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 妙喜曰 陽極則陰生 陰極則陽生 盛衰相乘 乃天地自然之數 惟*豐亨宜乎日中 故曰日中則昃 月滿則虧 天地盈虧 與時*消息 而況於人乎 所以古之人 當其血氣壯盛之時 慮光陰之易往 則朝念夕思 戒謹彌懼 不恣情 不逸欲 惟道是求 遂能全其*令聞 若夫隳之以逸慾 敗之以恣情 殆於不可捄 方頓足扼腕而追之晚矣 *時乎難得而易失也〈薌林書〉
●䷏ 震上離下
●豐亨; 雷火豐卦 豐者大也 以明而動 盛大之勢也 故其占有亨道焉 然盛極將衰 又有憂道焉 聖人以爲徒憂無益 但守常不至過盛 彖辭云 日中則昃 月盈則食 天地盈虗 與時消息 而況人乎 況于鬼神乎 葢言豐盛難常 以此爲戒也 日中盛極 則當昃昧 月盈極則有虧缺 天地之盈虧 尙隨時消息 況人生于天地之間 鬼神爲天地之氣機 豐盛之時 以此爲戒 欲人守中 不至於過盛也 處豐之道 豈容易哉
●消息; 陰死爲消 陽死爲息
●令聞; 上 善也 下去聲 名遠達也
●時乎難得; 夫功難成而易敗 時難得而易失 謂時乎時乎不再來 漢蒯徹說韓信之言也
【197】 묘희(妙喜; 宗杲)가 가로되 양(陽)이 극(極)하면 곧 음(陰)이 생하고 음이 극하면 곧 양이 생한다. 성쇠(盛衰)가 상승(相乘)함은 곧 천지자연의 수(數)다. 오직 풍형(豐亨)은 일중(日中)에 마땅하다. 고로 가로되 일(日)이 중(中; 中天)이면 곧 기울고(昃) 월(月)이 만(滿)하면 곧 이지러진다(虧). 천지가 영휴(盈虧)하면서 시(時)와 더불어 소식(消息)하거늘 하물여 인(人)이겠는가. 소이로 옛날 사람은 그 혈기(血氣)가 장성(壯盛)한 때에 당해 광음(光陰)의 이왕(易往)을 염려하여 곧 조념석사(朝念夕思)하되 계근(戒謹)하며 더욱 두려워했다. 자정(恣情)하지 않고 일욕(逸欲)하지 않고 오직 도를 이 구한지라 드디어 능히 그 영문(*令聞)을 온전히 했다. 만약에(若夫) 일욕(逸慾)으로써 무너지고 자정(恣情)으로써 패한다면 거의 가히 구원(救援)하지 못하나니 바야흐로 돈족(頓足)하고 액완(扼腕)하며 쫓아간들 늦은 것이다. 시기(時機)는 얻기 어렵고(*時乎難得) 잃기는 쉽다. 〈薌林書〉.
●䷏; 진상리하(震上離下; 豐卦)다.
●豐亨; 뇌화풍괘(雷火豐卦; ䷶)다. 풍(豐)이란 것은 대(大)며 명(明)으로써 동(動)하니 성대한 형세다. 고로 그 점(占)에 형도(亨道)가 있다. 그러나 성(盛)이 극(極)하면 장차 쇠(衰)하므로 또 우도(憂道)가 있다. 성인이 도우(徒憂; 徒然히 근심함)는 무익함으로 삼았으며 단지 수상(守常)하면서 과성(過盛; 過度하게 성함)에 이르지 않게 했다. 단사(彖辭)에 이르되 해가 중천(中天)이면 곧 기울고(昃) 달이 차면(盈) 곧 이지러지나니(食) 천지가 영허(盈虗)하면서 세월과 함께 소식(消息)하거늘 하물며 사람이겠는가, 하물며 귀신이겠는가. 대개 말하자면 풍성(豐盛)하면 항상(恒常)하기 어렵나니 이로써 경계(警戒)를 삼았다. 일(日)이 중천이면 성(盛)이 지극함이니 곧 마땅히 측매(昃昧; 기울면서 어두워짐)하고 달이 차서 지극하면 곧 휴결(虧缺)이 있다. 천지의 영휴(盈虧)도 오히려 세월 따라 소식(消息)하거늘 사람은 천지지간(天地之間)에서 생활하며 귀신은 천지의 기기(氣機)가 되므로 풍성할 때 이로써 경계(警戒)를 삼아야 하리라. 사람이 수중(守中; 中正을 지킴)하려면 과성(過盛)에 이르지 않아야 하나니 풍성에 처하는 도가 어찌 용이하겠는가.
