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摩訶迦葉尊者 第二阿難尊者 第三商那和修尊者 第四優波毱多尊者 第五提多迦尊者 第六彌遮迦尊者 第七婆須蜜多尊者 第八佛馱難提尊者 第九伏馱蜜多尊者 第十脇尊者 十一富那夜奢尊者 十二馬鳴大士 十三迦毘摩羅尊者 十四龍樹大士 十五迦那提婆尊者 十六羅睺羅多尊者 十七僧伽難提尊者 十八伽耶舍多尊者 十九鳩摩羅多尊者 二十闍耶多尊者 二十一婆修盤頭尊者 二十二摩拏羅尊者 二十三鶴勒那尊者 二十四師子尊者 二十五婆舍斯多尊者 二十六不如蜜多尊者 二十七般若多羅尊者 二十八菩提達磨尊者〈此土是爲初祖〉 二十九慧可大師 三十僧璨大師 三十一道信大師 三十二弘忍大師 惠能是爲三十三祖 從上諸祖 各有稟承 汝等向後 遞代流傳毋令乖誤
제1 마하가섭존자(摩訶迦葉尊者), 제2 아난존자(阿難尊者), 제3 상나화수존자(商那和修尊者), 제4 우바국다존자(優波毱多尊者), 제5 제다가존자(提多迦尊者), 제6 미차가존자(彌遮迦尊者), 제7 바수밀다존자(婆須蜜多尊者), 제8 불타난제존자(佛馱難提尊者), 제9 복타밀다존자(伏馱蜜多尊者), 제10 협존자(脇尊者), 11 부나야사존자(富那夜奢尊者), 12 마명대사(馬鳴大士), 13 가비마라존자(迦毘摩羅尊者), 14 용수대사(龍樹大士), 15 가나제바존자(迦那提婆尊者), 16 라후라다존자(羅睺羅多尊者), 17 승가난제존자(僧伽難提尊者), 18 가야사다존자(伽耶舍多尊者) 19 구마라다존자(鳩摩羅多尊者) 20 사야다존자(闍耶多尊者), 21 바수반두존자(婆修盤頭尊者), 22 마나라존자(摩拏羅尊者), 23 학륵나존자(鶴勒那尊者), 24 사자존자(師子尊者) 25 바사사다존자(婆舍斯多尊者) 26 불여밀다존자(不如蜜多尊者), 27 반야다라존자(般若多羅尊者), 28 보리달마존자(菩提達磨尊者)〈차토(此土)에서 이는 초조(初祖)가 된다〉, 29 혜가대사(慧可大師), 30 승찬대사(僧璨大師), 31 도신대사(道信大師), 32 홍인대사(弘忍大師)다. 혜능은 이 33조가 되나니 종상(從上)의 제조(諸祖)가 각자 품승(稟承)이 있다. 너희 등은 향후(向後)에 체대(遞代)하며 유전(流傳)하여 괴오(乖誤; 錯誤)케 하지 말아라.
迦葉; <梵> kāśyapa 全名大迦葉 摩訶迦葉 又作迦葉波 迦攝波 此譯云飮光 十大弟子之一 禪宗第一祖 生於王舍城近郊之婆羅門家 於佛成道後第三年 爲佛弟子 八日後卽證入阿羅漢果 爲佛弟子中頭陀第一 佛入滅後 成爲敎團之統率者 於王舍城召集第一次經典結集 直至阿難爲法之繼承者 始入鷄足山入定 以待彌勒出世 方行涅槃 禪宗以三處傳心之故事(多子塔前分半座一也 靈山會上擧拈花二也 雙樹下槨示雙趺三也) 至今傳誦不絶 此外 過去七佛之第六佛 亦稱迦葉佛 又佛弟子中 優樓頻羅迦葉 伽耶迦葉等 皆有迦葉之稱 佛陀入滅後三百年之小乘飮光部之祖 亦與迦葉同名 [雜阿含經四十一 增一阿含經二十 同三十五 同四十四 佛本行集經四十五 四分律五十四 五分律三十 毘尼母經一 有部苾芻尼毘奈耶一 傳燈錄一 禪家龜鑑]
<범> kāśyapa. 전명(全名)이 대가섭ㆍ마하가섭(摩訶迦葉; 梵 Mahā -kāśyapa)이며 또 가섭파(迦葉波)ㆍ가섭파(迦攝波)로 지음. 여기에선 번역하여 이르되 음광(飮光)이니 십대제자의 하나이며 선종의 제1조. 왕사성 근교의 바라문가에서 출생했으며 불타가 성도한 후 3년에 불제자가 되었고 8일 후에 곧 아라한과에 증득해 들어갔음. 불제자 중 두타제일이 됨. 불타가 입멸한 후 교단의 통솔자가 된 자며 왕사성에서 제1차의 경전결집을 소집하였고 바로 아난이 법의 계승자가 됨에 이르자 비로소 계족산(鷄足山)에 들어가 입정하여 미륵의 출세를 기다렸다가 바야흐로 열반을 행하게 됨. 선종에서 삼처전심(三處傳心; 多子塔前에서 分半座가 1이며 靈山會上에서 擧拈花가 2며 雙樹下에서 槨示雙趺가 3임)의 고사(故事)로써 지금에 이르도록 전송(傳誦)하여 끊이지 않음. 이 밖에 과거 7불의 제6불도 또한 칭호가 가섭불이며 또 불제자 중 우루빈라가섭과 가야가섭 등도 다 가섭의 호칭이 있으며 불타가 입멸한 후 3백 년의 소승음광부의 비조도 또한 가섭과 같은 이름임 [잡아함경41. 증일아함경20, 동35, 동44. 불본행집경45. 사분율54. 오분율30. 비니모경1. 유부필추니비나야1. 전등록1. 선가귀감].
尊者; 梵語阿梨耶 譯作聖者 尊者 謂智德具尊者 蓋羅漢之尊稱 或有禪師亦稱尊者之例 如趙州法嗣嚴陽尊者 覺範號寂音尊者 紫柏稱紫柏尊者等
범어 아리야(阿梨耶; 梵 ārya)는 번역해 성자ㆍ존자로 지음. 이르자면 지덕(智德)이 존엄(尊嚴)을 갖춘 자니 대개 라한(羅漢)의 존칭임. 혹은 선사(禪師)도 또한 존자로 일컫는 예(例)가 있음. 예컨대(如) 조주(趙州)의 법사(法嗣)인 엄양존자(嚴陽尊者)며 각범(覺範)의 호가 적음존자(寂音尊者)며 자백(紫柏)을 자백존자(紫柏尊者)라고 일컫는 등임.
