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합주

선림보훈합주 214

태화당 2022. 11. 18. 09:21

214 萬菴曰 少林初祖 衣法雙傳 六世衣止不傳 取行解相應 世其家業 祖道愈光 子孫益繁 大鑑之後 石頭馬祖皆嫡孫 應般若多羅*懸讖 要假兒孫脚下行是也 二大士玄言妙語 流布寰區 潛符*密證*比有之 師法旣衆 學無專門 曹溪源流 派別爲五 方圓任器 水體是同 各擅佳聲 力行己任 等閒垂一言 出一令 網羅學者 叢林鼎沸 非苟然也 由是互相詶唱 *顯微闡幽 或*[ 佐佑法化 語言無味 如煑木札羮 *鐵釘飯 與後輩咬嚼 目爲拈古 其頌始自汾陽 暨*雪竇宏其音 顯其旨 *汪洋乎不可涯 後之作者 馳騁雪竇而爲之 不顧道德之奚若 務以文彩煥爛相鮮爲美 使後生晚進 不克見古人*渾淳大全之旨 烏乎 予遊叢林 及見前輩 非古人語錄不看 非百丈號令不行 豈特好古 葢今之人不足法也 望通人達士 知我於言外可矣

懸讖; 上 遠也 下 將來之事也 達磨大師 得法後 問般若多羅云 當往何國而作佛事 師曰 汝雖得法 未可遠行 且止南天 待吾滅後 六十七歲 當往震旦說大法藥 直接上根 愼勿遠行 衰于日下 又問 彼有大士 堪爲法器否 千載之下 有留難否 師曰 汝之所化 獲菩提者 不可勝數 吾滅度後六十七載 彼國有難 水中文布 善自降之 汝至時勿住 彼國唯好有爲功德 不見佛理 聽吾偈曰 路行跨水復逢羊 獨自悽悽暗渡江 日下可憐雙象馬 二株嫩桂久昌昌 又云 一百五十年 有小難 聽吾偈曰 心中雖吉外頭凶 川下僧房名不中 若有毒龍生武子 忽逢小鼠寂無窮 又曰 却後林下見一人 當得道果 聽吾偈曰 震旦雖濶無別路 要假兒孫脚下行 金雞解銜一粒粟 供養十方羅漢僧 謂首句 卽道一也 次句乃石頭也 第三句 卽南嶽讓 讓乃金雞縣人 第四句 頌馬祖 祖是四川什邡縣羅漢寺僧 嗣南嶽之法故爾 謂達磨懸讖石頭南嶽爲曹洞臨濟之宗祖也

密證; 明敎曰 密也者 非不言而暗證也 眞密也 註 外傳信衣 內授密證 乃吾佛祖眞實秘密之法也

; 每也往也

顯微下; 謂妙音幽微 玄宗淵奧 語言文字 有所不能形容矣 故至理絕言 非言可及 雖云道本無言 非言不顯 謂眞心離相 卽諸相而顯眞心 至理絕言 假微言而昭彰至道也

抑揚; 縱奪之義

; 音吹 㸑也

雪竇; 明州雪竇重顯禪師 遂州李氏子 嗣智門光祚禪師 一日示衆云 三分光陰二早過 靈臺一點不揩磨 貪生逐日區區走 喚不回頭怎奈何

汪洋; 廣有之貌

渾淳; 淸濁未分也

 

