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합주

선림보훈합주 145

태화당 2022. 10. 26. 07:53

145 *歸雲本和尙辯佞篇曰 本朝*富鄭公弼 問道于*投子顒禪師 書尺偈頌 凡一十四紙 *於台之鴻福兩廊壁間 *見前輩主法之嚴 王公貴人信道之*也 鄭國公*社稷重臣 晚年知向之如此 而顒必有大過人者 自謂於顒有所警發 士夫中諦信此道 能*忘齒*屈勢 奮發猛利 期於徹證而後已 如*楊大年侍郞 *李和文都尉 *廣慧璉 石門聰 幷慈明諸大老 *激揚酬唱 *班班見諸禪書 楊無爲之於白雲端 張無盡之於*兜率悅 *扣關擊節 徹證源底 非*苟然者也 近世*張無垢侍郞 *李漢老參政 *呂居仁學士 皆見妙喜老人 登堂*入室 謂之*方外 愛憎逆順 *雷揮電掃脫略世俗拘忌 觀者斂**辟易 罔窺*涯涘 然士君子相求於空閑寂寞之濵 *棲心禪寂 發揮本有而已 後世不見先德楷模 專事諛媚 曲求進顯 凡以住持薦名爲長老者 往往*書刺以稱門僧 奉前人爲恩府 取招提之物 苞苴獻佞 識者憫笑 而*不知耻 嗚呼 吾沙門釋子 一瓶一鉢 雲行鳥飛 非有凍*之迫 子女玉帛之戀 而欲*折腰*擁篲 *酸寒*跼蹐 自取辱賤之如此邪 稱恩府者 出一己之私 無所依據 一妄庸唱之於其前 百妄庸和之於其後 擬爭奉之 眞卑小之耳 削弱風敎 莫甚於佞人 實姦邪欺僞之漸 雖端人正士 巧爲其所入 則陷身於不義 失德於無捄 可不哀歟 破法比丘 氣所* 誑誕自若 詐現知識身相 指禪林大老爲之師承 媚當路貴人爲之宗屬 *不請之敬 啓壞法之端 白衣登床 *膜拜其下 曲違聖制 大辱宗風 吾道之衰 極至於此 嗚呼 天** 萬死奚* 非佞者歟 嵩禪師原敎有云 古之高僧者 見天子不臣 預制書則曰公 曰師 鍾山*僧遠 鸞輿及門 而床坐不迎 虎谿*惠遠 天子臨潯陽 而詔不出山 當世待其人尊其德 是故聖人之道振 後世之慕其高僧者 交卿大夫 尙不得預下士之禮 其出其處 不若庸人之自得也 況如僧遠之見天子乎 況如慧遠之自若乎 望吾道興 吾人之修 其可得乎 存其敎而不須其人 存諸何以益乎 惟此未甞不涕下 淳熈丁酉 余謝事顯恩 寓居平田西山小塢 以日近見聞 事多矯僞 古風凋落 吾言不足爲之重輕 聊書以自警云 叢林盛事

歸雲本; 撫州踈山歸雲如本禪師 本州台城人 嗣靈隱惠遠禪師 南嶽下十六世

富鄭公; 丞相富弼 字彦國 河南府人 宋仁宗 拜爲鄭國公 謚文忠定公 得法於投子修顒也 致仕洛陽 以書答蘇州圓照本禪師云 曾見顒師悟入深 因緣傳得老師心 東南謾說江山遠 目覩靈光演妙音

投子顒; 舒州投子悟證修顒禪師 嗣慧林宗本禪師 淸原下十二世也

; 豎石記功曰碑

; 昭然也

; 誠也 厚也

社稷; 社 土神 稷 糓神 建國則立壇壝以祀 葢國以安民爲本 社稷亦爲民而立 君之尊 係於二者之存亡

忘齒; 不拘年齒

屈勢; 不拘名位之謂也

楊大年; 宋楊億 字大年 建州蒲城人 謚文正公 官至翰林 得法於廣慧元璉禪師 後於仁宗康定間 與慈明爲友

李和文; 駙馬都尉李遵勗 號和文居士 得法於谷隱蘊聰禪師 初參聰時 聰以崔趙公問徑山公案答之 公於言下有省 呈頌曰 學道須是鐵漢 著手心頭便判 直取無上菩提 一切是非莫管 後與慈明 爲方外友

