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 권6 도일선사(道一禪師) 01

태화당 2023. 2. 24. 08:03

景德傳燈錄卷第六

 

南嶽懷讓禪師法嗣

第一世九人

江西道一禪師一人見錄姓馬時謂馬祖

南嶽常浩禪師

智達禪師

坦然禪師

潮州神照禪師

揚州大明寺嚴峻禪師

新羅國本如禪師

玄晟禪師

東霧山法空禪師已上八人無機緣語句不錄

第二世三十七人馬祖法嗣

越州大珠慧海禪師

洪州泐潭山法會禪師

池州杉山智堅禪師

洪州泐潭惟建禪師

澧州茗谿道行禪師

撫州石鞏慧藏禪師

唐州紫玉山道通禪師

江西北蘭讓禪師

洛京佛光如滿禪師

袁州南源道明禪師

忻州酈村自滿禪師

朗州中邑洪恩禪師

洪州百丈山懷海禪師禪門規式附 已上十三人見錄

鎬英禪師

崇泰禪師

王姥山翛然禪師

華州伏棲寺策禪師

澧州松滋塔智聰禪師

唐州雲秀山神鑒禪師

揚州棲靈寺智通禪師

坑州智藏禪師

京兆懷韜禪師

處州法藏禪師

河中府懷則禪師

常州明幹禪師

鄂州洪潭禪師

象原懷坦禪師

潞府靑蓮元禮禪師

河中府保慶禪師

甘泉志賢禪師

大會山道晤禪師

潞府法柔禪師

京兆咸通寺覺平禪師

義興勝辯禪師

海陵慶雲禪師

洪州開元寺玄虛禪師已上二十三人無機緣語句不錄

 

懷讓禪師第一世

江西道一禪師 漢州什邡人也 姓馬氏 容貌奇異牛行虎視 引舌過鼻 足下有二輪文 幼歲依資州唐和尙落髮 受具於渝州圓律師 唐開元中習禪定於衡嶽傳法院 遇讓和尙 同參九人唯師密受心印讓之一猶思之遷也 同源而異派 故禪法之盛始于二師 劉軻云 江西主大寂 湖南主石頭 往來憧憧不見二大士爲無知矣 西天般若多羅記達磨云 震旦雖闊無別路 要假姪孫脚下行 金雞解銜一顆米 供養十方羅漢僧 又六祖能和尙謂讓曰 向後佛法從汝邊去 馬駒蹋殺天下人 厥後江西法嗣布於天下 時號馬祖焉始自建陽佛迹嶺遷至臨川 次至南康龔公山 大曆中隷名於開元精舍 時連帥路嗣恭 聆風景慕親受宗旨 由是四方學者雲集坐下

江西; 一唐代僧馬祖道一住江西南昌府新建縣開元寺 故稱江西 二揚子江中流南岸之地 又稱江右

漢州; 今四川省廣漢市

資州; 今四川資中資陽兩縣均是古資州地

渝州; 隋初改楚州爲渝州 治巴縣 卽今重慶 後遂以渝爲重慶的簡稱 [百度百科]

同參; 指同事一師而共同參禪者 亦指共同行脚參訪者

劉軻; (772-840) 字希仁 廣東韶州曲江(今韶關)人 生於唐大曆七年(772) 因其幼年好學 仰慕孟子 故自名劉軻 他曾在曹溪落髮爲僧 後隱居廬山 唐元和十三年(818) 登進士 歷任監察御史 唐侍御史等 後出任洺州刺史等職 [百度百科]

震旦雖闊無別路下; 祖庭事苑八 震旦雖闊無別路 要假兒孫脚下行 金雞解銜一粒米 供養十方羅漢僧 此讖馬大師得法於讓和上之緣 無別路 其道一也 故馬大師名道一 兒孫 嗣子也 脚下行 所謂一馬駒子踏殺天下人也 金雞銜米 以讓和上金州人 雞知時而鳴 以覺未寤 羅漢僧 馬祖生漢州之什仿縣 受讓師法食之供

連帥; 一古代十國諸侯之長 二泛稱地方高級長官 陶廬雜錄六 柳宗元言 有里胥而後有縣大夫 有縣大夫而後有諸侯 有諸侯而後有方伯連帥 有方伯連帥而後有天子

路嗣恭; (710-780) 字懿范 唐朝大臣 京兆郡三原縣(治今三原縣東北三十里)人 政績考核爲天下第一 玄宗認爲他可以嗣漢代良吏魯恭 因賜名嗣恭 [百度百科]

 