214 만암(萬菴; 道顔)이 가로되 소림사(少林寺; 少林)의 초조(初祖; 達磨)가 옷(가사)과 법을 쌍전(雙傳)했는데 6()에 옷은 그쳐서 전하지 않고 행해(行解)가 상응(相應)함을 취해 그 가업(家業)을 세습(世襲)하자 조도(祖道)가 더욱() 빛났고 자손이 더욱() 번성했다. 대감(大鑑; 혜능의 시호)의 후에 석두(石頭)와 마조(馬祖)가 모두 적손(嫡孫)이었다. 반야다라(般若多羅; 西川 27)의 현참(*懸讖)에 응했으니 요가아손각하행(要假兒孫脚下行)이 이것이다. 2대사(大士)의 현언묘어(玄言妙語)가 환구(寰區; 천하)에 유포(流布)되어 잠부밀증(潛符*密證)하는 자가 비비(*; 每番. 往往) 있었다. 사법(師法; 師家의 법)이 이미 많자() ()에 전문(專門)이 없었으니 조계(曹溪)의 원류(源流)의 파별(派別; 流派가 다름)이 다섯이 되었다. 방원(方圓)을 그릇에 맡기지만() 수체(水體)는 이 동일하니 각기 가성(佳聲)을 선양(宣揚; )하면서 자기의 임무를 힘써 행했다. 등한(等閒)1()을 내리고() 1()을 내어() 학자를 망라(網羅)하니 총림이 정비(鼎沸)함은 구연(苟然; 徒然)함이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호상(互相) 수창(詶唱)하며 현미천유(*顯微闡幽)하고 혹억혹양(*[)하면서 법화(法化)를 좌우(佐佑; 도우다)하니 어언(語言)은 무미(無味)하여 목찰갱(木札羮; 木札木皮)을 끓이고 철정반(鐵釘飯)을 지어(*) 후배에게 교착(咬嚼)하게 하니 명목(名目)해 염고(拈古)라 한다. 그 송()은 분양(汾陽; 善昭)으로부터 비롯했고 설두(*雪竇)에 이르러() 그 음()을 크게() 하고 그 의지(意旨)를 나타내었으니() 왕양(*汪洋)하여 가히 애제(涯際; )가 없었다(). 훗날의 작자(作者)가 설두에게 치빙(馳騁)하여 이를 지었고 도덕(道德)이 어떠한지(奚若)는 돌아보지 않았다. 힘써 문채(文彩)의 환란(煥爛; 환히 빛남)함과 상선(相鮮)으로써 아름다움으로 삼아 후생만진(後生晚進; 후배)으로 하여금 능히 고인의 혼순(*渾淳)한 대전(大全)의 의지(意旨)를 보지 못하게 했다. 오호(烏乎), 내가 총림을 유행(遊行)하다가 전배(前輩)를 봄에 이르니() 고인의 어록이 아니면 보지 않았고 백장(百丈)의 호령(號令)이 아니면 행하지 않았거늘 어찌 특별히 호고(好古)라 하겠는가. 대개 지금의 사람들이 족히 본받지() 않는다. 바라건대 통인달사(通人達士)는 언외(言外)에서 나를 알아야 옳다 하리라.

