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합주

선림보훈합주 161

태화당 2022. 10. 31. 08:37

161 雪堂曰 *萬菴送高菴過天台 回謂予言 有德貫首座隱景星巖三十載 影不出山 龍學耿公爲郡 特以瑞巖迎之 貫辭以偈曰 三十年來獨掩關 使符那得到靑山 休將𤨏末人間事 換我一生林下閒 使命再至終不就 耿公嘆曰 今日隱山之流也 萬菴曰 彼有老宿能記其語者 乃曰 不體道本 沒溺死生 觸境生心 隨情動念 狼心狐意 謟行誑人 附勢阿容 狥名苟利 乖眞逐妄 背覺合塵 林下道人終不爲也 予曰 貫亦僧中間氣也逸事

萬菴; 江州東林萬菴道顔禪師 潼州解氏子 嗣大慧杲禪師 南嶽下十六世也

貫首座; 未詳

使符; 漢制以竹長六寸分而相合 爲符信也

; 多貪害物曰狼

間氣; 不世而出曰間氣 如伊尹周公之類也 又謂出格之人 與世無干也

 

161 설당(雪堂; 道行)이 가로되 만암(*萬菴)이 고암(高菴; 善悟)을 전송하여 천태(天台)에 이르렀다가() 돌아와 나에게 일러 말하되 덕관수자(*貫首座)가 있어 경성암(景星巖)에 은거하기 30()에 그림자가 출산(出山)하지 않았다. 용학(龍學; 龍圖閣學士) 경공(耿公)이 군수(郡守)가 되었는데 특별히 서암(瑞巖)으로써 그를 영입하려고 하자 관()이 게로써 사양했으니 가로되 30년 래에 홀로 엄관(掩關)했는데/ 사부(*使符)가 어찌하여 청산에 이름을 얻는가/ 쇄말(𤨏末; 자질구레한 부스러기)한 인간사(人間事)를 가지고/ 나의 일생토록 임하(林下)의 한가함과 바꾸지 말아라. 사명(使命)이 다시 이르렀으나 마침내 나아가지 않았다. 경공(耿公)이 탄식하며 가로되 금일의 은산(隱山)의 무리()로다. 만암이 가로되 거기에 노숙(老宿)이 있어 능히 그의 말을 기억하는 자가 이에 가로되 도본(道本)을 체득하지 못하고 사생(死生)에 몰닉(沒溺)하여 촉경(觸境)하면 생심(生心)하고 수정(隨情)하여 동념(動念)하나니 낭심(*)과 호의(狐意)로 첨행(諂行; 저본에 謟行으로 지었음)하며 광인(誑人)하고 부세(附勢)하는 아용(阿容; 阿附하는 얼굴)으로 순명(狥名; 명예를 따르다)하고 구리(苟利; 財利를 탐하다)하면서 괴진축망(乖眞逐妄; 진리를 거스르고 허망을 쫓다)하고 배각합진(背覺合塵)하거니와 임하(林下)의 도인(道人)은 마침내 하지 않는다. 내가 가로되 관()은 또한 승중(僧中)의 간기(*間氣). 逸事

萬菴; 강주(江州; 지금의 江西 九江) 동림(東林; 동림사) 만암(萬菴; 卍庵으로 지음. 道顔) 도안선사(道顔禪師; 1094-1164)동주(潼州; 지금의 四川 三台) 해씨(解氏)의 아들이며 대혜고(大慧杲; 宗杲) 선사를 이었으니 남악하 16세다.

貫首座; 미상(未詳).

使符; 한제(漢制)에 대의 길이가 6(六寸)이며 나누어 서로 합함으로써 부신(符信)을 삼았다.

; 다탐(多貪)하면서 해물(害物)함을 가로되 랑()이다.

間氣; 불세이출(不世而出)을 가로되 간기(間氣)니 이윤(伊尹)ㆍ주공(周公)과 같은 무리(). 또 이르자면 출격지인(出格之人)이니 세상과 더불어 간여(干與)함이 없다.

 


隱山; 龍山和尙 唐代僧 亦云隱山 嗣法馬祖道一 隱居長沙深谷 洞山與密師行脚 見溪流菜葉 乃披草行六七里 見山羸形異貌 因相與問答良久 師乃述偈曰 三間茅屋從來住 一道神光萬境閑 莫把是非來辨我 浮生穿鑿不相關 遂燒庵避去 不知所之 [聯燈會要五 五燈會元三]

용산화상(龍山和尙)이니 당대승. 또 이르되 은산(隱山)이니 마조도일의 법을 이었음. 장사(長沙)의 깊은 골에 은거했음. 동산(洞山)이 밀사(密師)와 행각하다가 개울에 채소의 잎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이에 풀을 헤치고 6, 7리를 가자 여윈 형상에 이상한 모양을 보았음. 인하여 서로 더불어 꽤 오래(良久) 문답했음. 스님이 이에 게를 지어 가로되 3()의 띳집에 종래로 거주하니/ 한 가닥 신광이라 만경(萬境)이 한적하다/ 시비를 지어 와서 나에게 분변하지 말지니/ 부생의 천착엔 상관하지 않는다. 드디어 암자를 불사르고 피해 떠났는데 간 곳을 알지 못함 [연등회요5. 오등회원3].