阿難; <梵> ānanda 阿難陀之略 譯曰歡喜 慶喜 斛飯王之子 提婆達多之弟 佛之從弟 十大弟子之一 禪宗第二祖 生於佛成道之夜 佛壽五十五 阿難二十五歲時出家 從侍佛二十五年 受持一切佛法 [中阿含第八侍者經 智度論三 文句二之上 阿彌陀經慈恩疏上]
<범> ānanda. 아난타(阿難陀)의 약칭. 번역해 가로되 환희(歡喜)ㆍ경희(慶喜)임. 곡반왕(斛飯王)의 아들이며 제바달다(提婆達多)의 동생이며 부처의 종제(從弟)며 10대 제자의 하나. 선종 제2조. 부처가 성도(成道)한 날 밤에 출생했으며 부처의 나이가 55며 아난이 25세 이었을 때 출가했음. 부처를 좇아 시봉하기 25년에 일체의 불법을 수지(受持)했음 [중아함제8시자경. 지도론3. 문구2지상. 아미타경자은소상].
商那和修; <梵> Śāṇa-vāsin <巴> Sāṇa-vāsī 亦名舍那婆斯 商諾迦縛娑 此云胎衣 自然衣 禪宗第三祖 阿難法子 摩突羅國人 姓毘舍多 在胎六年而生 由阿難處受八萬四千法藏 悉憶持之 又遊化諸方 於摩突羅國曼陀山化二龍子 於彼處營建僧住處 至罽賓現龍奮迅定等五百三昧 化度憂波毱多及其弟子 後飛騰虛空作十八變 而入涅槃 [傳燈錄一 五燈會元一 付法藏傳二 西域記一 同七]
<범> Śāṇa-vāsin. <파> Sāṇa-vāsī. 또 이름이 사나바사(舍那婆斯)ㆍ상낙가바사(商諾迦縛娑)며 여기에선 이르되 태의(胎衣)ㆍ자연의(自然衣)임. 아난의 법자(法子)임. 마돌라국(摩突羅國; 梵 Math urā) 사람이며 성은 비사다(毘舍多)며 태(胎)에 있기 6년 만에 출생했음. 아난의 처소에서 팔만사천법장(八萬四千法藏)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모두 기억하고 그것을 수지(受持)했음. 또 제방(諸方)을 유화(遊化)하다가 마돌라국(摩突羅國)의 만타산(曼陀山)에서 두 용자(龍子)를 교화했으며 그곳에 승려가 머물 곳을 영건(營建)했음. 계빈(罽賓)에 이르러 용분신정(龍奮迅定) 등 5백 삼매를 나타내어 우바국다(憂波毱多)와 및 그 제자들을 화도(化度)했음. 후에 허공에 비등(飛騰)하여 18변(變)을 짓고는 열반에 들었음 [전등록1. 오등회원1.부법장전2. 서역기1, 동7].
優波毱多;<梵> Upagupta 禪宗第四祖 又作優婆毱多 憂波毱多 優波笈多 優波崛多 優波崛 鄔波毬多 鄔婆毱多 略稱崛多 此云大護 近藏 近護 吒利國人 姓首陀氏 父善意 師商那和修 出家得道 有異迹 號爲無相好佛 度人最衆 秣兔羅國城東五六里 巖間有石室 高二十餘尺 廣三十餘尺 四寸細籌塡積其內 尊者近護說法化導 夫妻俱證羅漢果者 乃下一籌 異室別族雖證不記 所記其人籌數盈溢石室 [傳燈錄一 傳法正宗定祖圖一 翻譯名義集一 阿育王傳]
<범> Upagupta. 선종 제4조. 또 우바국다(優婆毱多)ㆍ우바국다(憂波毱多)ㆍ우바급다(優波笈多)ㆍ우바굴다(優波崛多)ㆍ우바굴(優波崛)ㆍ오바국다(鄔婆毱多)로 지으며 약칭(略稱)이 굴다(崛多)임. 여기에선 이르되 대호(大護)ㆍ근장(近藏)ㆍ근호(近護)임. 타리국(吒利國) 사람이며 성(姓)은 수타씨(首陀氏)며 아버지는 선의(善意)임. 상나화수(商那和修)를 사사(師事)하여 출가하고 득도(得道)했음. 이적(異迹)이 있었으며 명호(名號)가 무상호불(無相好佛)이 되며 사람을 제도함이 가장 많았음. 말토라국(秣兔羅國) 성(城)의 동쪽 오륙 리 바위 사이에 석실이 있는데 높이는 20여 척(尺)이며 너비는 30여 척이었음. 4촌(寸)의 세주(細籌)를 그 안에 채우고 쌓는데 존자(尊者) 근호(近護)가 설법하여 화도(化導)하되 부처(夫妻)가 모두 라한과(羅漢果)를 증득해야 이에 1주(籌)를 투하했음. 이실(異室)이나 별족(別族)은 비록 증득하더라도 기록치 않았는데 기록한 바 그 사람의 주수(籌數)가 석실을 가득 채우고 넘쳤음 [전등록1. 전법정종정조도1. 번역명의집1. 아육왕전].
提多迦; <梵> Dhītika 梵云提多迦 此云通眞量 本名香衆 又作提知迦 地底迦 此云有愧 乃禪宗第五祖 摩伽陀國(一說摩突羅國)人 師從優波毱多出家 二十歲受具足戒 後得優波毱多付法 [有部毘奈耶雜事四十 阿育王傳 傳法正宗記二 傳燈錄一 付法藏傳五]
<범> Dhītika. 범어로 이르되 제다가는 여기에선 이르되 통진량(通眞量)임. 본래 이름은 향중(香衆)이었음. 또 제지가(提知迦)ㆍ지지가(地底迦)로 지으며 여기에선 이르되 유괴(有愧)임. 곧 선종 제5조니 마가타국(摩伽陀國. 일설엔 摩突羅國) 사람임. 스님이 우바국다(優波毱多)를 좇아 출가했고 20세 때 구족계를 받았으며 후에 우바국다의 부법(付法)을 얻었음 [유부비나야잡사40. 아육왕전. 전법정종기2. 전등록1. 부법장전5].
彌遮迦; <梵> Miccaka 禪宗第六祖 中印度人 遊化北印度 得婆須蜜付囑大法 入於師子奮迅三昧 身踴虛空 復回本座而自焚化 [傳燈錄一]
<범> Miccaka. 선종 제6조. 중인도 사람. 북인도로 유화(遊化)하다가 바수밀(婆須蜜)을 얻어 대법(大法. 佛法. 禪法)을 부촉하고 사자분신삼매에 들더니 몸을 허공에 솟고는 다시 본좌로 돌아와 스스로 분화(焚化)했음 [전등록1].
