達聞偈 不覺悲泣 言下大悟 而告師曰 法達從昔已來 實未曾轉法華 乃被法華轉 再啓曰 經云 諸大聲聞乃至菩薩 皆盡思共度量 不能測佛智 今令凡夫但悟自心 便名佛之知見 自非上根 未免疑謗 又經說三車 羊鹿牛車與白牛之車 如何區別 願和尙再垂開示 師曰 經意分明 汝自迷背 諸三乘人 不能測佛智者 患在度量也 饒伊盡思共推 轉加懸遠 佛本爲凡夫說 不爲佛說 此理若不肯信者 從他退席 殊不知 坐却白牛車 更於門外覓三車 況經文明向汝道 唯一佛乘 無有餘乘若二若三 乃至無數方便 種種因緣譬喻言詞 是法皆爲一佛乘故 汝何不省 三車是假 爲昔時故 一乘是實 爲今時故 只敎汝去假歸實 歸實之後 實亦無名 應知所有珍財 盡屬於汝 由汝受用 更不作父想 亦不作子想 亦無用想 是名持法華經 從劫至劫 手不釋卷 從晝至夜 無不念時也
達蒙啓發 踊躍歡喜 以偈讚曰
經誦三千部 曹溪一句亡 未明出世旨 寧歇累生狂
羊鹿牛權設 初中後善揚 誰知火宅內 元是法中王
師曰 汝今後方可名念經僧也 達從此領玄旨 亦不輟誦經
법달이 게를 듣자 불각(不覺)에 비읍(悲泣)하고 언하에 대오했다. 스님에게 고해 가로되 법달이 지난날을 좇은 이래(已來)로 일찍이 법화를 굴리지 못하고 이에 법화에 굴림을 입었습니다. 다시 사뢰어(再啓) 가로되 경운(經云) 모든 대성문(大聲聞) 내지 보살이 모두 다 사유하고 함께 탁량(度量)해도 능히 불지(佛智)를 헤아리지 못한다 했거늘 이제 범부로 하여금 단지 자심(自心)을 깨닫게 하면서 바로(便) 이름이 불(佛)의 지견이라 하시니 스스로 상근(上根)이 아닐진대 의방(疑謗)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 경에 3거(車)를 설했으니 양(羊)ㆍ녹(鹿)ㆍ우거(牛車)며 아울러 백우지거(白牛之車)입니다. 어떻게 구별합니까. 원컨대 화상이 개시(開示)를 다시 내리십시오. 사왈(師曰) 경의(經意)가 분명하거늘 네가 스스로 미배(迷背)한다. 모든 3승(三乘)의 사람이 불지(佛智)를 능히 헤아리지 못한다는 것은 우환(憂患)이 탁량(度量)에 있다. 비록(饒) 그들이 모두 사유하고 함께 추리(推理)한다 하더라도 더욱(轉) 현원(懸遠; 아득히 멂)만 더한다. 부처는 본래 범부를 위해 설하며 부처를 위해 설하지 않는다. 이 이치를 만약 긍신(肯信; 수긍해 믿음)하지 않는 자일진대 그로 좇아 퇴석(退席)하거니와 백우거(白牛車)에 좌각(坐却; 却은 조사)하고 다시 문밖에서 3거(車)를 찾는 줄 너무 알지 못한다. 하물며 경문에 명백하게 너를 향해 말하되 오직 1불승(佛乘)이며 여승(餘乘)인 둘이나 셋이 있지 않다 하였다. 내지 무수한 방편과 갖가지 인연과 비유의 언사(言詞)는 이 법이 모두 1불승이 되는 연고이거늘 네가 왜 성찰하지 못하느냐. 3거(車)는 이 가(假)니 석시(昔時)가 되는 연고며 1승(乘)은 이 실(實)이니 금시(今時)가 되는 연고이다. 다만 너로 하여금 가(假)를 제거하고 실(實)로 돌아가게 하고 실(實)로 돌아간 후엔 실(實)도 또한 이름이 없다. 응당 알지니 소유한 진보(珍財)가 모두 너에게 속하며 너로 말미암아 수용(受用)한다. 다시 부(父)라는 사상(思想)을 짓지 말고 또한 자(子)라는 사상을 짓지 말고 또한 용(用)이란 사상이 없어야 이 이름이 법화경을 수지(受持)함이다. 겁(劫)으로 좇아 겁에 이르도록 손에 경권(經卷)을 놓지(釋) 않으며 낮으로 좇아 밤에 이르도록 외우지(念) 않을 때가 없다.
법달이 계발(啓發)을 받자(蒙) 용약(踊躍)하고 환희했고 게로써 찬탄해 가로되
3천 부를 송경(經誦)했으나/ 조계(曹溪; 혜능)의 1구에 망했다/ 출세(出世; 출세간)의 지취를 밝히지 못하면/ 어찌(寧) 누생(累生)의 광병(狂病)을 쉬겠는가(歇).
양(羊)ㆍ녹(鹿)ㆍ우(牛)는 권설(權設; 잠시 시설함)이며/ 초중후(初中後)에 잘 선양(宣揚)했다/ 누가 화택(火宅) 내에/ 원래 이 법중왕(法中王)인 줄 아느냐.
