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합주

선림보훈합주 286

태화당 2022. 12. 9. 08:56

286 *靈芝照和尙曰 * 同邪異邪 曰 讒必假謗而成 葢有謗而不讒者 未見讒而不謗者也 夫讒之生也 其始因於憎嫉 而終成於輕信 爲之者 諂佞小人也 古之人有輸忠以輔君者 盡孝以事親者 抱義以結友者 雖君臣之相得 父子之相愛 朋友之相親 一日爲人所讒 則*反目*攘臂 擯逐離間 至於相視如*宼讐 雖在古聖賢 所不能免也 然有初不能辯 久而後明者 有生而不能辯 死而後明者 有至死不能辯 終古不能明者 不可勝數矣 *子游曰 事君數斯辱矣 朋友數斯疏矣 此所以戒人遠讒也 嗚呼讒與謗不可不察也 且經史載之不爲不明 學者覧之 莫不知其非 往往自身陷於讒口 *噎鬱至死不能自明者 是必怒受讒者之不察 爲讒者之謟佞也 至有羣小至其前 復讒於它人 則又聽之以爲然 是可謂聰明乎 葢善爲讒者 巧便*鬬構 迎合蒙蔽 使其瞢然 如爲鬼所魅至有終身不能察者 *孔子曰 浸潤之* 膚受之* 言其浸潤之來不使人預覺 雖*曾參至孝 母必疑其殺人 *非林藪 人必疑其有虎 間有不行焉者 則謂之明遠君子矣 予以愚拙疎懶 不喜諂附妄悅於人 遂多爲人所讒謗 予聞之竊自省曰 彼言果是歟 吾當改過 彼則我師也 彼言果非歟 彼亦徒爲耳 焉能*我哉 於是耳雖聞之 而口未甞辯 士君子察不察 在彼才識明不明耳 吾孰能*其枉直 求知於人哉 然且不知久而後明邪 後世而後明邪 終古不明邪 *文中子曰 何以息謗 曰無辯 吾當*斯語矣芝園集

靈芝照; 杭州靈芝寺元照禪師 字湛然 餘姚唐氏子 嗣未詳

讒謗; 佞言深切 譖害賢良曰讒 未至深切 但言人惡曰謗

反目; 怒目相視也 易云夫妻反目

攘臂; 宣袂出臂也 孟子云 馮婦攘臂下車

宼讐; 上敵暴也 下冤仇也 孟子云 君之視臣如草芥 則臣視君如宼讐

子游下; 子游 孔子弟子 姓言 名偃 字子游 註云 數 頻凟也 事君苟諫之 不行則去之可也 若諫之頻凟 則聽者厭 輕者去其爵 重則傷其身 是求榮於君 而反取其辱也 導友不納 則止之可也 若導之頻凟 令聽者厭 乃至口然而心不然 言和而意不和 一言不和 怒氣相加 是則求親而反疎也

噎鬱; 上 氣不通也 下 氣變色也

鬬搆; 權巧方便 令人暗結冤讐 如兩將相敵 兵仗在後 相鬪之形 故曰鬪搆也

孔子; 姓孔 名丘 字仲尼 周靈王庚戌二十一年 十一月初四日 生於魯國兖州鄒邑 平鄕晉昌里 父叔梁紇 母顔氏 至唐玄宗 謚號曰文宣

譖愬; 子張問明 子曰 浸潤之譖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明矣 註曰 浸潤者 如水浸灌 滋潤漸漬而不驟也 譖者 毁人之行也 言毁人之行 漸漬而不驟 則聽者不覺其入 而信之深矣 膚受 謂肌膚所受 利害切身 愬 與訴同 愬者 愬己之冤也 言愬冤急迫而切 則聽者不及致詳而發之暴矣 二者難察 能察之 則可見其心之明 照之遠 不蔽於近也

曾參; 姓曾 名參 字子輿 孔子弟子 武城人 至孝孔子因之作孝經 秦之甘茂曰 魯人與曾參同名者殺人 人告其母 母曰 吾子不殺人 織機自若 少頃人又告曾參殺人 母又自若 又一人告之 其母投杼下機 踰墻而走 臣賢不及曾參 王信臣又不及其母 疑臣者不特三人 臣恐大王投杼矣 秦武王任使甘茂伐韓 韓侵宜陽之言

