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

단경 懺悔第六 05

태화당 2022. 12. 23. 08:24

善知識 旣歸依自三寶竟 各各志心 吾與說一體三身自性佛 令汝等見三身了然 自悟自性 總隨我道 於自色身 歸依淸淨法身佛 於自色身 歸依圓滿報身佛 於自色身 歸依千百億化身佛 善知識 色身是舍宅 不可言歸 向者三身佛 在自性中 世人總有 爲自心迷 不見內性 外覓三身如來 不見自身中有三身佛 汝等聽說 令汝等於自身中 見自性有三身佛 此三身佛 從自性生 不從外得 何名淸淨法身佛 世人性本淸淨 萬法從自性生 思量一切惡事 卽生惡行 思量一切善事 卽生善行 如是諸法在自性中 如天常淸 日月常明 爲浮雲蓋覆 上明下暗 忽遇風吹雲散 上下俱明 萬象皆現 世人性常浮游 如彼天雲 善知識 智如日 慧如月 智慧常明 於外著境 被妄念浮雲蓋覆自性 不得明朗 若遇善知識 聞眞正法 自除迷妄 內外明徹 於自性中萬法皆現 見性之人 亦復如是 此名淸淨法身佛 善知識 自心歸依自性 是歸依眞佛 自歸依者 除却自性中不善心 嫉妬心 諂曲心 吾我心 誑妄心 輕人心 慢他心 邪見心 貢高心 及一切時中不善之行 常自見己過 不說他人好惡 是自歸依 常須下心 普行恭敬 卽是見性通達 更無滯礙 是自歸依 何名圓滿報身 譬如一燈能除千年闇 一智能滅萬年愚 莫思向前 已過不可得 常思於後 念念圓明 自見本性 善惡雖殊 本性無二 無二之性 名爲實性 於實性中 不染善惡 此名圓滿報身佛 自性起一念惡 滅萬劫善因 自性起一念善 得恒沙惡盡 直至無上菩提 念念自見 不失本念 名爲報身 何名千百億化身 若不思萬法 性本如空 一念思量 名爲變化 思量惡事 化爲地獄 思量善事 化爲天堂 毒害化爲龍蛇 慈悲化爲菩薩 智慧化爲上界 愚癡化爲下方 自性變化甚多 迷人不能省覺 念念起惡 常行惡道 迴一念善 智慧卽生 此名自性化身佛 善知識 法身本具 念念自性自見 卽是報身佛 從報身思量 卽是化身佛 自悟自修自性功德 是眞歸依 皮肉是色身 色身是舍宅 不言歸依也 但悟自性三身 卽識自性佛 吾有一無相頌 若能師持 言下令汝積劫迷罪一時銷滅 頌曰

迷人修福不修道 只言修福便是道

布施供養福無邊 心中三惡元來造

擬將修福欲滅罪 後世得福罪還在

但向心中除罪緣 名自性中眞懺悔

忽悟大乘眞懺悔 除邪行正卽無罪

學道常於自性觀 卽與諸佛同一類

吾祖惟傳此頓法 普願見性同一體

若欲當來覓法身 離諸法相心中洗

努力自見莫悠悠 後念忽絕一世休

若悟大乘得見性 虔恭合掌至心求

 