婆須蜜多; <梵> Vasumitra 又作婆須蜜 此云天友 世友 禪宗第七祖 北天竺國人 姓頗羅墮 常服淨衣 執酒器 遊行里閈 或吟或嘯 人謂之狂 及遇彌遮迦尊者 宣如來往誌 自惺前緣投器出家 得法行化 [傳燈錄一 慧琳音義二十三]
<범> Vasumitra. 또 바수밀(婆須蜜; 婆須密)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천우(天友)ㆍ세우(世友)며 선종 제7조. 북천축국 사람이며 성(姓)이 파라타(頗羅墮)임. 늘 깨끗한 옷을 입고 주기(酒器)를 가지고 이한(里閈; 마을)에 유행(遊行)하면서 혹은 읊고 혹은 휘파람 불었음. 사람들이 이르기를 미치광이라 했는데 및 미차가존자(彌遮迦尊者)가 여래의 지난 기록(記錄; 誌)을 선설(宣說)함을 만나 스스로 전연(前緣)을 깨닫고 주기(酒器)를 던지고 출가했으며 득법하고 행화(行化)했음 [전등록1. 혜림음의23].
佛馱難提; <梵> buddhanandiya 又作佛陀難提 古代印度迦摩羅國人 繼承釋尊敎法(付法藏)之第八祖 尊者頭頂有肉髻 辯才無礙 據付法藏傳五 彌遮迦以正法付尊者佛陀難提 令其流布勝甘露味 佛陀難提轉大法輪 摧伏魔怨 然後付法佛陀蜜多 據寶林傳 佛陀難提從婆須蜜受法 婆須蜜從彌遮迦受法 佛陀蜜多從佛陀難提受法 [祖堂集一 傳燈錄一]
<범> buddhanandiya. 또 불타난제(佛陀難提)로 지음. 고대 인도 가마라국(迦摩羅國) 사람. 석존의 교법(敎法; 付法藏)을 계승한 제8조. 존자(尊者)는 머리 꼭대기에 육계(肉髻)가 있으며 변재(辯才)가 무애(無礙)했음. 부법장전5에 의거하자면 미차가(彌遮迦)가 정법을 존자 불타난제에게 부촉하면서 그로 하여금 유포하되 감로미(甘露味) 보다 수승케 하라 했고 불타난제가 대법륜을 굴려 마원(魔怨; 魔와 怨讐)을 최복(摧伏)한 연후에 불타밀다(佛陀蜜多)에게 부법했다 했음. 보림전(寶林傳)에 의거하자면 불타난제가 바수밀(婆須蜜)을 좇아 법을 받았고 바수밀이 미차가(彌遮迦)를 좇아 법을 받았고 불타밀다(佛陀蜜多)가 불타난제를 좇아 법을 받았다 했음 [조당집1. 전등록1].
伏馱蜜多; 禪宗第九祖 此云覺親 印度提伽國人 姓毘舍羅 師德厚而具大智慧 受佛陀難提(付法藏第八祖)付囑 善巧方便度化衆生 摧滅異學 其時國王崇信外道 輕毁佛法 師自持赤旛 行於王前 經歷多時 王始召之 師至王所 求與外道對論 以無方論屈服對方 復與王論議 挫其邪心 令信正法 尋又敎化尼乾子 令其弟子五百人歸佛 後付法脅比丘而示寂 [付法藏傳五 傳燈錄一 傳法正宗記二 佛祖統紀五]
선종 제9조. 여기에선 이르되 각친(覺親)임. 인도 제가국(提伽國) 사람이며 성은 비사라(毘舍羅). 스님은 덕이 두텁고 큰 지혜를 갖췄음. 불타난제(佛陀難提; 付法藏 제8조)의 부촉을 받고서 선교(善巧)한 방편으로 중생을 도화(度化)하고 이학(異學)을 최멸(摧滅)했음. 그때 국왕은 외도(外道)를 숭신(崇信)하고 불법을 경훼(輕毁)했음. 스님이 스스로 적번(赤旛)을 가지고 왕 앞으로 가서 경력(經歷)하기를 많은 시간이었는데 왕이 비로소 그를 불렀음. 스님이 왕의 처소에 이르러 외도와 대론(對論)하기를 청구했고 무방(無方)의 논설로써 상대방을 굴복시키고 다시 왕과 논의하여 그 사심(邪心)을 꺾어 정법을 믿게 했음. 이윽고 니건자(尼乾子; 梵 Nirgran tha–putra)를 교화하여 그의 제자 5백 사람으로 하여금 귀불(歸佛)케 했음. 후에 협비구(脅比丘)에게 부법하고 시적했음 [부법장전5. 전등록1. 전법정종기2. 불조통기5].
脇尊者; <梵> Pārśva 梵語波栗濕縛 又作波奢 華言難生 禪宗第十祖 中印度人 本名難生 年八十捨家染衣 後値伏馱尊者 執侍左右 未嘗睡眠 謂其脇不至席 遂號脇尊者 或云脅比丘 脅羅漢 脅尊者後奉迦膩色迦王之命 於迦濕彌羅國 與五百聖賢共編纂大毘婆沙論 [傳燈錄一 付法藏傳五 西域記二 同三 翻譯名義集二]
<범> Pārśva. 범어로 파률습바(波栗濕縛)며 또 파사(波奢)로 지음. 화언(華言; 中華의 말)으론 난생(難生). 중인도(中印度) 사람이며 본명이 난생(難生)임. 나이 80에 집을 버리고 염의(染衣; 僧衣)했음. 후에 복타존자(伏馱尊者)를 만나 좌우에서 집시(執侍)했는데 일찍이 자지 않았음. 이르자면 그의 옆구리가 깔개에 이르지 않았으므로 드디어 협존자(脇尊者)로 호칭(呼稱)했으며 혹은 이르되 협비구(脅比丘)ㆍ협라한(脅羅漢)이라 했음. 협존자는 후에 가니색가왕(迦膩色迦王)의 칙명(勅命)을 받들어 가습미라국(迦濕彌羅國)에서 5백 성현(聖賢)과 함께 대비바사론(大毘婆沙論)을 편찬(編纂)했음 [전등록1. 부법장전5. 서역기2, 동3. 번역명의집2].
富那夜奢; <梵> puṇyayaśas 又作富那耶舍 按傳燈錄一 禪宗第十一祖(一說十祖) 華氏國人 姓瞿曇氏 父寶身 得法於脇尊者 詣波羅柰國 與馬鳴對論佛法 如來大法眼藏付於馬鳴 [付法藏傳五 寶林傳三 佛祖統紀五]
<범> puṇyayaśas. 또 부나야사(富那耶舍)로 지음. 전등록1을 안험컨대 선종 제11조(일설엔 10조)임. 화씨국 사람이며 성은 구담씨(瞿曇氏)며 아버지는 보신(寶身)임. 협존자에게서 법을 얻었음. 바라나국으로 나아가 마명(馬鳴)과 불법을 대론(對論)했으며 여래의 대법안장을 마명에게 부촉했음 [부법장전5. 보림전3. 불조통기5].