廣慧璉; 汝州廣慧院元璉禪師 泉州陳氏子 嗣首山念禪師 南嶽下九世也

激揚; 激發也 揚擧也 激濁揚淸之義也 謂混濁者 激發之使自勉 淸潔者 擧揚之使易見

班班; 明也件也

兜率悅; 隆興府 兜率寺從悅禪師 贛州熊氏子 嗣眞淨文禪師 南嶽下十三世也

扣關擊節; 扣關緊要處 難過而能過 擊節阻隔處 不通而能通也 謂扣其機關 擊其節要 提持祖印 顯露眞機 於節要處敲擊 使其慶快也

苟然; 豈徒然也

張無垢; 侍郞張九成 字子韶 號無垢居士 杭州鹽官人 得法于妙喜杲禪師

李漢老; 參政李邴 字漢老 得法于妙喜禪師

呂居仁; 姓呂 名本中 字居仁 問道于妙喜杲禪師 官至翰林

入室; 學者請益問道 咨決心疑於禪奧之室也

方外友; 出塵勞方隅之外 脫凡情拘係之中 故謂方外友也

雷揮電掃; 雷揮則激散長空 電掃則蕩除妖蘖 葢情愛順逆逈然淸淨也

; 衣襟也

辟易; 惶悚失守之貌

涯涘; 水之邊際也 言其不能測度也

; 度也

書刺; 下音七 古來未有紙 削竹木以書其名姓

; 安靜也

; 奴罪切 饑也

折腰; 折腰之勢 晉時陶潛 字淵明 號元亮 門栽五柳 自號五柳先生 爲彭澤令 性簡貴 不私事上官 一日遣督郵至縣 吏謂應束帶見之 淵明歎曰 吾豈能爲五斗米折腰 向鄕里小兒 卽日解綬去職 賦歸去來辭

擁篲; 掃地之形也 漢高祖卽位 五日一朝太公 以父子禮待之 其家令謂太公曰 高祖雖子 人主也 太公雖父 人臣也 奈何以人主而拜人臣 如此則威重不行矣 後高祖朝太公 公擁篲迎門却行 高祖大驚 下扶太公 公曰 帝人主也 奈何以我亂天下之法 於是尊太公爲太上皇

酸寒; 言怖畏之勢 身酸心寒

跼蹐; 上曲身也 下累足小步也 謂人恐懼 其身不敢伸 足不敢放 謟勢如此也

; 聚也

; 明也呈也

膜拜; 長跪也

; 明其罪而殺之曰誅

; 收錄其名 而考其罪 曰錄

; 納金免罪曰贖

僧遠; 齊高祖建元元年八月 有事駕臨鍾山 因幸沙門僧遠 帝訪之 遠床坐辭老疾不迎 高祖將詣床下見之 左右曰 房榻窄狹 不能容輿葢 遂駐輦 慇懃致問而去

慧遠; 廬山東林虎溪慧遠禪師 雁門樓煩賈氏子 博通六經 尤邃周易 甞與弟慧持 造安法師席下 聞說般若經 喜歎曰 儒道九流 特糠粃耳 遂祝髮出家 以大法爲己任 及關中擾亂 師南遊至潯陽 見匡山愛之 結廬山中 太守桓尹尊其道德 爲剏精舍 時晉室衰微 天下奇才 隱居不仕 師結蓮社 會諸賢儒 幷沙門千餘人 求生淨土 東晉安帝 駕臨潯陽 詔遠一出 師辭以老疾不出 帝愈加敬 勑九江太守 歲時送資道之具 卜居三十年 影不出山 凡送客以虎溪橋爲限 著匡山集三十卷

 

