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 권5 영가현각(永嘉玄覺) 01

태화당 2023. 2. 18. 08:34

溫州永嘉玄覺禪師者永嘉人也 姓戴氏 丱歲出家遍探三藏 精天台止觀圓妙法門 於四威儀中常冥禪觀 後因左谿朗禪師激勵 與東陽策禪師同詣曹谿 初到振錫携甁 繞祖三匝 祖曰 夫沙門者具三千威儀八萬細行 大德自何方而來生大我慢 師曰 生死事大無常迅速 祖曰 何不體取無生了無速乎 曰體卽無生 了本無速 祖曰 如是如是 于時大衆無不愕然 師方具威儀參禮 須臾告辭 祖曰 返太速乎 師曰 本自非動豈有速耶 祖曰 誰知非動 曰仁者自生分別 祖曰 汝甚得無生之意 曰無生豈有意耶 祖曰 無意誰當分別 曰分別亦非意 祖歎曰 善哉善哉 少留一宿 時謂一宿覺矣 策公乃留師 翌日下山迴溫江 學者輻湊 號眞覺大師 著證道歌一首 及禪宗悟修圓旨自淺之深 慶州刺史魏靖 緝而序之成十篇 目爲永嘉集竝盛行于世

溫州; 浙江省東南部永嘉縣的古稱 因氣候溫和 故稱溫州 永嘉玄覺 鏡淸道怤等出生地 府城西有松臺山淨光寺 玄覺曾住此而作證道歌

天台止觀; 天台止觀有四本 一曰圓頓止觀 大師於荊州玉泉寺說 章安記爲十卷 二曰漸次止觀 在瓦官寺說 弟子法愼記 本三十卷 章安治定爲十卷 今禪波羅蜜是 三曰不定止觀 卽陳尙書令毛喜請大師出 有一卷 今六妙門是 四曰小止觀 卽今文是 亦名童蒙止觀 大師爲俗兄陳鍼出 寔大部之梗槪 入道之樞機 曰止觀 曰定慧 曰寂照 曰明靜 皆同出而異名也 [百度文庫]

四威儀; 謂行住坐臥四種威儀 出家人所必須遵守之儀則 敎中有三千威儀八萬細行等語

左谿朗; 玄朗(673-754) 唐代僧 乃天台宗第八祖 婺州烏傷縣(浙江義烏)人 一作浙江東陽人 俗姓傅 傅大士之六代孫 字慧明 號左溪 九歲出家 武后如意元年(692 中宗嗣聖九年) 二十歲 蒙敕住東陽淸泰寺 因就光州岸律師受具足戒 曾至會稽妙喜寺與印宗禪師硏學禪要 詣東陽天宮寺 從慧威學法華經等 復依恭禪師修習止觀 門下有中興天台宗之湛然 與新羅人法融 理應 純英等名僧輩出 天寶十三年示寂 世壽八十二 撰有法華科文二卷 [永嘉集 宋高僧傳二十六 釋氏稽古略三]

三千威儀八萬細行; 爲佛弟子持守日常威儀之作法 坐作進退有威德儀則 稱爲威儀 比丘所應持守之二百五十戒 配以行住坐臥四威儀 合爲一千戒 循轉三世(一說三聚淨戒) 卽成三千威儀 再配以身口七支(殺 盜 淫 兩舌 惡口 妄言 綺語) 貪瞋癡三毒及等分等四種煩惱 共成八萬四千 諸經擧其大數 但稱八萬細行 淨心誡觀法以小乘大乘之不同著眼 而謂菩薩戒有八萬威儀 聲聞戒有三千威儀 又八宗綱要上謂 僧戒與尼戒不同 僧有二百五十戒 卽三千威儀 六萬細行 尼有三百四十戒 卽八萬威儀 十二萬細行 考諸文獻 最早採用三千威儀之名目者 卽中庸之優優大哉 禮儀三百 威儀三千 [楞嚴經文句五 法華三大部補注十一 大藏法數六十八]