馬鳴; 禪宗第十二祖 梵語阿濕縛窶沙 或名阿濕矩沙 華言馬鳴 波羅柰國人 亦稱功勝 功德日 北天竺小月氏國王 伐於中天竺國得大寶 一佛鉢 二辯才比丘 王繫馬於衆會前 以草與之 馬垂淚聽比丘說法無念食想 以馬解其音故 天下人遂號爲馬鳴菩薩 [傳燈錄一 馬鳴菩薩傳 翻譯名義集一 西域記八]
선종 제12조. 범어로는 아습바구사(阿濕縛窶沙; 梵 Aśvaghoṣa)며 혹은 이름이 아습구사니 화언(華言)으론 마명임. 바라나국(波羅柰國) 사람이며 또 명칭이 공승(功勝)ㆍ공덕일(功德日). 북천축 소월지국왕(小月氏國王)이 중천축국(中天竺國)을 정벌하여 대보(大寶)를 얻었으니 1은 불발(佛鉢)이며 2는 변재비구(辯才比丘)였음. 왕이 대중이 모인 앞에 말을 묶고는 풀을 주었더니 말이 눈물을 흘리며 비구의 설법을 들을 뿐 밥을 생각함이 없었음. 말도 그의 음성을 아는 연고로써 천하인이 드디어 마명보살이라 호했음. [전등록1. 마명보살전. 번역명의집1. 서역기8].
大士; 菩薩之通稱也 或以名聲聞及佛 士者凡夫之通稱 簡別於凡夫而稱爲大 又士者事也 爲自利利他之大事者 謂之大士 ▲韓詩外傳 孔子與子路子貢顔淵言志 謂子路曰 勇士哉 謂子貢曰 辨士哉 謂顔淵曰 大士哉
보살의 통칭임. 혹 성문이나 및 불타를 이름함. 사(士)란 것은 범부의 통칭이니 범부와 간별(簡別)하여 대(大)로 호칭함. 또 사(士)란 것은 사(事)니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대사(大事)를 하는 자를 일러 대사(大士)라 함. ▲한시외전. 공자가 자로ㆍ자공ㆍ안연과 더불어 지(志)를 말했다. 자로에게 일러 가로되 용사(勇士)다. 자공에게 일러 가로되 변사(辨士)다. 안연에게 일러 가로되 대사(大士)다.
迦毘摩羅; <梵> Kapimala 爲付法傳第十三祖 摩揭陀國華氏城人 初爲外道師 領三千弟子 以神力嬈害馬鳴 然終屈服於馬鳴之論義 歸依爲其弟子 受馬鳴付囑後 赴南天竺 大興敎化 作無我論一百偈 以摧伏外道 後至西印度 有王子名雲自在 以城北一山窟供養之 以爲尊者禪寂之處 未久 尊者乃付法予龍樹 而盡其化緣 [傳燈錄一 付法藏傳五 佛祖統紀五]
<범> Kapimala. 부법전(付法傳)의 제13조가 됨. 마갈타국(摩揭陀國; 梵 Magadha) 화씨성 사람. 처음엔 외도사(外道師)가 되어 3천 제자를 거느리고 신력으로 마명(馬鳴)을 요해(嬈害)하려 했으나 마침내 마명의 논의에 굴복하고 귀의하여 그의 제자가 됨. 마명의 부촉을 받은 후 남천축에 다다라 교화를 크게 일으켰으며 무아론 1백 게를 지어 외도를 최복(摧伏)했음. 후에 서인도에 이르자 왕자가 있었으니 이름이 운자재(雲自在)였으며 성의 북쪽 일산(一山)의 굴을 그에게 공양하여 존자의 선적(禪寂)의 처소로 삼게 했음. 오래지 않아 존자가 곧 용수에게 법을 부촉하여 주면서 그의 화연을 다했음 [전등록1. 부법장전5. 불조통기5].
龍樹; 禪宗第十四祖 梵語那伽閼剌樹那 華言龍猛(舊曰龍樹) 南印度婆羅門種姓出身 自幼穎悟 學四吠陀 天文地理圖緯祕藏 及諸道術等 無不通曉 曾與契友三人修得隱身之術 遂隱身至王宮侵凌女眷 其事敗露 三友人爲王所斬 僅師一人身免 師感悟愛欲乃衆苦之本 卽入山詣佛塔 竝出家受戒 廣習三藏 然未能厭足 復至雪山 遇一老比丘授以大乘經典 惟以雖知實義 末能通利 又以曾摧破外道論師之義 故生起邪慢之心 而自立新戒 著新衣 靜處於一水晶房中 其時有大龍菩薩 見而愍之 遂引入龍宮 授以無量之大乘經典 師遂體得敎理 其時南天竺王信奉婆羅門敎 攻擊佛法 師遂前往敎化 使放棄婆羅門敎 此後大力弘法 又廣造大乘經典之注釋書 晩年住於南印度之黑峰山 [入楞伽經九 大乘玄論五 華嚴經傳記五 付法藏傳五 傳法正宗記三 佛祖統紀五] ▲龍樹菩薩傳 南天竺諸國爲其立廟敬奉如佛 其母樹下生之 因字阿周陀那 阿周陀那樹名也 以龍成其道 故以龍配字 號曰龍樹也
선종 제14조. 범어 나가알랄수나(那伽閼剌樹那. 梵 Nāgārjuna)는 화언(華言)으로 용맹(龍猛; 구역에 가로되 龍樹)임. 남인도 바라문종성(婆羅門種姓) 출신. 어릴 적부터 영오(穎悟)해 사폐타(四吠陀)ㆍ천문지리ㆍ도위비장(圖緯祕藏) 및 여러 도술(道術) 등을 배워 통효(通曉)하지 않은 게 없었음. 일찍이 계우(契友; 의기투합하는 친구) 세 사람과 은신(隱身)의 비술(祕術)을 수득(修得)해 드디어 은신하여 왕궁에 이르러 여권(女眷; 궁녀를 가리킴)을 침릉(侵凌)했는데 그 일이 실패해 노출된지라 세 벗은 왕에게 베이는 바가 되었고 겨우 스님 한 사람의 몸만 면(免)했음. 스님이 애욕은 곧 뭇 고(苦)의 근본임을 감오(感悟)하고 곧 입산하여 불탑(佛塔)으로 나아갔으며 아울러 출가하여 수계(受戒)했으며 삼장(三藏)을 널리 학습했음. 그러나 능히 염족(厭足; 滿足)하지 못했고 다시 설산에 이르러 한 늙은 비구(比丘)를 만났는데 대승경전(大乘經典)을 주었음. 사유(思惟)하여 비록 실의(實義)를 알았으나 능히 통리(通利)하지 못했음. 또 일찍이 외도논사(外道論師)의 뜻을 최파(摧破)한지라 고로 사만(邪慢)의 마음을 일으켜 스스로 새로운 계(戒)를 세우고 새로운 옷을 입고 한 수정방(水晶房) 속에 고요히 거처했음. 그때 대룡보살(大龍菩薩)이 있어 이를 보고 그를 불쌍히 여겨 드디어 인도(引導)해 용궁(龍宮)에 들어가 무량한 대승경전을 주었고 스님이 드디어 교리를 체득(體得)했음. 그때 남천축왕(南天竺王)이 바라문교를 신봉(信奉)하여 불법을 공격하는지라 스님이 드디어 앞으로 가서 교화해 바라문교를 방기(放棄)케 했음. 차후에 대력(大力)으로 홍법(弘法)했고 또 대승경전의 주석서를 광조(廣造)했음. 만년에 남인도의 흑봉산(黑峰山)에 거주했음 [입릉가경9. 대승현론5. 화엄경전기5. 부법장전5. 전법정종기3. 불조통기5].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 남천축의 여러 나라에서 그를 위해 묘(廟)를 세웠는데 부처와 같이 경봉(敬奉)했다. 그의 어머니가 나무 아래에서 그를 낳은지라 인하여 아주타나(阿周陀那; 梵 arjuna)로 자(字)했다. 아주타나는 나무 이름이다. 용(龍)으로써 그 도를 이룬지라 고로 용으로써 배자(配字)하여 호칭해 가로되 용수(龍樹)라 했다.
