惠能辭違祖已 發足南行 兩月中間 至大庾嶺〈五祖歸 數日不上堂 衆疑 詣問曰 和尙少病少惱否 曰 病卽無 衣法已南矣 問 誰人傳授 曰 能者得之 衆乃知焉〉 逐後數百人來 欲奪衣鉢 一僧俗姓陳 名惠明 先是四品將軍 性行麁慥 極意參尋 爲衆人先 趁及惠能 惠能擲下衣鉢於石上云 此衣表信 可力爭耶 能隱草莽中 惠明至 提掇不動 乃喚云 行者 行者 我爲法來 不爲衣來 惠能遂出 坐盤石上 惠明作禮云 望行者 爲我說法 惠能云 汝旣爲 法而來 可屏息諸緣 勿生一念 吾爲汝說 明良久 惠能云 不思善 不思惡 正與麽時 那箇是明上座本來面目 惠明言下大悟 復問云 上來密語密意外 還更有密意否 惠能云 與汝說者 卽非密也 汝若返照 密在汝邊 明曰 惠明雖在黃梅 實未省自己面目 今蒙指示 如人飮水 冷暖自知 今行者卽惠明師也 惠能曰 汝若如是 吾與汝同師黃梅 善自護持 明又問 惠明今後向甚處去 惠能曰 逢袁則止 遇蒙則居 明禮辭〈明回至嶺下 謂趁衆曰 向陟崔嵬 竟無蹤跡 當別道尋之 趁衆咸以爲然 惠明後改道明 避師上字〉
혜능이 5조를 사위(辭違; 告別)하고 나서 발족(發足)하여 남행(南行)하다가 두 달 중간에 대유령(大庾嶺)에 이르렀다. 〈5조가 돌아와 며칠 상당(上堂)하지 않자 대중이 의심했다. 나아가 물어 가로되 화상은 소병소뇌(少病少惱)하십니까. 가로되 병은 곧 없으나 의법(衣法)은 이미 남쪽이다. 묻되 어떤 사람에게 전수(傳授)했습니까. 가로되 능(能)이란 자가 얻었다. 대중이 이에 알았다〉. 뒤를 쫓아 몇 백 사람이 와서 의발(衣鉢)을 탈취(奪取)하려고 했다. 1승(僧)의 속성은 진(陳)이며 이름은 혜명(惠明; 또 慧明으로 지음)이었는데 이전(以前; 先)에 이 사품장군(四品將軍)이었다. 성행(性行; 본성과 行爲)이 추조(麁慥; 거칠고 성급함)했고 극의(極意; 盡意)로 참심(參尋; 尋訪)했다. 중인(衆人)의 선두(先頭)가 되어 쫓아 혜능에게 미쳤다. 혜능이 의발을 돌 위에 던져 떨어뜨리고 이르되 이 옷은 표신(表信)이거늘 가히 힘으로 쟁취하겠는가. 혜능이 풀숲 속에 숨었다. 혜명이 이르러 제철(提掇; 들다)하였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이에 불러 이르되 행자님 행자님, 나는 법을 위해 왔고 옷을 위해 온 게 아닙니다. 혜능이 드디어 나가서 반석f(盤石) 위에 앉았다. 혜명이 작례하고 이르되 바라건대 행자는 나를 위해 설법하십시오. 혜능이 이르되 네가 이미 법을 위해 왔으니 가히 제연(諸緣)을 병식(屛息)하고 일념도 내지 않는다면 내가 너를 위해 설하리라. 혜명이 양구(良久)했다. 혜능이 이르되 착함도 생각하지 말고 악함도 생각하지 말아라(不思善不思惡). 바로 이러한(與麽) 때 어느 것이 이 명상좌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 혜명이 언하에 대오했다. 다시 물어 이르되 상래(上來; 方今. 以上)의 밀어밀의(密語密意) 밖에 도리어 다시 밀의(密意)가 있습니까. 혜능이 이르되 너에게 설해 준 것은 곧 비밀(秘密)이 아니다. 네가 만약 반조(返照)한다면 비밀이 너의 가에 있다. 혜명이 가로되 혜명이 비록 황매(黃梅)에 있었지만 실로 자기의 면목을 성찰하지 못했습니다. 여금에 지시(指示)를 입으니 사람이 음수(飮水)하매 냉난(冷暖)을 스스로 아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행자는 곧 혜명의 스승입니다. 혜능이 가로되 네가 만약 이와 같다면 내가 너와 더불어 황매(黃梅; 5조 弘忍)를 동사(同師)하나니 잘 스스로 호지(護持)하라. 혜명이 또 묻되 혜명이 금후(惠明)에 어느 곳을 향해 가야 합니까. 혜능이 가로되 원(袁)을 만나면 곧 멈추고(止) 몽(蒙)을 만나면 곧 거주하라. 혜명이 예사(禮辭)했다. 〈혜명이 돌아가 영하(嶺下)에 이르러 진중(趁衆; 쫓는 무리)에게 일러 가로되 최외(崔嵬; 산이 오똑하게 높고 험함)를 향해 올랐으나 마침내(竟) 종적이 없었다. 마땅히 다른 길에서 그를 찾아야 하리라. 진중(趁衆)이 모두 그렇게 여겼다. 혜명이 후에 도명(道明)으로 개명(改名)했으니 스님의 상자(上字)를 피했다〉.