證道歌; 永嘉證道歌 一卷 又作永嘉眞覺禪師證道歌 證道歌 唐永嘉玄覺(6657 13)撰 收於大正藏第四十八冊 全文有二四七句 共一八一四字(一作二六七句 一八一七字) 爲古體詩之體裁 或四句或六句一解 只分五十一解 揭示其悟境之要旨 撰述年代推定爲神龍五年(705)頃 本書以流麗之文體敘述禪宗眞髓 乃禪文學之絶唱 故廣受禪門喜愛 注釋書有 宋彦琪知訥的證道歌注各一種 元永盛的證道歌注頌

永嘉集; 禪宗永嘉集 一卷 又稱永嘉禪集 永嘉禪宗集 永嘉集 唐代永嘉玄覺(665713)撰 慶州刺史魏靜輯 今收錄於嘉興藏第四冊 龍藏第一二七冊 大正藏第四十八冊 內容以天台止觀遮照之旨 解釋禪宗之禪 揭示禪定之用意及修行之歷程 共分十篇 第一慕道志儀 第二戒憍奢意 第三淨修三業 第四奢摩他頌 第五毘婆舍那頌 第六優畢叉頌 第七三乘漸次 第八理事不二 第九勸友人書 第十發願文 卷首附有魏靜之序 初三門爲序分 次五門爲正宗分 後二門爲流通分 本書爲台禪融合之初作 故頗受矚目 有關之注釋書有宋僧行靖之永嘉集註二卷 明僧傳燈之永嘉禪宗集註二卷等

 

온주(溫州) 영가현각(永嘉玄覺) 선사란 자는 영가 사람이며 성이 대씨(戴氏). 관세(丱歲; 童年)에 출가하여 삼장(三藏)을 두루 탐구(探究)했고 천태지관(天台止觀)의 원묘법문(圓妙法門)에 정통했고 사위의(四威儀) 중에 늘 선관(禪觀)을 명상(冥想)했다. 후에 좌계랑(左谿朗) 선사의 격려(激勵)로 인해 동양책(東陽策; 6조의 法嗣 玄策) 선사와 함께 조계로 나아갔다. 처음 이르러 석장(錫杖)을 떨치고 병()을 가지고 6조를 세 바퀴 돌았다. 조왈(祖曰) 무릇 사문(沙門)이란 자는 삼천위의(三千威儀)와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추어야 하거늘 대덕(大德)은 어느 지방으로부터 왔기에 큰 아만을 내는가. 사왈 생사(生死)의 일이 크고 무상(無常)이 신속(迅速)합니다. 조왈 어찌하여 무생(無生)을 체취(體取; 體得)하고 무속(無速)을 요득(了得)하지 않는가. 가로되 체취하니 곧 무생이며 요득하니 본래 신속(迅速)이 없더이다. 조왈 이와 같고 이와 같다. 우시(于時; 당시)에 대중이 악연(愕然)하지 않음이 없었다. 스님이 비로소 위의를 갖추어 참례하고 수유(須臾)에 고별을 고했다. 조왈 도리어 너무 신속하지 않는가. 사왈 본래 스스로 움직임이 아니거늘 어찌 신속이 있으리오. 조왈 누가 움직이지 않음임을 아는가. 가로되 인자(仁者)가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 조왈 네가 심()히 무생(無生)의 뜻을 얻었다. 가로되 무생이거늘 어찌 뜻()이 있으리오. 조왈 무의(無意)이거늘 누가 마땅히 분별하는가. 가로되 분별하여도 또한 뜻이 아닙니다. 6조가 감탄하며 가로되 선재선재(善哉善哉)로다. 조금 머물러 일숙(一宿)한지라 당시에 이르기를 일숙각(一宿覺)이라 했다. 책공(策公)이 이에 스님을 만류(挽留)했고 익일(翌日) 하산하여 온강(溫江)으로 돌아갔다. 학자가 복주(輻湊)했고 호가 진각대사(眞覺大師). 증도가(證道歌) 1(; 量詞) 및 선종의 오수(悟修)의 원지(圓旨)를 천()으로부터의 심()을 지었는데 경주자사(慶州刺史) 위정(魏靖)이 모아서() 이에 서()했고 10(十篇)을 이루었으며 제목을 영가집(永嘉集)이라 했고 아울러 세상에 성행(盛行)한다.