迦那提婆; <梵> Kāṇa-deva 禪宗第十五祖 南天竺國人 姓毘舍羅 博識淵覽 才辯絶倫 嘗挖鑿大自在天金像之眼 後復自挖取隻眼回施大自在天 故遂無一眼 時人號曰迦那提婆 後得法於龍樹 [提婆菩薩傳 佛祖歷代通載五 付法藏傳六 出三藏記集十二]
<범> Kāṇa-deva. 선종 제15조. 남천축국 사람이며 성은 비사라(毘舍羅)임. 박식하고 깊이 열람했으며 재변(才辯)이 절륜(絶倫)했음. 일찍이 대자재천(大自在天)의 금상(金像)의 눈을 굴착했는데 후에 다시 스스로 한 짝 눈을 굴착해 대자천에게 회시(回施)한지라 고로 드디어 한 눈이 없었으며 시인(時人)이 호해 가로되 가나제바라 했음. 후에 용수에게서 법을 얻었음 [제바보살전. 불조역대통재5. 부법장전6. 출삼장기집12].
羅睺羅多; <梵> rāhulabhadra 禪宗第十六祖 印度迦毘羅國人 姓梵摩 與龍樹爲同時代人 早年入那爛陀寺 從尊者黑者受具足戒 學聲聞乘 又依無分別者廣學大乘及祕密乘 竝弘通中觀之宗義 隨侍十五祖迦那提婆 證皆空之理 於那爛陀寺敎化僧徒 又按付法藏因緣傳六 師從提婆受婆羅門所造之鬼名書 後以種種方便敎化衆生 付法與僧伽難提 [中觀論疏三本 傳燈錄二 寶林傳三 印度哲學硏究一]
<범> rāhulabhadra. 선종 제16조. 인도 가비라국(迦毘羅國) 사람이며 성이 범마(梵摩). 용수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 됨. 젊은 나이에 나란타사(那爛陀寺)에 들어가 존자흑자(尊者黑者)를 좇아 구족계를 받고 성문승(聲聞乘)을 배웠으며 또 무분별자(無分別者)에게 의지해 대승 및 비밀승(祕密乘)을 널리 학습했으며 아울러 중관(中觀)의 종의(宗義)를 홍통(弘通)했음. 15조 가나제바(迦那提婆)를 수시(隨侍)하며 개공(皆空)의 이치를 증득했으며 나란타사에서 승도를 교화했음. 또 부법장인연전6을 안험하니 스님은 제바(提婆)로부터 바라문이 지은 바 귀명서(鬼名書)를 받았으며 후에 갖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했으며 승가난제(僧伽難提)에게 부법(付法)해 주었음 [중관론소3본. 전등록2. 보림전3. 인도철학연구1].
僧伽難提; <梵> Saṃghanandi 又作僧迦那提 僧佉難提 禪宗第十七祖 室羅閥城寶莊嚴王之子 [傳燈錄二 傳法正宗記三 佛祖歷代通載五]
<범> Saṃghanandi. 또 승가나제(僧迦那提)ㆍ승가난제(僧佉難提)로 지음. 선종 제17조. 실라벌성 보장엄왕의 아들 [전등록2. 전법정종기3. 불조역대통재5].
伽耶舍多; 或稱迦耶舍多 又稱僧佉耶舍 禪宗第十八祖 摩提國人 姓鬱頭藍 父天蓋 母方聖 一日 手持圓鏡出遊 遇十七祖難提尊者得度 受具足戒 [傳燈錄二 寶林傳四]
혹은 가야사다(迦耶舍多)로 명칭하며 또 승가야사로 명칭함. 선종 제18조임. 마제국 사람이며 성은 울두람이며 아버지는 천개며 어머니는 방성임. 어느 날 손에 둥근 거울을 가지고 나가 노닐다가 17조 난제존자(難提尊者)를 만나 득도(得度)했고 구족계를 받았음 [전등록2. 보림전4].
鳩摩羅多; <梵> kumāralāta 禪宗第十九祖 又作鳩摩羅陀 鳩摩羅馱 矩摩邏多 拘摩羅邏多 此云童受 童首 豪童 童子 又稱美名童子 大月氏國婆羅門之子 臨滅卽其座上 以指爪剺面 如紅蓮開 出大光明 照曜四衆 乃趣寂滅 [傳燈錄二 傳法正宗記三]
<범> kumāralāta. 선종 제19조. 또 구마라타(鳩摩羅陀)ㆍ구마라타(鳩摩羅馱)ㆍ구마라다(矩摩邏多)ㆍ구마라라다로 지음. 여기에선 이르되 동수(童受)ㆍ동수(童首)ㆍ호동ㆍ동자며 또 명칭이 미명동자니 대월지국 바라문의 아들임. 멸도에 임해서 곧 그의 좌상에서 손톱으로 얼굴을 벗기매 마치 홍련이 핌과 같았고 대광명을 내어 사중(四衆)을 비추어 밝혔으며 곧 적멸로 향했음 [전등록2. 전법정종기3].