선지식이여, 이미 자삼보(自三寶)에 귀의해 마쳤으니 각각 지심(志心; 專心)하라. 내가 일체삼신자성불(一體三身自性佛)을 설해 주어 너희 등으로 하여금 3()의 요연(了然)함을 보고 자성(自性)을 자오(自悟)하게 하겠다. 모두 나를 따라 말하라, 자기의 색신(色身)에 청정법신불(淸淨法身)에게 귀의합니다. 자기의 색신에 원만보신불(圓滿報身)에게 귀의합니다. 자기의 색신에 천백억화신불(千百億化身)에게 귀의합니다. 선지식이여, 색신은 이 사택(舍宅)이니 가히 귀의를 말하지 못한다. 향자(向者; 從前)의 삼신불(三身佛)이 자성 중에 있으며 세인(世人)이 모두 있지만 자심(自心)이 미혹했기 때문에 내성(內性)을 보지 못하고 밖으로 삼신여래(三身如來)를 찾는지라 자신(自身) 중에 삼신불이 있음을 보지 못한다. 너희 등은 설함을 들을지니 너희 등으로 하여금 자신 중에서 자성에 삼신불이 있음을 보게 하겠다. 이 삼신불은 자성으로 좇아 생겨나고 밖으로 좇아 얻음이 아니다. 무엇을 이름해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인가, 세인의 자성이 본래 청정하며 만법이 자성으로 좇아 생겨난다. 일체의 악사(惡事)를 사량(思量)하면 곧 악행이 발생하고 일체의 선사(善事)를 사량하면 곧 선행(善行)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제법(諸法)이 자성 중에 있나니 하늘이 상청(常淸)할 것 같으면 일월(日月)이 상명(常明)하고 부운(浮雲)이 개부(蓋覆)하면 상명하암(上明下暗)하고 홀연히 바람이 붊을 만나 구름이 흩어지면 상하가 모두 밝고 만상이 모두 나타난다. 세인의 자성이 늘 부유(浮游)함이 저 하늘의 구름과 같다. 선지식이여, ()는 해와 같고 혜()는 달과 같아서 지혜가 상명(常明)하지만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면 망념(妄念)의 부운(浮雲)이 자성을 개부(蓋覆)함을 입어 명랑(明朗)함을 얻지 못한다. 만약 선지식을 만나 진정(眞正)한 법을 들으면 미망(迷妄)을 스스로 제거하고 내외가 명철(明徹)하여 자성 중에 만법이 모두 나타난다. 견성(見性)한 사람도 또한 다시 이와 같나니 이 이름이 청정법신불(淸淨法身佛)이다. 선지식이여, 자심(自心)이 자성(自性)에 귀의하면 이것이 진불(眞佛)에 귀의함이다. 스스로 귀의한다(自歸依)는 것은 자성 중의 불선심(不善心)ㆍ질투심(嫉妬心)ㆍ첨곡심(諂曲心)ㆍ오아심(吾我心)ㆍ광망심(誑妄心)ㆍ경인심(輕人心)ㆍ만타심(慢他心)ㆍ사견심(邪見心)ㆍ공고심(貢高心) 및 일체(一切) 시중(時中)의 불선지행(不善之行)을 제각(除却)하고 늘 기과(己過)를 스스로 보면서 타인의 호오(好惡)를 설하지 않나니 이것이 자귀의(自歸依). 늘 하심(下心)함을 쓰고() 널리 공경을 행하면 즉시 견성하고 통달하여 다시 체애(滯礙)가 없으리니 이것이 자귀의(自歸依). 무엇을 이름해 원만보신(圓滿報身)인가. 비유컨대 1()이 능히 천년암(千年闇)을 제거하고 1()가 능히 만년우(萬年愚)를 멸함과 같다. 향전(向前; 以前)을 사량(思量)하지 말지니 이미 지난 것은 불가득이다. 늘 어후(於後)를 사량할지니 염념(念念)이 원명(圓明)하여 본성을 스스로 본다. 선악이 비록 다르지만 본성은 무이(無二)며 무이지성(無二之性)을 이름하여 실성(實性)이니 실성 가운데 선악에 물들지 않으면 이 이름이 원만보신불(圓滿報身佛)이다. 자성이 일념의 악()을 일으키면 만겁의 선인(善因)을 멸하고 자성이 일념의 선()을 일으키면 항사(恒沙)의 악()이 없어짐()을 얻고 바로 위 없는 보리(菩提)에 이르며 염념(念念)에 스스로 보고 본념(本念)을 잃지 않나니 이름하여 보신(報身)이다. 무엇을 이름해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인가. 만약 만법(萬法)을 사량(思量)하지 않으면 자성이 본래 허공과 같거니와 일념(一念)이 사량하면 이름하여 변화(變化)니 악사(惡事)를 사량하면 변화해 지옥이 되고 선사(善事)를 사량하면 변화해 천당이 된다. 독해(毒害)는 변화해 용사(龍蛇)가 되고 자비는 변화해 보살(菩薩)이 되고 지혜는 변화해 상계(上界; 天界)가 되고 우치(愚癡)는 변화해 하방(下方)이 되나니 자성의 변화가 심히 많아서 미인(迷人)은 능히 성각(省覺)하지 못한다. 염념(念念)이 악을 일으키면 늘 악도(惡道)를 행하거니와 돌이켜 일념이 선()하면 지혜가 곧 생겨나나니 이 이름이 자성화신불(自性化身佛)이다. 선지식이여, 법신을 본래 갖추어 염념의 자성이 스스로 보나니 즉시 보신불(報身佛)이며 보신(報身)으로 좇아 사량함이 즉시 화신불(化身佛)이며 자성의 공덕을 자오(自悟)하고 자수(自修)하면 이것이 참다운 귀의다. 피육(皮肉)은 이 색신이며 색신은 이 사택(舍宅)이니 귀의를 말하지 않는다. 단지 자성의 3()을 깨치면 곧 자성불(自性佛)을 안다. 나에게 1무상송(無相頌)이 있나니 만약 능히 스승 삼아 수지(受持)하면 언하(言下)에 너희의 적겁(積劫)의 미죄(迷罪)를 일시에 소멸하게 하리라. 송왈(頌曰)

 

미인(迷人)은 수복(修福)하고 수도(修道)하지 않나니

다만 말하되 수복(修福)이 바로 이 도().