145 귀운본(*歸雲本) 화상의 변녕편(辯佞篇)에 가로되 본조(本朝; ) 부정공(*富鄭公) ()이 투자옹(*投子顒; 修顒) 선사에게 문도(問道)했으며 서척(書尺; 尺牘. 書信)의 게송이 무릇 14()니 태(; 台州)의 홍복(鴻福; 홍복사) 양랑(兩廊)의 벽간(壁間)에 비기(碑記; *)했는데 전배(前輩)의 주법(主法)이 엄()함과 왕공(王公)과 귀인(貴人)의 신도(信道; 此道信向)의 돈독(敦篤; *)함을 환히(*) 본다. 정국공(鄭國公; 富弼)은 사직(*社稷)의 중신(重臣)인데 만년(晚年)에 지향(知向)이 이와 같았으니 수옹(修顒)은 반드시 타인을 크게 초과함이 있는 자이리라. 스스로 이르기를 수옹에게서 경발(警發; 警醒하고 啓發)하는 바가 있었다 하니 사부(士夫) 중에 차도(此道)를 체신(諦信; 진실로 확신)하여 능히 망치(*忘齒)하고 굴세(*屈勢)하고 분발(奮發)하고 맹리(猛利)함은 철증(徹證)을 기약한 이후(而後)일 따름이다(). 예컨대() 양대년(*楊大年) 시랑(侍郞)과 이화문(*李和文) 도위(都尉)는 광혜련(*廣慧璉)ㆍ석문총(石門聰; 蘊聰)과 아울러 자명(慈明; 楚圓) 여러 대로(大老)를 참견(參見)하여 격양(*激揚)하면서 수창(酬唱)했고 반반*班班)히 여러 선서(禪書)를 보았다. 양무위(楊無爲)는 백운단(白雲端; 守端), 장무진(張無盡; 張商英)은 도솔열(*兜率悅)과 모두 구관격절(*扣關擊節)하여 원저(源底)를 철증(徹證)했는데 구연(*苟然)한 자가 아니다. 근세에 장무구(*張無垢) 시랑(侍郞)ㆍ이한로(*李漢老) 참정(參政)ㆍ여거인(*呂居仁) 학사(學士)는 모두 묘희(妙喜; 宗杲) 노인을 참견하여 등당(登堂)하고 입실(*入室)했으니 이를 일러 방외(*方外)의 도우()라 한다. 애증(愛憎)과 역순(逆順)을 뇌휘전소(*雷揮電掃)하여 세속의 구기(拘忌; 구속과 금기)를 탈략(脫略; 장애와 속박이 없음의 뜻)했으니 관자(觀者)가 옷섶(*)을 거두고() 벽역(*辟易; 뒷걸음질해서 피하다)하면서 애사(*涯涘; 물가. 한계)를 망규(罔窺)한다. 그러하여 사군자(士君子)가 공한(空閑)의 적막(寂寞)한 물가()를 상구(相求)함은 선적(禪寂)에 서심(棲心)하여 본유(本有)를 발휘하려고(*) 할 따름이다. 후세에 선덕(先德)의 해모(楷模; 模範)를 보지 못하고 오로지 유미(諛媚; 알랑거려 남의 歡心을 삼)를 일삼으며 위곡(委曲)히 진현(進顯)을 간구(干求)하나니 무릇 주지로서 천명(薦名)하여 장로(長老)가 된 자가 왕왕(往往) 서자(*書刺)하여 문승(門僧)이라 일컫고 전인(前人)을 받들어 은부(恩府)라 하면서 초제(招提)의 물건을 포저(苞苴)하여 헌녕(獻佞)하거니와 식자(識者)는 연민(憐憫)하며 비웃거늘 염연(恬然; *)하며 수치(羞恥)를 알지 못한다. 오호(嗚呼), 우리 사문석자(沙門釋子)11(一瓶一鉢)로 운행조비(雲行鳥飛)하면서 동뇌(*)의 곤박(困迫)이나 자녀와 옥백(玉帛)의 유련(留戀)이 있지 않거늘 절요옹수(*折腰*擁篲; 허리를 굽히고 비를 안음이니 귀인을 맞이하면서 경의를 표하는 모양)하고 산한(*酸寒)하게 국척(*跼蹐)하며 스스로 욕천(辱賤)을 취함이 이와 같으려 하는가. 은부(恩府)라고 일컫는 것은 하나의 자기의 사심(私心)에서 나왔으며 의거(依據)할 바가 없다. 일망(一妄)이 그 앞에서 용창(庸唱; 어리석게 하다)하면 백망(百妄)이 그 뒤에서 용화(庸和)하여 다투어 그것을 봉승(奉承)하려고 하나니 참으로 비소(卑小)일 뿐이다. 풍교(風敎; 祖風聖敎)를 삭약(削弱)함은 영인(佞人)보다 심한 게 없나니 실로 간사(姦邪)와 사위(欺僞)의 점차(漸次). 비록 단인(端人)과 정사(正士)라도 교묘히 그에 드는 바가 되면 곧 불의(不義)에 함신(陷身)하고 무구(無捄; 구원하지 못함)에 실덕(失德)하나니 가히 가엾지 않겠는가. 파법비구(破法比丘)는 마기()가 모인(*) 바니 광탄(誑誕)하고 자약(自若)하면서 지식(知識)의 신상(身相)을 사현(詐現)하여 선림의 대로(大老)를 가리키며 사승(師承)이라 하고 당로(當路)의 귀인(貴人)에게 아첨하며() 종촉(宗屬; 祖宗囑托)이라 한다. 불청지경(不請之敬)을 보이고(*) 괴법지단(壞法之端)을 열어() 백의(白衣)가 등상(登床)하면 그 아래 모배(*膜拜)하여 성제(聖制)를 곡위(曲違)하고 종풍(宗風)을 대욕(大辱)하니 오도(吾道)의 쇠패(衰敗)가 구극(究極)에 여기에 이르렀다. 오호(嗚呼), 하늘이 죽이고(*) 귀신이 록(*)하리니 만사(萬死)한들 어찌 속(*)하겠는가. 아첨하지() 않는 자가 아니라 하겠는가. 숭선사(嵩禪師; 契嵩)의 원교(原敎; 原敎論)에 이름()이 있으니 옛적의 고승(高僧)은 천자(天子)를 보고도 칭신(稱臣)하지 않았고 미리() 조서(詔書)를 제작(制作)하되 곧 왈공(曰公), 왈사(曰師)라 했다. 종산(鍾山)의 승원(*僧遠)은 난여(鸞輿)가 문에 이르렀으나 상()에 앉아 영접하지 않았고 호계(虎谿)의 혜원(*惠遠)은 천자가 심양(潯陽)에 임()해 불렀으나() 출산(出山)하지 않았다. 당세(當世)에 그 사람을 등대(等待)하여 그 덕을 존중한지라 이런 고로 성인의 도가 진흥(振興)했다. 후세에 그 고승을 흠모하는 자가 경대부(卿大夫; 大夫)와 교류하면서도 오히려 하사지례(下士之禮)를 예행(預行)함을 얻지 못하니 기출기처(其出其處)가 용인(庸人; 平常人)의 자득(自得; 스스로 만족하다)함만 같지 못하거늘 하물며 승원(僧遠)이 천자를 상견함과 같겠는가. 하물며 혜원(慧遠)의 자약(自若)함과 같겠는가. 오도(吾道)의 흥성(興盛)과 오인(吾人)의 진수(進修)를 그 가히 얻겠는가. 그 교()를 존치(存置)하려고 하면서 그 사람을 쓰지 않고 존치하려고 한다면 무엇으로써(何以) 더하겠는가(益乎). 오직 이에서 일찍이 눈물을 흘리지(涕下) 않을 수 없었다. 순희정유(淳熈丁酉; 1177) 내가 현은원(顯恩院; 顯恩)의 일을 그만두고 평전(平田) 서산(西山) 소오(小塢)에 우거(寓居)하면서 근일(近日; 日近)에 견문(見聞)한 일이 많이 교위(矯僞)하고 고풍(古風)이 조락(凋落)했기 때문이나() 오언(吾言)이 족히 중경(重輕)이 되지 못하니 애오라지 써서() 자경(自警)한다. 叢林盛事.