闍耶多; 又作闍夜多 北天竺人 西天第二十祖 父母素信三寶 然坎坷多疾 師遂生不平之疑 後於中天竺遇鳩摩羅多尊者 尊者釋以因果罪福之說 師頓釋所疑 遂出家受具足戒 竝嗣其法 後至羅閱城(王舍城) 敷揚頓敎 當時學衆唯尙辯論 爲首者名爲婆修盤頭(世親) 常日僅一食 晝夜不臥 六時禮佛 淸淨無欲 爲衆所歸 師遂度化之 臨入滅時 卽付法於婆修盤頭 [寶林傳四 祖堂集二 傳燈錄二]
또 사야다(闍夜多)로 지음. 북천축 사람이며 서천 제20조. 부모가 본디 3보(寶)를 믿었지만 그러나 감가(坎坷; 不遇)하고 질병이 많았음. 스님이 드디어 평등하지 못하다는 의심을 내었음. 후에 중천축에서 구마라다존자(鳩摩羅多尊者)를 만났는데 존자가 인과죄복(因果罪福)의 설(說)로써 해석하자 스님이 문득 의심했던 바가 풀렸고 드디어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으며 아울러 그의 법을 이었음. 후에 라열성(羅閱城; 王舍城)에 이르러 돈교(頓敎)를 부양(敷揚)했는데 당시의 학중(學衆)은 오직 변론(辯論)을 숭상했음. 우두머리가 되는 자의 이름이 바수반두(婆修盤頭; 世親)였는데 늘 하루에 겨우 1식(食)하고 주야로 눕지 않았으며 육시(六時)에 예불했으며 청정하여 무욕(無欲)이라 대중이 귀의하는 바였음. 스님이 드디어 그를 도화(度化)하였고 입멸에 임한 때 곧 바수반두에게 부법했음 [보림전4. 조당집2. 전등록2].
婆修盤頭; <梵> Vasubandhu 此云遍行 羅閱城人 姓毘舍佉 父光蓋 母嚴一 禪宗第二十一祖 [佛祖歷代通載四 傳燈錄二]
<범> Vasubandhu. 여기에선 이르되 편행(遍行)이며 라열성(羅閱城) 사람이며 성은 비사가(毘舍佉)며 부친은 광개며 모친은 엄일이니 선종 제21조 [불조역대통재4. 전등록2].
摩拏羅; 禪宗第二十二祖 那提國常自在王之子 年三十遇婆修盤頭祖師出家傳法 後鶴勒那問尊者曰 我有何緣而感鶴衆 尊者曰 汝第四劫中嘗爲比丘 當赴會龍宮 汝諸弟子咸欲隨從 汝觀五百衆中 無有一人堪任妙供 時諸子曰 師常說法 於食等者於法亦等 今旣不然何聖之有 汝卽令赴會 自汝捨生趣生轉化諸國 其五百弟子 以福微德薄生於羽族 今感汝之惠 故爲鶴衆相隨 鶴勒那聞語曰 以何方便令彼解脫 尊者曰 我有無上法寶 汝當聽受化未來際 而說偈曰 心隨萬境轉 轉處實能幽 隨流認得性 無喜復無憂 時鶴衆聞偈飛鳴而去 尊者跏趺寂然奄化 [寶林傳四 祖堂集二 傳燈錄二]
선종 제22조. 나제국(那提國) 상자재왕(常自在王)의 아들. 나이 30에 바수반두조사(婆修盤頭祖師)를 만나 출가했고 법을 전수(傳受)했음. 후에 학륵나(鶴勒那)가 존자에게 물어 가로되 내가 무슨 사연(事緣)이 있어 학의 무리를 감응(感應)합니까. 존자가 가로되 너는 제4겁 중에 일찍이 비구가 되어 마땅히 용궁의 모임에 다다르게 되자 너의 여러 제자가 모두 수종(隨從)하고 싶어 했다. 네가 관찰하매 5백의 대중 가운데 묘공(妙供)을 감임(堪任)할 이가 한 사람도 있지 않았다. 때에 여러 제자가 가로되 스님이 늘 설법하시기를 식(食)에 평등한 자는 법에도 또한 평등하다고 하시더니 지금은 이미 그렇지 않으시니 무슨 성인(聖人)이 있다 하겠습니까. 네가 곧 데리고 모임에 다다랐다. 네가 사생취생(捨生趣生)함으로부터 여러 나라를 전화(轉化)했지만 그 5백의 제자는 복이 미약하고 덕이 희박(稀薄)하여 우족(羽族)에 태어났다. 이제 너의 은혜에 감응한지라 고로 학중(鶴衆)이 되어 서로 따른다. 학륵나가 말씀을 듣고 가로되 무슨 방편을 써야 그들로 하여금 해탈케 하겠습니까. 존자가 가로되 내가 무상법보(無上法寶)가 있나니 너는 마땅히 청수(聽受)하여 미래제(未來際)를 교화하라. 게를 설해 가로되 마음이 만경(萬境)을 따라 구르나니/ 구르는 곳이 실로 능히 그윽하다/ 흐름을 따라 성품을 알아 얻으면/ 기쁨도 없고 다시 근심도 없으리라. 때에 학중이 게를 듣더니 날아 울며 떠났음. 존자가 가부좌하고 적연(寂然)히 문득 화거(化去)했음 [보림전4. 조당집2. 전등록2].
鶴勒那; <梵> Haklena-yaśa 勒那梵語 鶴卽華言 以尊者出世常感群鶴戀慕故名 禪宗第二十三祖 月支國人 婆羅門種 二十二歲出家 三十餘歲遇摩拏羅尊者 受付囑大法 後至中印度行化 深得國王無畏海之敬信 又遇師子比丘 乃付法而示寂 [付法藏因緣傳六 傳燈錄二 佛祖統紀五]
<범> Haklena-yaśa. 륵나(勒那)는 범어며 학(鶴)은 곧 화언(華言)이니 존자가 출세하매 늘 군학(群鶴)이 연모함을 감득(感得)했으므로 고로 이름했음. 선종 제23조. 월지국(月支國) 사람이며 바라문종(婆羅門種)임. 22세에 출가했으며 30여 세에 마나라존자(摩拏羅尊者)를 만나 대법(大法)을 부촉(付囑)함을 받았음. 후에 중인도(中印度)에 이르러 행화(行化)했는데 깊이 국왕 무외해(無畏海)의 경신(敬信)을 얻었으며 또 사자비구(師子比丘)를 만나 이에 부법(付法)하고 시적했음 [부법장인연전6. 전등록2. 불조통기5].
