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록

전등록 권6 대주혜해(大珠慧海) 05

태화당 2023. 2. 25. 09:20

道流世間有法過自然否 師曰有 曰何法過得 師曰 能知自然者 曰元氣是道否 師曰 元氣自元氣道自道 曰若如是者則應有二 師曰 知無兩人 又問 云何爲邪云何爲正 師曰 心逐物爲邪 物從心爲正 有源律師來問 和尙修道還用功否 師曰 用功 曰如何用功 師曰 饑來喫飯困來卽眠 曰一切人總如是同師用功否 師曰 不同 曰何故不同 師曰 他喫飯時不肯喫飯 百種須索 睡時不肯睡 千般計校 所以不同也 律師杜口 有韞光大德問 禪師自知生處否 師曰 未曾死何用論生 知生卽是無生法 無離生法說有無生 祖師云 當生卽不生 曰不見性人亦得如此否 師曰 自不見性不是無性 何以故 見卽是性無性不能見 識卽是性故名識性 了卽是性喚作了性 能生萬法喚作法性 亦名法身 馬鳴祖師云 所言法者 謂衆生心 若心生故一切法生 若心無生法無從生 亦無名字 迷人不知法身無象應物現形 遂喚靑靑翠竹總是法身 欝欝黃華無非般若 黃華若是般若 般若卽同無情 翠竹若是法身 法身卽同草木 如人喫筍 應總喫法身也 如此之言寧堪齒錄 對面迷佛長劫希求 全體法中迷而外覓 是以解道者行住坐臥無非是道 悟法者縱橫自在無非是法 大德又問 太虛能生靈智否 眞心緣於善惡否 貪欲人是道否 執是執非人向後心通否 觸境生心人有定否 住寂寞人有慧否 懷傲物人有我否 執空執有人有智否 尋文取證人 苦行求佛人 離心求佛人 執心是佛人 此智稱道否 請禪師一一爲說 師曰 太虛不生靈智 眞心不緣善惡 嗜欲深者機淺 是非交爭者未通 觸境生心者少定 寂寞忘機者慧沈 傲物高心者我壯 執空執有者皆愚 尋文取證者益滯 苦行求佛者俱迷 離心求佛者外道 執心是佛者爲魔 大德曰 若如是應畢竟無所有 師曰 畢竟是大德不是 畢竟無所有 大德踊躍禮謝而去此下舊本有洪州百丈山惟政禪師傳 今移在第九卷百丈山海和尙下

道流; 猶云抱道者流 禪林中指道人禪流 流 品類也 等輩也 二指道家 此指二

世間; 世爲遷流之義 破壞之義 覆眞之義 間爲中之義 墮於世中之事物 謂之世間 又間隔之義 世之事物 個個間隔而爲界畔 謂之世間 卽與所謂世界相同 大要有二種 一有情世間 謂有生者 二器世間 國土也 [楞嚴經四 唯識述記一本]

饑來喫飯困來卽眠; 禪家提倡平常心是道的一種說法 隱喩不須刻意修鍊做作多事

無情; 無情識者 謂山川草木等

齒錄; 表說和記錄

 