보시하고 공양함은 복이 무변하지만

심중에 삼악(三惡)을 원래(元來) 짓는다.

 

장차 수복(修福)하고 멸죄(滅罪)하려고 한다면

후세에 득복(得福)하더라도 죄는 도리어 있다.

단지 심중을 향해 죄연(罪緣)을 제()하면

이름이 자성 중의 진참회(眞懺悔).

 

대승(大乘)의 진참회(眞懺悔)를 홀연히 깨달아

()를 제()하고 정()을 행하면 곧 죄가 없다.

학도(學道)하면서 늘 자성(自性)에서 관()하면

곧 제불과 더불어 동일한 무리().

 

오조(吾祖)는 오직 이 돈법(頓法)을 전했나니

보원(普願)하여 견성(見性)하면 동일한 체().

만약 당래(當來)에 법신을 찾고자 한다면

모든 법상(法相)을 여의고 심중에서 세척(洗滌)하라.

 

노력(努力)하여 스스로 보고 유유(悠悠)하지 말지니

후념(後念)이 홀연히 끊기면 일세(一世)가 그친다().

만약 대승(大乘)을 깨쳐 견성(見性)을 얻으려면

건공(虔恭; 誠敬)하면서 합장하고 지심(至心)으로 구하라.

 

師言 善知識 總須誦取 依此修行 言下見性 雖去吾千里 如常在吾邊 於此言下不悟 卽對面千里 何勤遠來 珍重 好去 一衆聞法 靡不開悟 歡喜奉行

 

스님이 말하되 선지식이여, 모두() 모름지기 송취(誦取)하라. 이에 의해 수행하고 언하(言下)에 견성하면 비록 나와 떨어지기가 천 리일지라도 늘 오변(吾邊)에 있음과 같으려니와 이 언하에 깨치지 못하면 곧 대면(對面)하여서도 천 리거늘 어찌 부지런히 먼 데서 오겠는가. 진중(珍重), 잘 가거라. 일중(一衆)이 법을 듣고 개오(開悟)하지 않는 이 없었고() 환희하며 봉행(奉行)했다.

 


色身; 又稱生身 指有形質之身 卽肉身 反之 無形者稱爲法身 或智身 故具足三十二相之佛 是爲有形之生身 [十住毘婆沙論十二 大乘義章十九]

또 명칭이 생신(生身)이니 형질이 있는 몸을 가리킴. 곧 육신. 이와 반대로 무형(無形)인 것을 일컬어 법신 혹 지신(智身)이라 함. 고로 32상을 구족한 불타는 이 유형의 생신이 됨 [십주비바사론12. 대승의장19].

 

報身; 以法身爲因 經過修習所獲佛果之身 稱作報身 是佛的三身之一

법신을 인()으로 삼아 수습(修習)을 경과하여 얻는 바 불과의 몸을 일컬어 보신이라 함. 이는 불타 3신의 하나.

 

化身; 佛三身之一 指爲普度世間衆生而化現的各種身體(包括父母所生之身)

불타 3()의 하나. 세간의 중생을 보도(普度)하기 위해 화현(化現)하는 각종 신체(부모가 낳은 바의 몸을 포괄함)를 가리킴.

 

恒沙; 恒河沙之略 卽恆河之沙 又作恆邊沙 恆水邊流沙 江河沙 兢伽沙 恆沙 恆河沙數等 恆河沙粒至細 其量無法計算 諸經中凡形容無法計算之數 多以恆河沙一詞爲喩 智度論七 問曰 如閻浮提中 種種大河亦有過恒河者 何故常言恒河沙等 答曰 恒河沙多 餘河不爾 復次是恒河是佛生處 遊行處 弟子現見 故以爲喩 復次諸人經書 皆以恒河爲福德吉河 若入中洗者 諸罪垢惡皆悉除盡 以人敬事此河 皆共識知 故以恒河沙爲喩 復次餘河名字屢轉 此恒河世世不轉 以是故以恒河沙爲喩 不取餘河