師子; 禪宗第二十四祖 中印度人 婆羅門出身 從鶴勒那得法後 遊方至罽賓國 敎化波利迦 達磨達等人 竝傳法與婆舍斯多 命其往南天竺敎化 遂獨留罽賓 時遇當地迫害佛敎 被惡王所殺 [付法藏傳六 傳燈錄二 寶林傳五]
선종 제24조. 중인도(中印度) 사람이며 바라문 출신. 학륵나(鶴勒那)를 좇아 법을 얻은 후 유방(遊方)하며 계빈국(罽賓國)에 이르러 파리가(波利迦)ㆍ달마달(達磨達) 등의 사람을 교화했으며 아울러 바사사다(婆舍斯多)에게 전법(傳法)하여 주었음. 그들에게 명령해 남천축으로 가서 교화하게 하고는 드디어 홀로 계빈에 머물렀음. 당시에 당지(當地)에서 불교를 박해(迫害)함을 만나 악왕(惡王)에게 살해되는 바를 입었음 [부법장전6. 전등록2. 보림전5].
婆舍斯多; 亦號婆羅多羅 亦號婆羅多那 罽賓國人 禪宗第二十五祖 婆羅門出身 其母夢得神劍而有孕 旣誕生 左手握珠而不開 一日遇師子尊者 顯發宿因 出家爲其弟子 因師子尊者遇害而潛隱山谷 受當時國王天德之供養 後傳法太子不如蜜多 [傳法正宗記四 寶林傳六 傳燈錄二]
또한 호가 바라다라(婆羅多羅)며 또 호가 바라다나(婆羅多那)임. 계빈국(罽賓國) 사람이며 선종 제25조며 바라문 출신임. 그의 어머니가 꿈에 신검(神劍)을 얻고 잉태했음. 이미 탄생하자 왼손에 구슬을 쥐고는 열지 않았는데 어느 날 사자존자(師子尊者)를 만나 숙인(宿因)이 현발(顯發)하여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음. 사자존자가 살해(殺害)를 만남으로 인해 산곡(山谷)으로 몰래 숨었음. 당시 국왕인 천덕(天德)의 공양을 받았으며 후에 태자 불여밀다(不如蜜多)에게 전법(傳法)했음 [전법정종기4. 보림전6. 전등록2].
不如蜜多; <梵> puṇyamitra 又作不如密多 禪宗傳燈系譜印度第二十六祖 南印度得勝王之子 二十五祖婆舍斯多得法後 遊化至南印度 其時 南印度國王得勝 信奉外道 構難婆舍斯多 太子不如密多 以進諫被囚 王欲以邪法之罪名 囚戮婆舍斯多 遂與之問答佛理 然反爲婆舍斯多所折服 王乃追悔致禮 竝赦放不如密多 不如密多遂求出家 歷六年 婆舍斯多付以大法 是爲第二十六祖 得法後 行化至東印度 彼地國王名堅固 信奉外道長爪梵志 師以正法折服梵志之幻法 竝爲王演說法要 俾趣眞乘 此後六十年間弘法其地 傳法於般若多羅後 卽跏趺入滅 化火自焚 堅固王收舍利而瘞之 [祖堂集二 寶林傳六 傳燈錄二]
<범> puṇyamitra. 또 불여밀다(不如密多)로 지음. 선종 전등계보 인도 제26조. 남인도 득승왕(得勝王)의 아들임. 25조 바사사다(婆舍斯多)가 법을 얻은 후에 유화(遊化)하며 남인도에 이르렀는데 그때 남인도의 국왕은 득승(得勝)이었으며 외도(外道)를 신봉했음. 바사사다에게 난(難)을 얽자(構) 태자 불여밀다(不如密多)가 간언(諫言)을 드렸다가 갇힘을 입었음. 왕이 사법(邪法)의 죄명(罪名)으로써 바사사다를 가둬 죽이려고 하면서 드디어 그와 불리(佛理)를 문답했음. 그러나 도리어 바사사다에게 절복(折服)되어 왕이 이에 추회(追悔)하고 예(禮)를 드렸음. 아울러 불여밀다를 사면(赦免)해 놓아주었으며 불여밀다가 드디어 출가를 구했음. 6년이 경과하자 바사사다가 대법(大法)을 부촉했으니 이것이 26조가 됨. 법을 얻은 후에 행화(行化)하다가 동인도에 이르렀는데 그 땅의 국왕은 이름이 견고(堅固)였으며 외도 장조범지(長爪梵志)를 신봉했음. 스님이 정법으로 범지의 환법(幻法)을 절복(折服)했으며 아울러 왕을 위해 법요를 연설해 진승(眞乘)으로 향(趣)하게 하였음. 차후에 60년 간 그 땅에서 홍법하고 반야다라(般若多羅)에게 전법한 후 곧 가부(跏趺)하고 입멸하되 화화(化火)하여 스스로 태웠음. 견고왕이 사리를 거두어 묻었음 [조당집2. 보림전6. 전등록2].
慧可; (487-593) 又作惠可 亦作僧可 東土禪宗二祖 南北朝之僧 河南洛陽人 俗姓姬 初名神光 幼時於洛陽龍門香山 依寶靜出家 於永穆寺受具足戒 早年周遊聽講 精硏孔老之學與玄理 北魏正光元年(520) 參達磨祖師於嵩山少林寺 從學六年 達磨乃傳大法竝衣鉢 師於北齊天保三年(552) 傳法僧璨 其後赴河南鄴都 演說楞伽經意 凡三十餘年 韜光晦跡 人莫能識 後於筦城縣匡救寺三門下 談無上道 聽者林會 時有辯和法師者 於寺中講涅槃經 學徒聞師闡法 稍稍引去 辯和不勝其憤 興謗于邑宰翟仲侃 仲侃惑其邪說 加師以非法 師怡然委順 時年一百七歲 卽隋文帝開皇十三(一說十二)年癸丑歲三月十六日也 唐德宗諡大祖禪師 [傳燈錄三 寶林傳八 傳法正宗記六]
(487-593) 또 혜가(惠可)로 지으며 또한 승가(僧可)로 지음. 동토선종(東土禪宗)의 2조(祖). 남북조(南北朝)의 승인이며 하남(河南) 낙양(洛陽) 사람이며 속성(俗姓)이 희(姬)며 처음의 이름은 신광(神光)이었음. 어릴 때 낙양 용문(龍門)의 향산(香山)에서 보정(寶靜)을 의지(依止)해 출가하였고 영목사(永穆寺)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음. 젊은 나이에 돌아다니며 청강(聽講)하였으며 공로(孔老; 孔子와 老子)의 학문과 현리(玄理)를 정밀하게 연구했음. 북위(北魏) 정광(正光) 원년(520) 숭산(嵩山) 소림사(少林寺)에서 달마조사(達磨祖師)를 참알(參謁)해 좇아 배우기가 6년이었으며 달마가 이에 대법(大法)과 아울러 의발(衣鉢)을 전수(傳授)했음. 스님이 북제(北齊) 천보(天保) 3년(552)에 승찬(僧璨)에게 전법(傳法)했고 그 후에 하남의 업도(鄴都)에 다다라 릉가경(楞伽經)의 뜻을 연설했음. 무릇 30여 년 동안 도광회적(韜光晦跡; 빛을 감추고 자취를 어둡게 함)하여 사람들이 능히 알지 못했음. 뒤에 관성현(筦城縣)의 광구사(匡救寺) 3문(門) 아래에서 무상도(無上道)를 얘기하자 듣는 자가 숲처럼 모였음. 때에 변화법사(辯和法師)란 자가 있어 사중(寺中)에서 열반경을 강설했는데 배우는 무리가 스님의 법 여심을 듣고 조금씩 인도(引導)해 떠나자 변화가 그 분을 이기지 못해 읍재(邑宰)인 적중간(翟仲侃)에게 비방을 일으켰으며 적중간이 그 삿된 설에 현혹(眩惑)되어 스님에게 비법(非法)을 가했음. 스님이 기쁜 듯(怡然) 위순(委順; 세상을 떠남)했으며 당시의 나이가 107세였으니 곧 수(隋) 문제(文帝) 개황(開皇) 13년(一說엔 12) 계축세(癸丑歲) 3월 16일임. 당(唐) 덕종(德宗)이 시호(諡號)하여 대조선사(大祖禪師)라 했음 [전등록3. 보림전8. 전법정종기6].
