機緣第七
師自黃梅得法 回至韶州曹侯村 人無知者〈他本云 師去時 至曹侯村 住九月餘 然師自言 不經三十餘日便至黃梅 此求道之切 豈有逗留 作去時者非是〉 有儒士劉志略 禮遇甚厚 志略有姑 爲尼 名無盡藏 常誦大涅槃經 師暫聽 卽知妙義 遂爲解說 尼乃執卷問字 師曰 字卽不識 義卽請問 尼曰 字尙不識 焉能會義 師曰 諸佛妙理 非關文字 尼驚異之 遍告里中耆德云 此是有道之士 宜請供養 有魏〈魏一作晉〉武侯玄孫曹叔良及居民 競來瞻禮 時 寶林古寺 自隋末兵火已廢 遂於故基重建梵宇 延師居之 俄成寶坊 師住九月餘日 又爲惡黨尋逐 師乃遯于前山 被其縱火焚草木 師隱身挨入石中得免 石今有師趺坐膝痕 及衣布之紋 因名避難石 師憶五祖懷會止藏之囑 遂行隱于二邑焉
스님이 황매(黃梅)로부터 득법(得法)하고는 돌아오다 소주(韶州) 조후촌(曹侯村)에 이르렀는데 사람이 아는 자가 없었다. 〈타본(他本)에 이르되 스님이 떠날 때(去時) 조후촌(曹侯村)에 이르러 9월 여를 머물렀다. 그러나 스님이 스스로 말하되 30여 일을 경과하지 않고 바로 황매에 이르렀다 했으니 이는 구도(求道)의 간절함이거늘 어찌 두류(逗留)함이 있으리오. 거시(去時)라고 지은 것은 옳지 못하다〉. 유사(儒士) 유지략(劉志略)이 있어 예우(禮遇)가 심후(甚厚)했다. 지략에게 고모(姑母; 姑)가 있었고 니(尼; 比丘尼)가 되었는데 이름이 무진장(無盡藏)이었다. 늘 대열반경을 외웠는데 스님이 잠시 듣고 곧 묘의(妙義)를 알았으며 드디어 해설하였다. 니(尼)가 이에 집권(執卷)하고 글자를 물었다. 사왈(師曰) 글자는 곧 알지 못하지만 뜻은 곧 물음을 청한다. 니왈(尼曰) 글자도 오히려 알지 못하거늘 어찌 능히 뜻을 알겠습니까. 사왈(師曰) 제불의 묘리(妙理)는 문자에 상관되지 않는다. 니(尼)가 이를 경이(驚異)하며 마을(里) 속의 기덕(耆德)에게 두루 고해 이르되 이는 이 유도지사(有道之士)니 의당(宜當) 청하여 공양(供養)하십시오. 위(魏)〈위(魏)는 한편으론 진(晉)으로 지었다〉 무후(武侯)의 현손(玄孫) 조숙량(曹叔良) 및 거민(居民)이 있어 경래(競來)하여 첨례(瞻禮)했다. 때에 보림고사(寶林古寺)가 수말(隋末)로부터 병화(兵火)에 이미 황폐(荒廢)했는데 드디어 고기(故基)에 범우(梵宇; 佛寺)를 중건(重建)하고 스님을 맞이해 거처하게 했으니 갑자기(俄) 보방(寶坊; 寺院의 美稱)을 이루었다. 스님이 거주하기 9월 여 일이었는데 또 악당(惡黨)이 심축(尋逐)했기 때문에(爲) 스님이 이에 전산(前山)에 숨었는데(遯) 그 종화(縱火; 放火)가 초목을 태움을 입어 스님이 은신(隱身)하여 돌 속으로 밀쳐 들어가 득면(得免)했다. 돌에 지금도 스님의 부좌(趺坐)한 무릎 흔적 및 의포(衣布)의 무늬(紋)가 있으며 인하여 이름이 피난석(避難石)이다. 스님이 5조(祖)의 회(懷)ㆍ회(會)에 지(止)ㆍ장(藏)하라는 부촉을 기억하고는 드디어 가서 2읍(邑)에 은거했다.
機緣; 一機謂根機 緣謂因緣 衆生之根機與悟法之因緣 兩者契合 則獲省悟 二禪師臨機應緣的問答語句 擧止作略 此指二
1. 기(機)는 이르자면 근기며 연(緣)은 이르자면 인연이니 중생의 근기와 법을 깨칠 인연임. 양자가 계합해야 곧 성오를 얻음. 2. 선사가 임기하여 응연하는 문답의 어구와 거지(擧止)의 작략. 여기에선 2를 가리킴.
耆德; 年老德高道行深湛之老者
연로하고 덕이 높으면서 도행이 깊고 맑은 노자(老者; 노인).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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