懸讖; 상은 원()이며 하는 장래의 일이다. 달마대사(達磨大師; 서천 제28)가 득법한 후 반야다라(般若多羅; 서천 제27)에게 묻되 마땅히 어느 나라로 가서 불사(佛事)를 지어야 합니까. 사왈(師曰) 네가 비록 득법했지만 가히 원행(遠行)하지 말고 다만() 남천(南天; 南天竺)에 머물다가() 내가 멸후(滅後) 67()를 기다려 마땅히 진단(震旦)으로 가서 대법약(大法藥)을 설하되 상근(上根)을 직접(直接)하고 삼가 원행(遠行)하지 말지니 일하(日下)에 쇠()한다. 우문(又問) 거기에 대사(大士)가 있어 가히() 법기(法器)가 됩니까. 천재지하(千載之下)에 유난(留難; 無理하게 阻止)이 있습니까. 사왈(師曰) 너의 소화(所化)에 보리(菩提)를 획득하는 자를 가히 모두() 세지 못하리라. 내가 멸도(滅度)한 후 67()에 그 나라에 환난(患難)이 있으며 수중문포(水中文布)하여 선자강지(善自降之)하니(2구는 뜻이 未詳) 네가 이를 때 머물지 말아라. 그 나라에선 오직 유위공덕(有爲功德)을 좋아하여 불리(佛理)를 보지 못한다. 나의 게를 들어라, 가로되 로()를 행()하면서 수()를 넘고 다시 양()을 만나며(路行跨水復逢羊)/ 독자(獨自)로 처처(悽悽)히 몰래 도강(渡江)하리라/ 일하(日下)에 가련(可憐)한 쌍상마(雙象馬)/ 이주(二株)의 눈계(嫩桂; 은 예쁠 눈)가 오래() 창창(昌昌)하리라. 우운(又云) 15십 년에 소난(小難)이 있으리라. 나의 게를 들어라, 가로되 심중(心中)은 비록 길()하나 외두(外頭)가 흉()하나니(心中雖吉外頭凶)/ 천하(川下)의 승방(僧房)이 명()이 부중(不中)이다/ 이에() 독룡이 있어 무자(武子)를 생()했더니/ 홀연히 소서(小鼠)를 만나 적()이 무궁(無窮)이다. 우왈(又曰) 도리어 후에 임하(林下)에서 1인을 만나리니 마땅히 도과(道果)를 얻는다. 나의 게를 들어라, 가로되 진단(震旦)이 비록 넓지만 다른 로()가 없고(震旦雖濶無別路)/ 요컨대 아손(兒孫)이 각하(脚下)에 행함을 빌린다/ 금계(金雞)가 일립(一粒)의 속()을 머금을 줄 알아/ 십방(十方)의 라한승(羅漢僧)에게 공양(供養)하리라. 이르자면 수구(首句)는 곧 도일(道一)이며 차구(次句)는 곧 석두(石頭). 3구는 곧 남악양(南嶽讓; 懷讓)이니 양()은 곧 금계현(金雞縣) 사람이다. 4구는 마조(馬祖)를 송했으니 마조는 이 사천(四川) 십방현(什邡縣)의 라한사승(羅漢寺僧)이며 남악의 법을 이은 연고일 뿐이다. 이르자면 달마가 석두와 남악이 조동과 임제의 종조(宗祖)임을 현참(懸讖)했다.

密證; 명교(明敎; 契嵩)가 가로되 밀()이란 것은 말하지 않음이 아니라 몰래 증(暗證)함이니 진밀(眞密)이다. () 밖으론 신의(信衣)를 전하고 안으론 밀증(密證)을 주었으니 곧 우리 불조의 진실한 비밀의 법이다.

; (). ()이다.

顯微下; 이르자면 묘음(妙音)은 유미(幽微)하고 현종(玄宗)은 연오(淵奧; 深奥)하여 어언문자(語言文字)로는 능히 형용하지 못할 바가 있다. 고로 지리(至理)는 절언(絕言)인지라 언어가 가히 미치지 못한다. 비록 이르되 도는 본래 무언(無言)이라 하지만 언어가 아니면 나타내지 못한다. 이르자면 진심(眞心)은 이상(離相)이지만 제상(諸相)에 즉(; 붙다)해 진심(眞心)을 나타내고 지리(至理)는 절언(絕言)이지만 미묘한 말(微言)을 빌려 지도(至道)를 환히 나타낸다(昭彰).

抑揚; 종탈(縱奪)의 뜻이다.

; 음이 취()니 찬(; 과 같음. 불을 때다. 밥을 짓다).

雪竇; 명주(明州) 설두(雪竇; 설두산) 중현선사(重顯禪師; 980-1052)니 수주(遂州; 지금의 四川 遂寧) 이씨의 아들이며 지문광조(智門光祚; 香林澄遠法嗣) 선사를 이었다. 어느 날 시중(示衆)하여 이르되 3분의 광음에 2는 벌써 지나갔건만/ 영대(靈臺)의 일점은 개마(揩磨)하지 못했네/ 생을 탐해 날을 쫓아 구구(區區)히 가는지라/ 불러도 머리 돌리지 않으니 어찌하리오.

汪洋; 광유(廣有)한 모양.

渾淳; 청탁(淸濁)이 나뉘지 않음이다.