僧璨; (?-606) 又作僧粲 隋代僧 禪宗三祖 籍貫不詳 或謂徐州人 初以居士身參二祖慧可 得法受衣鉢 年已四十餘 隱於司空山 北周武帝滅法 師往來避難 隱居皖公山 人無知者 隋開皇十二年(592) 道信來投 年僅十四 從學九年 傳之以法 待其緣熟 以大業二年 於所居山舍前 合掌立化 壽不詳 唐玄宗賜諡鑑智禪師 後世尊爲禪宗三祖 又稱三祖僧璨 撰有信心銘傳世 [傳燈錄三 佛祖統紀三十 五燈會元一]
(?-606) 또는 승찬(僧粲)으로 지으며 수대승(隋代僧). 선종 3조. 적관(籍貫; 貫鄕. 本官)은 상세치 못하며 혹 이르되 서주(徐州) 사람이라 함. 처음에 거사(居士)의 몸으로 2조 혜가(慧可)를 참알(參謁)하여 법을 얻고 의발을 받았음. 나이가 이미 40여에 사공산(司空山)에 은거했는데 북주(北周)의 무제(武帝)가 멸법(滅法)하자 스님이 왕래하며 피난하다가 환공산(皖公山)에 은거했으며 사람이 아는 이가 없었음. 수(隋) 개황 12년(592) 도신(道信)이 와서 투신(投身)하였는데 나이가 겨우 14이었음. 좇아 배우기 9 년에 법을 그에게 전하면서 그 기연(機緣)이 익기를 기다렸음. 대업 2년 거주하는 바의 산사(山舍)의 앞에서 합장한 채 입화(立化; 서서 죽음)하였음. 나이는 상세치 못함. 당현종이 시호를 주어 감지선사(鑑智禪師)라 했음. 후세에 존중해 선종의 3조가 되었고 또 일컫기를 삼조승찬(三祖僧璨)이라 했음. 찬(撰)에 신심명(信心銘)이 있어 세상에 전함 [전등록3. 불조통기30. 오등회원1].
道信; (580-651) 東土禪宗第四祖 嗣法於僧璨 傳於弘忍 蘄州廣濟(湖北廣濟)人 俗姓司馬 隋開皇十二年(592) 入舒州皖公山參僧璨 言下大悟 奉侍九年(一說十年) 得其衣鉢 後師欲往衡岳 路出江州 道俗請留廬山大林寺 唐武德七年(624) 歸蘄州 住破頭山三十餘年 傳法於弘忍 又有弟子法融 別立牛頭禪 又破頭山後改稱雙峰山 故世人又稱師爲雙峰道信 貞觀十七年(643) 太宗聞其道風 三詔入京 師均上表辭謝 帝乃遣使 謂若不起 命取首級 師伸頸就刃 神色儼然 使者異之 還入奏 帝愈歎慕 賜珍繒 永徽二年閏九月(一說永徽元年) 垂誡門人 安坐而寂 壽七十二 建塔於東山黃梅寺 因弟子弘忍居於黃梅東山弘傳禪法 故世人竝稱師與弘忍之道法爲東山法門 竝遙尊師爲東山法門之初祖 大曆(76 6-779)年中 代宗敕諡大醫禪師 著有入道安心要方便法門 菩薩戒作法等書 [續高僧傳二十六 五燈會元一 佛祖統紀二十九]
(580-651) 동토 선종 제4조며 승찬(僧璨)에게서 법을 이어 홍인(弘忍)에게 전했음. 기주 광제(호북 광제) 사람이며 속성은 사마(司馬). 수(隋) 개황 12년(592) 서주의 환공산에 들어가 승찬을 참알하고 언하에 대오했음. 받들어 모시기 9년(일설엔 10년)에 그의 의발을 얻었음. 후에 스님이 형악으로 가고자 하는데 길이 강주로 났으며 도속(道俗. 僧俗)이 청해 여산의 대림사에 머물렀음. 당 무덕 7년(624)에 기주로 돌아가 파두산에 머물기 30여 년이었으며 홍인에게 법을 전했음. 또 제자 법융(法融)이 있어 따로 우두선(牛頭禪)을 세웠음. 또 파두산은 후에 쌍봉산으로 개칭한지라 고로 세인(世人)이 또 스님을 일컬어 쌍봉도신(雙峰道信)이라 했음. 정관 17년(643) 태종이 그 도풍을 듣고 세 번 조칙하여 입경케 했으나 스님이 모두 표를 올려 사사(辭謝. 사절하여 물리침)했음. 황제가 이에 사자를 파견하며 이르되 만약 일어나지 않거든 황명으로 수급(首級. 싸움터에서 벤 적의 목)을 취하라. 스님이 목을 내밀어 칼날로 나아가면서 신색(神色)이 엄연(儼然)하였음. 사자가 이를 괴이히 여겨 돌아가 입궁헤 아뢰자 황제가 더욱 탄모(歎慕)하고 진기한 비단을 주었음. 영휘 2년 윤9월(일설엔 영휘 원년) 문인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편안히 앉아 입적했으니 나이는 72며 동산(東山)의 황매사에 탑을 세웠음. 제자인 홍인이 황매(黃梅)의 동산(東山)에 거주하면서 선법을 크게 전한지라 고로 세인이 스님과 홍인의 도법을 아울러 칭해 동산법문(東山法門)이라 함. 아울러 스님을 멀리 존경해 동산법문의 초조(初祖)라 함. 대력(766-7 79)년 중에 대종이 대의선사(大醫禪師)로 칙시(敕諡)했음. 저서에 입도안심요방편법문ㆍ보살계작법 등의 책이 있음 [속고승전26. 오등회원1. 불조통기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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