●消息; 음사(陰死)를 소(消)라 하고 양사(陽死)를 식(息)이라 한다.
●令聞; 상은 선(善)이다. 하는 거성(去聲)이니 명성의 멀리 도달함이다.
●時乎難得; 무릇 공(功)은 이루기는 어렵고 패하기는 쉬우며 시(時)는 얻기는 어렵고 잃기는 쉽나니 이르자면 시는 시는(時乎時乎) 다시 오지 않는다. 한(漢) 괴철(蒯徹)이 한신(韓信)에게 설한 말이다.
光陰; 明亮與陰暗 白晝與黑夜 指日月的推移 後世卽用以表時間 [百度百科]
명량(明亮)과 음암(陰暗). 백주와 흑야. 일월의 추이를 가리킴. 후세에 곧 시간을 표시함에 사용했음 [백도백과].
恣情; 종정(縱情; 구속이 없음). 임의(任意).
逸欲; 謂貪圖安逸 嗜欲無節
이르자면 안일을 탐도(貪圖)하여 기욕에 절도(節度)가 없음.
頓足; 以足扣地 頓 以足或物扣地
발로 땅을 두드림. 돈(頓)은 발 혹은 물건으로 땅을 두드림.
扼腕; 自己以一手握持另一手腕部 形容思慮 憤怒 激動等心理活動
자기가 한 손으로써 다른 한 손의 팔 부분을 움켜쥠이니 사려ㆍ분노ㆍ격동 등의 심리 활동을 형용함.
彖辭; 亦稱卦辭 又稱彖傳 分上彖下彖兩部分 說明易經各卦之義 而不涉及爻辭 唐孔穎達依據漢魏以來的注釋 將彖訓爲斷 卽判定一卦之義
또한 명칭이 괘사(卦辭)며 또 명칭이 단전(彖傳)임. 상단(上彖)과 하단(下彖) 두 부분으로 나뉘어졌음. 역경 각 괘의 뜻을 설명하였으며 효사(爻辭)는 섭급(涉及)하지 않았음. 당 공영달이 한위(漢魏) 이래의 주석에 의거해 단(彖)을 가지고 새기기(訓)를 단(斷)이라 했음. 곧 1괘의 뜻을 판정함임.
蒯徹; 蒯通(生卒年不詳) 本名蒯徹 幽州范陽(今河北省定興縣固城鎭)人 秦末漢初辯士 辯才無雙 善於陳說利害 曾爲韓信謀士 先後獻滅齊之策和三分天下之計 [百度百科]
괴통(蒯通; 生卒年不詳)의 본명이 괴철(蒯徹)이었음. 유주(幽州) 범양(范陽; 지금의 하북성 定興縣 固城鎭) 사람. 진말한초(秦末漢初)의 변사(辯士)니 변재가 무쌍했음. 이해(利害)를 진설(陳說)하기를 잘했고 일찍이 한신(韓信)의 모사(謀士)가 되었으며 선후로 멸제지책(滅齊之策)과 천하를 삼분(三分)하는 계책을 바쳤음. [백도백과].