歸雲本; 무주(撫州; 지금의 강서성 무주) 소산(踈山) 귀운(歸雲; 귀운사) 여본선사(如本禪師)니 본주(本州) 태성(台城) 사람이며 영은혜원(靈隱惠遠; 圓悟克勤法嗣) 선사를 이었으니 남악하 16세다.

富鄭公; 승상(丞相) 부필(富弼; 1004-1083)이니 자는 언국(彦國)이며 하남부(河南府; 지금의 하남 洛陽) 사람이다. 송인종(宋仁宗)이 제배(除拜)하여 정국공(鄭國公)으로 삼았고 시()는 문충정공(文忠定公)이다. 투자수옹(投子修顒)에게서 득법했고 낙양에서 치사(致仕)했다. 서신으로써 소주(蘇州) 원조본(圓照本; 宗本이니 天衣義懷法嗣) 선사에게 답해 이르되 일찍이 옹사(顒師; 修顒)를 뵈니 오입(悟入)이 깊었는데/ 인연이 노사(老師; 宗本)의 마음을 전득(傳得)했습니다/ 동남(東南)에서 헛되이() 강산이 멀다고 설하지만/ 영광(靈光)이 묘음(妙音)을 연설함을 목도(目覩)합니다.

投子顒; 서주(舒州) 투자(投子; 투자산) 증오(悟證; ) 수옹선사(修顒禪師)니 혜림종본(慧林宗本; 天衣義懷法嗣) 선사를 이었으며 청원하 12세다.

; 수석(豎石)에 기공(記功)함을 가로되 비().

; 소연(昭然)이다.

; ()이다. ().

社稷; ()는 토신(土神)이며 직()은 곡신(糓神)이니 건국하면 곧 단유(壇壝; 흙무더기로 단을 모으고 그 주위를 낮은 흙 담으로 둘러막은 제터)를 세우고 제사 지낸다. 대개 나라는 안민(安民)을 근본으로 삼으며 사직도 또한 인민을 위해 건립한다. 군왕의 존엄은 2자의 존망에 매였다().

忘齒; 연치(年齒; 年齡)에 구애되지 않음이다.

屈勢; 명위(名位)에 구애되지 않음을 말함이다.

楊大年; () 양억(楊億; 974-1020)이니 자가 대년(大年)이며 건주(建州; 지금의 복건성 建甌) 포성(蒲城) 사람이다. ()는 문정공(文正公)이며 벼슬이 한림(翰林)에 이르렀다. 광혜(廣慧; 汝州 廣慧院) 원련선사(元璉禪師; 首山省念法嗣)에게서 득법했고 후에 인종(仁宗) 강정(康定; 1040) ()에 자명(慈明; 楚圓)과 더불어 벗이 되었다.

李和文; 부마도위(駙馬都尉) 이준욱(李遵勗; 988-1038)이니 호가 화문거사(和文居士)며 곡은(谷隱; 襄州 谷隱山) 온총선사(蘊聰禪師; 首山省念法嗣)에게서 득법했다. 처음 온총을 참견했을 때 온총이 최조공이 경산에게 물은 공안(崔趙公問徑山公案)으로써 답하자 공()이 언하에 유성(有省)했다. 정송(呈頌)하여 가로되 도를 배움엔 모름지기 이 철한(鐵漢)이라야 하나니/ 심두(心頭)에 손을 대면 곧 판단하여/ 바로 위없는 보리(菩提)를 취하고/ 일체의 시비에 상관(相管)하지 말아라. 후에 자명(慈明)과 더불어 방외우(方外友)가 되었다.

廣慧璉; 여주(汝州) 광혜원(廣慧院) 원련선사(元璉禪師; ?-1036)니 천주(泉州) 진씨(陳氏)의 아들이며 수산념(首山念; 省念이니 風穴延沼法嗣) 선사를 이었으니 남악하 9세다.