市有虎; 韓子曰 龐共太子 質於邯鄲 謂魏王曰 今有一人 言市中有虎 大王曰否 又一人言信乎 王曰否 三人言有虎 王信乎 王曰 寡人信之矣 龐共曰 市無虎明矣 三人言 城市有虎 王旣信矣 而說佞之言 愼勿輕信 願王察之 王大悅

; 音每 染汙也

; 呈也 明也

文中子; 姓王 名通 字仲淹 洛陽龍門人 沒後 門人謚爲文中子 隋煬帝時人 西遊長安 見帝於太極殿 奏太平十二䇿 遵王道 推霸略 稽古驗今 帝大悅曰 得生幾晚 下其議於公卿 不允 文中子知謀之不用 作東征歌而歸 讀詩書 正禮樂 修六經 贊易道 九年六經大備 門人自遠而至者 河南董常 太山姚義 京兆杜如晦 趙郡李靖 南陽陳元 河東薛守 中山賈瓊 太原王珪 淸河房玄齡 鉅鹿魏徵 頴川陳叔達 咸稱爲師 面南而受王佐之道 及餘往來 受道千餘人 賈瓊問曰 何以息謗 文中子曰 無辯 問如何止怨 曰無爭 乃云 聞謗而怒者 讒之囮 見譽而喜者 佞之媒 絕囮去媒 讒佞遠矣 囮 音由 鳥之媒也

; 承也 習也

 

286 영지조(*靈芝照) 화상이 가로되 참참(讒譖*)과 비방(誹謗; )은 같은가, 다른가. 가로되 참참은 반드시 비방을 빌려야() 성립하나니 대개 비방이 있으면서 참참하지 않는 자는 있어도 참참하면서 비방하지 않는 자는 보지 못했다. 무릇 참참이 발생함은 그 시작이 증질(憎嫉)로 인하였다가 종말엔 경신(輕信; 남의 말을 가볍게 믿다)을 이루나니 이를 하는 자는 첨녕(諂佞; 저본에 謟佞으로 지었음)하는 소인(小人)이다. 옛 사람에 수충(輸忠; 忠心獻納)하여 보군(輔君)하는 자, 진효(盡孝)하여 사친(事親)하는 자, 포의(抱義)하여 결붕(結友)하는 자가 있었다. 비록 군신(君臣)의 상득(相得), 부자(父子)의 상애(相愛), 붕우(朋友; 저본에 明友로 지었음)의 상친(相親)일지라도 어느 날 타인이 참참(讒譖)하는 바가 되면 곧 반목(*反目)하고 양비(*攘臂)하며 빈축(擯逐)하고 이간(離間)하며 구수(*宼讐)와 같이 상시(相視)함에 이르나니 비록 옛 성현(聖賢)에 있어서도 능히 면하지 못하는 바였다. 그러하여 시초(始初)에 능히 분변(分辯)하지 못하다가 오랜 후에 판명(判明)되는 것이 있고 생전엔 능히 분변하지 못하다가 죽은 후에 판명되는 것이 있고 죽음에 이르도록 능히 분변하지 못하고 종고(終古; 久遠)토록 능히 판명되지 않는 것이 있어 가히 다() 세지 못한다. 자유(*子游)가 가로되 사군(事君; 國君를 모시다)하면서 삭(; 자주 諫諍하다)은 이 욕()이며 붕우(明友)에게 삭()은 이 소(). 이것은 사람에게 원참(遠讒)을 경계(警戒)하는 소이(所以)이다. 