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 권3 제32조 홍인대사(弘忍大師) 04

태화당 2023. 1. 29. 08:54

能居士跪受衣法 啓曰 法則旣授衣付何人 師曰 昔達磨初至人未知信 故傳衣以明得法 今信心已熟 衣乃爭端止於汝身不復傳也 且當遠隱俟時行化 所謂授衣之人命如懸絲也 能曰 當隱何所 師曰 逢懷卽止 遇會且藏 能禮足已捧衣而出 是夜南邁大衆莫知 忍大師自此不復上堂凡三日 大衆疑怪致問 祖曰 吾道行矣 何更詢之 復問衣法誰得耶 師曰 能者得 於是衆議盧行者名能 尋訪旣失 懸知彼得卽共奔逐 忍大師旣付衣法 復經四載 至上元二年乙亥歲乃唐高宗時也 至肅宗時復有上元年號 其二年歲在辛丑也 忽告衆曰 吾今事畢時可行矣 卽入室安坐而逝 壽七十有四 建塔於黃梅之東山 代宗皇帝謚大滿禪師法雨之塔 自大師滅度至皇宋景德元年甲辰 凡三百三十年

命如懸絲; 又作命若懸絲 比喩性命處于十分危險的境地

懸知; 料想 預知

上堂 一上法堂 爲演法而上法堂也 此有旦望上堂 五參上堂 九參上堂 謝秉拂上堂 謝都寺上堂 出隊上堂 出鄕上堂等 二上僧堂 爲喫粥飯而上僧堂也 三上間 此指一

 

능거사(能居士)가 꿇어앉아 의법(衣法)을 받고 사뢰어() 가로되 법은 곧 이미 받았으나(; 와 통함) 옷은 어떤 사람에게 부촉해야 합니까. 사왈(師曰) 옛적에 달마가 처음 이르러 사람들이 믿지 않는지라 고로 전의(傳衣)로 득법(得法)을 밝혔다. 지금은 신심(信心)이 이미 익었으며 옷은 이에 쟁단(爭端)이니 너의 몸에서 그치고 다시 전하지 말아라. 다만() 마땅히 멀리 숨어서 시절을 기다렸다가() 행화(行化)하라. 소위(所謂) 수의(授衣)한 사람은 목숨이 실에 대달린 듯하느니라(命如懸絲). 혜능이 가로되 마땅히 어느 곳에 숨어야 합니까. 사왈 회(; 懷集)를 만나면() 곧 멈추고() (; 四會縣)를 만나면() () 숨어라(). 혜능이 예족(禮足)하고 나서 옷을 받들고() 나갔다. 이날 밤 남으로 갔는데() 대중이 알지 못했다. 홍인대사는 이로부터 다시 상당(上堂)하지 않은 게 무릇 3일이었다. 대중이 의괴(疑怪)하여 치문(致問; 질문하다)하자 조왈(祖曰) 나의 도가 행했다. 어찌 다시 이를 묻는가(). 다시 묻되 의법(衣法)은 누가 얻었습니까. 사왈 능자(能者)가 얻었다. 이에 대중이 의논했는데 노행자(盧行者)의 이름이 능()이었다. 이윽고 방문하매 이미 잃었고 그가 얻었음을 현지(懸知; 헤아려 생각하다)하고는 곧 함께 분축(奔逐)했다. 홍인대사(弘忍大師)가 이미 의법을 부촉하고는 다시 4()를 지나 상원(上元) 2乙亥歲(675)니 곧 唐高宗 時. 肅宗 時에 이르러 다시 上元年號가 있으며 그 2년은 歲在辛丑(761)이다에 이르러 홀연히 고중(告衆)해 가로되 내가 이제 일을 마쳤고 가히 갈() 때다. 곧 입실하더니 안좌(安坐)하여 떠났다(). 나이는 74. 황매의 동산(東山)에 건탑(建塔)했다. 대종황제(代宗皇帝)가 시()하여 대만선사법우지탑(大滿禪師法雨之塔)이라 했다. 대사가 멸도함으로부터 황송(皇宋) 경덕원년 갑진(1004)에 이르기까지 무릇 330년이다.

命如懸絲; 또 명약현사(命若懸絲)로 지음. 성명(性命)이 십분 위험한 경지에 처함을 비유.

懸知; 요상(料想; 헤아려 생각함). 예지(預知).

上堂 1. 법당(法堂)에 오름이니 연법(演法)하기 위해 법당에 오름임. 이에 단망상당(旦望上堂)ㆍ오참상당(五參上堂)ㆍ구참상당(九參上堂)ㆍ사병불상당(謝秉拂上堂)ㆍ사도사상당(謝都寺上堂)ㆍ출대상당(出隊上堂)ㆍ출향상당(出鄕上堂) 등이 있음. 2. 승당(僧堂)에 오름이니 죽반(粥飯)을 먹기 위해 승당에 오름임. 3. 상간(上間). 여기에선 1을 가리킴.

 

景德傳燈錄卷第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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