도류(道流)가 있어 묻되 세간(世間)에 자연(自然)을 초과할 법이 있습니까. 사왈(師曰) 있다. 가로되 어떤 법이 초과함을 얻습니까. 사왈 능히 자연을 아는 자다. 가로되 원기(元氣)가 이 도입니까. 사왈 원기는 스스로 원기며 도는 스스로 도다. 가로되 만약 이와 같다면 곧 응당 둘이 있습니다. 사왈 지()는 양인(兩人)이 없다. 우문(又問) 무엇이(云何) ()가 되고 무엇이 정()이 됩니까. 사왈 마음이 사물을 쫓으면() ()가 되고 사물이 마음을 좇으면() ()이 된다. 원율사(源律師)가 있어 내문(來問)하되 화상은 수도하면서 도리어 공()을 씁니까. 사왈 공을 쓴다. 가로되 어떻게 공을 씁니까. 스님이 가로되 주리면 밥을 먹고 피곤하면 곧 잔다(饑來喫飯困來卽眠). 가로되 일체인도 모두 이와 같으니 스님의 용공(用功; 공을 씀)과 같습니까. 사왈 같지 않다. 가로되 무슨 연고로 같지 않습니까. 사왈 그들은 밥을 먹을 때 끽반(喫飯; 밥을 먹음)을 즐기지() 않고 백 가지를 수색(須索; 索取)하고 잠 잘 때 잠을 즐기지 않고 천 가지를 계교(計校)하는지라 소이로 같지 않다. 율사가 입을 닫았다(杜口). 온광(韞光) 대덕(大德)이 있어 묻되 선사는 생처(生處)를 스스로 아십니까. 사왈 일찍이 사()하지 않거늘 어찌 생()을 논함을 쓰겠는가. 생이 즉시(卽是) 무생법(無生法)임을 알아야 하나니 생법(生法)을 여의고 무생(無生)이 있음을 설하지 않는다. 조사(祖師; 마조를 가리킴)가 이르되 생을 당해 곧 불생(不生)이다. 가로되 견성(見性)하지 못한 사람도 또한 이와 같음을 얻습니까. 사왈 스스로 견성하지 못했음이지 이 무성(無性; 자성이 없음)이 아니다. 무슨 연고냐, ()이 즉시(卽是) ()이니 무성(無性)이면 능히 보지() 못한다. ()이 즉시 성()인 연고로 이름이 식성(識性)이며 요()가 즉시 성()인지라 요성(了性)이라고 불러 짓는다. 만법을 능히 내므로 법성(法性)이라고 불러 지으며 또한 이름이 법신(法身)이다. 마명조사(馬鳴祖師)가 이르되 말한 바 법이란 것은 이르자면 중생심(衆生心)이라 했다. 이에() 마음이 생하는 연고로 일체법이 생하나니 만약 마음이 생함이 없으면 법도 좇아서() 생함이 없고 또한 명자(名字)가 없다. 미인(迷人)은 법신(法身)이 무상(無象)이며 응물(應物)하여 현형(現形)하는 줄 알지 못해 드디어 이르되() 청청(靑靑)한 취죽(翠竹)이 모두 이 법신이며 울울(欝欝)한 황화(黃華)가 반야가 아님이 없다 라고 하지만 황화가 만약 이 반야라면 반야가 곧 무정(無情)과 같을 것이며 취죽이 만약 이 법신이라면 법신이 곧 초목과 같으리니 사람이 죽순()을 먹을 것 같으면 응당 모두() 법신을 먹어야 하리라. 이와 같은 말을 어찌() 가히() 치록(齒錄)하겠는가. 대면(對面)하여 미불(迷佛)해 장겁(長劫)에 희구(希求)하고 전체의 법중(法中)에 미()하여 밖으로 찾는다. 이런 까닭으로 도를 이해하는 자는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이 도가 아님이 없고 법을 깨친 자는 종횡으로 자재(自在)하면서 이 법이 아님이 없다. 대덕이 또 묻되 태허(太虛; 太虛空)가 능히 영지(靈智)를 산생(産生)합니까. 진심(眞心)이 선악을 반연(攀緣; )합니까. 탐욕인(貪欲人)이 이 도입니까. 집시집비(執是執非)하는 사람이 향후에 마음이 통달합니까. 촉경(觸境)하여 마음을 내는 사람이 정()함이 있습니까. 적막(寂寞)에 머무는 사람이 혜()가 있습니까. 오물(傲物)을 품은() 사람이 아()가 있습니까. 집공집유(執空執有)하는 사람이 지()가 있습니까. 심문(尋文; 문자를 찾다)하여 취증(取證)하는 사람, 고행하며 구불(求佛)하는 사람, 이심(離心; 마음을 여의다)하여 구불(求佛)하는 사람. 마음이 이 부처라고 집착하는 사람, 이 지()가 도에 칭합(稱合)합니까. 청컨대 선사가 하나하나 설하십시오. 사왈 태허(太虛)는 영지(靈智)를 산생하지 않고 진심은 선악을 반연하지 않고 기욕(嗜欲)이 깊은 자는 기()가 얕고 시비를 교쟁(交爭)하는 자는 통달하지 못하고 촉경(觸境)하여 마음을 내는 자는 정()이 적고 적막(寂寞)하게 망기(忘機)하는 자는 혜()가 침몰하고 오물(傲物)로 고심(高心)하는 자는 아()가 장대(壯大)하고 집공집유(執空執有)하는 자는 모두 어리석고 심문(尋文)하여 취증(取證)하는 자는 더욱() 막히고() 고행하며 구불(求佛)하는 자는 모두() ()하고 이심(離心)하여 구불하는 자는 외도(外道)며 마음이 이 부처라고 집착하는 자는 마()가 된다. 대덕이 가로되 만약 이와 같다면 응당 필경 무소유(無所有)입니다. 사왈 필경은 옳지만() 대덕은 옳지 않나니 필경 무소유다. 대덕이 용약(踊躍)하며 예사(禮謝)하고 떠났다此下舊本洪州百丈山惟政禪師傳이 있다. 지금은 옮겨 第九卷 百丈山海和尙下에 있다.

道流; 1. 포도(抱道)한 자의 무리라고 이름과 같음. 선림 중에선 도인선류(道人禪流)를 가리킴. ()는 품류임. 등배(等輩). 2. 도가()를 가리킴. 여기에선 2를 가리킴.

世間; ()는 천류(遷流)의 뜻이며 파괴의 뜻이며 부진(覆眞)의 뜻이며 간()은 중()의 뜻이 됨. 세중(世中)의 사물(事物)에 떨어짐을 이를 일러 세간이라 함. 또 간격(間隔)의 뜻이니 세()의 사물은 개개(個個)가 간격하여 계반(界畔)이 되며 이를 일러 세간이라 함. 곧 이른 바 세계(世界)와 서로 같나니 대요(大要)2종이 있음. 1은 유정세간(有情世間)이니 이르자면 생자(生者)가 있음이며 2는 기세간(器世間)이니 국토임 [릉엄경4. 유식술기1].

饑來喫飯困來卽眠; 선가에서 제창하는 평상심이 이 도라는 일종의 설법이니 뜻에 새기면서 수련하거나 많은 일을 지음이 쓰이지 않는다 함을 은유함.

無情; 정식(情識)이 없는 것이니 이르자면 산천초목 등.

齒錄; 표설(表說)과 기록.

 

선문염송집주 5책 1질로 발간되었습니다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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