오호(嗚呼)라 참참과 비방을 심찰(審察)하지 않음은 옳지 못하다. () 경사(經史)에 기재(記載)되어 명백하지 아니함이 아니니 학자가 이를 열람한다면 그 그름을 알지 아니치 못하리라. 왕왕(往往) 자신(自身)이 참인(讒人)의 구중(口中)에 함락(陷落)되어 일울(*噎鬱)하면서 죽음에 이르도록 능히 스스로 판명(判明)하지 못하는 자는 이는 필()히 참자(讒者)를 노수(怒受)하면서 심찰(審察)하지 못해 참자(讒者)가 첨녕(諂佞; 저본에 謟佞으로 지었음)했기 때문이다. 군소(羣小)가 그 앞에 이르러 다시 타인(它人)을 참참함이 있음에 이르면 곧 또 이를 듣고 그렇다고 한다면 이를 가히 총명하다고 이르겠는가. 대개 잘 참참하는 자는 공교(工巧)한 방편으로 투구(*鬬構)하고 영합(迎合)하여 몽폐(蒙蔽; 愚昧하고 無知)로 그로 하여금 몽연(瞢然)하게 하나니 귀신에게 홀리는() 바가 됨과 같아서 내지 종신토록 능히 심찰하지 못하는 자가 있다. 공자(*孔子)가 가로되 침윤(浸潤)의 참(*)과 부수(膚受)의 소(*). 말하자면 그것이() 침윤(浸潤)하여 오므로 사람으로 하여금 예각(預覺)하지 못하게 한다. 비록 증삼(*曾參)이 지효(至孝)지만 모친이 그의 살인을 반드시 의심하고 시(*)는 임수(林藪; )가 아니거늘 사람이 거기에 범이 있다고(有虎) 의심한다. 가끔() 불행(不行; 決斷하여 불신)하는 자가 있나니 곧 이를 일러 명원(明遠; 高明遠達)의 군자라 한다. (靈芝照)가 우졸(愚拙)하고 소라(疎懶; 疎散하며서 懶墮)하지만 첨부(諂附; 저본에 謟附로 지었음)하면서 타인을 허망히 기쁘게() 함을 좋아하지() 않는지라 드디어 다분히 타인이 참방(讒謗)하는 바가 되었다. 내가 이를 듣고 몰래 자성(自省)하며 가로되 그의 말이 과연 옳다면 내가 마땅히 개과(改過)하리니 그는 곧 나의 스승이다. 그의 말이 과연 그르다면 그는 또한 도연(徒然)할 뿐이거늘 어찌 능히 나를 더럽히겠는가(*). 이에 귀는 비록 이를 들어도 입은 일찍이 변명(辨明; )하지 않는다. 사군자(士君子)의 찰()과 불찰(不察)은 그의 재식(才識)이 명()한지 불명(不明)한지에 있을 뿐이거늘 내가 어찌() 능히 그의 왕직(枉直; 曲直)을 밝혀(*) 타인에게 앎을 구하겠는가. 연차(然且) 부지(不知)하더라도 오랜 후에 명료(明了)하겠는가, 후세(後世) 이후(而後)에 명료하겠는가, 종고(終古)토록 명료하지 않겠는가. 문중자(*文中子)가 가로되 무엇으로써 비방을 식멸(熄滅)하는가, 가로되 무변(無辯)이다. 내가 마땅히 사어(斯語)를 받들겠다(*). 芝園集.

