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兆興善寺惟寬禪師者 衢州信安人也 姓祝氏 年十三見殺生者 衋然不忍食 乃求出家 初習毘尼修止觀 後參大寂乃得心要 唐貞元六年始行化於吳越間 八年至鄱陽山 神求受八戒 十三年止嵩山少林寺 僧問 如何是道 師云 大好山 僧云 學人問道 師何言好山 師云 汝只識好山何曾達道 問狗子還有佛性否 師云有 僧云 和尙還有否 師云 我無 僧云 一切衆生皆有佛性 和尙因何獨無 師云 我非一切衆生 僧云 旣非衆生是佛否 師云 不是佛 僧云 究竟是何物 師云 亦不是物 僧云 可見可思否 師云 思之不及議之不得 故云不可思議 元和四年憲宗詔至闕下 白居易嘗詣師問曰 旣曰禪師何以說法 師曰 無上菩提者 被於身爲律 說於口爲法 行於心爲禪 應用者三其致一也 譬如江湖淮漢在處立名 名雖不一水性無二 律卽是法 法不離禪 云何於中妄起分別 又問 旣無分別何以修心 師云 心本無損傷 云何要修理 無論垢與淨 一切勿起念 又問 垢卽不可念 淨無念可乎 師曰 如人眼睛上 一物不可住 金屑雖珍寶 在眼亦爲病 又問 無修無念又何異凡夫耶 師曰 凡夫無明二乘執著 離此二病是曰眞修 眞修者不得勤不得忘 勤卽近執著 忘卽落無明 此爲心要云爾 有僧問 道在何處 師曰 只在目前 曰我何不見 師曰 汝有我故所以不見 曰我有我故卽不見 和尙見否 師曰 有汝有我展轉不見 曰無我無汝還見否 師曰 無汝無我阿誰求見 元和十二年二月晦日升堂說法訖就化 壽六十三 臘三十九 歸葬於㶚陵西原 勅諡大徹禪師元和正眞之塔
●八戒; 又作八戒齋 八齋戒 八關齋 八支齋 一不殺生 二不偸盜 三不婬 四不妄語 五不飮酒 六不以華鬘裝飾自身 不歌舞觀聽 七不坐臥高廣華麗床座 八不非時食
경조(京兆) 흥선사(興善寺) 유관선사(惟寬禪師)란 자는 구주(衢州) 신안(信安) 사람이며 성이 축씨(祝氏)다. 나이 13에 살생하는 자를 보고 혁연(衋然; 哀痛히 여기다)하여 차마 먹지를 못했고 이에 출가를 구했다. 처음에 비니(毘尼; 律)를 학습했고 지관(止觀)을 수습(修習)했다. 후에 대적(大寂)을 참(參)해 곧(乃) 심요(心要)를 얻었다. 당 정원(貞元) 6년(790) 비로소 오월(吳越) 사이에서 행화(行化)했고 8년(792) 파양산(鄱陽山)에 이르렀는데 신(神)이 8계(八戒)를 구수(求受; 받기를 구하다)했고 13년(797) 숭산 소림사에 머물렀다. 승문(僧問) 무엇이 이 도입니까. 사운(師云) 매우 아름다운 산이다(大好山). 승운(僧云) 학인이 도를 물었거늘 스님이 왜 호산(好山)을 말하십니까. 사운 너는 다만 호산(好山)인 줄 아니 어찌 일찍이 달도(達道)하겠는가. 묻되 구자(狗子; 개. 子는 조사)는 도리어 불성이 있습니까. 사운 있다. 승운(僧云) 화상은 도리어 있습니까. 사운 나는 없다. 승운 일체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거늘 화상은 무엇으로 인해 홀로 없습니까. 사운 나는 일체중생이 아니다. 승운 이미 중생이 아니면 이 부처입니까. 사운 이 부처가 아니다. 승운 구경(究竟)에 이 무슨 물건입니까. 사운 또한 이 물건이 아니다. 승운 가히 보고 가히 사유합니까. 사운 이를 사유하면 미치지 못하고 이를 의논하면 얻지 못하나니 고로 이르되 불가사의다. 