 


少林; 少林寺 位于河南省登封縣城之北十五公里少室山五乳峰下 北魏太和十九年(495) 孝文帝爲天竺僧佛陀禪師所建 正光元年(520) 一說孝昌三年(52 7) 菩提達摩來寺面壁九年 傳法慧可 開創中國禪宗 故稱達摩爲初祖 少林寺爲祖庭 唐初少林寺僧衆 佐唐太宗開國有功 從此僧衆常習拳術 禪宗和少林拳術 廣爲流傳 高宗武后均甚崇敬 整修寺宇 其後歷經唐末五代之亂 寺漸衰微 宋淳祐二年(1242) 雪庭福裕及其法嗣靈隱文泰 古巖普就 息庵義讓 淳拙文才諸師 相繼住持此寺 各振禪風 傳曹洞正脉 少林寺於晩唐五代之際 爲臨濟宗僧所住 金元以來 成爲曹洞宗道場 淸初因少林寺成爲反淸復明的基地而遭焚燒 淸雍正十三年(1 735)重修 規模宏大 [續高僧傳四 同十六 傳燈錄三 同四 釋氏稽古略二 少林寺志 魏書一一四]

소림사니 하남성 등봉현성(登封縣城)의 북쪽 12의 소실산(少室山) 오유봉(五乳峰) 아래에 위치함. 북위(北魏) 태화 19(495) 효문제(孝文帝)가 천축승 불타선사(佛陀禪師)를 위해 건립한 것임. 정광 원년(520), 일설(一說)엔 효창 3(527) 보리달마가 사원에 와서 면벽구년(面壁九年)하였고 혜가(慧可)에게 전법(傳法)하여 중국선종을 개창(開創)했음. 고로 달마를 일컬어 초조(初祖)라 하고 소림사를 조정(祖庭)이라 함. 당초(唐初)에 소림사의 승중(僧衆)이 당태종을 도와 개국(開國)에 공이 있었는데 이로부터 승중이 늘 권술(拳術)을 익히게 되었고 선종과 소림의 권술이 널리 유전(流傳)되었음. 당 고종과 무후(武后)가 균일하게 매우 숭경(崇敬)했고 사우(寺宇)를 정수(整修)했음. 그 후에 당말오대의 난을 역경(歷經)하면서 사원이 점차 쇠미해졌음. 송 순우 2(124 2) 설정복유(雪庭福裕) 및 그 법사(法嗣)인 영은문태ㆍ고암보취ㆍ식암의양ㆍ순졸문재 여러 스님이 상계(相繼)하며 이 사원에 주지했고 각기 선풍을 진작했으며 조동정맥(曹洞正脉)을 전했음. 소림사는 만당(晩唐)과 오대의 즈음에 임제종의 승인이 거주한 곳이 되었는데 금ㆍ원 이래로 조동종 도량이 되었음. 청초에 소림사는 반청복명(反淸復明)의 기지(基地)가 됨으로 인해 분소(焚燒)를 만났음. 청 옹정 13(1735) 중수했고 규모가 굉대(宏大)[속고승전4, 16. 전등록3, 4. 석씨계고략2. 소림사지. 위서114].

 

嫡孫; 嫡 指正宗正統 如嫡系嫡傳

()은 정종정통(正宗正統)을 가리킴. 예컨대() 적계적전(嫡系嫡傳).

 

詶唱; 卽酬唱 指機語應對

곧 수창(酬唱)이니 기어의 응대를 가리킴.

 

拈古; 擧出前人公案機語 加以評議 是禪家說法的一種形式 也是禪宗語錄的一種類型

전인(前人)의 공안의 기어(機語)를 거출하여 평의를 가함이니 이는 선가 설법의 1종 형식임. 또 이는 선종어록의 1종 유형임.

 

佛事; 凡發揚佛德之事 稱爲佛事 如佛家說法 修習 祈禱 追福等

무릇 불덕을 발양(發揚)하는 일을 일컬어 불사라 함. 예컨대() 불가의 설법ㆍ수습(修習)ㆍ기도ㆍ추복(追福) .