사왈(師曰) 너는 금후(今後)로 바야흐로 가히 이름이 염경승(念經僧)이다. 법달이 이로 좇아 현지(玄旨)를 영회(領會)했고 또한 송경(誦經)을 그치지(輟) 않았다.
聲聞; 二乘之一 三乘之一 三藏法數七曰 聞佛聲敎 而得悟道 故曰聲聞
2승(乘)의 하나. 3승의 하나. 삼장법수7에 가로되 불타의 성교(聲敎)를 듣고 오도를 얻는지라 고로 가로되 성문이다.
三乘; 三藏法數七 三乘[出法華經] 一聲聞乘 聞佛聲敎而得悟道 故曰聲聞 謂其知苦斷集 慕滅修道 故以此四諦爲乘也 二緣覺乘 因觀十二因緣 覺眞諦理 故名緣覺 謂始觀無明緣乃至老死 此是觀十二因緣生 次觀無明滅乃至老死滅 此是觀十二因緣滅 觀此因緣生滅 卽悟非生非滅 故以此十二因緣爲乘也 三菩薩乘 菩薩 梵語具云菩提薩埵 華言覺有情 謂覺悟一切有情衆生也 菩薩行六度行 廣化衆生 出離生死 故以此六度爲乘也 ▲大乘起信論疏略上 乘者運載之義 謂諸佛乘此而證菩提般涅槃 菩薩乘此而趣果海 衆生乘之而輪轉生死
삼장법수7. 3(乘) [출법화경] 1. 성문승(聲聞乘) 불타의 성교(聲敎)를 듣고 오도(悟道)를 얻나니 고로 가로되 성문이다. 이르자면 그가 고(苦)를 알고 집(集)을 끊고 멸(滅)을 흠모해 도를 닦나니 고로 이 4제(諦)로써 승(乘)을 삼는다. 2 연각승(緣覺乘) 12인연(因緣)을 관(觀)함으로 인해 진제(眞諦)의 이치를 깨치므로 고로 이름이 연각이다. 이르자면 처음에 무명(無明)의 인연 내지 노사(老死)를 관하나니 이는 곧 12인연의 생(生)을 관함이며 다음에 무명의 멸(滅) 내지 노사(老死)의 멸을 관하나니 이는 곧 십이인연의 멸을 관함이다. 이 인연의 생멸을 관하여 곧 비생비멸(非生非滅)을 깨치나니 고로 이 12인연으로써 승(乘)을 삼는다. 3 보살승(菩薩乘) 보살은 범어니 갖추어 이르면 보리살타(菩提薩埵)며 중화(中華; 중국)의 말로는 각유정(覺有情)이니 이르자면 일체의 유정중생(有情衆生)을 각오(覺悟)케 함이다. 보살은 육도(六度; 六波羅蜜)의 행을 행하여 널리 중생을 교화하여 생사를 출리(出離)케 하나니 고로 이 6도(度)로써 승(乘)을 삼는다. ▲대승기신론소략상. 승(乘)이란 것은 운재(運載)의 뜻이다. 이르자면 제불이 이것을 타고 보리와 반열반(般涅槃; 약칭이 열반)을 증득하고 보살이 이것을 타고 과해(果海)로 나아가며 중생이 이것을 타고 생사에 윤전(輪轉)한다.
佛乘; 一華嚴所立 說一切衆生悉可成佛之道之敎法 謂之佛乘 此法不分二乘三乘等 說唯一成佛之法 故又云一乘 華嚴法華所說之圓敎是也 二三乘之一 三乘中之菩薩乘 對於聲聞獨覺之二乘而云佛乘 以菩薩乘爲成佛之法故也
1. 화엄에서 세운 바니 설하기를 일체중생이 모두 가히 성불할 도의 교법이니 이를 일러 불승이라 한다. 이 법은 2승(乘)이나 3승 등을 나누지 않음. 유일한 성불의 법을 설하는지라 고로 또 이르되 1승임. 화엄과 법화에서 설하는 바의 원교(圓敎)가 이것임. 2. 3승(乘)의 하나. 3승 중의 보살승을 성문과 독각의 2승에 대해 이르기를 불승이라 함. 보살승은 성불의 법이 되는 연고임.
火宅; 三界之生死 譬如火宅也 ▲法華經譬喩品 三界無安 猶如火宅 衆苦充滿 甚可怖畏 常有生老病死憂患 如是等火 熾然不息
3계(界)의 생사는 비유컨대 화택과 같음. ▲법화경 비유품. 3계는 안녕이 없어 마치 화택(火宅)과 같나니 중고(衆苦)가 충만하고 매우 가히 포외(怖畏)할 만하다. 늘 생로병사와 우환이 있나니 이와 같은 등의 불이 치연(熾然)하며 쉬지 않는다.
法中王; 指如來 阿彌陀經註曰 師子 一切獸中王也 如來 一切法中王也 故以爲名也
여래를 가리킴. 아미타경주에 가로되 사자는 일체 짐승 중의 왕이며 여래는 일체의 법 중의 왕인지라 고로 이름을 삼았다.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60만 원.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조금 초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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