 

貫首座; 禪林寶訓筆說中 德貫卽世奇首座 成都人 得法于佛眼遠禪師 南嶽下十五世

선림보훈필설중 덕관(德貫)은 곧 세기(世奇) 수좌다. 성도 사람이며 불안원(佛眼遠) 선사에게서 득법했으니 남악하 15세다.

 

不世而出; 不是每個時代經常出現的

이 매개(每個)의 시대에 경상(經常; 늘 항상)으로 출현하는 것이 아님.

 

伊尹; (1649-1549) 伊姓 名摯 小名阿衡 尹 不是名字 而是右相的意思 夏朝末年生於空桑(一說今河南杞縣 一說今洛陽伊川縣) 因其母居伊水之上 故以伊爲氏 伊尹傷中國無賢君 歎斯道不行 隱耕於有莘之野 湯三往聘之 拜爲相 [禪林寶訓音義 百度百科]

(1649-1549) 이성(伊姓)이며 이름은 지()니 어릴 적 이름은 아형(阿衡)이었음. ()은 이 명자가 아니라 이는 우상(右相)의 의사(意思). 하조(夏朝) 말년 공상(일설엔 지금의 하남 기현이며 일설은 지금의 낙양 이천현)에서 출생했음. 그의 모친이 이수(伊水)의 위쪽에 거주했음으로 인해 고로 이()로써 씨를 삼았음. 이윤이 중국에 현군(賢君)이 없음을 상심하고 이 도가 행하지 않음을 탄식하면서 유신지야(有莘之野)에서 은거하며 경작했는데 탕()이 세 번 가서 그를 초빙하여 제배(除拜)하여 상()으로 삼았음 [선림보훈음의. 백도백과].

 

周公; 姬姓 諱旦 周文王姬昌第四子 周武王姬發的弟弟 周武王九年 東伐至盟津 周公輔行 十一年 伐紂 至牧野 周公佐武王 作牧誓 破殷 入商宮 已殺紂 封紂子武庚祿父 使管叔蔡叔傅之 以續殷祀 遍封功臣同姓戚者 封周公旦於少昊之虛曲阜 是爲魯公 周公不就封 留佐武王 其後武王旣崩 成王少 輔翼成王 管 蔡 武庚等反 周公乃奉成王命 興師東伐 作大誥 遂誅管叔 殺武庚 放蔡叔 成王長 能聽政 於是周公乃還政於成王 周公並制作禮樂 作周官 官別其宜 作立政 以便百姓 百姓說 [史記三十三魯周公世家 百度百科]

희성(姬姓)이며 휘()는 단()이니 주문왕(周文王) 희창(姬昌)의 제4자며 주무왕(周武王) 희발(姬發)의 제제(弟弟; 아우). 주무왕 9년 동벌(東伐)하여 맹진(盟津)에 이르자 주공이 보행(輔行)했음. 11년 벌주(伐紂)하여 목야(牧野)에 이르자 주공이 무왕을 보좌했고 목서(牧誓)를 지었음. 파은(破殷)하고 상궁(商宮)에 들어갔고 이미 주()를 죽이고는 주자(紂子) 무경(武庚)을 녹부(祿父)로 봉()하고 관숙(管叔)과 채숙(蔡叔)으로 하여금 그를 돌보게 하여 은사(殷祀)를 잇게 했음. 공신과 동성(同姓)의 척자(戚者)를 두루 봉()했는데 주공단(周公旦)을 소호지허(少昊之虛; 少昊故墟) 곡부(曲阜)에 봉했으니 이것이 노공(魯公)이 됨. 주공이 봉지(封地)에 나아가지 않고 무왕을 유좌(留佐)했음. 그 후 무왕이 이미 붕어(崩御)하고 성왕(成王)이 연소(年少)한지라 성왕을 보익(輔翼)했음. ()ㆍ채()ㆍ무경(武庚) 등이 반란하자 주공이 이에 성왕의 명을 받들어 군사를 일으켜 동벌(東伐)하면서 대고(大誥)를 지었음. 드디어 관숙(管叔)을 베고 무경(武庚)을 죽이고 채숙(蔡叔)을 추방했음. 성왕이 장성하여 능히 청정(聽政)할 만하자 이에 주공이 정권을 성왕에게 돌려 주었음. 주공은 아울러 예악(禮樂)을 제작하고 주관(周官)을 만들고 관()을 그 마땅함에 구별하여 입정(立政)을 지어 백성을 편하게 했으니 백성이 기뻐했음 [사기33노주공세가. 백도백과].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

pyungsimsa.tistory.com

 

'선림보훈합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림보훈합주 163  (0) 2022.11.01
선림보훈합주 162  (0) 2022.10.31
선림보훈합주 160  (0) 2022.10.31
선림보훈합주 159  (0) 2022.10.30
선림보훈합주 158  (0) 2022.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