韓信; (約前231-前196) 淮陰(原江蘇省淮陰縣 今淮安市淮陰區)人也 西漢開國功臣 中國歷史上傑出軍事家 與蕭何張良竝列爲漢初三傑 與彭越英布竝稱爲漢初三大名將 布衣時 貧無行 淮陰少年侮信曰 雖長大 好帶刀劍 怯耳 衆辱信曰 能死 刺我 不能 出胯下 於是信孰視 俯出跨下 一市皆笑信以爲怯 及項梁渡淮 信仗劍從之 無所知名 項梁敗 又屬項羽 羽以爲郞中 數以策干項羽 羽不用 漢王入蜀 信亡楚歸漢 未得知名 信數與蕭何語 何奇之 於是召信拜大將 漢二年八月 以信爲左丞相 擊魏 定魏爲河東郡 東北擊趙代 破代兵 擄趙軍 發使使燕 燕從風而靡 六月 漢王拜信爲相國 漢四年 平齊 立信爲齊王 漢王困固陵 用張良計 召齊王信 遂將兵會垓下 項羽已破 高祖襲奪齊王軍 漢五年正月 徙信爲楚王 都下邳 漢六年 以信爲淮陰侯 信稱病不朝 漢十一年 陳豨反 上自將往 信病不從 乃謀與家臣 夜詐詔赦諸官徒奴 欲發以襲呂后太子 其舍人得罪於信 信囚 欲殺之 舍人弟告信反狀於呂后 呂后乃與蕭相國謀 言豨已得死 群臣皆賀 信入賀 呂后使武士縛信 斬之 夷三族 遺有兵法三篇 [漢書三十四 百度百科]
(약 前 231-前 196) 회음(淮陰; 원래는 江蘇省 淮陰縣이며 지금의 회안시 회음구) 사람임. 서한의 개국공신이며 중국 역사상 걸출한 군사가니 소하(蕭何) 장량(張良)과 더불어 한초삼걸(漢初三傑)에 병열(竝列)되며 팽월(彭越) 영포(英布)와 더불어 병칭하여 한초 3대(三大) 명장임. 포의(布衣; 평민을 가리킴) 시 가난하고 행이 없었음. 회음 소년들이 한신을 모욕하며 가로되 비록 장대(長大)하고 도검을 차기(帶)를 좋아하지만 겁쟁이(怯)일 뿐이다. 무리가 한신을 모욕하며 가로되 능사(能死;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음)한다면 나를 찔러라. 능하지 못하면 사타구니 아래로 나오너라. 이에 한신이 숙시(孰視; 주목하며 자세히 봄)하다가 구부려 사타구니 아래로 나왔고 1시(市)가 모두 한신을 비웃으며 겁쟁이라 하였음. 및 항량(項梁)이 도회(渡淮)하자 한신이 검을 짚고 종군했으나 이름이 알려지는 바가 없었음. 항량이 패하자 또 항우에게 예속되었고 항우가 낭중(郞中)으로 삼았음. 자주 계책으로써 항우에게 간여했으나 항우가 채용하지 않았음. 한왕(漢王)이 입촉(入蜀)하자 한신이 초(楚)에서 망명(亡命)하여 한(漢)에 귀의하였으나 이름이 알려짐을 얻지 못했음. 한신이 자주 소하와 말했고 소하가 그를 기이하게 여겼으며 이에 한신을 불러 대장에 제배(除拜)했음. 한(漢) 2년 8월 한신을 좌승상으로 삼았음. 위(魏)를 공격하여 위(魏)를 평정하고는 하동군(河東郡)으로 삼았음. 동북으로 조(趙)ㆍ대(代)를 공격하여 대병(代兵)을 격파하고 조군(趙軍)을 포로로 삼았음. 사신을 발(發)하여 연(燕)에 사신으로 가자 연(燕)이 종풍(從風)하여 쓰러졌음. 6월 한왕이 한신을 제배(除拜)하여 상국(相國)으로 삼았음. 한(漢) 4년 제(齊)를 평정하고 한신을 세워 제왕으로 삼았음. 한왕이 고릉(固陵)에서 시달렸는데 장량의 계책을 써서 제왕 한신을 불렀고 드디어 군사(兵)를 데리고 해하(垓下)에 모였음. 항우가 이미 파패(破敗)하자 고조(高祖)가 제왕의 군사를 습탈(襲奪)했음. 한 5년 정월 한신을 옮겨 초왕(楚王)으로 삼았고 하비(下邳)에 도읍했음. 한 6년 한신을 회음후(淮陰侯)로 삼았고 한신은 칭병(稱病)하며 조회(朝會)하지 않았음. 한 11년 진희(陳豨)가 반란하자 상(上; 황제)이 스스로 장차 가려고 했는데 한신이 칭병(稱病)하며 좇지 않았음. 이에 가신(家臣)과 모의하여 밤에 사조(詐詔)로 제관(諸官)의 도노(徒奴)를 사면하고는 출발하여 여후(呂后)와 태자를 습격하려 했음. 그 사인(舍人)이 한신에게 득죄(得罪)하자 한신이 가두고 그를 죽이려 했는데 사인(舍人)의 동생이 한신의 반상(反狀; 반란의 상황)을 여후에게 고했음. 여후가 이에 소상국(蕭相國)과 모의하여 말하기를 진희는 이미 죽음을 얻었으니 군신이 모두 경하하라. 한신이 입하(入賀)하자 여후가 무사들을 시켜 한신을 포박해 참살(斬殺)하고 3족(族)을 멸했음(夷). 유작에 병법 3편이 있음 [한서34. 백도백과].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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