激揚; ()은 발()이며 양()은 거(). 격탁양청(激濁揚淸; 탁한 것을 치고 맑은 것을 선양함)의 뜻이다. 이르자면 혼탁한 자는 그를 격발하여 스스로 근면하게 하고 청결한 자는 그를 거양(擧揚)하여 쉽게 보도록 함이다.

班班; ()이다. ()이다.

兜率悅; 융흥부(隆興府) 도솔사(兜率寺) 종열선사(從悅禪師; 1044-1091)니 공주(贛州) 웅씨(熊氏)의 아들이며 진정문(眞淨文; 克文이니 黃龍慧南法嗣) 선사를 이었으니 남악하 13세다.

扣關擊節; 구관(扣關)은 긴요처니 통과하기 어렵지만 능히 통과함이다. 격절(擊節)은 조격처(阻隔處; 막힌 곳)니 통과하지 못하지만 능히 통과함이다. 이르자면 그 기관(機關)을 두드리고() 그 절요(節要)를 때림이니() 조인(祖印)을 제지(提持)하고 진기(眞機)를 환히 드러내어 절요처를 두드리고 쳐서(敲擊) 그로 하여금 경쾌(慶快)하게 함이다.

苟然; 어찌 도연(豈徒然)이리오.

張無垢; 시랑(侍郞) 장구성(張九成; 1092-1159)이니 자는 자소(子韶) 호는 무구거사(無垢居士). 항주(杭州; 지금의 浙江省 省都) 염관(鹽官) 사람이며 묘희고(妙喜杲; 宗杲圓悟克勤法嗣) 선사에게서 득법했다.

李漢老; 참정(參政) 이병(李邴; 1085-1146)이니 자가 한로(漢老)며 묘희선사(妙喜禪師)에게서 득법했다.

呂居仁; 성이 여()며 이름이 본중(本中; 1084-1145)이며 자가 거인(居仁)이니 묘희고(妙喜杲) 선사에게 문도(問道)했고 벼슬이 한림(翰林)에 이르렀다.

入室; 학자가 청익(請益)하여 문도(問道)하되 마음의 의혹을 선오지실(禪奧之室)에서 자결(咨決)함이다.

方外友; 진로(塵勞; 번뇌)의 방우(方隅) 밖으로 벗어나() 범정(凡情)의 구계(拘係) 가운데를 벗어나는지라() 고로 이르되 방외우(方外友).

雷揮電掃; 뇌휘(雷揮)는 곧 장공에 격하게 흩어짐이며 전소(電掃)는 요얼(妖孽)을 쓸어 제거함임. 대개 정애(情愛)의 순역(順逆)이 형연(迥然; 판이한 모양)하여 청정함임雷揮則激散長空 電掃則蕩除妖蘖 葢情愛順逆逈然淸淨也

; 의금(衣襟; 옷깃)이다.

辟易; 황송(惶悚)하여 실수(失守)하는 모양.

애사; 물의 변제(邊際). 말하자면 그것을 능히 측탁(測度)하지 못함이다.

; ()이다.

書刺; 하는 음이 칠()이다. 고래(古來)로 종이가 있지 않아 죽목(竹木)을 깎아 그 성명(名姓)을 서사(書寫)했다.

; 안정(安靜)이다.

; 노죄절(奴罪切; )이니 기().

折腰; 허리를 꺾는 자세(折腰之勢). 진시(晉時) 도잠(陶潛; 365-427)은 자가 연명(淵明)이며 호가 원량(元亮)이다. 문앞에 5()를 심고 스스로 호하기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했다. 팽택령(彭澤令; 彭澤은 지금의 江西省 九江 彭澤)이 되었는데 성품이 간귀(簡貴)하여 상관을 사사로이 모시지 않았다. 어느 날 독우(督郵)를 파견하여 현()에 이르렀다. 관리가 이르기를 응당 속대(束帶)하고 그를 상견하라 했다. 연명이 탄식하며 가로되 내가 어찌 능히 다섯 말의 쌀 때문에 허리를 꺾어(折腰) 향리(鄕里)의 소아(小兒)를 향하겠는가. 즉일에 인수(印綬)를 풀고 관직을 떠났는데 귀거래사(歸去來辭)를 부()했다.

擁篲; 땅을 쓰는 형상(形相)이다. 한고조(漢高祖)가 즉위하자 닷새에 한 번 태공(太公)을 대하면서() 부자(父子)의 예의로 그를 우대했다. 그 가령(家令; 벼슬 이름)이 태공에게 일러 가로되 고조가 비록 아들이지만 인주(人主)며 태공이 비록 부친이라도 인신(人臣)입니다. 어찌 인주로서 인신에게 절하겠습니까. 이와 같다면 곧 위중(威重)이 행하지 못합니다. 후에 고조가 태공을 대하자 태공이 비를 안고(擁篲) 문으로 영접하며 뒤로 물러났다. 고조가 크게 놀라 내려서 태공을 부축했다. 태공이 가로되 제()는 인주(人主)이십니다. 어찌 내가 천하의 법을 어지럽게 하겠습니까. 이에 고조가 태공을 존중해 태상황(太上皇)으로 삼았다.