溫州; 절강성 동남부 영가현(永嘉縣)의 고칭(古稱). 기후가 온화함으로 인해 고로 명칭이 온주임. 영가현각과 경청도부 등의 출생지. 부성(府城) 서쪽에 송대산 정광사가 있으며 현각이 일찍이 여기에 거주하면서 증도가를 지었음.

天台止觀; 천태지관4()이 있음. 1은 가로되 원돈지관(圓頓止觀)이니 대사(大師)가 형주(荊州) 옥천사(玉泉寺)에서 설했고 장안(章安)이 기록했으며 10권이 됨. 2는 가로되 점차지관(漸次止觀)이니 와관사(瓦官寺)에서 설했고 제자 법신(法愼)이 기록했으며 본래 30권이었으나 장안(章安)이 치정(治定)하여 10권으로 만들었음. 지금의 선바라밀(禪波羅蜜)이 이것임. 3은 가로되 부정지관(不定止觀)이니 곧 진() 상서령(尙書令) 모희(毛喜)의 청으로 대사가 내었음. 1권이 있으며 지금의 육묘문(六妙門)이 이것임. 4는 가로되 소지관(小止觀)이니 즉금의 문()이 이것이며 또 이름이 동몽지관(童蒙止觀). 대사가 속형(俗兄) 진침(陳鍼)을 위해 내었음. 참으로() 대부(大部)의 경개(梗槪; 대강의 줄거리)며 입도(入道)의 추기(樞機)니 가로되 지관(止觀)이며 가로되 정혜(定慧)며 가로되 적조(寂照)며 가로되 명정(明靜)이거니와 모두 동출(同出)하여 다른 이름임 [백도문고].

四威儀; 이르자면 행ㆍ주ㆍ좌ㆍ와의 4종 위의니 출가인이 필수로 준수해야 할 바의 의칙(儀則). 교중에 3천 위의 8만 세행(細行) 등의 말이 있음.

左谿朗; 현랑(玄朗; 673-754)이니 당대승. 곧 천태종 제8. 무주 오상현(절강 의오) 사람이니 한편으론 절강 동양(東陽) 사람이라 함. 속성은 부()니 부대사(傅大士)6대손(六代孫)이며 자는 혜명(慧明)이며 호가 좌계(左溪). 9세에 출가했고 무후(武后) 여의 원년(692; 中宗 嗣聖 九年) 20세에 몽칙(蒙敕)하여 동양 청태사에 주()했고 인하여 광주 안율사에게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음. 일찍이 회계 묘희사에 이르러 인종선사(印宗禪師)와 선요(禪要)를 연학(硏學)했음. 동양(東陽) 천궁사에 나아가 혜위(慧威)로부터 법화경 등을 배웠음. 다시 공선사(恭禪師)에게 의지하며 지관(止觀)을 수습(修習)했음. 문하에 천태종을 중흥한 담연(湛然)과 신라 사람 법융(法融)ㆍ이응(理應)ㆍ순영(純英) 등 명승을 배출했음. 천보 13년 시적했고 세수는 82. ()에 법화과문 2권이 있음 [영가집. 송고승전26. 석씨계고략3].