강서(江西) 도일선사(道一禪師). 한주(漢州) 십방(什邡) 사람이며 성이 마씨(馬氏). 용모가 기이(奇異)하고 소의 행보며 범의 눈초리였다. 혀를 늘이면 코에 이르렀고() 발 아래 두 바퀴의 문양이 있었다. 유세(幼歲)에 자주(資州) 당화상(唐和尙)에게 의지해 낙발(落髮)했고 투주(渝州) 원율사(圓律師)에게서 수구(受具)했다. 당 개원(開元; 713-741) 중 형악(衡嶽) 전법원(傳法院)에서 선정(禪定)을 익히다가 회양화상(懷讓和尙)을 만났고 동참(同參) 9인에 오직 스님만 심인(心印)을 밀수(密受)했다懷讓道一行思希遷과 같나니 同源이면서 異派. 고로 禪法興盛二師에서 비롯한다. 劉軻가 이르되 江西大寂(마조의 시호)이며 湖南石頭(希遷). 왕래하며 동동(憧憧; 왕래가 끊기지 않는 모양)하면서 두 大士를 친견하지 않았다면 無知로 삼았다. 西天般若多羅達磨에게 해 이르되 진단이 비록 넓지만 다른 길이 없고(震旦雖闊無別路)/ 요컨대 姪孫脚下함을 빌린다/ 金雞一粒를 머금을 줄 알아/ 十方羅漢僧에게 공양하리라. 六祖 能和尙이 회양에게 일러 가로되 향후의 불법이 汝邊으로 좇아가리니 馬駒가 천하인을 蹋殺한다. 厥後江西(마조)法嗣가 천하에 分布되니 당시에 호가 馬祖. 건양(建陽) 불적령(佛迹嶺)으로부터 시작하여 옮겨 임천(臨川)에 이르렀고 다음에 남강(南康) 공공산(龔公山)에 이르렀고 大曆(766-779. 저본에 大歷으로 지었음) 중 개원정사(開元精舍)에 이름을 붙였다(). 당시에 연수(連帥) 노사공(路嗣恭)이 도풍(道風)을 듣고() 경모(景慕; 景仰)했고 종지(宗旨)를 친수(親受)했고 이로 말미암아 사방의 학자가 좌하(坐下)로 운집했다.

江西; 1. 당대승 마조도일이 강서 남창부 신건현의 개원사에 주()한지라 고로 명칭이 강서임. 2. 양자강 중류의 남쪽 언덕의 땅이니 또 명칭이 강우(江右).

漢州; 지금의 사천성 광한시(廣漢市).

資州; 지금의 사천 자중(資中)ㆍ자양(資陽) 두 현은 균일하게 이 옛 자주(資州) 지역임.

渝州; 수초(隋初)에 초주(楚州)를 고쳐 투주로 삼았고 치소(治所)는 파현(巴縣)이니 즉금의 중경(重慶). 후에 드디어 투()를 중경의 간칭으로 삼았음 [백도백과].

同參; 한 스승을 함께 모시면서 공동으로 참선하는 자를 가리킴. 또한 공동으로 행각하면서 참방하는 자를 가리킴.

劉軻; (772-840) 자는 희인(希仁)이며 광동 소주(韶州) 곡강(曲江; 지금의 韶關) 사람이며 당 대력 7(772)에 출생했음. 그가 유년(幼年)에 호학(好學)했고 맹자를 앙모(仰慕)했음으로 인해 고로 자명(自名)하여 유가(劉軻)라 했음. 그는 일찍이 조계(曹溪)에 있으면서 낙발(落髮)하고 승인이 되었고 후에 여산(廬山)에 은거했다가 당 원화(元和) 13(818) 진사(進士)에 올랐고 감찰어사ㆍ당시어사(唐侍御史) 등을 역임했고 후에 명주자사(洺州刺史) 등의 관직에 출임(出任)했음 [백도백과].

震旦雖闊無別路下; 조정사원8. 진단이 비록 넓지만 다른 길이 없고(震旦雖闊無別路)/ 요컨대 아손(兒孫)이 각하(脚下)에 행()함을 빌린다/ 금계(金雞)가 일립(一粒)의 미()를 머금을 줄 알아/ 십방(十方)의 라한승(羅漢僧)에게 공양하리라. 이것은 마대사(馬大師)가 양화상(讓和上)에게서 득법한 인연을 참(; 예언)했다. 다른 길이 없음은 그 도()가 일()이니 고로 마대사의 이름이 도일(道一)이다. 아손(兒孫)은 사자(嗣子)며 각하행(脚下行)은 이른 바 일마구자(一馬駒子)가 천하 사람을 답살(踏殺)함이다. 금계(金雞)가 미()를 머금음은 양화상(讓和上)이 금주(金州) 사람이기 때문이니 계()는 때를 알아 울므로 미오(未寤)를 깨닫게 함이다. 라한승(羅漢僧)이란 마조가 한주(漢州)의 십방현(什仿縣)에서 태어났음이며 회양선사(懷讓禪師)의 법식(法食)의 공양을 받았다.

連帥; 1. 고대 10국 제후의 장(). 2. 널리 지방의 고급장관을 일컬음. 도려잡록6. 유종원(柳宗元)이 말하되 이서(里胥)가 있은 이후에 현대부(縣大夫)가 있고 현대부가 있은 이후에 제후가 있고 제후가 있은 이후에 방백연수(方伯連帥)가 있고 방백연수가 있은 이후에 천자가 있다.

路嗣恭; (710-780) 자는 의범이며 당조의 대신. 경조군 삼원현(治所는 지금의 삼원현 동북 30) 사람. 정적(政績)과 고핵(考核; 심사하다)이 천하제일이 되었음. 현종(玄宗)이 인식하기를 그는 가이(可以) 한대(漢代)의 양리(良吏) 노공(魯恭)을 잇는다 하고는 인하여 사공(嗣恭)이란 이름을 주었음 [백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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