酸寒; 말하자면 포외(怖畏)의 형세로 몸이 나른하고() 마음이 오싹함()이다.

跼蹐; 은 몸을 굽힘이며 하는 발을 포개어 작게 걸음이다. 이르자면 사람이 두려워하며 그 몸을 감히 펴지 못하고 발을 감히 놓지 못함이니 아첨하는 형세가 이와 같다.

; ().

; ()이다. ()이다.

膜拜; 장궤(長跪).

; 그 죄를 밝혀 그를 죽임을 가로되 주().

; 그 이름을 수록(收錄)하여 그 죄를 고려(考慮)함을 가로되 록()이다.

; 납금(納金)하고 면죄(免罪)됨을 가로되 속()이다.

僧遠; () 고조(高祖; 高歡) 건원(建元) 원년(479) 8월 일이 있어 종산(鍾山)에 가림(駕臨)했다. 인하여 사문 승원(僧遠)에게 거둥하여 제()가 그를 방문했으나 승원이 상에 앉아 노질(老疾)로 사양하며 영접하지 않았다. 고조가 장자 상 아래로 나아가 그를 보려고 하자 좌우가 가로되 방탑(房榻; 방의 평상)이 착협(窄狹)하여 능히 여개(輿蓋)를 수용하지 못합니다. 드디어 주연(駐輦)하면서 은근히 치문(致問; 위문)하고 떠났다.

慧遠; 여산(廬山) 동림(東林) 호계(虎溪) 혜원선사(慧遠禪師; 334-416)니 안문(雁門) 루번(樓煩) 가씨(賈氏)의 아들이다. 육경(六經)에 박통(博通)했고 더하여() 주역에 정통(精通; )했다. 일찍이 동생 혜지(慧持)와 더불어 안법사(安法師; 道安)의 석하(席下)로 나아가 반야경 설함을 듣고 희탄(喜歎)하며 가로되 유도(儒道)와 구류(九流)는 특히 강비(糠粃; 겨와 쭉정이)일 뿐이다. 드디어 축발(祝髮; 剃髮)하고 출가했고 대법(大法)을 자기의 임무로 삼았다. 관중(關中)이 요란(擾亂)함에 이르자() 스님이 남유(南遊)하며 심양(潯陽)에 이르렀고 광산(匡山; 廬山)을 보고서 그것을 사랑해 산중에 결려(結廬)했다. 태수(太守) 환윤(桓尹)이 그의 도덕을 존경해 정사(精舍)를 창건(剏建)했다. 당시에 진실(晉室)이 쇠미(衰微)해 천하의 기재(奇才)들이 은거(隱居)하며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스님이 연사(蓮社)를 결성하여 여러 현유(賢儒)와 아울러 사문 천여 인을 모아() 정토(淨土)에 출생함을 구했다. 동진(東晉) 안제(安帝)가 심양(潯陽)에 가림(駕臨)하여 혜원에게 조칙(詔勅하여 한 번 나오라 했지만 스님이 노질(老疾)로써 사양하며 나가지 않았다. ()가 더욱 가경(加敬)하고 구강태수(九江太守)에게 칙령해 세시(歲時; 1)마다 자도지구(資道之具)를 보내게 했다. 복거(卜居)하기 30년에 그림자가 출산(出山)하지 않았고 무릇 송객(送客)하면 호계교(虎溪橋)를 한계(限界)로 삼았다. 광산집(匡山集) 30권이 있다.

 


侍郞; 官名 秦漢代爲郞中令之屬官 掌握宮門事 唐代爲中書省門下省之長官 後代爲六府次官

벼슬 이름. 진한대(秦漢代)에 낭중령의 속관(屬官)이 되어 궁문사(宮門事)를 장악했음. 당대(唐代)에 중서성과 문하성의 장관이 되었으며 후대에 6()의 차관이 되었음.

 

都尉; 一駙馬都尉之略稱 二武官的總稱 秦時各郡置郡尉 爲補佐郡守 西漢景帝時 以郡尉改稱都尉

1. 부마도위의 약칭. 2. 무관의 총칭. ()나라 때 각 군에 군위(郡尉)를 두어 군수를 보좌하게 했는데 서한 경제(景帝) 시 군위를 도위로 개칭했음.