大庾嶺; 爲通往嶺南的五條要道之一 位於江西大庾縣南 廣東南雄縣北 古稱塞上 漢武帝遣庾勝兄弟征伐南越 庾勝據守此嶺 遂稱大庾 又稱庾嶺 臺嶺山
영남으로 통왕(通往)하는 다섯 줄기의 요됴(要道)의 하나가 됨. 강서성 대유현(大庾縣) 남쪽과 광동성 남웅현 북쪽에 위치함. 옛 호칭은 세상(塞上)이었음. 한무제가 유승(庾勝) 형제를 파견하여 남월(南越)을 정벌했는데 유승이 이 고개에 기대어 지켰으므로 드디어 대유(大庾)라고 일컬었음. 또 호칭이 유령(庾嶺)ㆍ대령산임.
屛息; 屛除 除去
병제(屛除; 물리쳐 제거함). 제거.
良久; 默然 沈默 原意爲許久之時間 於禪林中 轉指無言無語之狀態
묵연. 침묵. 원래의 뜻은 허구(許久; 매우 오래)한 시간이 되지만 선림 중에선 전(轉)하여 무언무어(無言無語)의 상태를 가리킴.
與麽; 原爲宋代之俗語 又作恁麽 伊麽 漝麽 意卽這麽 如此 指物之辭也
원래 송대의 속어가 됨. 또 임마(恁麽)ㆍ이마(伊麽)ㆍ습마(漝麽)로 지음. 뜻은 곧 저마(這麽)ㆍ여차(如此)니 지물지사(指物之辭)임.
本來面目; 又作本地風光 卽身心自然脫落 而現前之人人本具之心性 與顯敎之本覺 密敎之本初 意義相同
또 본지풍광으로 지음. 곧 몸과 마음이 자연히 탈락하고 현전의 사람마다 본래 갖춘 심성이니 현교(顯敎)의 본각, 밀교의 본초(本初)와 의의가 서로 같음.
返照; 意謂回收向外尋覓的眼光 觀照自身自心
뜻으로 이르자면 밖을 향해 심멱(尋覓)하던 안광을 회수하여 자신과 자심을 관조함.
道明; 唐代僧 鄱陽(江西)人 俗姓陳 陳宣帝之裔 國亡落於民間 以其王孫 曾受四品將軍之爵 因有將軍之號 幼年於永昌寺出家 於高宗之世 投黃梅山五祖弘忍 初無證悟 後聞大鑑慧能得五祖衣鉢 乃躡迹急追 而於大庾嶺會之 因六祖慧能之開示 言下大悟 遂獨往廬山布水臺 經三載後 始往袁州蒙山 大唱玄化 初名慧明或惠明 以避六祖上字 故名道明 弟子等盡遣過嶺南 參禮六祖 [五燈會元二 六祖壇經 祖堂集二 宋高僧傳八 傳燈錄四]
당대승. 파양(강서) 사람. 속성은 진(陳)이니 진선제(陳宣帝)의 후예임. 나라가 망하자 민간에 추락하였으나 그가 왕손이기 때문에 일찍이 사품장군의 작위를 받았고 인해 장군이란 명칭이 있음. 유년에 영창사에서 출가하였고 고종의 시대에 황매산 5조 홍인에게 투신해 처음엔 증오(證悟)가 없었음. 뒤에 대감혜능이 5조의 의발을 얻었다 함을 듣고 이에 자취를 밟아 급히 추격하여 대유령에서 그를 만났으며 6조 혜능의 개시(開示)로 인하여 언하에 대오하고 드디어 홀로 여산 포수대로 갔으며 3재(載)가 지난 후 비로소 원주(袁州) 몽산(蒙山)으로 가서 현화(玄化)를 대창(大唱)했음. 처음 이름은 혜명(慧明) 혹 혜명(惠明)이었으나 6조의 위의 글자를 피한지라 고로 도명으로 이름했음. 제자 등을 모두 보내어 영남에 이르게 하고 6조를 참례하게 했음 [오등회원2. 육조단경. 조당집2. 송고승전8. 전등록4].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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