항하사(恒河沙; gaṅgā-nadā-vāluka)의 약칭(略稱). 곧 항하(恆河; gaṅgā. 갠지스)의 모래. 또 항변사(恆邊沙)ㆍ항수변류사(恆水邊流沙)ㆍ강하사(江河沙)ㆍ긍가사(兢伽沙)ㆍ항사(恆沙)ㆍ항하사수(恆河沙數) 등으로 지음. 항하의 모래알은 지극히 작아서 그 양을 계산할 방법이 없는지라 여러 경중에서 무릇 계산할 방법이 없는 수를 형용하면서 다분히 항하사 1()로써 비유를 삼음. 지도론7. 물어 가로되 예컨대() 염부제(閻浮提) 중에 갖가지 대하(大河)도 또한 항하를 초과하는 것이 있거늘 무슨 연고로 항하사 등이라고 늘 말하는가. 답해 가로되 항하는 모래가 많지만 여타의 하()는 그렇지 못하다. 다시 다음에 이 항하는 이 불타가 탄생한 곳이며 유행(遊行)하는 곳이며 제자가 현재 보는지라 고로 비유를 삼았다. 다시 다음에 여러 사람의 경서(經書)에 모두 항하를 복덕과 길상으로 삼았으며 만약 가운데 들어가 씻는 자면 모든 죄와 구악(垢惡)이 모두 다 제진(除盡)한다. 사람들이 이 하()를 경사(敬事; 공경해 섬김)하며 모두 다 식지(識知)하므로 고로 항하사로 비유를 삼았다. 다시 다음에 여하(餘河)의 명자는 누차 전환(轉換)되었지만 이 항하는 세세(世世)에 전환되지 않은지라 이런 연고로써 항하사로써 비유를 삼고 여하(餘河)를 취하지 않았다.

 

菩薩; ()具名菩提薩埵 舊譯爲大道心衆生 道衆生等 新譯曰大覺有情 覺有情等 謂是求道之大心人 故曰道心衆生 求道求大覺之人 故曰道衆生 大覺有情 又薩埵者勇猛之義 勇猛求菩提故名菩提薩埵 又譯作開士 始士 高士 大士等 義譯也 總名求佛果之大乘衆 [注維摩經一 大乘義章十四 法華玄贊二 佛地論二 淨名疏一] ()對僧人的敬稱 此指()

(1). 갖춘 이름은 보리살타(菩提薩埵; bodhi-sattva). 구역(舊譯)으론 대도심중생(大道心衆生)ㆍ도중생(道衆生) 등이 되며 신역(新譯)은 가로되 대각유정(大覺有情)ㆍ각유정(覺有情) 등임. 이르자면 이는 구도하는 대심(大心)의 사람이므로 고로 가로되 도심중생(道心衆生)이며 도를 구하고 대각을 구하는 사람이므로 고로 가로되 도중생(道衆生)ㆍ대각유정(大覺有情). 또 살타란 것은 용맹의 뜻이니 용맹하게 보리를 구하는 고로 이름이 보리살타임. 또 개사(開士)ㆍ시사(始士)ㆍ고사(高士)ㆍ대사(大士) 등으로 번역함은 의역(義譯)이니 총명(總名)이 불과(佛果)를 구하는 대승중(大乘衆)[주유마경1. 대승의장14. 법화현찬2. 불지론2. 정명소1]. (2). 승인에 대한 경칭. 여기에선 (1)을 가리킴.

 

三惡; 三惡道 指六道中的地獄道 餓鬼道 畜生道 佛敎謂作惡業的衆生 墮入此三道

삼악도(三惡道)6() 중의 지옥도ㆍ아귀도ㆍ축생도를 가리킴. 불교에서 이르기를 악업을 지은 중생은 이 3도에 떨어져 들어간다.

 

珍重; 勸自重自愛之詞也 大宋僧史略一 臨去辭曰珍重者何 此則相見旣畢 情意已通 囑曰珍重 猶言善加保重 請加自愛 好將息 宜保惜 同也

자중자애(自重自愛)를 권하는 말임. 대송승사략1. 떠남에 임해서 말해 가로되 진중(珍重)이라고 하는 것은 왜인가 하면 이것은 곧 상견을 이미 마치고 정의(情意)가 이미 통했음이다. 부촉(付囑)해 가로되 진중이라 함은 오히려 말하되 잘 보중(保重)을 더하라, 청컨대 자애(自愛)를 더하라, 좋게 장차 쉬어라(好將息), 의당 보호하여 아껴라(宜保惜) 함과 같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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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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