 

楊無爲; 楊傑 北宋雲門宗居士 無爲(安徽)人 字次公 號無爲子 雄才俊邁 年少登科 好禪 歷叩諸山名宿 參天衣義懷 義懷每引龐居士之機語提撕 一日奉祠泰山 睹日如盤湧 因而大悟 呈偈於天衣義懷 遂蒙印可 嗣其法 宋神宗熙寧(1068-1077)末年 歸鄕省母 閑居閱藏經 遂歸心淨土 曾任兩浙提點刑獄 有楊提刑之稱 晩年專事淨業 享年七十 著有釋氏別集 輔道集等 [續傳燈錄八 釋門正統七 淨土聖賢錄七]

양걸(楊傑)이니 북송 운문종거사. 무위(無爲; 안휘) 사람이며 자는 차공(次公)이며 호는 무위자(無爲子). 웅재(雄才)가 준매(俊邁; 몹시 뛰어남)하였고 연소(年少)에 등과(登科)했음. ()을 좋아했고 제산(諸山)의 명숙(名宿)을 역고(歷叩)했음. 천의의회(天衣義懷)를 참했는데 의회가 매번 방거사의 기어(機語)를 인용해 제시(提撕)했음. 어느 날 태산을 봉사(奉祠)하다가 해가 반용(盤湧)함과 같음을 보고 이로 인해 대오했음 천의의회에게 게를 보이자 드디어 인가를 입었고 그의 법을 이었음. 송 신종 의희(1068-1077) 말년 귀향하여 성모(省母)하고 한거(閑居)하면서 장경을 열람했으며 드디어 정토에 귀심(歸心)했음. 일찍이 양절(兩浙)의 제점형옥(提點刑獄)에 임명된지라 양제형(楊提刑)의 칭호가 있음. 만년에 정업(淨業)에 오로지 종사했고 향년은 70. 저서에 석씨별집과 보도집 등이 있음 [속전등록8. 석문정통7. 정토성현록7].

 

參政; 官名 宋代參知政事的省稱 爲宰相的副職 元於中書省行中書省 皆置參政 爲副貳之官 明於布政使下置左右參政 淸初 各部也設參政 後改侍郞 袁世凱統治時期設參政院 所指派的成員亦稱參政 [百度百科]

벼슬 이름. 송대 참지정사(參知政事)의 생칭(省稱). 재상의 부직(副職)이 됨. ()은 중서성과 행중서성(行中書省)에 모두 참정을 설치했고 부이지관(副貳之官)이 됨. ()은 포정사(布政使) 아래 좌우참정을 설치했음. 청초(淸初) 각부(各部)에 또한 참정을 설치했고 후에 시랑(侍郞)으로 고쳤음. 원세개가 통치하던 시기 참정원을 설치했고 지파(指派; 파견)한 바의 성원(成員)도 또한 일컬어 참정이라 했음 [백도백과].

 

學士; 南北朝以後 以學士爲司文學撰述之官 唐代翰林學士亦本爲文學侍從之臣 因接近皇帝 往往參預機要 宋代始設專職 其地位職掌 與唐代略同 明代設翰林院學士 及翰林院侍讀 侍講學士 學士遂專爲詞臣之榮銜 淸代改翰林院學士爲掌院學士 餘如故 淸末期內閣典禮院 亦置學士 [百度百科]

남북조 이후 학사(學士)로써 문학찬술(文學撰述)을 맡는 관리로 삼았음. 당대(唐代) 한림학사도 또한 본래 문학시종(文學侍從)의 신하가 되었으며 인하여 황제에게 접근해 왕왕 기요(機要)에 참예(參預)했음. 송대(宋代) 비로소 전직(專職)을 시설했으며 그 지위와 직장(職掌)은 당대와 대략 같았음. 명대(明代)에 한림원학사 및 한림원시독, 시강학사를 설치했고 학사는 드디어 오로지 사신(詞臣)의 영함(榮銜)이 되었음. 청대(淸代) 한림원학사를 고쳐 장원학사(掌院學士)로 삼았고 나머지는 예전과 같았음. 청 말기 내각 전례원에 또한 학사를 설치했음 [백도백과].

 

進顯; 謂職位進升而貴顯

이르자면 직위가 진승(進升)하여 귀현(貴顯; 尊貴하고 이름이 높음).

 

薦名; 禪林寶訓筆說中 薦名者 本不是其人 而强爲之也

선림보훈필설중 천명(薦名)이란 것은 본래 이 그 사람이 아니지만 억지로 그것을 작위(作爲)함이다.

 

門僧; 出入於門之僧

문에 출입하는 승려.

 

釋子; 釋迦佛之弟子 從釋迦師之敎 故名釋子

석가불의 제자. 석가사(釋迦師)의 교화로부터 출생하는지라 고로 이름이 석자임.

 

; 梵語魔羅之略 譯爲能奪命 障礙 擾亂 破壞等 害人命 障礙人之善事者 欲界之第六天主爲魔王 其眷屬爲魔民魔人

범어 마라(魔羅; māra)의 약칭. 능히 목숨을 뺏다ㆍ장애ㆍ요란ㆍ파괴 등으로 번역함. 인명을 해치고 사람의 선사(善事)를 장애하는 자니 욕계의 제6천주가 마왕이 되고 그 권속은 마민(魔民)ㆍ마인(魔人)이 됨.

 

誑誕; 기광(欺誑; 속임)하며 황탄(荒誕; 말이나 하는 짓이 근거가 없고 虛荒). 황탄(荒誕)과 같음.

 

師承; 謂弟子承受師匠之法敎

이르자면 제자가 사장(師匠)의 법교를 승수(承受).

