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합주

선림보훈합주 185

태화당 2022. 11. 8. 08:14

185 山堂同*尙書子蒼 萬菴顔首座 賢眞牧 避難于雲門菴 韓公因問萬菴 近聞被*李成兵吏所執 何計得脫 萬菴曰 昨被執縛 饑凍連日 自度必死矣 偶大雪埋屋 其所繫屋壁 無故崩倒 是夜幸脫者百餘人 公曰 正被所執時如何排遣 萬菴不對 公再*之 萬菴曰 此何足道 吾輩學道以義爲質 有死而已 何所懼乎 公頷之 因知前輩涉世禍害 死生皆有處斷矣眞牧集

韓子蒼; 名駒 字子蒼 問道於山堂道震禪師 任至尙書

李成; 南宋高宗 紹興元年 李成作亂 聚集浙江各處 賊宼十餘萬 戰據江淮十餘州 自號李天王劫掠襄陽 遇岳飛殺敗 投入江者不知其數 李成敗走投金 自此襄漢悉平 川陝道路方通 徵稅無阻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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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 산당(山堂; 道震)이 한상서(尙書) 자창(*子蒼)ㆍ만암안(萬菴顔; 道顔) 수좌ㆍ현진목(賢眞牧)과 함께 운문암(雲門菴)으로 피난(避難)했다. 한공(韓公)이 인하여 만암(萬菴)에게 묻되 요사이() 듣건대 이성(*李成)의 병리(兵吏)에게 잡히는 바를 입었다 하던데 어떤 계책으로 득탈(得脫)했습니까. 만암이 가로되 지난날() 집박(執縛)을 입어 연일(連日) 기동(饑凍)했는데 스스로 헤아리되 반드시 죽었구나 했습니다. 우연히 대설(大雪)이 가옥을 묻어 그 계박(繫縛)된 곳의 옥벽(屋壁)이 까닭 없이(無故) 붕도(崩倒)하여 이날 밤에 다행히 탈출한 자가 백여 인이었습니다. 공왈(公曰) 바로 집박(執縛)을 입었을 때 어떻게 배견(排遣; 對處)했습니까. 만암이 대답하지 않았다. ()이 다시 그것을 묻자(*) 만암이 가로되 이것을 어찌 족히 말하겠습니까. 오배(吾輩)는 학도(學道)하면서 의()를 바탕()으로 삼아 죽음이 있을 따름이거늘 무엇을 두려워 할 바이겠습니까. ()이 머리를 끄덕였다(頷之). 인하여 아나니 전배(前輩)가 세상의 화해(禍害)에 건너 사생(死生)에 모두 처단(處斷)이 있었다. 眞牧集.

韓子蒼; 이름이 구(; 1080-1135)며 자가 자창(子蒼)이니 산당도진(山堂道震) 선사에게 문도(問道)했고 임직(任職)이 상서(尙書)에 이르렀다.

李成; 남송 고종(高宗; 1107-1187 재위 1127-1162) 소흥(紹興) 원년(1131) 이성(李成)이 반란했다. 절강(浙江) 각처에 모였는데 적구(賊宼)가 십여 만이었다. 강회(江淮) 십여 주()를 점거하며 전투했다. 스스로 호하기를 이천왕(李天王)이라 했고 양양(襄陽)을 겁략(劫掠)했다. 악비(岳飛), 죽이고 패퇴시킴을 만나 강에 투입한 자는 그 수를 알지 못한다. 이성은 패주하여 금나라에 투항했고 이로부터 양한(襄漢)이 모두 평정되었다. 천섬(川陝)의 도로가 비로소 통했고 징세(徵稅)에 막힘이 없었다.

; ()이다.

 


賢眞牧; 正賢(1084-1159) 宋代楊岐派僧 號眞牧 潼川(四川三台)陳氏 世爲名儒 幼從三聖海澄爲苾蒭 初遊成都 依大慈秀習經 後叩龍門佛眼 而嗣其法 後住廬山歸宗寺 有華嚴指南 寳藏論發隱 補僧史 語錄 偈頌 [五燈會元二十 敎外別傳十]

정현(1084-1159)이니 송대 양기파승. 호는 진목(眞牧)이며 동천(사천 삼태) 진씨. 가세(家世)가 명유(名儒)였고 어릴 적에 삼성해징을 좇아 필추가 되었음. 처음 성도에 노닐면서 대자수에게 의지하며 경을 학습했고 후에 용문불안(龍門佛眼)에게 묻고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여산 귀종사에 주()했음. 화엄지남ㆍ보장론발은ㆍ보승사ㆍ어록ㆍ게송이 있음 [오등회원20. 교외별전10].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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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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