 

震旦; 指中國 慧琳音義二十二 震旦國 或曰支那 亦云眞丹 此翻爲思惟 以其國人多所思慮多所計詐故以爲名 卽今此漢國是也

중국을 가리킴. 혜림음의22. 진단국(震旦國) 혹은 가로되 지나(支那)며 또 이르되 진단(眞丹)이니 여기에선 사유(思惟)로 번역한다. 그 나라 사람은 사려하는 바가 많고 계사(計詐)하는 바가 많은 고로 이름을 삼았다. 즉금의 이 한국(漢國)이 이것이다.

 

法器; 凡能修行佛道者 稱爲法器

무릇 능히 불도를 수행할 만한 자를 일컬어 법기라 함.

 

菩提; <> bodhi 舊譯爲道 新譯爲覺 道者通義 覺者覺悟之義 然所通所覺之境 有事理之二法 理者涅槃 斷煩惱障而證涅槃之一切智 是通三乘之菩提也 事者一切有爲之諸法 斷所知障而知諸法之一切種智 是唯佛之菩提也 佛之菩提 通於此二者 故謂之大菩提 [智度論四 注維摩經四]

<> bodhi. 구역은 도()라 했고 신역은 각()이라 했음. 도란 것은 통()의 뜻이며 각이란 것은 각오의 뜻임. 그러나 소통소각(所通所覺)의 경계는 사리(事理)2법이 있음. ()란 것은 열반이니 번뇌장(煩惱障)을 끊고 열반을 증득하는 일체지(一切智)며 이는 3()의 보리에 통함. ()란 것은 일체 유위의 제법이니 소지장(所知障)을 끊고 제법을 아는 일체종지(一切種智)며 이는 오직 불타의 보리임. 이 둘에 통하는 것인지라 고로 이를 일러 대보리(大菩提)라 함 [지도론4. 주유마경4].

 

路行跨水復逢羊下; 祖庭事苑八 路行跨水忽逢羊 獨自棲棲暗渡江 日下可憐雙象馬 二株嫩桂久昌昌 此讖達摩西來始終之事 達摩始來見梁武帝 帝名衍 衍从行从水 故云路行跨水 帝旣不契 祖師遂有洛陽之游 故云逢羊 羊 陽聲相近也 祖師不欲人知其行 是夜航葦西邁 故曰暗渡江也 祖師西來 見梁魏二帝 此言日下雙象馬也 九年面壁於少林 故曰二株嫩桂也 久 九聲之近也

조정사원8 ()를 행()하면서 수()를 넘고 홀연히 양()을 만나며/ 독자(獨自)로 처처(悽悽)히 몰래 도강(渡江)하리라/ 일하(日下)에 가련(可憐)한 쌍상마(雙象馬)/ 이주(二株)의 눈계(嫩桂; 은 예쁠 눈)가 오래() 창창(昌昌)하리라. 이것은 달마가 서래(西來)한 시종의 일을 참()했다. 달마가 처음 와서 양무제(梁武帝)를 뵈었는데 제()의 이름이 연()이다. ()은 행()을 좇고 수()를 좇는지라 고로 이르되 로행과수(路行跨水)이다. ()가 이미 계합하지 못했으므로 조사가 드디어 낙양(洛陽)의 노닒이 있었다. 고로 이르되 봉양(逢羊)이니 양()은 양성(陽聲)과 서로 가깝다. 조사가 그 행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이 밤에 위(; 갈대 위. 작은 배)를 운항하여 서쪽으로 갔으므로 고로 가로되 암도강(暗渡江)이다. 조사가 서래(西來)하여 양위(梁魏)의 이제(二帝)를 보았으니 이것은 일하(日下)의 쌍상마(雙象馬)를 말함이다. 구년(九年) 동안 소림(少林)에서 면벽했으므로 고로 가로되 이주눈계(二株嫩桂)이다. ()는 구()와 소리가 가깝다.