 

鸞輿; 天子的乘輿 亦借指天子

천자의 승여(乘輿). 또한 가차(假借)하여 천자를 가리킴.

 

致仕; 交還官職 卽退休

관직을 교환함. 곧 퇴휴(退休).

 

駙馬; 帝王女婿的稱謂 又稱帝婿 主婿 國婿等 因駙馬都尉得名 漢武帝時始置駙()馬都尉 駙卽副 駙馬都尉 掌副車之馬 [百度百科]

제왕의 여서(女婿; 사위)의 일컬음이니 또 명칭이 제서(帝婿)ㆍ주서(主婿)ㆍ국서(國婿) . 부마도위(駙馬都尉)로 인해 이름을 얻었음. 한무제 시 처음 부(; )마도위(馬都尉)를 설치했음. ()는 곧 부()니 부마도위는 부거(副車)의 말을 관장했음 [백도백과].

 

崔趙公問徑山公案; 五燈會元二徑山道欽 崔趙公問 弟子今欲出家 得否 師曰 出家乃大丈夫事 非將相之所能爲 公於是有省

오등회원2 경산도흠(徑山道欽). 최조공(崔趙公)이 묻되 제자가 이제 출가하려고 하니 얻겠습니까. 사왈(師曰) 출가는 곧 대장부의 일이니 장상(將相)이 능히 할 바가 아닙니다. ()이 이에서 유성(有省)했다.

 

請益; 卽學人請師示誨之意 於禪林中 學人受敎後 尙有未透徹明白之處 再進一步請敎之謂也

곧 학인(學人)이 스승에게 시회(示誨)를 청함의 뜻. 선림 중에서 학인이 가르침을 받은 후 오히려 투철명백(透徹明白)하지 못한 곳이 있으면 다시 진일보(進一步)하여 가르침을 청함을 말함임.

 

簡貴; 簡慠(傲慢)高貴

간오(簡慠; 傲慢)하고 고귀함.

 

六經; 緇門警訓註上 六經 詩 書 易 春秋 周禮 禮記

치문경훈주상. 육경(六經) 시ㆍ서ㆍ역ㆍ춘추ㆍ주례ㆍ예기.

 

九流; 祖庭事苑五 九流 一曰儒流 謂順陰陽 陳敎化 述唐虞之政 宗仲尼之道也 二曰道流 謂守弱自卑 陳堯舜揖讓之德 明南面爲政之術 奉易之謙也 三曰陰陽流 謂順天歷象 敬授民時也 四曰法流 謂明賞敕法 以助禮制也 五曰名流 謂正名別位 言順事成也 六曰墨流 謂淸廟宗祀 養老施惠也 七曰縱橫流 謂受命使平 專對權事也 八曰雜流 謂兼儒墨之詮 含名法之訓 知國大體 事無不貫也 九曰農流 謂勸厲耕桑 備陳食貨也

조정사원5. 구류(九流) 1은 가로되 유류(儒流)니 이르자면 음양을 따라 교화를 베풀고 당우(唐虞)의 정치를 진술하고 중니의 도를 근본()으로 한다. 2는 가로되 도류(道流)니 이르자면 약()을 지켜 스스로 낮추고 요순의 읍양(揖讓; 하는 동작을 갖추면서 사양함)의 덕을 진술하고 남면(南面; 남쪽을 향함이니 임금이 앉던 방향)하여 정치를 하는 술법을 밝히고 역()의 겸양을 받드는 것이다. 3은 가로되 음양류(陰陽流)니 이르자면 하늘의 경력하는 형상에 순응해 공경하며 민시(民時; 백성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시기. 곧 봄에 밭 갈고 여름에 김매고 가을에 거두는 때. 人時)를 수여하는 것이다. 4는 가로되 법류(法流)니 이르자면 칙법(敕法)을 밝혀 상 주고 예제(禮制)를 도우는 것이다. 5는 가로되 명류(名流)니 이르자면 이름을 바르게 하고 자리를 분별하며 말이 순순하고 일을 이루는 것이다. 6은 가로되 묵류(墨流)니 이르자면 청묘(淸廟; 맑고 깨끗한 宗廟)를 종사(宗祀; 받들어 제사함)하고 양로하며 시혜(施惠; 혜택을 베풂)함이다. 7은 가로되 종횡류(縱橫流)니 이르자면 명령을 받아 평화롭게 하며 오로지 권사(權事)에 대응함이다. 8은 가로되 잡류(雜流)니 이르자면 유묵儒墨; 유가와 묵가)의 전형(詮衡; 인물 등을 시험해 뽑음)을 겸하고 명법(名法; 名流法流)의 교훈을 포함하여 나라의 대체(大體)를 알아 일이 관통하지 않음이 없음이다. 9는 가로되 농류(農流)니 이르자면 경상(耕桑; 경작과 양잠)을 권려(勸厲; 는 힘쓸 려. 곧 힘쓰기를 권함)하여 식화(食貨; 음식과 재물)를 비진(備陳; 갖추어 진열함)함이다.

 

卜居; 用占卜選擇居處

점복을 써서 거처를 선택함.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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