三千威儀八萬細行; 불제자가 지수(持守)하는 일상의 위의의 작법이 됨. 앉고 일하고 나아가고 물러서면서 위덕과 의칙(儀則)이 있음을 일컬어 위의라 함. 비구가 응당 지수(持守)하는 바의 250계를 행ㆍ주ㆍ좌ㆍ와 4위의에 배합하면 합계가 1천 계()가 되고 삼세(三世; 일설엔 三聚淨戒)에 순전(循轉)하면 곧 3천 위의(威儀)를 이룸. 다시 신구(身口)의 칠지(七支; 兩舌惡口妄言綺語)와 탐ㆍ진ㆍ치 3독 및 등분(等分) 4종 번뇌에 다시 배합하면 공히 84천을 이룸. 여러 경에서 그 대수(大數)를 들어 다만 팔만세행(八萬細行)으로 일컬음. 정심계관법(淨心誡觀法)은 소승과 대승의 같지 않음에 착안하여 이르기를 보살계에 8만 위의가 있고 성문계에 3천 위의가 있다 했음. 또 팔종강요상(八宗綱要上)에서 이르기를 승계(僧戒)와 니계(尼戒)가 같지 않아 승()250계가 있으니 곧 3천 위의에 6만 세행이며 니()340계가 있으니 곧 8만 위의에 12만 세행이라 했음. 여러 문헌을 상고(詳考)하니 가장 일찍 삼천위의의 명목을 채용한 것은 곧 중용의 우우대재(優優大哉)라 예의가 3백이며 위의가 3천이다 [릉엄경문구5. 법화삼대부보주11. 대장법수68].

證道歌; 영가증도가(永嘉證道歌)1. 또 영가진각선사증도가ㆍ증도가로 지음. ()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이 지었음(). 대정장(大正藏) 48책에 수록되었으며 전문(全文)247(), 공히 1,814(한편으론 267, 1,814자로 지음)가 있음. 고체시(古體詩)의 체재(體裁)로 되었으며 혹은 4, 혹은 6구가 1()며 단지 51()로 나뉘었음. 그의 오경(悟境)의 요지(要旨)를 게시(揭示)했음. 찬술연대(撰述年代)는 추정(推定)하기를 신룡 5(705) (). 본서는 유려(流麗)한 문체(文體)로 선종의 진수(眞髓)를 서술했으며 곧 선문학(禪文學)의 절창(絶唱)인지라 고로 널리 선문의 희애(喜愛)를 받음. 주석서는 송() 언기(彦琪)와 지눌(知訥)의 증도가주(證道歌注) 1종과 원() 영성(永盛)의 증도가주송(證道歌注頌)이 있음.

永嘉集; 선종영가집(禪宗永嘉集) 1. 또 명칭이 영가선집(永嘉禪集)ㆍ영가선종집(永嘉禪宗集)ㆍ영가집(永嘉集). 당대 영가현각(永嘉玄覺; 665713)이 지었고() 경주자사(慶州刺史) 위정(魏靜)이 집()했으며 지금 가흥장 제4책ㆍ용장 제127책ㆍ대정장 제48책에 수록되었음. 내용은 천태지관(天台止觀)의 차조(遮照)의 뜻으로써 선종의 선()을 해석하여 선정(禪定)의 용의(用意) 및 수행의 역정(歷程)을 게시(揭示)하였음. 모두 10()으로 분류했음. 1 모도지의(慕道志儀), 2 계교사의(戒憍奢意), 3 정수삼업(淨修三業), 4 사마타송(奢摩他頌), 5 비바사나송(毘婆舍那頌), 6 우필차송(優畢叉頌), 7 삼승점차(三乘漸次), 8 이사불이(理事不二), 9 권우인서(勸友人書), 10 발원문(發願文). 권수에 위정의 서가 첨부되어 있음. 3()은 서분(序分)이 되고 다음 5문은 정종분(正宗分)이 되고 후 2문은 유통분(流通分)이 됨. 본서는 태선(台禪; 천태와 선종) 융합의 초작(初作)이 되는지라 고로 자못 촉목(矚目)을 받음. 관련(關聯)이 있는 주석서에 송승(宋僧) 행정(行靖)의 영가집주(永嘉集註) 2, 명승(明僧) 전등(傳燈)의 영가선종집주(永嘉禪宗集註) 2권 등이 있음.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2022년 3월 발행. 150부. 5책 1질. 총 4,842쪽, 12.5pt. 4․6배판. 하드. 양장. 정가 40만 원. 할인. 잔본 81질 한문주석 1만 여 개로 염송본문의 各則을 해석하고 전체를 한글로 번역. 주석의 쪽 수가 본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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