 

心中雖吉外頭凶下; 祖庭事苑八 心中雖吉外頭凶 川下僧房名不中 爲遇毒龍生武子 忽逢小鼠寂無窮 此讖周武帝名邕 破滅佛敎 至庚子興復 故云小鼠 寂寞 謂邕也

조정사원8 심중(心中)은 비록 길()하나 외두(外頭)가 흉()하나니/ 천하(川下)의 승방(僧房)이 명()이 부중(不中)이다/ 독룡(毒龍)을 만나 무자(武子)를 생()했더니/ 홀연히 소서(小鼠)를 만나 적()이 무궁(無窮)이다. 이것은 주무제(周武帝; 재위 560-578)의 명()이 옹()이며 불교를 파멸(破滅)하였다가 경자(庚子; 580)에 이르러 흥복(興復)함을 참()했다. 고로 이르되 소서(小鼠)며 적막(寂寞)은 이르자면 옹()이다.

 

震旦雖闊無別路下; 祖庭事苑五 震旦雖闊無別路 要假兒孫脚下行 金雞解銜一粒米 供養十方羅漢僧 此讖馬大師得法於讓和上之緣 無別路 其道一也 故馬大師名道一 兒孫 嗣子也 脚下行 所謂一馬駒子踏殺天下人也 金雞銜米 以讓和上金州人 雞知時而鳴 以覺未寤 羅漢僧 馬祖生漢州之什仿縣 受讓師法食之供

조정사원5 진단(震旦)이 비록 넓지만 다른 로()가 없고/ 요컨대 아손(兒孫)이 각하(脚下)에 행함을 빌린다/ 금계(金雞)가 일립(一粒)의 미()를 머금을 줄 알아/ 십방(十方)의 라한승(羅漢僧)에게 공양(供養)하리라. 이것은 마대사(馬大師)가 양화상(讓和上)에게서 득법한 인연을 참()했다. 다른 길이 없음은 그 도()가 일()이니 고로 마대사의 이름이 도일(道一)이다. 아손(兒孫)은 사자(嗣子)며 각하행(脚下行)은 이른 바 1마구자(馬駒子)가 천하 사람을 밟아 죽임이다. 금계(金雞)가 미()를 머금음은 양화상(讓和上)이 금주(金州) 사람이기 때문이니 계()는 때를 알아 울므로 미오(未寤)를 깨닫게 함이다. 라한승(羅漢僧)이란 마조가 한주(漢州)의 십방현(什仿縣)에서 태어났음이며 회양선사의 법식(法食)의 공양(供養)을 받았다.

 

信衣; 佛家傳授之衣也 五燈會元一 二十五祖曰 師子尊者難未起時 密授我信衣法偈 以顯師承 又六祖壇經 祖復曰 昔達磨大師初來此土 人未信之 故傳此衣以爲信體 代代相承

불가에서 전수하는 옷임. 오등회원1 25조가 가로되 사자존자가 재난이 일어나지 아니한 전에 몰래 나에게 신의(信衣)와 법게(法偈)를 수여했다 하여 사승(師承)을 밝혔음. 또 육조단경 조사가 다시 가로되 옛적에 달마대사가 처음 이 국토에 도래하매 사람들이 그것를 믿지 않는지라 고로 이 옷을 전하여 신체(信體)로 삼아 대대로 상승(相承)했다.

 

靈臺; 指一心 眞如 佛性 緇門警訓註上 靈臺 心也 莊周(莊子庚桑楚)曰 萬惡不可內於靈臺 司馬彪曰 心爲神靈之臺 選註云 寄神通於心府之下

일심ㆍ진여ㆍ불성을 가리킴. 치문경훈주상. 영대(靈臺) ()이다. 장주(莊周)가 가로되 만악(萬惡)이 가히 영대(靈臺)에 들어가지 못한다. 사마표가 가로되 심()은 신령의 대()가 된다. 선주(選註)에 이르되 신통을 심부(心府)의 아래 기탁한다.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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