靈芝照; 항주(杭州) 영지사(靈芝寺) 원조선사(元照禪師; 1048-1116)니 자는 담연(湛然)이며 여요(餘姚) 당씨(唐氏)의 아들이다. ()는 미상(未詳).

讒謗; 영언(佞言)이 심절(深切)하여 현량(賢良)을 참해(譖害)함을 가로되 참()이며 심절(深切)에 이르지 않고 단지 타인의 악()을 말함을 가로되 방()이다.

反目; 노목(怒目)으로 상시(相視)함이다. ()에 이르되 부처(夫妻)가 반목(反目)하다.

攘臂; 선몌(宣袂; 소매를 흔들다)하며 팔을 내밀음이다. 맹자에 이르되 풍부(馮婦)가 양비(攘臂; 소매를 걷어올리다)하고 수레에서 내렸다.

宼讐; 상은 적포(敵暴; 凶暴敵人)며 하는 원구(冤仇; 怨讐; 과 통함). 맹자(孟子)가 이르되 군()이 신()을 봄이 초개(草芥)와 같으면 곧 신이 군을 봄이 구수(宼讐)와 같다.

子游下; 자유(子游; 508-)는 공자의 제자다. 성이 언()이며 이름이 언()이며 자는 자유(子游). 주운(註云) ()은 빈독(頻凟; 자주 업신여기다. 자주 더립히다)이다. 국군(國君)을 모시면서 구차하게 간()하여 행하지 아니하면 곧 떠남이 옳다. 만약 간하여 빈독(頻凟)하면 곧 청자(聽者)가 싫어하나니 가벼운 것은 그의 작위(爵位)를 삭거(削去)하지만 무거우면 곧 그의 몸을 상해(傷害)한다. 이는 국군에게서 영화를 구하다가 도리어 그 욕()을 취함이다. 벗을 인도(引導)하다가 용납하지 않으면 곧 그침이 옳다. 만약 인도하면서 빈독(頻凟)하면 청자(聽者)로 하여금 싫어하게 하며 내지 입은 그렇다 하고 마음은 그렇지 않아서 말은 화()하지만 뜻은 불화(不和). 일언(一言)이 불화하면 노기(怒氣)를 상가(相加)하리니 이는 곧 친밀(親密)을 구하다가 도리어 소원(疏遠)해진다.

噎鬱; 상은 기()가 불통(不通)함이며 하는 기()가 변색(變色)함이다.

鬬搆; 권교(權巧)의 방편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몰래 원수를 맺게 함이니 예컨대() 두 장수가 상적(相敵)하면서 병장(兵仗; 兵器)을 뒤에 두고 상투(相鬪)하는 형세인지라 고로 가로되 투구다.

孔子; 성은 공()이며 이름은 구()며 자는 중니(仲尼). 주영왕(周靈王) 경술(庚戌) 21(551) 11월 초 4일 노국(魯國) 연주(兖州) 추읍(鄒邑) 평향진창리(平鄕晉昌里)에서 탄생했으니 부()는 수량흘(叔梁紇)이며 모()는 안씨(顔氏). 당현종(唐玄宗; 685-762. 재위 712-756)에 이르러 시호(謚號)해 가로되 문선(文宣)이라 했다.

譖愬; 자장(子張)이 문명(問明; 을 묻다)했다. 공자가 가로되 침윤지참(浸潤之譖)과 부수지소(膚受之愬)는 불행(不行; 決斷하여 불신)한다면 가히 명(; 高明)이라 이를 만하다. 주왈(註曰) 침윤(浸潤)이란 것은 물의 침관(浸灌; 배어들다)과 같나니 자윤(滋潤; 水分이 많음)이 점차 스며들어() 달리지() 못함이다. (; 讒訴하다)이란 것은 사람의 행을 헐뜯음()이다. 말하자면 사람의 행을 헐뜯어 점차 스며들어 달리지 못함이니 곧 청자(聽者)가 그 들어옴()을 깨닫지 못하고 믿음이 깊어짐이다. 부수(膚受)란 이르자면 기부(肌膚; 살과 피부)로 받는 것이니 이해(利害)가 몸에 밀절(密切)함이다. ()는 소()와 같다. ()란 것은 자기의 원통(冤痛)함을 하소연()함이다. 말하자면 소원(愬冤)함이 급박(急迫)하고 절박(切迫)함이니 곧 청자(聽者)가 치상(致詳; 자세히 審察하다)에 미치지 못해 밝힘()이 횡포(橫暴)함이다. 2()는 심찰(審察)하기 어렵나니 능히 심찰한다면 곧 가히 그 심()의 명()과 조()의 원()을 보나니 근밀(近密)함을 가리지() 않는다.

曾參; 성이 증()이며 이름이 삼()이며 자가 자여(子輿). 공자의 제자며 무성(武城) 사람이다. 지극한 효자라 공자가 이로 인해 효경(孝經)을 지었다. ()의 감무(甘茂)가 가로되 노()나라 사람에 증삼과 같은 성명인 자가 살인했습니다. 사람이 그 어머니에게 고하자 어머니가 가로되 나의 아들은 살인하지 않았다. 베틀로 짜며 자약(自若)했습니다. 잠시 만에 사람이 또 증삼이 살인했다고 고하자 어머니가 또 자약했습니다. 또 한 사람이 이를 고하자 그 어머니가 베틀의 북을 던져버리고 베틀에서 내려와 담장을 넘어 도주했습니다. ()의 현명함이 증삼에 미치지 못합니다. (武王)께서 신을 믿으시지만 또 그 어머니에 미치지 못하십니다. 신을 의심하는 자가 특히 세 사람만이 아닐 것이니 신이 대왕께서 북을 던질까 두렵습니다. () 무왕(武王)이 감무(甘茂)를 임사(任使; 委用)하여 벌한(伐韓)했으니 한()의 의양(宜陽)을 침략한다는 말이었다.