원화(元和) 4년(809) 헌종(憲宗)이 불러(詔) 궐하(闕下)에 이르렀다. 백거이(白居易)가 일찍이 스님에게 나아가 문왈(問曰) 이미 가로되 선사(禪師)니 무엇으로써(何以) 설법합니까. 사왈 무상보리(無上菩提)란 것은 몸에 미치면(被) 율(律)이 되고 입에서 설하면 법이 되고 마음에서 행하면 선(禪)이 되나니 응용하는 것은 셋이지만 그 이치는 하나입니다. 비유컨대 강호(江湖; 저본에 江河로 지었음)와 회한(淮漢; 淮河와 漢水)이 재처(在處)에 이름을 세움과 같습니다. 이름은 비록 하나가 아니지만 수성(水性)은 둘이 없습니다. 율이 즉시(卽是) 법이며 법이 선(禪)을 여의지 않거늘 어찌하여(云何) 어중(於中; 當中)에 분별을 망기(妄起)하겠습니까. 우문(又問) 이미 분별이 없다면 무엇으로써(何以) 수심(修心)합니까. 사운 마음은 본디 손상(損傷)이 없거늘 어찌하여(云何) 수리(修理)를 요하겠습니까. 구(垢)와 정(淨)을 논하지 말고(無) 일체에 사념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우문(又問) 구(垢)는 곧 가히 사념하지 않아야겠지만 정(淨)을 사념하지 않음이 옳겠습니까(可乎). 사왈 사람의 눈동자(眼睛) 위에 1물(物)도 가히 머물지 못함과 같나니 금가루(金屑)가 비로 진보(珍寶)지만 눈에 있다면 또한 병이 됩니다. 우문(又問) 무수무념(無修無念)은 또 어찌 범부와 다르겠습니까. 사왈 범부는 무명(無明)이며 이승(二乘)은 집착(執著)하나니 이 2병(病)을 여의어야 이를 가로되 진수(眞修)입니다. 진수란 것은 근고(勤苦)를 얻지 못하고 망각을 얻지 못하나니 근고는 곧 집착에 가깝고 망각은 곧 무명에 떨어집니다. 이것이 심요(心要)가 될 뿐입니다. 어떤 중이 묻되 도가 어느 곳에 있습니까. 사왈 다만 목전에 있다. 가로되 나는 왜 보지 못합니까. 사왈 너는 아(我)가 있는 연고니 소이로 보지 못한다. 가로되 나는 아(我)가 있는 고로 곧 보지 못하거니와 화상은 봅니까. 사왈 여(汝)가 있고 아(我)가 있으면 전전(展轉)히 보지 못한다. 가로되 무아무여(無我無汝)면 도리어 봅니까. 사왈 무여무아(無汝無我)거늘 누가(阿誰) 봄을 구하겠는가. 원화(元和) 12년(817) 2월 회일(晦日) 승당(升堂)하여 설법을 마치자 취화(就化; 遷化로 나아가다)했다. 나이는 63이며 납은 39니 패릉(㶚陵) 서쪽 언덕(原)에 귀장(歸葬)했다. 칙시가 대철선사원화정진지탑(大徹禪師元和正眞之塔)이다.
●八戒; 또 팔계재(八戒齋)ㆍ팔재계(八齋戒)ㆍ팔관재(八關齋)ㆍ팔지재(八支齋)로 지음. 1은 불살생이며 2는 불투도(不偸盜)며 3은 불음(不婬)이며 4는 불망어며 5는 불음주며 6은 화만(華鬘)으로 자신을 장식하지 않고 가무하거나 관청(觀聽)하지 않음이며 7은 고광(高廣)하고 화려한 상좌(床座)에 좌와(坐臥)하지 않음이며 8은 비시(非時)에 먹지 않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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