南) 여왕(厲王) 장(長; 劉長)이 모반(謀反)했다. 폐(廢)하여 촉군(蜀郡)에 거처케 했더니 진에(嗔恚)로 먹지 않고 죽었다. 양(梁; 梁懷王)의 태부(太傅) 가의(賈誼)가 상소(上疏)하여 가로되 신(臣)이 가만히(竊) 사세(事勢)를 사유(思惟; 惟)하건대 가히 통곡할 것이 하나며 가히 유체(流涕)할 것이 둘이며 가히 장태식(長太息; 길고 크게 歎息)할 것이 여섯입니다. 만약 기타의 배리(背理; 도리를 배반)하여 상도(傷道; 도를 傷害)하는 것은 두루 소(疏)로써 열거(列擧; 擧)하기 어렵습니다. 진언(進言)하는 자가 다 말하되 천하가 이미 안정(安定; 安)되고 이미 다스려졌다(治) 히지만 신(臣)은 홀로 아니라고 합니다(爲未). 가로되 안(安)이라 하거나 또(且) 치(治)라고 하는 자는 어리석지(愚) 않으면 곧 아첨함(諛)이니 모두(皆) 사실(事實)로 치란(治亂)의 체(體)를 알지 못하는 자입니다. 무릇 포화(抱火)하여 적신(積薪)의 아래에 두고(厝; 둘 조) 그 위에 잠들면서 불이 연소(燃燒; 燃)함에 미치지 아니하여서는 이에(固) 안전함으로 삼습니다만 방금지세(方今之勢)가 어찌(何以) 이것과 다르다 하겠습니까. 본말(本末; 저본에 本未로 지었음)이 천역(舛逆; 顛倒. 悖逆. 저본에 外逆으로 지었음)하고 수미(首尾)가 형결(衡決)하고 국제(國制)가 창양(搶攘; 紛亂貌)하니 심히 기강(紀綱; 紀)이 있지 않거늘 폐하(陛下)은 어찌하여(何; 저본에 可로 지었음) 한 번 신(臣)으로 하여금 전보다 숙수(熟數; 잘 헤아리다)함을 얻게 하지 않으십니까. 인하여 치안지책(治安之䇿)을 진술하오니 시험 삼아 상세히 간택하십시오.
●扼腕; 상은 지(持)며 하는 수완(手腕; 손회목)이다. 이르자면 질각추흉(跌脚捶胸; 跌은 저본에 趺로 지었음)하고 손으로써 지완(持腕)함이니 구제(救濟)가 늦었음이다.
杲日; 杲 明亮 ▲緇門警訓註上 杲日 日在木下曰杳 日在木中曰東 日在木上曰杲
고(杲)는 명량(明亮; 환히 밝음). ▲치문경훈주상. 고일(杲日) 해가 나무 아래 있음을 가로되 묘(杳)며 해가 나무의 가운데 있음을 가로되 동(東)이며 해가 나무 위에 있음을 가로되 고(杲)다.
頓足; 以足扣地 頓 以足或物扣地
발로 땅을 두드림. 돈(頓)은 발 혹은 물건으로 땅을 두드림.
賈誼(前200-前168) 洛陽(今河南洛陽東)人 西漢初年著名政論家 文學家 世稱賈生 賈誼少有才名 文帝時任博士 遷太中大夫 受大臣周勃灌嬰排擠 謫爲長沙王太傅 故後世亦稱賈長沙 賈太傅 三年後被召回長安 爲梁懷王太傅 梁懷王墜馬而死 賈誼深自歉疚 抑鬱而亡 時僅三十三歲 司馬遷對屈原賈誼都寄予同情 爲二人寫了一篇合傳 後世因而往往把賈誼與屈原並稱爲屈賈 [百度百科]
(前 200-前 168) 낙양(지금의 하남 낙양 동쪽) 사람. 서한 초년의 저명한 정론가며 문학가. 세칭이 가생(賈生)임. 가의는 어릴 적에 재명(才名)이 있었으며 문제(文帝) 때 박사에 임명되었다가 대중대부로 승직(昇職; 遷)했음. 주발과 관영의 배제(排擠)를 받아 강직(降職: 謫)되어 장사왕의 태부(太傅)가 된지라 고로 후세에 또한 가장사(賈長沙)ㆍ가태부(賈太傅)로 칭명함. 3년 후에 부름을 입어 장안으로 돌아와 양회왕(梁懷王)의 태부가 되었음. 양회왕이 말에서 떨어져 죽자 가의가 깊이 스스로 겸구(歉疚; 꺼림칙함. 송구함)하여 억울하여 죽었으니 때에 겨우 33세였음. 사마천이 굴원과 가의에 대해 모두 동정(同情)을 주어 두 사람을 위해 1편(篇)의 합전(合傳)을 썼으니 후세에 이로 인해 왕왕 가의와 굴원을 싸잡아 굴가(屈賈)로 병칭함 [백도백과].
衡决; 一橫裂 不銜接 二引申爲混雜 紛亂
1. 횡렬(橫裂)함. 함접(銜接)하지 않음. 2. 인신(引申; 轉意)하여 혼잡. 분란이 됨.
跌腳捶胸; 以足 以拳敲胸
발로써 타지(跺地; 땅을 구르다)하고 주먹으로써 고흉(敲胸)함.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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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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