市有虎; 한자(韓子)에 가로되 방공(龐共; 龐恭으로 의심됨)과 태자(太子; 魏大子)가 한단(邯鄲)에 인질(人質)이 되었다가 위왕(魏王)에게 일러 가로되 지금(只今) 한 사람이 있어 말하되 시중(市中)에 범이 있습니다(有虎). 대왕이 가로되 아니다(). 또 한 사람이 말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가로되 아니다. 세 사람이 범이 있다고 말한다면 왕이 믿으시겠습니까. 왕이 가로되 과인(寡人)이 이를 믿겠다. 방공(龐共)이 가로되 시중에 범이 없음은 명백합니다. 3인이 말하되 성시(城市)에 범이 있다 하매 왕이 이미 믿었습니다. 설녕(說佞)의 말을 삼가 경신(輕信)하지 마십시오. 원컨대 왕은 이를 심찰(審察)하십시오. 왕이 대열(大悅)했다.

; 음이 매()니 염오(染汙).

; ()이다. ()이다.

文中子; 성이 왕()이며 이름이 통(; 584-617)이며 자가 중엄(仲淹)이며 낙양 용문(龍門) 사람이다. 죽은 후 문인(門人)들이 시()하여 문중자(文中子)라 했으니 수양제(隋煬帝) 때의 사람이다. 서쪽으로 장안()을 유행(遊行)하다가 태극전(太極殿)에서 황제를 조현(朝見)했다. 태평십이책(太平十二䇿)을 상주(上奏)하여 왕도(王道)를 준수(遵守)하고 패략(霸略)를 추천(推薦)하되 계고험금(稽古驗今)했다 황제가 대열(大悅)하고 가로되 득생(得生)함이 얼마나 늦었던가. 공경(公卿)에게 그 논의(論議)를 내렸으나 승낙하지 않았다(不允). 문중자가 계모(計謀)의 불용(不用)을 알고 동정가(東征歌)를 짓고 돌아왔다. 시서(詩書)를 읽고 예악(禮樂)을 개정(改正)하고 육경(六經)을 찬수(纂修)하고 역도(易道)를 찬조(贊助)했는데 9년 만에 육경(六經)을 대비(大備)했다. 문인(門人)에 먼 데로부터 이른 자는 하남(河南) 동상(董常)ㆍ태산(太山) 요의(姚義)ㆍ경조(京兆) 두여회(杜如晦)ㆍ조군(趙郡) 이정(李靖)ㆍ남양(南陽) 진원(陳元)ㆍ하동(河東) 설수(薛守)ㆍ중산(中山) 가경(賈瓊)ㆍ태원(太原) 왕규(王珪)ㆍ청하(淸河) 방현령(房玄齡)ㆍ거록(鉅鹿) 위징(魏徵)ㆍ영천(頴川) 진숙달(陳叔達)이니 모두 호칭하기를 스승이라 했고 면남(面南)하여 왕좌(王佐) 도를 받았으며 및 나머지 왕래하며 도를 받은 이 천여 인이다. 가경(賈瓊)이 물어 가로되 무엇으로써 비방을 식멸(息滅)합니까. 문중자가 가로되 변명하지 않는다(無辯). 묻되 어떻게 원한(怨恨)을 그치게 합니까. 가로되 다투지 않는다(無爭). 이에 이르되 비방을 듣고 노()하는 것은 참()의 유(; 후림새)며 칭찬()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녕()의 매(; 媒介). 절유거매(絕囮去媒)하면 참녕(讒佞)이 멀어진다. ()는 음이 유()니 새의 매().

; ()이다. ()이다.

 


韓子; 指韓非或其著作韓非子 韓非(280-233) 尊稱韓非子或韓子 韓王歇之子 荀子的學生 戰國末期著名的思想家 法家思想的集大成者 著有韓非子 [百度百科]

한비(韓非) 혹 그의 저작 한비자를 가리킴. 한비(280-233)를 존칭해 한비자 혹 한자(韓子)라 함. 한왕(韓王) 헐의 아들이며 순자(荀子)의 학생이니 전국말기 저명한 사상가며 법가사상의 집대성자. 저서에 한비자가 있음 [백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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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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